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가짜 왕관과 트로이의 목마

by 연구소장

[인천국제공항을 빠져나가는 검은색 방탄 밴 내부]


"와아아아-!!"


창밖으로는 여전히 수백 명의 인파와 기자들이 차를 향해 플래시를 터뜨리고 있었다. 아크엔젤호에서 내린 100명의 천명 1기생들은 버스 세 대에 나뉘어 탑승했고, 헌터가 부른 미 대사관 소속의 무장 경호 차량들이 그 앞뒤를 호위하며 공항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천명 그룹의 사냥개들인 법무팀과 사설 경호원들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그 광경을 지켜봐야만 했다. 국제법과 외교적 면책 특권이라는 절대적인 방패 앞에서는 아무리 대한민국 재계 서열 최상위권의 천명이라도 섣불리 손을 쓸 수 없었다.


"하아... 십년감수했습니다. 진짜 총격전이라도 벌어지는 줄 알았네요."


조수석에 앉은 백강우가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뒷좌석에는 나와 박철민, 그리고 노트북을 무릎에 올린 민도현이 앉아 있었다.


"수고했어. 다들 당분간 병원 밖으로 나가지 말고 대기해. 여론이 우리 편이라고 해도, 아버지가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이사장님, 진짜 괜찮으십니까? 아까 기자회견 하실 때 보니까 입술이 새파랗던데..."


박철민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말없이 창밖의 한강 다리를 바라보았다. 아드레날린이 가라앉기 시작하자, 지난 며칠간 파이탄의 지옥에서 굴렀던 육체의 피로가 해일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나노 머신이 아무리 내 몸을 수리하고 피로 물질을 분해한다고 해도, 인간의 뇌가 느끼는 정신적 한계까지 지워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괜찮아. 나도 사람인데, 피 터지게 싸웠으니 지치는 게 당연하지."


[천명 외상센터, 이사장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로비는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뉴스를 보고 뛰쳐나온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전장에서 돌아온 1기생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들은 더 이상 '무자격자'나 '편입생' 따위로 불리지 않았다. 그들은 살아있는 전설, '천명 의료지원단'이었다.


나는 학생들의 환영식은 정혁 교수에게 맡겨두고, 조용히 이사장실로 올라와 문을 잠갔다.


"후우..."


피와 진흙, 그리고 소독약 냄새에 찌든 하얀 의사 가운을 벗어 바닥에 던졌다. 세면대로 가 찬물로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의 남자는 완벽하게 통제된 로봇처럼 차갑고 서늘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있었고 뺨은 핼쑥했다.


'독한 척, 기계인 척 다 했지만, 결국 나도 찔리면 피가 나고 지치면 쓰러지는 인간이라는 방증이겠지.'


어쩐지 한 10퍼센트쯤은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온 것 같은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옷장을 열었다. 화려한 명품 수트나 각 잡힌 정장들이 걸려 있었지만, 내 손이 향한 곳은 가장 구석에 있는 편안한 옷들이었다.


옷을 갈아입었다. 늘 그렇듯 내 일관된 패션인 검은색 후드티를 푹 눌러쓰고, 챙이 깊은 모자를 쓴 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뿔테 안경을 꼈다. 수백억 자산가이자 병원의 이사장이라는 직함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꼬락서니였지만, 나에게는 이 차림이 가장 완벽한 전투복이자 심리적 휴식처였다.


털썩.


최고급 가죽 의자에 몸을 파묻듯 기대앉았다. 그리고 습관처럼 책상 위에 있는 고성능 듀얼 모니터의 전원을 켰다.


위이잉-


본체의 쿨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수십억짜리 의료 장비나 초고음질 오디오 세팅 같은 거창한 취미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피 튀기는 전장과 숨 막히는 수술실에서 돌아온 후에는, 무지성으로 악마들을 때려잡고 아이템을 줍는 쿼터뷰 RPG 게임이나 하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마우스 클릭 소리와 함께 익숙한 로그인 창이 떴다. 음산한 BGM이 이사장실에 울려 퍼졌다.


캐릭터를 선택하고 사냥터로 달려 나가며 몬스터들의 뚝배기를 깨부수기 시작했다. 복잡한 수 싸움도, 아버지의 소름 끼치는 음모도, 당장 내 몸속을 돌아다니는 킬 스위치의 공포도 이 순간만큼은 모니터 너머의 픽셀 조각으로 치환되어 부서져 내렸다.


덜컥.


그때, 노크도 없이 이사장실 문이 열렸다.


"이사장님! 지금 상황이... 어?"


백강우가 서류 뭉치를 들고 뛰어 들어오다 말고 눈을 껌벅였다.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뿔테 안경을 낀 채, 모니터 속 악마들에게 광역 스킬을 난사하며 마우스를 미친 듯이 클릭하고 있는 나의 모습.


"뭐야. 노크 안 해?"


내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시큰둥하게 묻자, 백강우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아니, 지금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히고 회사가 공중분해 될 판국에... 천하태평하게 게임입니까?"


