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탄 공화국 북부, 임시 활주로]
쿠웅-! 콰아아아!
거대한 굉음과 함께 기체가 요동쳤다. 화물칸 바닥에 앉아 안전벨트 대신 화물 결속용 스트랩을 붙잡고 있던 100명의 학생들 몸이 앞으로 쏠렸다가 뒤로 쳐박혔다.
"으아악!"
"엄마야!"
창문이 없는 화물칸이라 밖이 보이지 않으니 공포감은 배가되었다. 오직 바퀴가 지면에 닿을 때의 충격과, 역추진 엔진이 내뿜는 찢어지는 듯한 소음만이 그들이 땅에 닿았음을 알려주었다.
덜컹, 덜컹.
비행기가 비포장 활주로를 달리며 흙먼지를 일으키는 소리가 철판을 때렸다. 잠시 후, 기체가 거친 숨을 몰아쉬듯 멈춰 섰다.
도착했다.
나는 안전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 집사, 랜딩 솜씨가 거치네."
[죄송합니다, 이사장님. 활주로 상태가 개판입니다. 유도등도 없어서 야간 투시경 끼고 내렸습니다.]
인터폰 너머로 들리는 최 집사의 목소리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유도등도 없는 활주로라. 환영 인사가 아주 화끈하군.
"자, 다들 기상! 관광 온 거 아니다!"
내 고함에 학생들이 주섬주섬 일어났다. 멀미를 해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녀석, 기도를 올리는 녀석, 그리고 눈을 번뜩이며 가방을 챙기는 녀석.
"램프 개방!"
위잉- 치이익.
화물기 후미의 거대한 램프 도어가 천천히 열렸다.
그 틈으로 파이탄 공화국의 밤공기가 밀려들어왔다.
훅 하고 끼쳐오는 덥고 습한 열기. 그리고 그 속에 섞인 매캐한 냄새.
화약 냄새, 그리고 썩은 풀 냄새였다.
웰컴 투 더 정글이다.
나는 선글라스를 끼고 램프 끝으로 걸어 나갔다.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우리를 비췄다.
무장한 군인들이 지프차와 트럭에 나눠 탄 채 비행기를 포위하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AK-47 소총이 들려 있었다.
"누가 대장이야!"
백강우가 K-2 소총을 어깨에 걸친 채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그의 뒤로 천명 보안팀원들이 즉각 사주 경계 태세를 갖췄다.
트럭 한 대에서 검은 베레모를 쓴 중년의 남자가 내렸다.
군복 상의는 풀어헤쳤고, 입에는 굵은 시가를 물고 있었다. 파이탄 북부 반군 연합의 지도자, 라만 장군이었다.
"닥터 천?"
그가 서툰 영어로 물었다.
"그렇소."
나는 램프를 내려가며 그와 마주 섰다. 키는 작았지만, 온몸이 근육질인 사내였다. 그의 눈은 맹수처럼 번들거렸다.
"당신이 그...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한국의 의사요?"
"소문이 좀 과장됐군요. 입금만 되면 지옥 입구에서 멱살 잡고 끌고 오긴 합니다만."
내 농담에 라만 장군이 껄껄 웃었다. 누런 이빨이 드러났다.
"마음에 드는군. 비즈니스맨이라서 좋아. 저기 멍청한 국경 없는 의사회 놈들은 '인류애'니 뭐니 떠들면서 정작 급할 땐 도망가더군."
그는 시가를 바닥에 뱉어 비벼 껐다.
"약속한 물건은 가져왔소?"
"물론입니다."
나는 뒤쪽 비행기를 가리켰다.
"최신형 항생제, 마취제, 그리고 혈액. 당신네 병사들 수천 명은 거뜬히 치료할 양입니다."
"좋아. 대금은 희토류 채굴권으로 주겠소. 광산 하나 통째로 넘기지. 하지만..."
라만 장군이 눈짓을 했다.
