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화. 3주의 시한부, 그리고 피의 이사회

by 연구소장

[천명 외상센터, 지하 4층 VVIP 비밀 수술실]


"미쳤어! 당장 수술대에 눕는다니, 이건 자살행위야!"


수술실 문이 열리고 내가 환자복 차림으로 들어서자마자, 정혁 교수가 차트를 바닥에 집어 던지며 고함을 질렀다.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공포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초저체온 순환 정지 수술(DHCA)? 사람 체온을 18도까지 떨어뜨리고 피를 빼서 심장을 멈추겠다고? 대동맥류 파열 같은 초응급 상황에서나 생존율 10%를 걸고 하는 최후의 수단을, 지금 당장 하겠다고!"


수술실 안은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정혁의 앞에는 1기생을 대표하여 수술복을 입은 한수진, 박철민, 민도현이 사색이 된 채 서 있었다.


"이사장님... 아니, 회장님. 제발 오해하지 마십시오."


민도현이 허둥지둥 내 앞을 막아섰다.


"제가 방법을 찾았다고 보고드린 건 맞지만, 그게 '지금 당장'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수술대 위에 걸터앉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야. 심장 멈추고 EMP로 나노 머신 코어 태워버리는 거라며. 여기 에크모(ECMO) 장비도 있고, 제세동기도 다 있잖아. 뭣 때문에 못 한다는 건데."


"장비의 '출력'과 '정밀도'가 다릅니다."


민도현이 태블릿 화면을 내밀었다.


"병원에 있는 일반적인 의료용 EMP나 제세동기로 회장님 뇌간에 충격을 줬다간, 나노 머신이 타기 전에 대뇌피질이 먼저 익어버립니다. 뇌사가 아니라 진짜 숯덩이가 된다고요."


"그럼 어떡하란 건데."


"군사용 마이크로 EMP 발생기가 필요합니다. 오차 범위 0.1밀리미터 이내로 타겟팅이 가능한 최신형으로요. 아까 헌터 요원(CIA)한테 은밀히 수배를 부탁했는데... 본토에서 특수 외교 행낭으로 밀반입해서 세팅하는 데까지 최소 **'3주'**가 걸린답니다."


"3주."


나는 헛웃음을 쳤다.


"3주면 아버지가 내 뇌파를 강제로 동기화하고도 남을 시간이야. 어제 그 영감이 내 손을 잡았을 때 동기화율이 벌써 1%가 넘어갔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억제제를 만들었습니다."


민도현이 아이스박스에서 푸른빛이 도는 앰플을 꺼냈다.


"은색 가방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신경 전달 물질을 강제로 억누르는 약입니다. 이걸 맞으면 나노 머신의 활동을 둔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작용으로 극심한 두통과 신경통이 동반될 겁니다. 3주... 이 약으로 버티셔야 합니다."


나는 앰플을 받아 들었다.


차가운 유리병 너머로 죽음의 카운트다운이 느껴지는 듯했다. 당장 수술대로 뛰어들어 폭탄을 제거하고 싶었지만, 무기가 도착하지 않았다면 맨몸으로 터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좋아. 3주."


나는 앰플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수술대에서 내려왔다. 환자복을 벗고 다시 맞춤형 수트와 하얀 가운을 걸쳤다.


"이사장님, 어디 가십니까?"


박철민이 물었다.


"수술이 연기됐으니, 원래 하려던 일 하러 가야지. 왕관을 썼으면 권력을 휘둘러야 할 거 아냐."


나는 넥타이를 고쳐 매며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수술실의 제자들을 둘러보았다.


"너희들은 이 시간부로 3주 뒤에 있을 내 심장 정지 수술의 완벽한 시뮬레이션을 돌려. 단 1초의 오차도, 1도의 온도 차이도 용납 안 한다. 필요한 장비나 돈은 천명 그룹 회장의 이름으로 무제한 지원하마."


나는 수술실 문 손잡이를 잡았다.


"나는 그 3주 동안, 아버지가 남겨둔 이 천명이라는 썩은 둥지를 완벽하게 내 것으로 만들 거다. 내가 수술대에서 눈을 감고 있는 동안, 감히 누구도 이 병원과 내 재단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아주 무자비하게 청소해주지."


