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폭풍 전야의 요새, 그리고 풀려난 악마들

by 연구소장

[천명 외상센터, '천명 글로벌 의료 재단' 출범식 / 1주일 후]


"오늘부로 기존의 영리 법인 천명 병원은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우리는 이제 어떤 자본과 권력의 눈치도 보지 않는, 오직 생명만을 위해 움직이는 독립된 의료 요새, '천명 글로벌 의료 재단(CGMF)'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병원 1층 로비를 가득 메운 수백 명의 의료진과 취재진 앞에서, 나의 선언이 마이크를 타고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지난 1주일. 대한민국은 내가 휘두른 3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본의 칼춤에 숨을 죽였다.


나는 천명 그룹의 알짜배기 계열사들을 모조리 매각하여 현금화했고, 그 돈으로 기존 천명 의대와 병원 부지를 통째로 사들여 재단 소유로 묶어버렸다. 이사회에서 숙청된 썩은 임원들의 빈자리는, 외부에서 영입한 철저한 원칙주의자들과 실무진들로 채워 넣었다.


아버지가 수십 년간 거미줄처럼 엮어놓은 부패의 사슬을 단 일주일 만에 끊어내고, 완벽한 '천이환의 성채'를 구축한 것이다.


타타타타탁!


카메라 플래시가 눈을 멀게 할 듯 터졌다.


"재단의 초대 이사장으로서, 저는 이 자리를 빌려 가장 핵심적인 전력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기존의 낡은 의료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고, 어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도 최전선에 투입될 특수 의료 군단입니다."


나는 단상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 손짓에 맞춰, 100명의 천명 1기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 나왔다.


그들이 입은 것은 평범한 하얀 가운이 아니었다. 특수 소재로 제작된 짙은 네이비색의 전술 기동복(Tactical Scrub), 그리고 그 위에 걸친 방검복 재질의 조끼. 왼쪽 가슴에는 천명 재단의 십자가 로고가, 오른쪽 가슴에는 각자의 이름과 직책이 오바로크되어 있었다.


"천명 제1 기동 의료대. 팀장 백강우, 부팀장 박철민을 필두로 한 100명의 최정예 의료 요원들입니다. 이들은 파이탄의 전장에서 이미 그 실력을 증명했으며, 향후 재단의 모든 특수 임무와 중증 외상 환자의 처치를 전담할 것입니다."


각이 잡힌 채 도열한 그들의 눈빛에는, 과거 무자격자 편입생이라며 손가락질받던 시절의 주눅 든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내가 지옥에서 벼려낸 가장 날카로운 메스였고, 목숨을 맡길 수 있는 전우였다.


"질문받겠습니다!"


홍보팀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자들이 앞다투어 손을 들었다.


"한국일보 최 기자입니다! 30조 원이라는 막대한 기금을 비영리 재단에 쏟아부은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천무성 전 회장의 비자금을 세탁하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YTN입니다! 파이탄에서 생포해 온 장석훈 박사의 검찰 조사가 지지부진합니다! 천명 바이오의 생체 실험 의혹이 꼬리 자르기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데,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날 선 질문들이 쏟아졌지만, 나는 여유롭게 단상을 짚고 마이크를 당겼다.


"비자금 세탁이요? 내 주머니에 들어올 30조 원을 허공에 뿌렸는데, 그게 세탁이면 저는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돈세탁범이겠군요. 재단의 모든 회계 장부는 내일부터 24시간 실시간으로 웹사이트에 공개됩니다. 1원이라도 허투루 쓰이면 언제든 제 목을 치셔도 좋습니다."


기자들 사이에서 헛웃음과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장석훈 박사의 수사가 지지부진한 이유? 간단합니다. 장 박사는 한국 검찰이 아니라, UN 산하 국제 형사 재판소(ICC)의 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꼬리 자르기요? 천만에요. 꼬리가 아니라 몸통을 썰어버리기 위해 도마를 달구는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 보시죠."


완벽한 통제. 완벽한 여론전.


기자회견은 나의 압승으로 끝이 났다. 여론은 '부패한 재벌 아비의 죄를 씻기 위해 십자가를 진 성자'라는 프레임으로 나를 찬양하고 있었다.


하지만.


"큭...!"


기자회견을 마치고 이사장실로 돌아오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탄 순간, 나는 비틀거리며 벽을 짚었다.


관자놀이를 드릴로 뚫는 듯한 끔찍한 통증이 뇌수를 후벼 팠다. 시야가 붉게 점멸하며, 지긋지긋한 시스템 알림창이 허공에 떠올랐다.