그러자 뒤에 있던 트럭들의 짐칸 덮개가 일제히 걷혔다.
"우선, 내 실력 테스트부터 좀 해봐야겠소."
짐칸이 드러나자 학생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곳에는 부상병들이 짐짝처럼 쌓여 있었다.
팔다리가 절단된 병사, 배에 파편이 박힌 병사, 화상을 입고 신음하는 병사...
최소 50명은 넘어 보였다. 그들의 신음 소리가 활주로를 가득 채웠다.
"어제 정부군 폭격이 있었소. 내 정예 부대원들이오. 살려내시오. 못 살리면..."
라만 장군이 허리춤의 권총에 손을 올렸다.
"채굴권이고 뭐고, 당신네 비행기는 여기서 못 뜰 거요."
협박이군.
하지만 나는 예상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백강우."
"예, 이사장님."
"애들 내려오라고 해. 실습 시작이다."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백강우가 호루라기를 불었다.
"전원 하차! 트리아지(Triage, 환자 분류) 팀 앞으로! 1호차부터 4호차 수술실 가동! 발전기 돌려!"
우르르-
100명의 천명 1기생들이 비행기에서 쏟아져 나왔다.
처음 마주하는 참혹한 광경에 몇몇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한국의 응급실과는 차원이 다른, 날것 그대로의 참상이었다.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토하지 마! 토할 시간 있으면 장갑 껴!"
박철민이 소리치며 가장 먼저 달려나갔다. 그는 트럭 위로 뛰어올라 부상병들의 상태를 살폈다.
"기도 폐쇄! 여기 튜브!"
그가 능숙하게 부상병의 목에 튜브를 꽂아 넣었다. 특전사 의무관 시절의 본능이 되살아난 것이다.
"한수진! 넌 저쪽 트럭 맡아! 민도현! 중환자 분류해서 1호차로 보내!"
나의 지시에 멍하니 있던 학생들이 하나둘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려움은 여전했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 2주간 지옥주 훈련을 통해 뼛속까지 새겨진 조건반사였다.
"비켜주세요! 지혈해야 합니다!"
한수진이 절단 환자의 허벅지를 움켜쥐고 소리쳤다. 피가 그녀의 얼굴로 튀었지만,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 환자 적색(긴급)! 바로 수술방 올려! 혈압 떨어집니다!"
아수라장이었던 활주로는 순식간에 거대한 야전 병원으로 변했다.
비행기 화물칸의 컨테이너 수술실들이 밝게 불을 밝혔다. 웅웅거리는 발전기 소리와 의료진들의 고함 소리가 정글의 적막을 깨트렸다.
"이사장님, 이 환자 좀 봐주십시오!"
민도현이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나는 그에게 달려갔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앳된 병사가 복부에 총상을 입고 누워 있었다.
"출혈이 너무 심합니다. 근데... 이상합니다."
"뭐가?"
"마취가 안 먹힙니다. 케타민을 정량의 두 배나 썼는데도 눈을 뜨고 있습니다. 그리고..."
민도현이 환자의 상처 부위를 가리켰다.
총알이 배를 뚫고 지나갔는데, 상처 주변의 혈관들이 기괴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피 색깔도 선홍색이 아니라, 검 붉은색에 가까웠다.
"으으으..."
환자가 고통스러운 신음 대신, 짐승 같은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의 눈동자는 풀려 있었지만, 근육은 비정상적으로 경직되어 있었다.
"약물 중독이군."
나는 단번에 알아봤다.
이건 평범한 부상이 아니었다. 전투력을 높이기 위해 중추신경흥분제와 진통제를 칵테일로 들이부은 상태였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놈으로.
천명 바이오.
아버지가 이곳에 뿌린 '영양제'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었나.
"억제대 가져와! 묶어!"
내가 소리치는 순간, 환자가 벌떡 일어났다. 배가 뚫린 상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크아악!"
환자가 민도현의 목을 조르려 달려들었다.
"도현아! 피해!"
