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탄 공화국 북부, 정글 추락 지점]
매캐한 항공유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정글 한복판에 처박힌 Mi-24 하인드 헬기는 거대한 고철 덩어리가 되어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로터 블레이드는 엿가락처럼 휘어져 주변의 야자수들을 베어 넘겼고, 동체는 반으로 쪼개져 내부의 붉은 불길이 이글거렸다.
"전방 확보! 폭발 위험 있다! 접근 주의해!"
백강우가 소리치며 보안팀원들을 산개시켰다.
그 뒤로 나와 박철민, 그리고 응급 키트를 멘 한수진이 조심스럽게 잔해 쪽으로 다가갔다.
"생존자 있습니까?"
박철민이 찌그러진 조종석(Cockpit) 쪽을 향해 소리쳤다.
대답은 없었다. 대신 불길이 타오르는 소리와 금속이 식으면서 나는 '팅, 팅' 소리만이 들려왔다.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높이에서 떨어졌으면 즉사했을 겁니다."
보안팀원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조종석 유리가 깨진 틈으로 보이는 파일럿의 상태를 주시했다.
피투성이가 된 헬멧, 그리고 축 늘어진 어깨. 그런데 미세하게 흉곽이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살아있어."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박철민, 절단기 가져와. 문 뜯는다."
"네? 하지만 지금 불길이..."
"환자 버릴 거야? 1분 안에 안 꺼내면 저 사람 통구이 된다."
나의 일갈에 박철민이 정신을 차렸다. 그는 즉시 유압 절단기를 들고 조종석 위로 뛰어올라갔다.
"으라차차!"
끼이이익-! 캉!
금속이 찢어지는 소음과 함께 조종석 문짝이 뜯겨 나갔다.
안에서 뜨거운 열기가 훅 끼쳐왔다.
"확인했습니다! 남성 1명! 의식 불명! 복부에 파편 관통상!"
박철민이 파일럿의 상태를 확인하고 외쳤다.
"꺼내! 척추 조심하고!"
백강우와 보안팀원들이 달려들어 파일럿을 조심스럽게 끌어내렸다. 그들이 안전지대로 빠져나오자마자, 헬기의 연료 탱크가 펑 하고 터지며 거대한 화염이 치솟았다. 간발의 차였다.
"후우... 십년감수했네."
백강우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바닥에 눕혀진 파일럿을 내려다보았다.
"근데 이사장님, 이 놈 정부군 아닙니까? 우리한테 총질하던 놈을 굳이 살려야 합니까?"
"글쎄. 정부군 놈치고는 장비가 너무 좋은데."
나는 파일럿의 헬멧을 벗겼다.
드러난 얼굴은 파이탄 현지인이 아니었다. 금발에 푸른 눈, 그리고 햇볕에 그을린 피부를 가진 백인이었다.
"어?"
주변의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외국인인데요? 용병인가?"
나는 놈의 조끼를 뒤졌다. 파이탄 군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 안에 입은 방탄 조끼는 미제(US Made) 최신형 세라믹 플레이트였다. 그리고 품 안에서 나온 구형 위성 전화기. 군용 암호화 장비였다.
"빙고."
나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 친구, 정부군이 아니야."
"그럼 누굽니까?"
"독수리."
나는 위성 전화기 뒷면에 새겨진 작은 엠블럼을 보여주었다. 독수리가 지구를 움켜쥐고 있는 문양.
"CIA(미 중앙정보국)다."
[CMC 1호 수술실 컨테이너]
"환자 혈압 60에 40! 쇼크 옵니다!"
"수액 라인(Line) 두 개 잡아! O형 혈액형 준비해!"
컨테이너 수술실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우리가 구조한 CIA 요원, 코드네임 '헌터(Hunter)'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헬기 추락의 충격으로 갈비뼈가 부러져 폐를 찔렀고(혈기흉), 복부에는 헬기 조종간 파편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이사장님, 파편이 대동맥(Aorta) 바로 옆을 스쳤습니다. 이거 뽑으면 피 솟구칠 겁니다."
