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딥 스택(Deep Stack)의 포식자

by 연구소장

[08:00 AM]


기이이잉-


고막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기계음과 함께 캡슐 수면실의 강철 덮개가 일제히 열렸다. 강태현은 눈을 뜨자마자 반사적으로 자신의 손목을 감싸고 있는 스마트 밴드의 액정부터 확인했다.


[정화 칩: 94]


간밤에 지불한 안식의 요람(캡슐) 이용료 5칩. 그리고 방금 전, 눈을 뜨기 무섭게 차감된 아침 배급용 생수 1칩의 결과였다.


태현은 뻐근한 목을 좌우로 꺾으며 캡슐 밖으로 걸어 나왔다. 서늘하고 비릿한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요람이라 불리는 이 거대한 수용소의 중앙 광장에는 간밤의 피로와 짙은 공포에 찌든 생존자들이 좀비처럼 하나둘씩 기어 나오고 있었다. 그들의 퀭한 눈빛은 어제보다 한층 더 짙은 절망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 어어… 저, 저기 봐…."


누군가의 덜덜 떨리는 목소리에 사람들의 멍한 시선이 일제히 광장 한구석으로 향했다.


수십 개의 캡슐 중, 세 개의 캡슐 덮개가 열리지 않은 채 굳게 닫혀 있었다. 표면의 작동 램프는 기분 나쁜 붉은색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김 씨 아저씨! 김 씨 아저씨! 안에 있어요?!"


한 청년이 달려가 강철 덮개를 미친 듯이 두드렸지만 내부는 소름 끼치도록 고요했다. 캡슐 측면의 작은 액정에는 섬뜩한 텍스트만이 무미건조하게 떠 있었다.


[정화 수치 미달. 영혼 폐기 완료.]


태현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은 채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 캡슐들을 응시했다.


어제 첫 번째 게임이었던 산소 경매에서 공포에 질려 칩을 무리하게 쏟아부은 자들. 그 후 남은 몇 푼의 칩마저 간밤에 물과 식량을 사 먹느라 0이 되어버린 자들의 말로였다.


이곳의 통제 시스템은 소름 끼칠 정도로 정교했다. 저들은 피를 흘리게 하거나 뼈를 부러뜨리는 시각적인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시스템의 숫자가 0이 된 자들의 숨통을 잠든 사이에 쥐도 새도 모르게 조용히 끊어버릴 뿐이다.


폭력의 주체가 보이지 않는 깔끔한 죽음. 그것은 생존자들에게 주최 측인 이사회가 마치 생사여탈권을 쥔 전지전능한 신이라는 완벽한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은 분노하여 캡슐을 부수려 들기보다,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손목 밴드에 남은 한 자리 숫자의 칩을 보며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했다. 주최 측이 의도한 완벽한 순종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때, 요람 정면의 거대한 강철 격벽이 육중한 쇳소리를 내며 좌우로 갈라졌다.


눈이 시리도록 새하얀 빛이 쏟아져 들어오며, 그 빛을 등지고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티끌 하나 없는 순백의 쓰리피스 정장. 얼굴의 상반부를 은빛 금속 마스크로 가린 기괴한 차림새였다. 그의 뒤로는 방독면을 쓰고 검은 방검복을 입은 사병들이 도열하듯 쏟아져 들어왔다.


수용소의 칙칙한 잿빛 풍경과 완벽하게 대비되는 그 이질적인 순백의 자태는, 벼랑 끝에 몰린 생존자들의 눈에는 마치 심연에 강림한 구원자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켰다.


"오염된 숨결을 이겨내고 아침을 맞이한 미도달자 여러분. 환영합니다."


남자의 목소리는 스피커를 통하지 않았음에도 요람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릴 만큼 또렷하고 기품이 넘쳤다.


"저는 이사회의 뜻을 받들어 여러분의 영혼이 맑아지도록 도울 '여명(黎明)의 감독관'입니다."