박철민이 날아와 환자를 몸으로 덮쳤다. 둘은 흙바닥을 뒹굴었다. 환자의 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특수부대 출신인 박철민이 힘에서 밀리고 있었다.
"이 새끼 힘이 왜 이래!"
백강우가 달려와 환자의 머리에 개머리판을 내리찍으려 했다.
"치지 마! 환자다!"
내가 소리쳤다. 죽이면 안 된다. 샘플이다.
나는 주머니에서 주사기를 꺼냈다. 고농도 근육 이완제.
"잡고 있어!"
박철민과 백강우가 놈의 팔다리를 짓누르는 사이, 나는 놈의 목 정맥에 주사 바늘을 꽂아 넣었다.
푸욱.
약물이 들어가자 놈의 경련이 잦아들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하아... 하아..."
민도현이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괜찮냐?"
"네... 근데 저 사람, 좀비입니까?"
"비슷해. 약으로 만든 좀비."
나는 라만 장군 쪽을 쳐다봤다. 그는 멀찍이서 이 광경을 지켜보며 시가를 피우고 있었다. 전혀 놀라지 않은 눈치였다. 알고 있었던 거다. 자신의 병사들이 약물에 절어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이사장님, 다른 환자들도 비슷합니다! 혈액 응고가 안 됩니다!"
수술실 2호차에서도 비명이 들려왔다.
상황이 심각했다. 단순한 외상 환자들이 아니었다.
이건 수술이 아니라, '해독'이 먼저 필요한 상황이었다.
"전원 주목!"
나는 확성기를 잡았다.
"일반적인 매뉴얼 버려. 마취제 용량 3배로 늘려. 그리고 수혈하기 전에 채혈부터 해. 샘플링하란 말이야!"
나는 떨고 있는 학생들을 향해 소리쳤다.
"여긴 학교가 아니다. 교과서에 없는 환자들이야. 너희들의 감을 믿어. 살리고 싶으면 수단 방법 가리지 마!"
나의 호통에 학생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두려움이 그들을 더 예리하게 만들었다.
한수진은 마취가 안 듣는 환자의 팔다리를 묶어놓고 수술을 강행했다.
박철민은 날뛰는 환자들을 힘으로 제압하며 트리아지를 계속했다.
민도현은 검붉은 피를 뽑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적응하고 있었다.
이 미친 정글에, 그리고 피와 약물로 얼룩진 이 지옥에.
한 시간 뒤.
급한 불은 꺼졌다. 50명의 환자 중 사망자는 단 3명.
기적 같은 생존율이었다.
라만 장군이 박수를 치며 다가왔다.
"놀랍군. 닥터 천. 내 부하들을 살려냈어. 그것도 그 상태에서 말이야."
"그 상태? 당신네 병사들한테 뭘 먹인 겁니까?"
나는 피 묻은 장갑을 벗어 던지며 그를 쏘아봤다.
"그냥... 한국 친구가 선물해 준 비타민 좀 먹였을 뿐이오. 전투력이 아주 좋아지더군."
한국 친구. 천무성.
확실해졌다.
"좋습니다. 약속대로 채굴권 계약서 씁시다. 그리고..."
나는 씩 웃으며 덧붙였다.
"당신네 병사들, 부작용이 좀 심하더군요. 애프터서비스가 필요할 것 같은데."
"애프터서비스?"
"해독제 말입니다. 내가 아니면 이 친구들, 한 달 안에 뇌가 녹아서 다 죽을 겁니다."
라만 장군의 표정이 굳어졌다.
"물론, 해독제 값은 별도입니다. 아주 비싸죠."
나는 낚싯바늘을 던졌다.
이제 이 정글의 포식자는 라만 장군이 아니다.
바로 나다.
"백강우, 캠프 구축해. 당분간 여기서 지낸다."
"예!"
비행기 엔진이 꺼지고, 정글의 어둠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천명 의료지원단의 컨테이너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이곳은 이제 우리의 영토였다.
제14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