한수진이 CT 영상을 보며 다급하게 말했다. 12년 차 베테랑인 그녀조차 손을 떨 정도로 위험한 위치였다.
"내가 잡는다. 넌 썩션(Suction) 준비해."
나는 수술 장갑을 고쳐 꼈다.
[시스템: 신의 손(Lv.1)]이 발동되며 시야가 또렷해졌다. 혈관의 맥동, 파편의 각도, 근육의 결이 머릿속에 3D로 그려졌다.
"메스."
내 손이 환자의 복부를 갈랐다. 복강 내에 고여있던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출혈점(Bleeding point) 확인. 비장(Spleen) 파열이다. 비장 적출한다."
"네!"
한수진과 민도현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파열된 비장을 떼어내고, 대동맥을 누르고 있는 쇳조각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지금부터가 진짜야. 이거 뽑는 순간 혈압 떨어지면 바로 에피네프린 쏴."
"준비됐습니다."
"하나, 둘, 셋."
쑤욱.
쇳조각이 빠져나왔다.
동시에 찢어진 혈관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혈압 떨어집니다! 40대!"
"어레스트(심정지) 올 것 같습니다!"
삐----
모니터의 경고음이 길게 울렸다. 심장이 멈췄다.
"심장 마사지!"
한수진이 환자의 가슴 위로 올라가 압박을 시작하려 했다.
"비켜."
내가 그녀를 밀어내고 직접 환자의 흉곽을 열었다.
개흉 심장 마사지(Open Cardiac Massage).
직접 손으로 심장을 쥐어짜서 피를 돌리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나는 멈춰버린 심장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미지근하고 미끈거리는 감촉.
'일어나라, 이 양키 놈아. 넌 내 비싼 보험증서야. 여기서 죽으면 안 돼.'
[스킬: 생명 부여(Vitality Injection) 발동]
[플레이어의 마나를 소모하여 대상의 심근 세포를 자극합니다.]
찌릿.
내 손끝에서 미세한 전류가 흘러나갔다.
두근.
심장이 움찔했다.
"돌아옵니다! 동리듬(Sinus Rhythm) 잡힙니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다시 힘차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살았다..."
민도현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마무리해. 봉합은 꼼꼼하게."
나는 피 묻은 장갑을 벗으며 환자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마취 가스 속에서도 고통으로 일그러진 백인의 얼굴.
"깨어나면 재미있는 대화를 좀 해야겠군."
[6시간 후, 회복실 컨테이너]
헌터가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느낀 건 복부의 통증, 그리고 손목을 옥죄고 있는 수갑의 차가운 감촉이었다.
"Fuck..."
그가 욕설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움직이지 마. 장기가 쏟아지고 싶지 않으면."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헌터가 고개를 돌렸다. 하얀 가운을 입은 동양인 남자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였다.
"여긴 어디지? 천국은 아닌 것 같고."
"천명 의료지원단. 당신이 폭격하려 했던 그 병원이야."
헌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빠르게 눈을 굴렸다.
"당신들... 정체가 뭐야? 라만 장군의 용병인가?"
"아니. 우린 의사야. 당신을 살려준 생명의 은인이고."
나는 헌터의 침대 옆 탁자에 놓인 물건들을 가리켰다.
그의 위성 전화기, CIA 신분증, 그리고 작전 지도가 놓여 있었다.
"CIA 특수활동부(SAD). 코드네임 헌터. 파이탄 내전 감시 및 대테러 작전 수행 중."
내가 그의 신상 명세를 줄줄 읊자, 헌터의 표정이 굳어졌다.
"날 죽일 건가? 아니면 몸값이라도 요구하게?"
"죽일 거면 6시간 동안 수술도 안 했어. 난 거래를 원해."
"거래?"
나는 주머니에서 작은 플라스틱 통을 꺼냈다.
어제 소년의 척추에서 뽑아낸 '데이터 칩'이었다.