감독관이라는 단어에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의 어깨가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밤사이 불신으로 가득 찼던 세 영혼이 육신의 껍데기를 벗고 심연으로 돌아갔습니다. 참으로 비통한 일이지요. 하지만 슬퍼하지 마십시오. 자비로운 이사회는 율법을 따르는 자에게 반드시 은혜를 베푸는 법. 어제 약속드린 대로, 여러분이 손수 칩을 쟁취하여 구원에 다가설 수 있는 두 번째 의식을 거행하겠습니다."


감독관이 하얀 장갑을 낀 손을 우아하게 들어 올렸다.


그의 수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요람 중앙 광장의 바닥이 열리더니, 아홉 개의 거대한 원형 테이블이 솟아올랐다. 차가운 메탈 소재로 만들어진 테이블 주변에는 각각 여섯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여섯 명씩 한 조가 되어 '고해(告解)의 저울'이라 불리는 의식에 참여하게 됩니다."


태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여섯 명이 둘러앉는 원형 테이블. 딜러가 위치할 중앙의 빈 공간. 그리고 손목 밴드와 연동되는 듯한 테이블 앞의 터치 패드. 아무리 성스러운 단어로 포장하려 해도 태현의 후각을 속일 수는 없었다. 사설 하우스의 매캐한 담배 연기 속에서 수만 번이나 맡았던 냄새. 영락없는 포커판이었다.


"의식의 규칙은 아주 공평합니다."


감독관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명을 이었다.


"테이블에 앉으시면 여러분의 패드에 1부터 10까지의 숫자 중, 무작위로 두 개의 숫자가 '죄업'이라는 이름으로 부여됩니다. 두 숫자의 합이 높을수록 여러분의 영혼이 탐욕스럽고 더럽다는 뜻입니다."


종교적인 단어들로 범벅이 된 설명이었지만, 태현의 뇌는 즉각적으로 불필요한 수식어들을 걷어내고 카지노의 언어로 룰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1부터 10까지의 카드 두 장을 받는다. 숫자의 합이 낮을수록 좋은 패다. 즉, 가장 낮은 숫자의 합을 겨루는 변형된 로우(Low) 바둑이 룰이다.


"각 라운드마다 여러분은 자신의 더러운 죄를 씻어내기 위해 '정화 칩'을 중앙의 제단에 바치며 헌신을 증명해야 합니다. 만약 칩을 바칠 믿음이 부족하다면, 언제든 의식을 포기하고 '기도'를 올리셔도 좋습니다. 단, 기도를 올린 자는 자신이 그 라운드에서 바쳤던 모든 칩을 제단에 두고 물러나야 합니다."


해석은 뻔했다.


정화 칩을 바치는 것은 '베팅(Betting)'. 기도를 올리는 것은 패를 꺾는 '폴드(Fold)'. 한 번 팟(Pot)에 들어간 칩은 포기하더라도 돌려주지 않는다. 완벽한 포커의 베팅 구조였다.


"가장 많은 칩을 바치며 끝까지 남은 자들 중, 죄업의 합이 가장 낮은 단 한 명만이 제단에 쌓인 모든 칩을 이사회의 은혜로써 독식하게 됩니다."


쇼다운(Showdown) 끝에 승자가 판돈을 쓸어간다.


여기까지는 태현이 눈 감고도 칠 수 있는 평범한 카드 게임에 불과했다. 하지만 여명의 감독관이 입가에 짙은 미소를 띠며 덧붙인 마지막 룰에, 사람들의 숨통이 턱 막히고 말았다.


"단, 끝까지 기도를 올리지 않고 남아 남의 은혜를 탐했으나… 죄업이 가장 높아 패배한 자는, 그 지독한 오만함을 씻어내기 위해 '육신의 정화'를 받게 될 것입니다."


지지직- 콰직!!


감독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빈 테이블에 달린 의자 중 하나에서 시퍼런 고압 전류가 폭포수처럼 튀어 올랐다. 사람의 몸을 단숨에 숯덩이로 만들어버릴 만큼 끔찍하고 파괴적인 위력이었다.


"히익!"


"저, 전기의자…!"


"자, 그럼 자리에 앉아 여러분의 절실한 믿음을 증명하십시오."


사람들은 사색이 된 얼굴로 머뭇거리다 사병들이 휘두르는 곤봉에 떠밀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비틀거리며 흩어졌다.