[경고: 마스터(천무성)의 강제 동기화 시도 중입니다.]


[현재 동기화율: 15%... 17%...]


[나노 머신 코어가 대뇌피질의 통제권을 간섭합니다.]


"회장님!"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던 민도현이 사색이 되어 구급가방을 열었다.


그의 손에는 푸른빛이 도는 '억제제' 앰플이 들려 있었다.


"도현아... 놔..."


나는 떨리는 손으로 소매를 걷어붙였다.


민도현이 재빨리 내 정맥에 주삿바늘을 꽂고 억제제를 투여했다. 차가운 약물이 혈관을 타고 퍼지자, 미친 듯이 솟구치던 동기화율 수치가 간신히 17%에서 멈춰 섰다.


두통이 서서히 가라앉았지만,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아... 하아..."


"회장님, 벌써 오늘만 세 번째 투여입니다. 억제제의 간 독성 수치가 임계점을 넘었어요. 이대로면 나노 머신에 먹히기 전에, 급성 간부전으로 쓰러지실 겁니다!"


민도현이 피눈물을 흘릴 듯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지난 1주일. 겉으로는 완벽한 성채를 쌓아 올리며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 육체는 안에서부터 철저하게 갉아 먹히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재단을 세우고 그룹을 해체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매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원격으로 킬 스위치의 동기화율을 끌어올렸다. 마치 쥐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처럼, 나의 정신력과 체력을 야금야금 말려 죽이고 있는 것이다.


"버텨야 해... 헌터한테서 연락 온 거 없나. EMP는 언제 도착한대."


내가 피 묻은 손수건으로 코피를 닦아내며 묻자, 옆에 서 있던 백강우가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방금 전, 헌터 요원에게서 암호화된 위성 통신이 왔습니다. 군사용 마이크로 EMP를 적재한 미 공군 수송기가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하려면... 아직 2주가 더 남았답니다. 통관 절차를 최대한 무시하고 빼내는 데에도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답니다."


"2주."


나는 엘리베이터 바닥에 묻은 내 핏자국을 보며 실소를 터트렸다.


하루에 3번씩 간을 녹이는 억제제를 맞으며 2주를 버텨야 한다. 아버지는 그 2주라는 시간을 나에게 온전히 허락할 위인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내가 수술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어. 내 몸의 통제권을 빼앗는 게 늦어진다고 생각하면... 분명 다른 패를 꺼낼 거다."


"다른 패라뇨? 이미 회사의 자금줄도, 여론도 다 저희가 쥐고 있습니다. 천무성 회장은 가평의 종교 시설(천성전) 지하에 틀어박혀서 수배령이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독안에 든 쥐 아닙니까."


백강우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나는 엘리베이터의 거울에 비친 내 창백한 얼굴을 노려보았다.


"쥐가 궁지에 몰리면, 독을 품고 고양이를 물지. 파이탄에서 가져온 장부를 기억해? 놈들이 그 정글에서 대량으로 만들어내던 마약... 'Z-더스트(Z-Dust)'. 그게 과연 해외 테러 조직한테만 팔려 나갔을까?"


내 말에 민도현과 백강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설마... 그 좀비 약을 국내로 들여왔단 말씀이십니까?"


"천명 바이오의 국내 물류 창고들을 털었을 때, 재고 목록과 실제 물량이 맞지 않는 '블랙박스' 구역이 있었어. 서류상으로는 폐기된 걸로 위장했지만, 누군가 빼돌린 게 분명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아버지는 지금 자신의 '그릇'인 내가 말을 듣지 않으니, 세상 자체를 지옥으로 만들어서 나를 굴복시키려는 거야. 세상이 무너지면, 결국 사람들은 기적을 일으킬 '신'을 찾게 되어 있으니까."


띵-


엘리베이터가 이사장실이 있는 최상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비서실 직원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뛰어왔다.


"이, 이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방금 강남 한복판에서...!"


[같은 시각, 경기도 가평 '천성전(天聖殿)' 지하 벙커]


대한민국 사이비 종교의 본산이자, 천무성 회장의 완벽한 요새인 천성전.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와 마리아상으로 장식된 지상의 예배당과는 달리, 지하 벙커는 차가운 금속과 수백 대의 서버가 돌아가는 삭막한 통제실이었다.


휠체어에 앉은 천무성은 거대한 메인 모니터에 띄워진 천이환의 생체 데이터를 보며 혀를 쯧쯧 찼다.


"지독한 놈. 억제제를 퍼부어대면서까지 내 통제를 거부하다니. 저러다 그릇의 내장이 다 녹아내리겠구나."


