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탄 공화국 북부, 밀림 지대 '그린 존(Green Zone)']
덥다. 그리고 축축하다.
트럭이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험지가 나오자, 우리는 차를 버리고 도보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진흙탕, 얼굴로 달려드는 이름 모를 날벌레들, 그리고 사우나에 갇힌 듯한 숨 막히는 습도.
이곳이 바로 '녹색 지옥'이라 불리는 파이탄의 원시림이었다.
"헉... 헉... 이사장님, 아직 멀었습니까?"
민도현이 안경에 서린 김을 닦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등에는 휴대용 혈액 분석기와 냉동 박스가 든 20kg짜리 군장이 메여 있었다.
"엄살 피우지 마. 이제 겨우 입구야."
나는 앞서가는 이진아의 뒤를 따르며 대답했다.
나 역시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지만, [시스템: 신체 강화(Lv.2)] 덕분에 지치지는 않았다. 다만 이 끈적거리는 불쾌감은 어쩔 수 없었다.
"진아 학생, 방향 확실해?"
백강우가 정글도로 덩굴을 내리치며 물었다. 그는 선두에서 길을 뚫고 있었다.
"네. 확실해요."
이진아는 나침반도 보지 않고 거침없이 숲을 헤치고 나갔다.
"어릴 때 아빠랑 매주 이 길을 다녔어요. 이쪽으로 가면 '희망 마을'이 나오고, 그 뒤편 계곡을 넘으면... 아빠가 실종된 '금지된 구역'이 나와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5년 전, 선교사였던 아버지를 잃어버린 그 숲. 트라우마가 있을 법도 한데, 그녀는 오히려 눈을 부릅뜨고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독하군."
박철민이 혀를 내둘렀다.
"원래 효녀가 제일 무서운 법이야. 건드리면 안 돼."
나는 피식 웃으며 주변을 경계했다.
숲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이상할 정도였다. 새소리도, 원숭이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포식자가 숨을 죽이고 먹잇감을 기다리는 듯한 적막.
[시스템 경고]
[감지된 생명 반응이 없습니다.]
[주변의 생태계가 파괴되었습니다.]
시스템 알림창이 붉게 점멸했다.
정상적인 정글이 아니었다. 무언가가 이 숲의 생명체들을 씨를 말려버린 것이다.
"다들 긴장해. 냄새가 난다."
내 말에 백강우와 박철민이 즉시 총기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한수진은 마취총을 고쳐 잡았고, 민도현은 내 뒤로 바짝 붙었다.
[2시간 후, 희망 마을 터]
숲이 끝나고 탁 트인 공터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곳에 '희망'은 없었다.
"이게... 마을이라고?"
한수진이 경악하며 입을 막았다.
수십 채의 오두막은 모두 불에 타 무너져 있었고, 마을 중앙의 작은 교회는 지붕이 날아가 앙상한 뼈대만 남아 있었다. 바닥에는 녹슨 십자가가 뒹굴고 있었다.
사람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오직 바람에 흔들리는 찢어진 천 조각 소리만이 들려왔다.
"아빠..."
이진아가 무너진 교회 앞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잿더미 속에서 무언가를 주워 들었다. 반쯤 타버린 성경책이었다.
"여기 계셨어요. 분명히... 여기서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밥을 나눠주셨는데..."
이진아의 어깨가 떨렸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를 감쌌다.
"진정해. 울 시간 없어."
나는 마을 바닥을 가리켰다.
"이거 봐."
진흙 바닥에 찍힌 수많은 발자국들. 그것은 사람의 발자국이었지만, 보폭이나 깊이가 이상했다.
맨발로 질질 끈 자국, 그리고 손발을 같이 쓴 듯한 기괴한 흔적들.
"짐승입니까?"
백강우가 물었다.
"아니. 사람이야. 근데... 정상적인 보행이 아니군."
나는 쪼그리고 앉아 흙냄새를 맡았다.
비릿한 피 냄새, 그리고 희미하게 풍기는 약품 냄새. 베이스캠프에서 맡았던 그 '좀비 병사'들의 냄새와 일치했다.
"여긴 폐허가 아니야. 사육장이야."
그때였다.
무너진 오두막 그늘 속에서, 번뜩이는 붉은 눈동자 하나가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크르르..."
짐승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가래 끓는 사람의 목소리 같기도 한 소리.
"전방 주시! 뭔가 있다!"
박철민이 소리침과 동시에, 오두막들이 들썩거렸다.
어둠 속에서 하나둘씩 그림자가 기어 나왔다.
"허억..."
민도현이 뒷걸음질 쳤다.
그것들은 사람이었다. 아니, 한때 사람이었던 것들이었다.
피부는 회색빛으로 괴사해 있었고, 온몸의 혈관이 지렁이처럼 튀어나와 펄떡거리고 있었다. 눈동자는 흰자위 없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입가에는 누런 거품을 물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
천명 바이오가 납치해 실험하고 버린, '실패작'들이었다.