태현 역시 가장 안쪽의 7번 테이블로 걸어가 의자를 빼고 앉았다. 그의 테이블에는 태현을 포함해 총 여섯 명이 배정되었다. 교복 마이를 꽉 쥐고 덜덜 떠는 남학생, 신경질적으로 손톱을 물어뜯는 깡마른 여성, 잔뜩 주눅이 든 중년 남성 둘, 그리고 팔뚝에 문신이 가득한 건장한 체격의 사내였다.


태현은 등받이에 삐딱하게 기대앉은 채 무심한 시선으로 다른 사람들의 손목 밴드를 훑었다.


12, 8, 15, 9, 11.


어제 산소 경매의 여파로 다들 목숨만 겨우 부지할 수준의 바닥난 칩만을 쥐고 있었다.


반면, 태현의 손목 밴드에서 빛나는 숫자는 압도적이었다.


[94]


그 숫자를 확인한 테이블 사람들의 동공이 잘게 떨렸다. 그들은 경외감과 공포, 그리고 지독한 질투가 뒤섞인 눈으로 태현과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불쌍한 호구 새끼들. 룰의 본질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군.'


태현은 속으로 차가운 코웃음을 쳤다.


이 게임은 누가 낮은 숫자를 뽑느냐를 겨루는 운칠기삼의 확률 게임이 아니다. 주최 측이 마지막에 덧붙인 '패배자는 전기의자에 앉는다'는 치명적인 페널티가 이 게임의 장르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이 페널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무조건 이긴다'는 확신이 드는 최고의 패, 즉 1과 2(합 3) 같은 카드가 나오지 않는 이상 절대 끝까지 베팅을 따라갈 수 없게 된다. 죽음의 공포가 이성을 마비시키고 칩을 따겠다는 탐욕을 완벽하게 짓눌러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이 테이블을 지배하는 것은 패의 높낮이가 아니라 자본의 폭력. 포커판의 용어로 '딥 스택(Deep Stack)'의 이점이다. 압도적으로 많은 칩을 가진 자는, 베팅 한 번에 자신의 남은 수명을 걸어야 하는 칩이 적은 자(Short Stack)를 상대로 절대적인 권력을 쥔다.


지금 이 테이블에서 94칩을 쥔 강태현은, 마음만 먹으면 패널의 숫자를 보지 않고도 저 다섯 명을 손가락 하나로 요리할 수 있는 포식자였다.


[첫 번째 의식을 시작합니다. 기본 헌금은 1칩입니다.]


테이블 중앙의 스피커에서 기계음이 울림과 동시에 태현의 손목에서 1칩이 빠져나갔다. 테이블 중앙의 액정에 [총 6칩]이라는 숫자가 떴다. 판돈(Pot)이 형성된 것이다.


동시에 태현의 자리 앞 불투명한 패드에 붉은색 글씨로 두 개의 숫자가 떠올랐다.


[죄업: 8, 9]


1부터 10까지의 숫자 중 8과 9. 합이 17.


이건 쓰레기 중의 쓰레기. 뒤에서 1등을 다투는 최악의 패였다. 정상적인 포커판이라면 당장 카드를 집어 던지고 화장실이나 다녀와야 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태현의 입꼬리는 오히려 기분 좋게 말려 올라갔다.


상대가 잔뜩 쫄아있는 이런 구조에서는 오히려 어정쩡하게 좋은 패보다, 이딴 쓰레기 패가 블러핑을 치기에는 완벽한 명분을 제공한다.


[첫 번째 고해를 시작합니다. 1번 미도달자부터 결정을 내리십시오.]


태현의 차례는 가장 마지막인 6번이었다. 베팅의 동향을 모두 살필 수 있는 최고의 위치.


1번 자리에 앉은 남학생은 패널의 숫자를 보자마자 눈물을 글썽이며 '기도(Fold)' 버튼을 눌렀다. 합이 꽤 높은 쓰레기 패가 나온 모양이었다.


2번 여성은 달달 떨리는 손으로 '헌신(1칩 베팅)'을 눌렀다. 3번, 4번 중년 남성도 서로의 눈치를 보며 1칩을 밀어 넣었다. 5번 문신 사내가 씩씩거리며 1칩을 눌렀다. 패가 제법 낮은 듯 자신감이 엿보였다.


