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화. 아비규환(阿鼻叫喚), 그리고 사냥의 시간

by 연구소장

[천명 외상센터, 1층 응급의료센터 앞]


콰아앙-!


구급차의 뒷문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떨어져 나갔다.


피거품을 문 괴물이 짐승의 포효를 내지르며 허공을 가르고 나를 향해 덮쳐왔다. 두꺼운 구급대원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 안의 근육은 약물로 인해 기괴하게 팽창되어 옷을 찢어발길 듯했다.


"회장님! 피하십시오!"


뒤따라오던 박철민이 삼단봉을 뽑으며 소리쳤지만, 나는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필요가 없었다. 이놈들의 패턴은 이미 파이탄의 정글에서 지겹도록 분석이 끝난 상태였다. 아드레날린 과다 분비로 인한 극단적인 직선 돌진.


나는 몸을 반보 비틀어 괴물의 손톱을 피함과 동시에, 응급실 입구에 비치되어 있던 10kg짜리 철제 산소통을 발로 차 올렸다.


퍼억-!


"크륵...!"


공중으로 떠오른 산소통이 괴물의 명치에 정확히 꽂혔다. 엄청난 타격음과 함께 괴물의 몸이 기역 자로 꺾이며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일반인이라면 갈비뼈가 함몰되어 숨이 멎었을 충격이었지만, 약물에 절여진 괴물은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놈은 바닥에 닿자마자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려 했다.


"철민아! 눌러!"


"기동대, 전원 진압 대형!"


나의 고함과 동시에, 전술 기동복을 입은 천명 1기생 10명이 거대한 투명 방검 방패를 들고 밀어닥쳤다.


쾅! 쾅! 쾅!


훈련받은 특수부대원들처럼, 그들은 방패로 괴물의 사방을 포위한 뒤 체중을 실어 바닥으로 짓눌렀다. 놈이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방패를 물어뜯고 발악했지만, 10명의 성인 남녀가 짓누르는 무게를 이겨낼 수는 없었다.


"수진아! 주사!"


"투여합니다!"


한수진이 방패 틈새로 팔을 밀어 넣고, 코끼리도 눕힌다는 고농도 진정제 칵테일 앰플을 괴물의 허벅지에 무자비하게 꽂아 넣었다.


푸쉬익.


약물이 주입되고 10초. 미친 듯이 날뛰던 괴물의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하아... 하아... 제압 완료했습니다."


박철민이 방패 너머로 땀을 닦으며 보고했다.


응급실 입구는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피투성이가 된 구급대원들은 이 믿기지 않는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일반적인 대학병원 응급실이었다면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쳤겠지만, 천명 외상센터의 의료진들은 방패로 환자를 짓누르고 주사를 꽂아 넣는 전투를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었다.


"구급대원분들, 다친 데 없습니까?"


내가 쓰러진 대원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아... 네, 긁히기만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짜 죽는 줄 알았습니다. 환자가 갑자기 미쳐 발광을 하는데..."


구급대원이 덜덜 떨며 내 손을 잡고 일어났다.


"긁혔다고요?"


내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구급대원의 목덜미 쪽, 방화복 깃 사이로 선명한 손톱자국과 함께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괴물에게 물리지는 않았지만, 놈의 손톱에 긁힌 상처였다.


"수진아, 이 대원분도 당장 격리 병실로 모셔."


"네? 저는 환자가 아니라 구조대원입니다! 강남역에 아직 쓰러진 사람들이..."


"당신 지금 돌아가면 죽어. 아니, 당신도 저 괴물처럼 변할지 몰라."


내 단호한 말에 구급대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나는 쓰러진 괴물의 입가에 묻어있는 누런 거품과 흑갈색의 타액을 가리켰다.


"저건 단순한 마약 중독이 아닙니다. 약물에 변이된 광견병 바이러스 계열이 섞여 있을 확률이 높아. 혈액이나 타액이 상처에 닿는 순간, 당신 뇌 신경도 타버릴 겁니다. 격리하고 즉각 항바이러스제랑 예방 백신 투여해!"


"알겠습니다! 이동 카트 가져와!"


한수진이 다급하게 지시를 내렸고, 1기생들이 구급대원과 괴물을 각각 특수 음압 격리실로 이송하기 시작했다.


그때, 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이 미친 듯이 울렸다.


민도현이었다.


"어, 도현아. 혈액 분석 결과 나왔어?"


[회장님... 이, 이건 미쳤습니다. 파이탄에서 가져왔던 'Z-더스트' 데이터랑 비교해 봤는데, 베이스는 같지만 분자 구조가 다릅니다.]


전화기 너머 민도현의 목소리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파이탄의 약물은 주사나 가루 흡입으로만 효과가 나타나는 단순한 '화학 마약'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강남에서 실려 온 환자들의 혈액 속에는... 살아있는 바이러스 벡터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바이러스 벡터? 약물을 전염병처럼 퍼뜨리게 만들었다고?"