"회장님, 이대로 시간을 끌면 타겟이 나노 머신 코어를 파괴할 수술을 강행할지도 모릅니다. UN 조사단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습니다."


검은 사제복을 입은 구원교의 핵심 간부, '대사제'가 조심스럽게 진언했다.


"알고 있다. 내 아들이 머리가 아주 비상해졌어. 뱀의 둥지를 불태우고, 여론을 방패 삼아 성채를 짓다니. 하지만 녀석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지."


천무성은 휠체어의 방향을 돌려 벙커 한쪽에 놓인 거대한 냉동 금고를 바라보았다.


"의사는, 환자가 밀려들면 수술실을 떠날 수 없다는 것. 세상이 비명을 지르며 구원을 갈구할 때, 영웅 놀이에 취한 내 아들은 결코 그 환자들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천무성이 손가락을 튕기자, 대사제가 냉동 금고의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치이이익-


차가운 드라이아이스 연기와 함께 금고가 열리고, 그 안에는 수백 개의 은색 캡슐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파이탄의 정글에서 수많은 원주민들을 살육 기계로, 그리고 이성을 잃은 괴물로 만들었던 기적의 마약. 'Z-더스트'의 개량형, '샘플 Z(Sample Z)'였다.


"이 약은 파이탄의 실패작들과는 다르다. 대뇌피질을 태우는 속도는 늦추고, 아드레날린 분비와 공격성만 극대화시켰지. 공기 중으로 흡입되면 잠복기 단 3시간. 이후에는 고통을 모르고 눈앞의 모든 것을 물어뜯는 짐승이 된다."


천무성의 눈동자가 탐욕스럽게 번뜩였다.


"가축들이 너무 배가 불러서 신(神)을 잊었다면, 다시 두려움을 심어주어야지. 병원 시스템이 붕괴되고, 경찰의 총알이 통하지 않는 괴물들이 거리를 활보할 때... 국가는 나에게 무릎을 꿇고 해독제를 구걸하게 될 것이다."


천무성이 대사제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된 '성전사'들에게 샘플 Z를 하사해라. 첫 번째 축제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가장 화려한 곳이 좋겠군."


"명 받들겠습니다, 교주님."


대사제가 은색 캡슐이 담긴 가방을 들고 허리를 숙였다.


천무성은 모니터 속 천이환의 사진을 쓰다듬으며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이환아. 너의 그 잘난 요새가 이 지옥의 불길을 얼마나 버텨낼지, 이 아비가 똑똑히 지켜보마."


[서울 강남역 11번 출구 앞 / 오후 6시 30분]


퇴근길의 직장인들과 약속 장소로 향하는 젊은이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강남역 사거리.


빌딩 숲 사이로 쏟아지는 네온사인 불빛 아래, 한 20대 남자가 비틀거리며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그의 모습은 기괴했다.


초겨울의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반팔 티셔츠 한 장만 걸친 채,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의 목덜미와 팔뚝의 혈관들은 지렁이처럼 검게 부풀어 올라 있었고, 입에서는 끊임없이 거친 숨소리와 함께 하얀 거품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옆에 서 있던 한 중년 여성이 걱정스러운 마음에 남자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그 순간.


기계처럼 뻣뻣하게 서 있던 남자의 고개가 기괴한 각도로 꺾이며 중년 여성을 향했다.


남자의 눈동자는 흰자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동공은 바늘구멍처럼 수축되어 있었다. 파이탄의 정글에서 천이환 일행을 덮쳤던, '실패한 신'들의 눈빛과 정확히 일치했다.


"크으으..."


"꺄, 꺄악! 왜, 왜 이러세요!"


남자가 짐승 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중년 여성을 향해 덮쳤다.


우당탕!


두 사람이 아스팔트 바닥으로 나뒹굴었고, 남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크게 벌린 입으로 여성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아아아아악!! 살려주세요!!"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주변을 지나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누군가는 스마트폰을 꺼내 경찰에 신고했고, 건장한 체격의 남자 두 명이 달려들어 가해 남성을 떼어내려 했다.


"이 미친 새끼야! 떨어져!"


청년들이 남자의 어깨를 잡고 억지로 끌어냈지만, 남자의 입에는 여성의 목에서 떨어져 나온 핏덩이가 물려 있었다.


남자는 자신을 붙잡은 청년들을 향해 씩 웃더니, 상상을 초월하는 괴력으로 청년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퍽-!


"커헉!"


성인 남성이 단 한 번의 발길질에 3미터 이상을 날아가 가로수에 처박혔다. 인간이 낼 수 있는 물리력이 아니었다.