중앙 액정의 판돈이 10칩으로 늘어났다.


이제 포식자의 차례였다.


다섯 명의 핏발 선 시선이 93칩을 가진 태현의 손끝으로 쏠렸다.


태현은 턱을 괸 채 나른하고 지루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테이블을 한 번 스윽 훑었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패드에 숫자를 입력하고 버튼을 쾅 내리쳤다.


[6번 미도달자, 헌신 10칩.]


"…!!"


"미, 미친…!"


테이블에서 헉, 하는 비명 같은 단말마들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판돈의 규모가 20칩으로 뻥튀기되었다. 방금 전까지 1칩을 조심스레 걸었던 네 명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태현이 던진 '10칩'이라는 금액은, 태현에게는 고작 자산의 10%에 불과한 푼돈이었지만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남은 생명줄을 모두 걸어야 하는 전 재산(All-in)이나 다름없는 묵직한 돌덩이였다. 여기서 이 베팅을 따라가려면 그들은 남은 칩을 다 털어 넣어야 했다.


'자, 딜레마의 늪에 빠져봐라.'


태현은 무표정한 얼굴 뒤로 상대를 난도질하는 잔혹한 심리적 계산을 돌리고 있었다.


'내 패가 1, 2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내가 저렇게 자신 있게 칩을 쏟아붓는 이유가 절대 지지 않을 확신이 있어서일 거라는 의심. 만약 나를 따라왔다가 내가 패를 깠을 때 나보다 숫자가 높으면, 너희는 칩도 다 잃고 저 시퍼런 전기의자에서 타죽게 된다.'


태현의 자비 없는 베팅은 상대방의 빈약한 논리를 짓부수고 이성을 마비시켰다.


"제, 젠장! 나, 난 기도할래!"


가장 먼저 2번 여성이 비명을 지르며 폴드 버튼을 쾅 눌렀다. 전기의자의 끔찍한 공포가 칩을 얻으려는 얄팍한 탐욕을 완전히 짓눌러버린 것이다.


"하아, 씨발… 나도 타 죽긴 싫어. 기도!"


"저, 저도 기도요!"


3번, 4번 남성도 칩을 아쉬워할 새도 없이 도망치듯 패를 꺾었다.


이제 테이블에 남은 것은 5번, 체격이 건장한 문신 사내뿐이었다. 사내의 손목에는 14칩이 남아있었다. 태현의 10칩 레이즈를 받으려면 자신의 전 재산에 가까운 10칩을 추가로 내야 한다. 지면 남은 칩은 단 4개. 전기의자를 면하더라도 며칠 내로 아사할 운명이었다.


사내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미친 듯이 요동쳤다. 사내의 패는 아마 합 5나 6 정도의,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꽤 좋은 패일 것이다. 사내는 태현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단 하나의 단서, 미세한 표정 변화나 불안감(텔, Tell)을 찾으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태현은 심연의 바닥처럼 고요했다.


눈을 깜빡이는 속도, 호흡의 깊이, 테이블에 올려둔 손가락의 위치, 심지어 입꼬리의 각도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통제된 철옹성 같은 '포커페이스'였다. 사설 하우스에서 사기꾼과 타짜들의 시선을 받아내며 깎고 다듬은 강태현만의 절대적인 방패였다.


'포기해라. 넌 지금 내가 가진 패의 숫자가 두려운 게 아니야. 그냥 네 알량한 목숨이 아까운 거지.'


10초, 20초. 피 말리는 침묵이 길어질수록 사내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사내는 결국 자신을 집어삼킬 듯 쳐다보는 태현의 서늘한 눈빛과 압도적인 칩의 차이에 완전히 기가 눌려버렸다.


"크으윽… 기, 기도…!"


사내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거칠게 내리치며 폴드 버튼을 눌렀다.


[모든 미도달자가 기도를 올렸습니다. 6번 미도달자가 제단의 정화 칩을 거두어갑니다.]


띠링-


태현의 손목 밴드에 칩이 쏟아져 들어왔다. 단 1분 만에 판에 쌓인 칩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인 것이다.