"냅둬. 나도 스트레스는 풀어야 할 거 아냐. 이게 내 유일한 낙인데. 그래서, 밖은 얼마나 난리인데?"


나는 그제야 게임을 일시 정지하고 의자를 돌려 백강우를 쳐다보았다. 백강우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가져온 태블릿 PC를 내밀었다.


"난리 정도가 아닙니다. 폭격 맞았습니다."


[대한민국, 광풍이 불다]


태블릿 화면 속 뉴스 채널들은 온통 내 기자회견과 '천명 바이오'에 대한 속보로 도배되어 있었다.


[속보] 천명 바이오, 파이탄 반군에 생체 무기 불법 공급 의혹! 주가 하한가 직행!


[단독] 검찰, 천명 그룹 본사 전격 압수수색! 청와대 "국제적 범죄 행위, 성역 없이 수사할 것"


[국제] UN 및 CIA 조사단, 천명 바이오 수석 연구원 장석훈 긴급 체포 및 조사 중


"민도현이 헌터 요원한테 넘긴 그 장부 찌라시가 제대로 먹혔습니다. 여당 김진혁 대표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치적으로 써먹고 있고요. 천명 그룹 주가는 반토막이 났고, 계열사 사장들은 줄줄이 검찰에 불려 가고 있습니다."


"당연한 수순이지. 권력의 비호를 받던 썩은 고기일수록, 피 냄새가 나면 어제까지 한통속이던 승냥이들이 더 먼저 달려들어 물어뜯는 법이니까."


나는 안경을 위로 치켜올리며 픽 웃었다.


"아버지는? 천무성 회장 본인은 아직 조용해?"


"그게 좀 이상합니다."


백강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 정도 사태면 법무팀을 풀어서 언론 플레이를 하거나, 아니면 도주할 준비를 해야 정상 아닙니까? 그런데 천무성 회장은 본사 회장실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변호인단도 구성하지 않았고요. 마치... 올 테면 와보라는 식입니다."


"올 테면 와보라..."


그 순간,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내 스마트폰이 짧게 울렸다.


발신자 표시 제한. 하지만 나는 이 번호의 주인이 누구인지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백강우에게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한 뒤,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예상보다 빠르시네요, 회장님."


수화기 너머에서는 한동안 묵직한 정적만이 흘렀다. 그리고 이내, 폐부를 긁는 듯한 낮고 건조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훌륭하구나. 정말로 훌륭해.]


분노나 당황스러움은 단 1그램도 섞여 있지 않았다. 오히려 소름이 끼칠 정도로 환희에 찬, 흡족한 목소리였다.


[지옥 같은 정글에 밀어 넣었더니, 내 수족을 자르고 제국을 부술 칼을 갈아 올 줄이야. 이 아비의 기대를 완벽하게 뛰어넘었어.]


"칭찬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런데 어쩌죠? 저는 아직 칼을 칼집에서 반밖에 안 뽑았는데. 당신이 파이탄에서 저지른 생체 실험의 진짜 피해자들... 그들의 피눈물은 아직 청구서에 넣지도 않았습니다."


[상관없다.]


천무성의 대답은 단호했다.


[천명 바이오? 마약? 그깟 껍데기 기업 몇 개 날아가는 게 무슨 대수란 말이냐.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건, 어떤 극한의 환경에서도 스스로 진화하고 살아남는 완벽한 '생존 본능'과 '지능'을 갖춘 그릇이었다.]


그의 말이 내 목을 뱀처럼 휘감아오는 것 같았다.


[너는 이제 단순한 아들이 아니다. 네 몸은 내가 수십 년간 부은 자본과 과학의 결정체이며, 네 정신은 그 훌륭한 육체를 통제할 만큼 무르익었다. 이제야, 비로소 나의 후계자로 손색이 없구나.]


"헛소리 작작 하시죠. 내 몸이 당신의 '새 옷'이 될 거라는 개수작, 이미 닥터 장한테 다 들었으니까. 당신이 내 몸의 킬 스위치를 쥐고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당신의 그 소중한 그릇도 망가질 텐데?"


[하하하! 킬 스위치! 그래, 알았단 말이냐. 똑똑한 녀석.]


천무성은 기분 좋게 웃었다.


[걱정 마라. 흠집 난 그릇은 나도 원치 않으니. 나는 오늘부로 천명 그룹의 모든 짐을 내려놓을 것이다. 그리고, 그 왕관을 네 머리 위에 직접 씌워주마.]


"뭐라고?"


[조금 뒤에 뉴스를 보거라. 아비의 선물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구나.]


뚝.


통화가 끊어졌다.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요?"


통화를 엿듣고 있던 백강우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그의 질문에 대답할 새도 없이, 태블릿 PC의 화면이 요란한 속보 알림과 함께 긴급 기자회견장으로 바뀌었다.


화면 속에는 수많은 마이크 앞, 휠체어를 타고 초췌한 얼굴을 한 천무성 회장이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대변인이 숙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국민 여러분, 그리고 피해자 여러분께 깊은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천무성 회장의 쉰 목소리가 전국에 생중계되었다. 평소의 호랑이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병들고 나약한 늙은 아비의 모습으로 완벽하게 위장하고 있었다.