"캬아아악!"
선두에 있던 놈이 괴성을 지르자, 사방에서 수십 명의 실패작들이 튀어나왔다. 그들의 손에는 무기가 없었지만, 손톱이 짐승처럼 길게 자라 있었다.
"사격 개시!"
백강우가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잠깐! 실탄 쓰지 마!"
내가 고함을 질러 그를 멈춰 세웠다.
"저 사람들, 민간인이야! 죽이지 마!"
"그럼 어떡합니까! 저렇게 떼거지로 달려드는데!"
"우린 의사야. 살리러 온 거지, 죽이러 온 게 아니라고!"
나는 가방에서 특수 제작한 탄창을 꺼내 백강우에게 던졌다.
"마취탄이다. 코끼리도 3초 만에 잠재우는 놈이야. 급소 노리지 말고 근육 많은 허벅지나 엉덩이를 쏴!"
"젠장, 의사 노릇 하기 힘드네!"
백강우가 탄창을 갈아끼우며 투덜거렸다.
그사이 괴물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철민아! 막아!"
"넵! 길막(길막기) 들어갑니다!"
박철민이 정글도를 집어넣고, 대신 진압용 삼단봉을 꺼내 들었다.
그가 달려드는 괴물의 팔을 휘감아 꺾고, 무릎으로 명치를 가격했다.
퍽! 우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지만, 괴물은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부러진 팔을 덜렁거리며 이빨을 드러내고 물어뜯으려 했다.
"이 새끼들 진짜 좀비네!"
"뇌를 노려! 경동맥!"
내가 소리치며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시스템: 약점 포착]
내 눈에 괴물들의 신체 위로 붉은 점들이 떠올랐다. 약물로 강화된 근육 틈새, 신경이 지나가는 길목들.
"한수진! 2시 방향! 목덜미!"
"라져!"
피슉-!
한수진이 쏜 마취 주사기가 정확히 괴물의 목 정맥에 꽂혔다.
괴물이 "끄르륵" 소리를 내며 비틀거렸지만, 바로 쓰러지지 않았다. 약물 내성이 생긴 탓이었다.
"한 발로는 안 돼! 도현아! 칵테일 주사!"
"네! 준비됐습니다!"
민도현이 떨리는 손으로 압축 공기 주사기(Injector)를 박철민에게 던졌다.
그 안에는 내가 조합한 고농도 신경 차단제와 근육 이완제가 섞여 있었다.
박철민이 공중에서 주사기를 낚아챘다.
그는 달려드는 괴물의 공격을 피하며, 놈의 허벅지에 주사기를 내리찍었다.
푸쉬이익!
"크아아..."
약물이 들어가자 괴물의 다리 근육이 순식간에 풀리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효과 있어요!"
"좋아! 전원, 방어 진형 유지해! 다가오는 놈들부터 하나씩 재운다!"
나는 메스 대신 마취총을 들고 지휘했다.
이건 전투가 아니었다. 과격한 '왕진'이었다.
"크아악!"
내 뒤에서 괴물 하나가 튀어나왔다. 지붕 위에서 뛰어내린 놈이었다.
반응 속도가 너무 빨랐다. 백강우가 총구를 돌리기 전에 놈의 손톱이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사장님!"
놈이 내 어깨를 잡고 목을 물어뜯으려는 순간.
콰직!
이진아가 짱돌을 들고 놈의 머통수를 내리찍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지만, 손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우리 아빠... 우리 마을 사람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녀의 일격에 놈이 잠시 주춤한 사이, 나는 품에서 주사기를 꺼내 놈의 심장에 직접 꽂았다.
심정지 유도제가 아닌, 초강력 진정제였다.
털썩.
놈이 내 품으로 쓰러졌다. 나는 놈을 바닥에 눕혔다. 가까이서 보니 얼굴 반쪽이 녹아내린 중년 여성이었다.
"미안합니다. 조금만 자요. 나중에... 고쳐줄게요."
나는 놈의 눈을 감겨주었다.
전투, 아니 진료는 30분간 계속되었다.
총성 대신 타격음과 거친 숨소리만이 숲을 채웠다.
마지막 괴물이 쓰러졌을 때, 우리는 모두 진흙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하아... 하아..."
백강우가 대자로 뻗어 누웠다.
"이사장님... 다음엔 그냥 탱크 타고 오시죠. 이게 무슨 개고생입니까."
"사람 살리는 게 원래 개고생이야."
나는 땀을 닦으며 쓰러진 괴물들을 보았다. 50여 명.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모두 약 기운에 취해 잠들어 있을 뿐.
"민도현, 샘플 채취해. 이 사람들 혈액 분석하면 해독제 단서가 나올 거야."
"네... 알겠습니다."
민도현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찾았다."
나는 마을 뒤편, 무너진 교회 지하실 입구를 가리켰다.
수풀에 가려져 있었지만, 놈들이 튀어나온 구멍이었다.