[정화 칩: 107]


태현은 조용히 자신의 쓰레기 패(8, 9)를 화면에서 지웠다.


결과를 까보지 않았기에, 태현이 완벽한 블러핑으로 그들을 농락했다는 사실을 아는 자는 이 벙커 안에 아무도 없었다. 압도적인 자본으로 공포를 조성해, 상대가 이길 수 있는 기회조차 스스로 포기하고 엎드리게 만드는 것. 이것이 강태현이 밑바닥에서 생존해 온 지독하고도 더러운 방식이었다.


두 번째 라운드, 세 번째 라운드도 결과는 똑같았다.


태현은 패가 좋든 나쁘든 무자비하게 10칩, 20칩씩 칩을 쏟아부으며 다른 사람들의 피를 말렸다. 7번 테이블의 남은 다섯 명은 이제 태현이 손가락만 까딱해도 흠칫거리며 파블로프의 개처럼 스스로 패를 꺾기 시작했다. 전기의자라는 주최 측의 통제 장치가, 역으로 태현의 폭정을 돕는 완벽한 무기가 된 셈이었다.


[7번 테이블 의식 종료. 6번 미도달자 독식.]


단 30분 만에 게임이 끝났다.


태현을 제외한 다섯 명의 참가자는 판이 시작될 때마다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기본 헌금에 칩을 계속 뜯겨 모두 5칩 미만의 빈털터리가 되었다. 내일이면 캡슐 밖에서 비참하게 목숨을 잃을 운명이었다. 그들은 태현을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증오의 눈으로 노려보았지만, 시스템이 허락한 룰 안에서 정당하게 벌어진 압살이었기에 반항할 명분조차 없었다.


"수고들 하셨습니다."


태현은 건조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목 밴드에는 [135]라는 경이로운 숫자가 빛나고 있었다. 이 척박한 요람 안에서 그는 이미 웬만한 권력자 부럽지 않은 절대적인 부를 확보한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태현의 등 뒤로 소름 끼치도록 차분하고 일정한 구둣발 소리가 다가왔다.


저벅, 저벅.


태현이 고개를 돌리자, 은빛 마스크를 쓴 여명의 감독관이 태현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마스크 너머로 빛나는 감독관의 차가운 눈동자가 태현을 흥미롭다는 듯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놀랍군요. 이사회의 은혜를 이런 식으로 무자비하게 독식하는 자가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감독관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태현은 짐짓 여유로운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주최 측에서 친절하게 허락하신 룰대로 움직였을 뿐입니다. 감독관님."


"그렇지요. 표면적인 율법에 어긋남은 없었습니다."


감독관이 태현의 어깨에 가볍게 하얀 장갑을 낀 손을 올렸다. 어깨뼈를 부숴버릴 듯한 엄청난 악력이 느껴졌다.


"하지만, 율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하여 형제들의 믿음을 시험하고 기만하는 행위는… 이사회가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지독한 오만이지요."


감독관은 태현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성스럽고 고상했던 방송용 톤을 집어던진 채 지독하게 건조하고 살벌한 진짜 목소리로 속삭였다.


"칩 좀 땄다고 주제 파악 못 하고 까불지 마라. 네놈이 뛰노는 이 판을 깐 건 우리니까."


경고를 품은 서늘한 입김이 태현의 귓가를 스쳤다. 하지만 태현은 움츠러들기는커녕 피식 웃으며 어깨에 얹힌 감독관의 손을 거칠게 쳐냈다.


"판을 깔았으면 딜러답게 수수료나 조용히 떼가시지. 혓바닥이 꽤 기네."


순간, 감독관의 눈동자에 짐승 같은 살기가 번뜩였다.


그의 기류 변화를 읽은 주변의 검은 사병들이 일제히 곤봉을 빼어 들고 태현을 에워쌌다.


수용소 전체에 숨 막히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거대한 착각의 늪을 만들어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주최 측과, 그들이 만든 룰을 통계와 심리전으로 찢어발기려는 천재 딜러. 심연의 카지노 한복판에서, 두 마리 포식자의 첫 번째 대치가 팽팽하게 스파크를 튀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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