제7화. 악마가 발급한 영수증: 0원

by 연구소장

[다음 날, 천명원 대예배당]


기자회견장으로 개조된 대예배당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수백 명의 기자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며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특종'을 향한 욕망이 이글거렸다. 사이비 종교, 납치 논란, 무허가 헬기, 그리고 괴짜 의사. 이보다 더 맛있는 먹잇감은 없었으니까.


"이환 씨! 아니, 교주님! 어제 시술은 명백한 의료법 위반 아닙니까?" "환자 동의는 받았습니까? 장기 매매 의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단상에 오르기도 전에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나는 말끔한 정장이 아닌, 어제 수술할 때 입었던—피가 말라붙어 거무죽죽해진—수술 가운을 입은 채 마이크 앞에 섰다. 옆에는 김 장로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었고, 뒤로는 휠체어에 탄 소방관(어제의 환자)과 그의 아내가 자리했다.


"조용."


내가 마이크에 대고 짧게 말했다. 스피커가 찢어질 듯한 하울링을 내자, 좌중이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질문은 나중에 받습니다. 일단, 계산부터 하시죠."


나는 품 안에서 꼬깃꼬깃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카메라들이 일제히 그 종이를 줌인(Zoom-in)했다.


"어제 우리 병원에 실려 온 환자의 진료비 청구서입니다."


나는 청구서 내용을 읊었다. "닥터 헬기 이송료, 0원." "응급 비장 적출 수술비, 0원." "기관절개술 및 중환자실 입원비, 0원." "수혈비... 이건 우리 신도들 피니까 당연히 0원."


나는 영수증을 카메라 앞에 들이밀었다. 맨 아래 적힌 **[합계: 0원]**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화면에 잡혔다.


"이게 납치범이 보낸 청구서입니다."


기자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당신들이 '정상적인 병원'이라고 부르는 곳들은 어땠습니까? 수술실 없다고, 보호자 없다고, 돈 안 될 것 같으니까 환자를 길바닥에 버렸습니다. 그게 합법입니까?"


나는 피 묻은 가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법? 의료 윤리? 웃기지 마세요. 환자가 죽으면 법이 무슨 소용입니까. 나는 살렸고, 그들은 죽이려 했습니다. 누가 악마입니까?"


그때, 맨 앞줄에 있던 날카로운 인상의 기자가 손을 들고 외쳤다. "하지만 그건 궤변입니다! 검증되지 않은 시설에서 시술하는 건 환자를 마루타 취급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검증?"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환자분, 직접 말씀하시죠."


휠체어에 앉아 있던 소방관이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목에는 아직 튜브가 꽂혀 있어 말을 할 수 없었다. 대신, 옆에 있던 아내가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제 남편은... 국가 유공자입니다. 20년 동안 불 끄다가 몸이 다 망가졌어요. 그런데 사고가 나니까 받아주는 병원이 없었어요... 119 구급대원들도 다 포기했는데..."


아내는 내 쪽을 바라보며 무릎을 꿇으려 했다. 김 장로가 황급히 부축했다.


"여기 성자님... 아니, 의사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제 남편은 차가운 길바닥에서 죽었을 겁니다. 제발... 의사 선생님을 욕하지 말아 주세요."


눈물 젖은 호소. 카메라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졌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기자들의 손길이 빨라졌다. 여론이 뒤집히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부로 선언합니다."


나는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응시했다. 마치 그 너머에 있는 보건복지부 장관과 대학병원장들을 노려보듯이.


"천명 외상센터는 돈, 빽, 신분, 종교 따지지 않습니다. 살고 싶은 놈은 다 오십시오. 병원비? 없으면 몸으로 때우십시오. 우리 병원 청소나 좀 하시던가."


나는 씨익 웃었다. "이상, 브리핑 끝."


[한 시간 뒤, 이사장실]


"대박입니다! 성자님, 아니 이사장님!" 김 장로가 태블릿 PC를 들고 춤을 추듯 들어왔다.


"실시간 검색어 1위 '천명 외상센터', 2위 '0원 영수증', 3위 '천이환 의사'. 댓글 여론 90%가 호의적입니다! '진정한 의사다', '종교는 싫지만 병원은 인정한다'는 반응이 지배적입니다!"


[시스템 알림] [메인 퀘스트 '세상의 주목' 완료!] [명성치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악명 -> 명성으로 전환 중)] [병원 등급이 상승했습니다! (F -> E)] [보상: 특수 시설 <제약 공장(Lv.1)> 건설 도면 해금]


제약 공장? 이건 또 뜬금없네. 하지만 보상을 확인할 새도 없이, 정혁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그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이사장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왜? 환자 상태 안 좋아?"


"아니요, 환자는 멀쩡한데... 약이 없습니다." "약?"


"수술 후 감염 막으려면 고단위 항생제랑 진통제가 필요한데, 거래하던 제약 도매상들이 전부 납품을 끊었습니다."