[최근 불거진 천명 바이오의 해외 불법 임상 실험과 마약 유통 의혹... 참담하게도 모두 사실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저의 부덕의 소치이며, 실적에 눈이 먼 경영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저의 전적인 책임입니다.]


기자들의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졌다. 재벌 총수가 자신의 범죄 사실을 단번에 인정하는 것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 모든 진실을 밝혀내고, 타락한 회사를 심판한 것은 다름 아닌 제 아들, 천이환 이사장입니다. 저는 아들의 용기 있는 고발을 전적으로 수용하며, 오늘부로 천명 그룹의 모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습니다.]


천무성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리고, 무너진 천명의 도덕성을 바로잡고 진정으로 사람을 살리는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제 보유 지분 전부와 경영권을, 파이탄에서 목숨을 걸고 환자들을 구한 천이환 이사장에게 조건 없이 양도하겠습니다. 그 아이라면, 제가 싼 똥을 치우고 회사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줄 것이라 믿습니다.]


"미친..."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백강우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경영권을... 전부 넘기겠다고요? 이사장님한테? 우리, 이긴 겁니까? 싸우기도 전에 항복을 받아낸 거 아닙니까!"


"항복?"


나는 모자를 벗어 책상에 집어 던졌다. 뿔테 안경 너머로 끓어오르는 분노가 번득였다.


"이게 항복으로 보여? 이건 양위(讓位)가 아니라, 기만이다. 완벽한 트로이의 목마야."


"트로이의 목마요?"


나는 화면 속에서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천무성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마치 김용의 무협지 속, 정파를 가장한 마교(魔敎)의 교주가 파놓은 함정 같군. 자신이 저지른 더러운 오물과 법적 책임은 전부 늙어빠진 '천무성'이라는 껍데기에 버려두고, 깨끗하게 세탁된 '천명 그룹'이라는 거대한 제국은 온전히 보존하겠다는 수작이야."


나는 헛웃음을 쳤다.


"생각해 봐. 여론은 아버지를 부패한 늙은이라 욕하겠지만, 동시에 나를 '정의로운 후계자'로 추앙하겠지. 회사가 나에게 넘어오는 과정은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을 거다. 합법적이고, 완벽하게 명분이 서니까."


"그게 우리한테 나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나쁘지. 왜냐하면, 아버지는 그 깨끗해진 제국과 나의 육체를 동시에 꿀꺽 삼킬 계획이니까."


내 몸속에 있는 킬 스위치.


내가 '천명 그룹의 회장'이라는 왕관을 쓰고 제국을 안정시키는 그 순간, 아버지는 킬 스위치를 누를 것이다. 나의 자아를 지워버리고, 자신의 늙은 뇌를 내 젊은 몸에 이식(Data Uploading)하겠지.


그러면 어떻게 될까?


세상 사람들은 '천무성'이 병으로 죽고, 젊고 정의로운 '천이환'이 회사를 이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 젊은 육체 안에는, 불로장생을 이룩한 탐욕스러운 늙은 괴물이 영원히 군림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범죄. 그리고 가장 소름 끼치는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완성."


내 설명을 듣고 난 백강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미... 미친 영감탱이 아닙니까. 자기 아들의 껍데기를 뒤집어쓰려고, 회사를 넘기는 척 연극을 하는 거라고요? 그럼 어쩌실 겁니까? 지분을 받으면 안 됩니다! 거절해야 합니다!"


"아니."


나는 다시 안경을 고쳐 쓰고, 모니터 화면의 게임을 저장하고 껐다.


게임 속 가짜 악마 사냥은 끝났다. 이제 현실의 진짜 악마를 잡을 시간이다.


"줄 때 받아야지."


"이사장님! 덫이라면서요!"


"왕관의 무게를 견디는 놈이 왕이 되는 거야. 덫인 줄 알면, 덫을 찢어발기고 미끼만 빼먹으면 돼."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겉옷을 챙겨 입었다. 후드티 위에 병원 로고가 박힌 하얀 가운을 걸쳤다. 부조화스러웠지만, 내겐 이보다 완벽한 갑옷은 없었다.


"민도현한테 전해. 내 몸속의 나노 머신 방화벽을 뚫는 작업, 예정된 한 달에서 반으로 줄이라고. 2주일 안에 백신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내 자아가 날아가는 건 둘째치고 우리 팀 전체가 몰살당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어디... 가십니까?"


"본사로 가야지."


나는 이사장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왕위를 계승하러 오라잖아. 아들이 아버지 뜻을 거스르면 불효지. 가서 왕관을 받아 들고, 그 왕관으로 늙은이의 목을 어떻게 칠지 견적 좀 내고 와야겠다."


복도 끝으로 걸어가는 나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사냥꾼이 파놓은 함정 속으로, 미끼가 된 맹수가 스스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누가 먹히고,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대한민국의 심장부에서, 유례없는 부자(父子) 간의, 아니 육체와 영혼을 건 기괴한 공성전이 막을 올리고 있었다.


제2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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