[네! 광견병(Rabies) 바이러스의 RNA를 조작해서 약물 성분을 탑재시킨 '생물학적 병기'입니다. 타액, 혈액, 심지어 점막 접촉만으로도 감염됩니다. 물리면 잠복기가 1시간도 채 안 돼요. 뇌로 직행해서 전두엽을 마비시키고 편도체를 폭주하게 만듭니다!]


나는 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빠드득, 이빨이 갈렸다.


아버지는 체스판을 엎은 정도가 아니었다. 아예 판에 불을 지르고 문을 걸어 잠근 것이다.


파이탄에서는 민간인들을 실험체로 썼다면, 이제는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을 자신의 실험실이자 처형장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이 서로를 물어뜯게 만들고, 국가 시스템이 마비되면... 유일한 해독제 제조 기술을 가진 천무성 자신에게 권력이 집중되겠지.'


그 소름 끼치는 노인의 탐욕에 헛웃음이 나왔다.


"도현아, 우리가 파이탄에서 만든 진정제랑 억제제로 치료가 가능한가?"


[초기 감염자(물린 직후)는 항바이러스제와 억제제 투여로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발병해서 이성을 잃은 감염자는... 뇌세포가 녹기 시작한 거라, 우리가 파이탄에서 했던 것처럼 초고농도 칵테일 주사로 신경을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상 치료가 아니라 강제 영구 수면입니다.]


"상관없어. 일단 묶어두고 퍼지는 것만 막으면 돼. 지금 당장 재단 내의 모든 제약 시설 풀가동해서 진정제랑 예방 백신 앰플 대량 생산 체제로 전환해."


[알겠습니다!]


통화를 끊고 고개를 들자, 응급실 로비의 대형 TV 화면에서 정규 방송이 끊기고 긴급 뉴스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긴급 속보] 강남역 일대 '원인 불명 폭력 사태' 발생! 감염병 의혹!


시민들이 서로를 물어뜯어... 경찰 실탄 발사에도 진압 불가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 환자 수용 거부 및 폐쇄 조치


화면 속 강남의 거리는 문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불타는 자동차, 피를 흘리며 도망치는 시민들, 그리고 그들을 쫓아 짐승처럼 네 발로 기어 달리는 감염자들. 경찰의 폴리스 라인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였고, 통제력을 상실한 국가는 패닉에 빠져 있었다.


"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의료원장이 얼굴이 사색이 되어 달려왔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에서 긴급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강남 일대의 대형 병원들이 감염 우려와 통제 불능으로 응급실을 셧다운(Shut-down) 하고 있답니다! 갈 곳 없는 중증 외상 환자들과 교상(물린 상처) 환자들이 전부 우리 병원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의료원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병원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수십 대의 구급차와 경찰차들이 천명 외상센터로 밀려들고 있었다.


"다른 병원들은 문을 잠그는데, 우리는 어쩌면 좋습니까! 우리도 당장 응급실을 폐쇄하고 바리케이드를 쳐야 합니다! 이러다 병원 전체가 감염됩니다!"


의료원장이 내 팔을 붙잡고 애원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방송 마이크를 쥐었다.


"원장님. 우리는 평범한 병원이 아닙니다. 방금 전 출범식에서 제가 뭐라고 했죠?"


나는 마이크 스위치를 켰다.


"여기는 '독립된 의료 요새'입니다. 전쟁터에서 도망치는 군인은 필요 없습니다."


나의 차가운 목소리가 병원 전체의 스피커를 타고 울려 퍼졌다.


"전 직원 청취하라. 현재 시간부로 천명 외상센터는 '전시 체제'로 전환한다. 응급실 문 전면 개방해. 몰려오는 환자 단 한 명도 돌려보내지 마라. 물린 환자, 다친 환자, 심지어 감염되어 발광하는 괴물들까지 전부 우리 요새 안으로 욱여넣는다."


나의 미친 지시에 병원 로비에 있던 일반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경악했다.


"1기생 기동대! 너희들은 지금부터 응급실 1선 방어를 맡는다. 레벨 D 방호복 착용하고, 방패와 마취총, 고농도 진정제로 무장해. 발광하는 감염자는 무조건 물리적으로 짓누르고 주사 꽂아서 재워. 뼈가 부러져도 상관없다. 물리기 전에 제압해!"


"라져!!"


100명의 1기생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방호복과 장비가 있는 캐비닛으로 달려갔다. 그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두려움에 떨던 다른 직원들에게 기묘한 안정감을 주고 있었다.


"나머지 의료진은 2선에서 중증 외상 환자들 응급 수술과 처치에 집중한다. 감염된 괴물들은 우리가 잡을 테니, 당신들은 사람 살리는 일에만 집중해."


방송을 끈 나는 백강우와 박철민을 불렀다.