나와 김 장로의 눈이 마주쳤다. "이유가 뭔데?"


"대한의사협회랑 제약협회에서 압력이 들어왔답니다. '사이비 종교 시설에 약품을 공급하면 해당 업체와는 거래를 끊겠다'고 대학병원들이 단체로 으름장을 놓았대요."


허, 이것들 봐라? 밥그릇 뺏길까 봐 치사하게 밥줄을 끊어?


"지금 재고 얼마나 남았어?" "기본적인 건 있는데, 에크모용 항응고제랑 특수 항생제는 당장 내일이면 동납니다. 이거 없으면 환자들 패혈증으로 다 죽습니다."


정혁이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너무 튀었습니다. 기존 의료 카르텔을 건드리면 이렇게 될 줄 알았습니다."


의기소침해진 정혁과 달리, 나는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정 선생." "네?" "너 내가 돈 많은 백수라고 했던 거 기억나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을 걸쳤다. "약 안 팔면 어떡하냐고? 약 만드는 회사를 사버리면 되지."


"네...?"


"김 장로." "예, 성자님!" "우리 교단 주거래 은행이 어디지?" "스위스 비밀 계좌랑... 국내에는 K은행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국내 중소 제약회사 리스트 뽑아. 재정난 겪고 있는데 기술력은 있는 곳으로. 그리고 M&A(인수합병) 팀 꾸려."


"지금... 쇼핑하러 가시는 겁니까? 제약회사를요?" 김 장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헬기 띄워. 이번엔 비즈니스 모드다."


[경기도 화성, (주)태양바이오 공장]


다 무너져가는 공장 건물 앞. 사장실에서는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사장님! 대금 결제 안 해주시면 원료 공급 못 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니까! 이번 신약 임상만 통과하면..."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던 '태양바이오'의 박 사장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기술력 하나는 자부했지만, 자금난으로 부도 직전이었다.


그때, 사장실 문이 열리고 웬 젊은 남자가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들어왔다. 선글라스를 낀 남자, 천이환이었다.


"누, 누구십니까?" "박동훈 사장님 되시죠?"


나는 소파에 거만하게 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당신네 회사 항생제 라인, 제가 좀 필요해서요."


"약 사러 오셨습니까? 죄송하지만 저희는 소매는 안 합니다." "약을 사는 게 아니라, 회사를 산다고요."


나는 김 장로에게 손짓했다. 김 장로가 007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리고 열었다. 이번엔 현금이 아니었다. 수표였다. 0이 셀 수 없이 많이 찍힌 자기앞수표 한 장.


"부채 50억, 제가 갚아드립니다. 직원 고용 승계 100% 보장. 대신 지분 51%와 경영권은 제가 가져갑니다."


박 사장의 눈이 흔들렸다. "도대체... 이유가 뭡니까? 저희는 지금 망해가는 중소기업인데..."


"망해가는 게 아니라, 주인을 잘못 만난 거죠." 나는 선글라스를 벗고 그의 눈을 쳐다봤다.


"사장님은 약만 잘 만드세요. 파는 건 제가 합니다. 아, 그리고 당장 생산 라인 돌려서 '세프라딘(항생제)'이랑 '헤파린(항응고제)'부터 찍어내세요. 납품처는 '천명 외상센터' 독점입니다."


박 사장은 떨리는 손으로 수표를 집어 들었다. 이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계약... 하겠습니다."


[시스템 알림] [특수 시설 <제약 공장>을 획득했습니다!] [이제 필수 의약품을 자체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의료 카르텔의 '공급 차단' 디버프가 해제됩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 사장과 악수했다. "잘 부탁합니다, 공장장님."


공장을 나오는 길, 나는 정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 선생, 나다." [이사장님! 약은요? 구하셨습니까?]


"구한 정도가 아니라, 이제 펑펑 써도 돼. 항생제로 목욕을 해도 될 만큼 찍어낼 거니까."


[......진짜 미치겠네.]


"아, 그리고."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약만 해결됐다고 끝이 아니야. 그쪽에서 먼저 시비를 걸었으니, 우리도 답례를 보내야지."


[또 무슨 짓을 벌이시려고요...]


"내일 한국대 병원 앞에 밥차 보내라. 메뉴는 삼계탕." [네? 밥차요?]


"응. 현수막도 크게 걸어. [연봉 3배, 주 4일 근무, 학자금 지원. 천명 외상센터가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라고."


인력 빼가기. 상대방의 멘탈을 터뜨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전쟁은 쪽수로 하는 거야. 한대 병원 텅텅 비게 만들어 줄 테니까."


나는 차에 올라타며 김 장로에게 말했다. "장로, 리쿠르팅 팀 풀가동해. 이번엔 간호사들 집중 공략이다."


바야흐로 '대이직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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