"이거, 뭔지 알지?"
헌터의 눈이 커졌다.
"그걸... 어디서 났지?"
"우리 병원 앞에 버려진 실험체 소년한테서. 당신네들이 그토록 찾고 싶어 하던 증거 아니야?"
헌터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입을 다물었다. 정보를 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좋아, 내가 먼저 까지."
나는 의자를 끌어당겨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당신이 여기 온 이유, 단순히 내전 감시가 아니잖아. '천명 바이오'가 여기서 만드는 물건 때문이지."
"......"
"슈퍼 솔저? 아니, 그건 부산물일 뿐이야. 진짜는 이거지."
나는 민도현이 분석한 혈액 차트를 내밀었다.
"'Z-더스트(Z-Dust)'. 좀비 가루. 신종 마약."
헌터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정곡을 찔린 것이다.
"천명 바이오가 여기서 병사들을 상대로 임상 실험을 하고, 완성된 마약을 중동 테러 단체에 팔아먹고 있다는 첩보. 그걸 확인하러 왔다가 격추된 거고. 맞나?"
한참의 침묵 끝에, 헌터가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 그냥 의사가 아니군. 정보국 출신인가?"
"비슷해. 대한민국에서 제일 정보가 빠른 의사지."
헌터는 체념한 듯 입을 열었다.
"맞아. 놈들은 여기서 '지옥의 가루'를 만들고 있어. 한번 흡입하면 고통도 공포도 사라지고, 명령에만 복종하는 살인 기계가 되지. 그 약이 미국 본토로 흘러 들어가는 루트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정부군 헬기가 우릴 공격했어. 왜일까?"
"정부군 고위층도 이미 매수됐으니까. 천명 바이오가 뿌린 돈에."
상황은 명확해졌다.
정부군도, 반군도 모두 천명 바이오의 고객이거나 하수인이었다. 이 정글 전체가 거대한 실험실이자 마약 공장이었던 것이다.
"좋아. 상황 파악은 끝났고."
나는 헌터의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풀어주었다.
"내 제안을 하지. 난 당신을 살려줄 거야. 그리고 이 칩, 그리고 우리가 확보한 혈액 샘플 데이터까지 전부 넘겨주지."
"조건은?"
"두 가지."
나는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첫째, 천명 바이오의 비밀 연구소, '제4구역'의 정확한 위치. 당신들은 위성으로 보고 있었을 테니까."
"그건 자살행위야. 거긴 요새라고."
"상관없어. 둘째, 이게 제일 중요해."
나는 헌터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우리 팀에게 '유엔(UN) 산하 특별 조사단' 신분을 줘. 그리고 나중에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미국 정부가 우리의 신변을 보증한다는 확약서."
"뭐? 외교관 면책 특권 같은 걸 달라는 거야?"
"비슷해. 내가 상대하는 놈이 좀 거물이거든. 한국 정부도 함부로 못 건드리는 놈이라, 더 큰 형님의 빽이 필요해."
헌터는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그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빈손으로 돌아가면 작전 실패고, 여기서 죽으면 개죽음이다. 하지만 이 미친 의사와 손을 잡으면, 임무도 완수하고 목숨도 건질 수 있다.
"좋아. 딜(Deal)."
헌터가 내 손을 잡았다.
"대신, 연구소 위치는 알려줄 수 있지만, 들어가는 건 당신들 몫이야. 난 부상이 심해서 못 도와줘."
"안내는 필요 없어. 길잡이는 이미 구해놨으니까."
나는 회복실 밖을 향해 소리쳤다.
"이진아! 들어와!"
문이 열리고, 1기생 중 한 명인 여학생이 들어왔다.
단발머리에 주근깨가 있는, 평범해 보이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결연했다.
"이 학생 아버지가 5년 전, 이곳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실종됐어. 마지막으로 신호가 잡힌 곳이 바로 그 제4구역 근처야."
이진아가 헌터에게 꾸벅 인사했다.