남자는 포효하며 다시 군중들을 향해 돌진했다.


"괴, 괴물이다!"


"도망쳐!!"


강남역 사거리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변했다.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순찰차 두 대가 급정거했다. 테이저건과 삼단봉을 든 경찰관들이 뛰어나왔다.


"동작 그만! 엎드려! 엎드리라고!"


경찰이 테이저건을 발사했다.


타닥!


5만 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두 개의 다트가 남자의 가슴에 정확히 꽂혔다. 일반인이라면 근육이 마비되어 그대로 고꾸라져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몸을 한 번 부르르 떨더니, 오히려 자신의 가슴에 꽂힌 전선을 쥐고 확 잡아당겼다.


"이게 무슨...! 총 꺼내! 실탄 장전해!"


당황한 경찰관이 권총을 뽑아 들려던 찰나, 남자가 맹수처럼 도약하여 경찰관의 방검복 위를 그대로 물어뜯었다.


비명과 피, 그리고 광기만이 가득한 거리.


그런데, 더 끔찍한 것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저, 저기 봐! 저 사람도 이상해!"


길 건너편, 지하철역 환풍구 앞.


서너 명의 사람들이 남자가 보였던 것과 똑같은 증상을 보이며 발작을 일으키더니, 주변 사람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마치 전염병처럼, '폭주'가 번져나가고 있었다.


[천명 외상센터, 1층 응급의료센터]


"코드 레드! 코드 레드! 강남역 부근에서 대형 다중 추돌 사고 및 폭력 사태 발생! 중증 외상 환자 다수 이송 중입니다!"


병원 전체에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새롭게 정비된 천명 외상센터의 자동문이 열리고, 피투성이가 된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밀며 미친 듯이 뛰어 들어왔다.


"환자 상태 뭡니까!"


당직을 서고 있던 한수진이 달려 나갔다.


"강남역에서 묻지마 폭행을 당한 환자입니다! 우측 경동맥 부근 심각한 교상(물린 상처)! 출혈이 안 잡힙니다!"


"교상이요? 사람이 사람을 물어뜯었다고요?"


한수진이 환자의 상처를 확인하고 경악했다. 단순한 폭행이 아니었다. 야생 동물에게 뜯어 먹힌 듯 흉측하게 살점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


"수술방 하나 잡아! V.S(바이탈 사인) 흔들린다, 바로 지혈 들어갑니다!"


그때, 또 다른 구급차가 굉음을 내며 응급실 앞을 막아섰다.


이번에는 구급대원들이 환자를 싣고 내리지 못하고, 구급차 안에서 필사적으로 문을 막고 있었다.


"도와주세요! 환자가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진정제가 안 먹혀요!"


쾅! 쾅! 쾅!


구급차 뒷문이 찌그러질 정도로 안에서 엄청난 타격이 가해지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수갑이 채워진 채 구급대원을 물어뜯으려 발악하는 환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입에는 피거품이 가득했다.


"저거..."


응급실로 내려온 나의 시선이 구급차 창문 너머의 환자에게 꽂혔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회장님! 저 환자 상태..."


내 뒤를 따르던 박철민이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 알아."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파이탄 정글의 악몽. 닥터 장이 만들었던 그 끔찍한 '실패한 신'들.


아버지가 기어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힌 것이다. 그것도 인구 천만이 밀집한 이 대한민국 수도의 한복판에.


"박철민! 기동대 전원 호출해! 저건 일반 환자가 아니야, 방검복 입고 진압용 방패 들어!"


"알겠습니다!"


"한수진! 물린 환자들 무조건 격리 병동으로 빼! 상처 부위 통해 2차 감염될 확률 99%다. 혈액 채취해서 도현이한테 넘겨!"


나는 가운을 벗어 던지고, 수술복 소매를 걷어붙이며 구급차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아버지가 체스판을 엎어버렸다면..."


나는 무전기를 들고 병원 전체에 방송을 켰다.


"여기는 회장 천이환. 지금부터 천명 글로벌 의료 재단 산하 전 병원에 '최고 수준의 바이오 해저드(Bio-hazard) 프로토콜'을 발동한다."


구급차의 문짝이 뜯겨져 나가며, 피범벅이 된 괴물이 포효와 함께 나를 향해 튀어나왔다.


"환영 파티치고는 꽤나 격렬하군. 덤벼, 이 짐승 새끼야. 여긴 내 구역이니까."


대한민국을 지옥으로 몰아넣을 거대한 바이오 테러의 막이, 천명 외상센터의 문턱에서 처절하게 오르고 있었다.


제2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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