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인간 혈액은행

by 연구소장

천명원 옥상 헬리패드. 헬기의 로터가 멈추기도 전에, 나는 창밖의 풍경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와... 진짜 미친놈들이네."


욕이 절로 나왔지만, 이번만큼은 감탄에 가까웠다. 헬리패드 아래, 중앙 광장을 가득 메운 수천 명의 인파. 그들은 마치 훈련받은 군대처럼, 혹은 거대한 백혈구 군단처럼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서 있었다.


흰 옷을 입은 그들의 팔에는 이미 고무줄이 감겨 있었고, 걷어붙인 소매 아래로 혈관이 불끈 솟아 있었다.


"성자님! O형 형제단 500명 대기 중입니다!" 김 장로가 무전기로 소리쳤다. "간염, 에이즈 검사 6개월 내에 통과한 '1등급 청정 신도'들만 선별했습니다!"


철저하네. 사이비가 이럴 땐 참 좋아. 개인정보보호법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는 저 정보력.


"정 선생! 환자 내려!" "네! 이송합니다!"


뒷문이 열리고, 정혁과 박미선이 환자가 실린 들것을 밀고 나왔다. 헬리패드 입구에는 이미 이동형 침대(Stretcher car)가 대기 중이었다.


"비키세요! 환자 지나갑니다!" 정혁이 고함을 지르자, 모세의 기적처럼 인파가 갈라졌다. 그 사이로 링거 거치대를 든 신도들이 따라붙었다.


나는 환자의 침대를 밀며 소리쳤다. "피 뽑을 준비 된 사람, 채혈실로 뛰어! 검사할 시간 없어! 크로스 매칭(교차 반응 검사)만 하고 바로 쏜다!"


"아멘!" 우렁찬 대답과 함께 수십 명의 건장한 남성 신도들이 우리 뒤를 따라오며 소매를 걷어붙였다. 마치 좀비 영화의 한 장면 같았지만, 이들은 사람을 뜯어먹으러 오는 게 아니라 살리러 오는 좀비들이었다.


[지하 1층, 제1 수술실]


"BP(혈압) 60에 40! 어레스트(심정지) 오기 직전입니다!" 마취과 이지영의 목소리가 찢어질 듯 날카로웠다.


환자의 복부는 이미 임산부처럼 부풀어 있었다. 뱃속에 피가 가득 찼다는 증거다.


"마취 시작해. 인튜베이션(기관 삽관) 하고 바로 배 연다." 나는 수술복으로 갈아입을 새도 없이, 멸균 가운만 덧입고 손을 씻었다.


"피는요? 아직 안 올라왔어요!" 정혁이 다급하게 물었다.


"올라오고 있어. 그전까지는..." 나는 수술대 옆에 섰다. 시스템 창이 눈앞에 파랗게 떠올랐다.


[수술 모드 활성화] - 환자: 45세 남성 (비장 파열, 간 열상, 대퇴골 분쇄 골절) - 사망 확률: 88% -> 75% (시스템 보정 적용) - 스킬 '신의 손(Lv.1)'이 발동됩니다.


"일단 내 손으로 막는다."


"메스." 내 손에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느껴졌다. 망설임 없는 절개(Incision). 배를 가르자마자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썩션! 시야 확보해!" 박미선 수간호사가 능숙하게 흡입기를 들이댔지만, 쏟아지는 피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비장이 완전히 박살 났어. 이건 못 살려. 적출(Splenectomy)한다." 나는 왼손을 뱃속 깊숙이 찔러 넣었다. 미끄덩거리는 장기들 사이로, 피를 뿜어내는 비장의 동맥(Splenic artery)을 찾았다.


'여기다.' 손끝에 펄떡거리는 혈관의 박동이 느껴졌다. 나는 손가락으로 혈관을 꽉 움켜쥐었다.


"지혈 확인. 정 선생, 클램프(Clamp)."


"네!" 정혁이 겸자를 건넸다. 내가 혈관을 잡고 있는 동안, 정혁이 빠르게 결찰(Ligation)을 시도했다.


그때였다. 삐— 삐— 삐— 모니터의 경고음이 빨라졌다.


"헤모글로빈 수치 4점대예요! 지금 수혈 안 하면 뇌사 옵니다!" 이지영이 비명을 질렀다. 환자의 얼굴은 이미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내 손기술로 피가 새는 건 막았지만, 이미 빠져나간 피가 너무 많았다.


"젠장, 피 왜 안 와!" 정혁이 욕설을 내뱉는 순간.


쾅-! 수술실 문이 발로 차이며 열렸다.


"피 왔습니다!"


김 장로가 헉헉거리며 들어왔다. 그의 양손에는 붉은색 혈액백이 주렁주렁 들려 있었다. 그 뒤로도 신도들이 줄지어 혈액백을 나르고 있었다. 냉장 보관된 차가운 피가 아니었다. 방금 뽑아내어, 사람의 체온이 그대로 남아 있는 따뜻한 피.


"전혈(Whole blood)입니다! 검사 다 통과했습니다!"


"달아! 펌핑해!"


박미선 수간호사가 날렵하게 혈액백을 낚아채 라인에 연결했다. 꿀럭, 꿀럭. 붉은 생명이 투명한 튜브를 타고 환자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갔다. 하나, 둘, 셋... 순식간에 팩 5개가 들어갔다.


"BP 올라갑니다! 80... 90... 100!" 이지영의 목소리에 안도감이 섞였다.


"살았다." 정혁이 마스크 안으로 긴 숨을 내뱉었다.