"저기가 입구군."
"제4구역... 실험실로 가는 길인가요?"
이진아가 물었다.
"아마도. 이 마을 사람들, 저기서 실패작으로 분류돼서 쫓겨난 걸 거야."
나는 지하실 입구로 다가갔다. 쇠창살이 뜯겨져 있었고, 안에서는 차가운 냉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 그리고 비릿한 소독약 냄새.
"여기서부터는 진짜 본진이다. 마취탄 아껴. 안에는 더 지독한 놈들이 있을 테니까."
나는 배낭에서 야간 투시경을 꺼내 썼다.
"가자. 닥터 장 그 인간, 면담 좀 해야겠어."
우리는 어둠 속으로 발을 디뎠다.
지하실 계단은 끝도 없이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마치 지옥의 아가리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지하 3층, 제4구역 경비 구역]
계단을 내려오자 거대한 강철 문이 나타났다.
일반적인 시골 마을 지하에 있을 법한 시설이 아니었다. 최첨단 생체 인식 보안 장치와 두께 50cm의 방폭문.
"천명 바이오... 돈 많이 썼네."
백강우가 문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거 못 뚫습니다. C4 폭약 가져와도 흠집도 안 날 겁니다. 홍채 인식에 정맥 인증까지 필요해요."
"열려라 참깨는 안 통하겠군."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문 옆에 붙어있는 인터폰 카메라가 붉게 빛나며 우리를 비췄다.
지잉-
[신원 확인 불가. 경고, 즉시 퇴거하지 않으면 사살한다.]
기계적인 음성이 울렸다. 동시에 천장에 매달린 <b>'센트리 건(Sentry Gun)'</b>이 작동하며 총구가 우리를 겨눴다.
"어어! 저거 뭐야!"
박철민이 기겁하며 방패를 들었다.
"자동 포탑입니다! 움직이면 쏩니다!"
위기 상황.
하지만 나는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야, 장석훈 박사. 나야, 천이환. 보고 있지?"
잠시 정적.
"내 목소리 잊었어? 당신이 내 척추에 빨대 꼽고 데이터 뽑아먹을 때, 내가 당신 손가락 하나 부러뜨렸잖아. 아직도 쑤시지?"
나는 도발했다.
장석훈, 일명 '닥터 장'. 아버지의 충실한 개이자, 천명 바이오의 수석 연구원. 그는 내 얼굴을 모를 리가 없었다.
지지직.
스피커에서 노이즈가 들리더니,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오. 도련님?]
느끼하고 비열한 목소리. 닥터 장이었다.
[죽은 줄 알았더니, 기어이 여기까지 찾아오셨군요. 지옥에서 돌아온 기분이 어떠십니까?]
"아주 상쾌해. 당신 모가지 따러 왔거든."
[하하하! 여전하시네요. 하지만 여긴 도련님이 알던 한국의 병원 놀이터가 아닙니다. 여긴 신(God)들의 영토죠.]
"신? 그 썩어 문드러진 좀비들이 신이라고?"
[그건 실패작들이고... 진짜는 이 안에 있습니다.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회장님이 도련님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 뭔지.]
철컥.
놀랍게도, 굳게 닫혀있던 방폭문이 굉음을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초대장이었다. 함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들어올 테면 들어와 보라는 자신감.
[들어오시죠. 001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옆에 있는 그 아가씨도 같이 오면 좋겠군요. 부녀 상봉은 감동적이니까요.]
이진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001번. 부녀 상봉.
그녀의 아버지가 이 안에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실험체'가 되어서.
"이사장님... 저..."
"겁먹지 마."
나는 이진아의 손을 꽉 잡았다.
"함정이면 부수면 돼. 그리고 아버지가 어떤 모습이든, 내가 되돌려놓는다. 약속해."
나는 뒤돌아 팀원들을 보았다.
"들어가자. 호랑이 굴에 들어왔으니, 호랑이 가죽이라도 벗겨 가야지."
우리는 열린 문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곳은 백색의 공간이었다.
수많은 유리관 속에 갇힌 기괴한 생명체들, 복잡한 파이프라인, 그리고 중앙 홀에 우뚝 솟은 거대한 수조.
그 수조 안에, 한 남자가 둥둥 떠 있었다.
온몸에 굵은 튜브가 꽂힌 채, 눈을 감고 있는 중년 남성.
근육은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져 있었지만, 얼굴만은 알아볼 수 있었다.
"아... 아빠?!"
이진아가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수조 속의 남자가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동자는 검은색이 아니었다.
인광을 내뿜는, 섬뜩한 황금색이었다.
[경고: 실험체 001 각성.]
[구속구 해제.]
푸슈슈슈-!
수조의 물이 빠지며 유리가 깨져 나갔다.
실험체 001, '실패한 신'이 우리 앞에 내려섰다.
"크아아아아!!"
그의 포효가 연구소를 뒤흔들었다.
지옥의 문이, 비로소 완전히 열렸다.
제17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