[다음 날, 천명 그룹 본사 100층 대회의실]


공기는 숨이 막힐 듯 무거웠다.


거대한 타원형 테이블에는 천명 그룹의 계열사 사장단과 핵심 임원 30여 명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천무성 전 회장의 수족이자, 오랜 시간 그룹의 단물을 빨아먹어 온 기득권 세력이었다.


상석은 비어 있었다. 그들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아무리 회장님이 물려주셨다지만, 핏덩이 의사 놈이 그룹 총괄이라니 말이 됩니까?"


"어제 기자회견 보셨지 않습니까. 30조 원을 비영리 재단에 쏟아붓는답니다. 회사를 아주 거덜 낼 작정이에요."


"걱정 마십시오. 오늘 임시 이사회에서 기금 출연 안건을 무조건 부결시킬 겁니다. 지분이 많다고 경영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우리가 뭉치면 저 애송이 하나 제압하는 건 일도 아닙니다."


재무담당 부사장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이사들을 독려했다. 천무성이라는 호랑이가 사라졌으니, 이빨 빠진 젊은 새끼 호랑이쯤은 자신들이 길들일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었다.


덜컥.


육중한 회의실 문이 열렸다.


순식간에 정적이 흐르고, 임원들의 시선이 문 쪽으로 쏠렸다.


나는 백강우와 두 명의 덩치 큰 사설 경호원을 대동하고 회의실로 들어섰다.


재벌 총수답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넬 거라 예상했던 임원들의 기대와 달리, 나는 그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곧장 상석으로 걸어가 털썩 주저앉았다.


"회의 시작하죠."


나는 턱을 괸 채 삐딱하게 앉아 임원들을 훑어보았다.


"어... 회장님. 취임 후 첫 이사회이니만큼, 우선 각 계열사 사장단 소개와 업무 보고를..."


그룹 비서실장이 당황하며 마이크를 켰지만, 나는 손을 들어 그의 말을 잘랐다.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안건부터 올리세요. '천명 글로벌 의료 재단' 설립 및 30조 원 기금 출연에 관한 건."


나의 거침없는 태도에 임원들의 미간이 좁혀졌다. 재무담당 부사장이 헛기침을 하며 마이크를 잡았다.


"회장님. 그 건에 대해서는 이사진의 우려가 매우 큽니다. 아무리 회장님의 지분이 45%라고 해도, 그룹의 핵심 유보금을 그런 수익성 없는 비영리 재단에 한 번에 털어 넣는 것은 배임 행위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저희 이사진은 만장일치로 해당 안건에 반대하는..."


"반대한다?"


나는 피식 웃으며 백강우에게 손짓했다.


백강우가 서류 가방에서 두툼한 파일 철 수십 개를 꺼내, 마치 트럼프 카드를 돌리듯 임원들 앞의 테이블로 휙휙 던졌다.


"이게... 뭡니까?"


"읽어봐. 당신들 목줄이니까."


부사장이 떨리는 손으로 파일을 열었다.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다른 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곳곳에서 헉 하는 헛바람 들이켜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파이탄 공화국 내전 지역에서 천명 바이오가 반군에게 지급한 검은돈의 흐름. 그 자금을 세탁해 준 스위스 은행 계좌 번호. 그리고..."


나는 의자에 몸을 푹 기대며 서늘하게 웃었다.


"그 불법 생체 실험 프로젝트인 '아담'을 승인하고 뒷돈을 챙겨 먹은 여기 계신 임원분들의 아주 꼼꼼한 결재 서류들. 닥터 장석훈 박사가 아주 정성스럽게 기록해 뒀더군."


"이, 이건 모함입니다! 저희는 회장님이 시키는 대로...!"


부사장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앉아. 아직 말 안 끝났어."


나의 묵직한 일갈에 부사장이 억눌린 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제부로 유엔(UN) 특별 조사단과 미국 CIA가 천명 바이오 사태에 개입했습니다. 내가 이 서류들을 미국 대사관에 넘기는 순간, 당신들은 대한민국 검찰이 아니라 국제 사법 재판소로 끌려가서 테러 자금 지원 혐의로 종신형을 살게 될 거야."