"제 아버지를 찾게 도와주세요. 정글 지리는 제가 누구보다 잘 알아요. 어릴 때부터 살았거든요."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미국의 힘, 내부의 정보, 그리고 길잡이까지.
[베이스캠프, 라만 장군의 막사]
"뭐라고? 그 양키 놈을 살려줬다고?!"
라만 장군이 책상을 뒤집어엎으며 길길이 날뛰었다.
"닥터 천! 당신 미쳤소? 그놈은 CIA야! 그놈이 살아서 돌아가면 미군이 여기 폭격할 거라고! 당장 죽여! 안 그러면 내가 죽이겠어!"
라만 장군이 권총을 뽑아 들고 나에게 겨눴다. 주변의 병사들도 AK 소총을 치켜들었다. 백강우와 보안팀이 맞대응하려 했지만, 숫적으로 열세였다.
하지만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커피를 마셨다.
"장군. 진정해. 흥분하면 혈압 올라가."
"이게 장난인 줄 알아! 당장 그놈 내놔!"
"못 내놔. 그 사람은 이제 내 환자고, 내 비즈니스 파트너니까."
"죽어라!"
라만 장군이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나.
우우우웅-!
막사 밖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무전기에서 병사의 다급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장군님! 하늘에...! 하늘에 드론입니다! 미군 무인기입니다!]
"뭐, 뭐라고?"
라만 장군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밤하늘 높은 곳에, 소리 없이 떠 있는 거대한 그림자.
MQ-9 리퍼 드론. 헬파이어 미사일을 장착한 저승사자였다.
"어떻게... 벌써..."
"내가 불렀어."
내가 뒤따라 나와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까 그 친구 수술 끝나자마자 본부에 연락했거든. '나 여기 살아있으니 건드리면 다 죽여버리라'고."
나는 헌터에게 받은 위성 전화기를 흔들어 보였다.
"장군. 선택해. 저 미사일을 맞고 가루가 될지, 아니면 얌전히 내 말을 들을지."
라만 장군의 다리가 풀렸다. 그는 주저앉으며 권총을 떨어뜨렸다. 그는 잔인한 군벌이었지만, 천조국의 화력 앞에서는 한낱 개미에 불과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원하는 게... 뭐요..."
"간단해. 트럭 빌려줘. 그리고 연구소로 가는 길목의 검문소들, 다 치워."
나는 라만 장군의 어깨를 툭 쳤다.
"그리고 밥 좀 잘 챙겨줘. 우리 애들 배고프다더라."
[다음 날 아침, 원정대 출발 직전]
베이스캠프 앞에는 라만 장군이 울며 겨자 먹기로 내준 트럭 세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짐칸에는 의료 장비와 보급품이 가득 실렸다.
"이번 작전은 소수 정예다."
나는 1기생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백강우 팀장, 박철민, 한수진, 민도현, 그리고 이진아. 이렇게 5명만 나랑 같이 들어간다. 나머지 인원은 여기서 헌터 요원을 치료하면서 베이스캠프를 사수해."
"이사장님! 저희도 가고 싶습니다!"
다른 학생들이 외쳤다.
"안 돼. 거긴 진짜 지옥이야. 다 데려가면 내가 너희를 지켜줄 수가 없어."
나는 단호하게 잘랐다.
이번에 가는 곳은 단순한 의료 봉사가 아니다. 비밀 잠입이자 전투다.
"이진아. 준비됐나?"
"네. 지도 다 외웠습니다."
이진아가 야전 배낭을 메며 대답했다. 그녀의 목에는 낡은 십자가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실종된 아버지의 유품이었다.
"가자. 뱀 잡으러."
나는 트럭 조수석에 올라탔다.
엔진 소리가 정글의 아침을 깨웠다.
우리의 목적지는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곳.
천무성의 욕망이 잉태되고 있는 자궁이자, 수많은 생명이 갈려 나간 무덤.
'제4구역(Zone 4)'.
트럭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울창한 밀림 속으로 사라졌다.
그곳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나조차도.
제16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