나는 피범벅이 된 장갑을 낀 채, 모니터를 바라봤다. 심장 박동 그래프가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돌발 퀘스트 완료: '피의 성찬'] - 보상: 대량의 명성치 획득 - 칭호 획득: [피에 젖은 성자] (효과: 수술 시 의료진의 집중력 +20%, 신도들의 광신도 +30%)


칭호 이름 꼬라지 하고는.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정혁과 박미선의 눈빛이 이전보다 훨씬 빠릿빠릿해져 있었다.


"비장은 떼어냈고. 이제 다리 뼈 맞춰야지? 정혁 선생, 네 전공이잖아." 나는 한발 물러서며 정혁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네, 제가 마무리하겠습니다." 정혁이 메스를 이어받았다. 그의 눈에는 더 이상 망설임도, 불신도 없었다. 오직 환자를 살리겠다는 의사의 본능만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3시간 후, 천명원 로비]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환자는 중환자실(ICU)로 옮겨졌고, 바이탈은 안정적이었다. 나는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로비 자판기 앞으로 나왔다.


"하아..." 동전을 넣고 캔커피를 뽑으려는데, 누군가 내 앞에 고급 테이크아웃 커피를 쑥 내밀었다. 김 장로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성자님. 정말... 경이로웠습니다." 그의 눈은 진심으로 젖어 있었다.


"경이롭긴. 너희들이 다 했지. 피 셔틀 하느라 고생했다." 나는 커피를 받아들고 한 모금 마셨다. 달다.


"저... 성자님." "왜." "지금 정문 밖이 난리입니다."


"경찰이 또 왔어?"


"아니요. 이번엔 기자들입니다." 김 장로는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포털 사이트 메인 뉴스였다.


[속보] 고속도로 4중 추돌 사고... 정체불명의 붉은 헬기, 부상자 '납치' 논란? [단독] 헬기의 정체는 사이비 종교 '구원교'? 의료법 위반 여부 수사 착수


댓글창은 이미 전쟁터였다.


사이비가 헬기도 있어? 미쳤네 ㅋㅋ


납치가 아니라 구조라는데? 현장 목격담 떴음. 119보다 빨리 왔다던데?


그래도 무허가 시술이면 불법 아님? 저 환자 장기 털리는 거 아냐?


"여론이 반반입니다. 불법 의료 행위로 고발하겠다는 단체도 있고요." 김 장로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어떻게 대응할까요? 홍보팀 풀어서 댓글 작업 할까요?"


"아니. 놔둬." 나는 캔커피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노이즈 마케팅도 마케팅이야. 시끄러울수록 좋아." "네?"


"그리고... 우리한텐 최고의 증인이 있잖아."


나는 턱짓으로 2층을 가리켰다. 어제 내가 살려냈던 1호 환자. 기관절개술을 받았던 그녀가 휠체어를 타고 로비 난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옆에는 붕대를 감은 소방관 제복이 걸려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맑았다. 광신도의 눈빛이 아니었다. 생명의 은인을 바라보는, 깊은 감사의 눈빛.


"저 환자, 회복되면 기자회견 준비해." "아..."


"제목은 이걸로 뽑아." 나는 씨익 웃었다.


['국가가 버린 생명, 악마가 살려내다.']


김 장로의 입이 떡 벌어졌다. "서, 성자님... 너무 자극적인 거 아닙니까?"


"자극적이어야 세상이 보지. 난 이 병원을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곳으로 만들 거야. 환자들이 살고 싶어서 줄을 서는 곳으로."


그때, 주머니 속 폰이 진동했다. 발신자 표시 제한. 느낌이 왔다. 아버지가 아니다. 이건 좀 더... 귀찮은 쪽이다.


[여보세요?] 중후한 남자의 목소리.


"누구십니까."


[한국 병원장입니다. 강... 아니, 천이환 이사장님 되십니까?]


호오. 대어가 미끼를 물었다. 내 스카우트 공작에 빡친 병원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오다니.


"네, 말씀하시죠."


[우리 병원 의료진 빼돌리고, 헬기 띄워서 쇼하고... 재밌습니까? 이거 명백한 업무 방해에 의료법 위반입니다. 당장 멈추지 않으면...]


"멈추면?" 나는 말을 끊었다.


"멈추면, 당신네 병원으로 환자 보낼까요? 아까 그 환자, 받아줄 수 있었습니까? 수술실 꽉 찼다고, 피 없다고 뺑뺑이 돌리다가 죽였을 거잖아."


[...] 수화기 너머 침묵이 흘렀다.


"경고는 내가 합니다. 병원장님." 나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앞으로 당신네 병원에서 감당 안 되는 환자, 돈 없다고 내쫓는 환자. 전부 나한테 보내세요."


[뭐라고요?]


"내가 다 받습니다. 돈? 필요 없어. 우린 넘치니까. 서류 쪼가리? 나중에 맞춰. 일단 살리고 봅니다."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거대한 십자가 탑을 바라봤다. 붉은 노을 빛을 받아 십자가가 피처럼 붉게 빛나고 있었다.


"지옥행 급행열차 타기 직전인 환자들. 내가 멱살 잡고 끌어 내릴 테니까. 당신들은 그냥 구경이나 하세요."


뚝. 전화를 끊었다. 가슴 속 체증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전생에 병원장실 앞에서 고개 숙였던 강진혁은 이제 없다.


"장로." "예, 성자님!"


"내일 아침 뉴스 1면, 우리가 먹는다. 기자들한테 밥차 쏘고 보도자료 뿌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판은 커졌다. 돌이킬 수 없다면, 즐기는 수밖에.


[메인 퀘스트 업데이트: '세상의 주목'] - 언론 브리핑을 성공적으로 마치십시오. - 방해 세력(기성 의료계, 검찰)의 견제를 돌파하십시오.


덤벼라, 세상아. 미친 의사가 돈까지 많으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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