회의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그들은 애송이를 길들이려다, 자신들이 단두대 위에 올려져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이 자리에서 30조 원을 재단에 넘기겠다고 한 건, 당신들한테 동의를 구하는 게 아니야. 당신들이 감옥에 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면죄부'의 가격을 제시한 거지."


나는 테이블 위로 몸을 숙여, 뱀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훑어보았다.


"재단 설립에 찬성하고, 천명 바이오 해체에 동의해. 그리고 가지고 있는 주식 전부 재단에 기부하고, 짐 싸서 조용히 퇴사해라. 그게 당신들이 오늘 살아서 이 문을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다."


"회장님! 이건 협박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평생을 회사에 몸 바친 사람들에게..."


"협박? 아니, 처방전이지."


나는 펜을 들어 서류를 탁탁 쳤다.


"부패라는 악성 종양이 몸집을 불려서 기어오르는데, 의사가 그걸 두고 볼 순 없잖아. 항암제를 들이붓든, 칼로 도려내든 싹을 말려야지."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딱 5분 준다. 사인 안 한 서류는 바로 내 비서가 미국 대사관으로 팩스 넣을 거다."


정확히 3분 40초 뒤.


테이블 위에 놓인 결의서에는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임원 30명 전원의 서명이 박혀 있었다. 거대한 천명 그룹을 좌지우지하던 썩은 기득권 세력이, 단 한 번의 이사회에서 완벽하게 숙청당하는 순간이었다.


"훌륭한 선택입니다."


나는 서명된 서류들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퇴직금은 정산해서 보내드릴 테니, 두 번 다시 내 눈앞에 띄지 마십시오."


나는 텅 빈 껍데기가 된 임원들을 뒤로한 채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문을 나서자마자 복도를 걸어가며 백강우에게 지시를 내렸다.


"방금 받은 주식들 전부 법무팀 넘겨서 재단 소유로 법적 절차 끝내. 그리고 오늘 잘린 임원들 빈자리는, 외부에서 영입한 깨끗한 전문 경영인들로 채워. 기존 천명 라인은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다 쳐내."


"알겠습니다, 회장님. 정말 무자비하시군요."


백강우가 혀를 내두르며 대답했다.


"무자비해야 해. 아버지가 언제 내 머릿속 스위치를 누를지 모르니까. 내가 없더라도 이 재단이 혼자 굴러갈 수 있게 뼈대를 콘크리트로 타설해 놔야 한다고."


그 순간.


갑자기 관자놀이를 바늘로 쑤시는 듯한 끔찍한 통증이 밀려왔다.


"윽...!"


나는 복도 벽을 짚고 휘청거렸다.


시야가 붉게 점멸하며, 눈앞에 소름 끼치는 시스템 알림창이 떠올랐다.


[경고: 마스터(천무성)가 원격 강제 동기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현재 동기화율: 5%... 7%...]


[나노 머신 코어가 대뇌피질의 통제권을 간섭합니다.]


"회장님! 왜 그러십니까!"


백강우가 다급하게 나를 부축했다.


"약... 민도현이 준 억제제..."


나는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를 뒤져 푸른 앰플을 꺼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내 허벅지에 주사기를 내리꽂았다.


푸욱.


차가운 약물이 혈관을 타고 퍼져나가자, 미친 듯이 오르던 동기화율 수치가 멈칫하더니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두통이 가라앉고 붉은 시야가 걷혔다.


"하아... 하아..."


나는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냈다.


"시작됐어. 아버지가 밖에서 내 행동을 지켜보고, 통제를 벗어난다 싶으면 원격으로 목줄을 조이기 시작한 거야."


"괜찮으신 겁니까? 약 부작용이 심할 거라고..."


"버텨야지. 아직 20일 남았어."


나는 핏발 선 눈으로 창밖의 눈부신 서울 하늘을 노려보았다.


내가 이 썩어빠진 제국을 부수고 나의 군대를 완벽하게 세우는 것이 빠를지, 아니면 아버지가 내 뇌를 태워버리고 육체를 강탈하는 것이 빠를지.


피 말리는 시간 싸움이 시작되었다.


왕관의 무게는 너무나도 무거웠고, 내 심장에 꽂힌 시한폭탄의 초침 소리는 점점 더 거세게 귓전을 때리고 있었다.


제2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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