"강우 형. 철민아."


"예! 회장님!"


"재단 내에 있는 구급차, 대형 버스 전부 시동 걸어."


"네? 환자를 받으라면서 차는 왜..."


나는 로비의 유리창 너머로, 불타오르는 강남 쪽 하늘을 노려보았다.


"기다리기만 하면 전선이 밀린다. 우리가 직접 호랑이 굴로 들어간다."


"강남역으로 가신단 말씀입니까?!"


백강우가 기겁하며 물었다.


"경찰 통제선 다 뚫리고 다른 병원은 문 잠갔어. 지금 강남 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은 구조대도 못 들어가서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다고. 우리가 안 가면 누가 가."


나는 전술 조끼를 챙겨 입으며 메스를 챙겼다.


"기동대 1조 50명은 병원 수비. 나머지 50명은 나랑 같이 강남으로 간다. 이건 구조 활동이 아니야. 괴물들을 사냥하고, 우리 환자를 강탈해 오는 '구출 작전'이다."


[서울 강남역 11번 출구 앞 / 오후 8시 10분]


지옥. 그 자체였다.


평소라면 화려한 불빛과 사람들로 넘쳐났을 거리는 피비린내와 타는 냄새로 진동했다. 버스와 승용차들이 뒤엉켜 불타고 있었고, 아스팔트 바닥에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시신들과 부상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크아아악!"


가로등 위에서, 부서진 상점 유리창 너머에서, 붉은 눈을 한 감염자들이 튀어나와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생존자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경찰 특공대가 투입되었지만, 바이러스에 의해 고통을 상실한 감염자들은 팔다리에 총을 맞아도 멈추지 않고 달려들어 방패 진형을 무너뜨렸다.


"퇴각해! 진형 무너졌다! 2선으로 후퇴해!!"


경찰 특공대장이 피투성이가 된 무전기를 붙잡고 절규했다. 탄창은 이미 바닥났고, 무전기 너머의 본부는 '대기하라'는 무능한 지시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특공대장의 등 뒤에서 거대한 엔진 굉음이 들려왔다.


쿠아아아앙-!


경찰의 바리케이드를 박살 내며, 검은색 대형 버스 세 대와 장갑차처럼 개조된 대형 구급차들이 강남역 한복판으로 밀고 들어왔다. 버스 옆면에는 [천명 글로벌 의료 재단]이라는 선명한 십자가 로고가 박혀 있었다.


"뭐, 뭐야 저건! 어느 병원 구급차야! 여기 들어오면 다 죽어!"


특공대장이 기겁하며 손을 저었지만, 버스는 감염자들을 들이받으며 과감하게 중앙 차선에 멈춰 섰다.


치이이익-


버스 문이 열리고, 레벨 D 방호복과 헬멧, 전술 방패를 든 50명의 '검은 의사들'이 쏟아져 내렸다.


"원형 방어 진형 구축! 부상자들 가운데로 몰아넣어!"


백강우의 고함과 함께, 50명의 1기생들이 순식간에 방패를 맞대고 거대한 원형의 바리케이드를 형성했다. 경찰 특공대가 뚫렸던 진형을, 의대생들이 완벽한 각도로 막아선 것이다.


"저, 저기요! 당신들 뭡니까!"


특공대장이 달려와 소리쳤다.


"천명 외상센터 기동 의료대입니다."


방패 진형의 한가운데서, 방호복 대신 하얀 가운을 입은 내가 걸어 나왔다. 내 손에는 마취총과 고압력 주사기가 들려 있었다.


"부상자 인계받으러 왔습니다. 경찰분들은 총 내리시고, 환자들 들것으로 옮기는 거나 도와주십시오."


"미쳤습니까! 저것들은 환자가 아니야! 좀비라고! 물리면 전염되는데 의사가 무슨 수로 잡겠다는 겁니까!"


특공대장의 절규가 끝나기도 전에, 사방에서 피 냄새를 맡은 수십 명의 감염자들이 우리의 원형 방진을 향해 짐승처럼 쇄도했다.


"전방 주시! 타겟 접근!"


박철민이 방패를 꽉 쥐며 외쳤다.


"무기는 메스! 처방전은 수면제다! 전원, 투여 준비!"


나의 서늘한 명령이 떨어졌다.


쾅! 쾅쾅!


감염자들이 방패에 부딪히며 끔찍한 충격음이 울렸다. 하지만 천명의 방진은 한 치도 밀리지 않았다.


"지금!"


방패가 아주 미세하게 틈을 벌렸고, 그 틈 사이로 1기생들의 손이 뱀처럼 뻗어 나갔다.


그들의 손에 들린 특수 주사기들이, 방패에 들러붙어 발악하는 감염자들의 목덜미와 허벅지에 정확히 꽂혔다. 총알로도 멈추지 않던 괴물들이, 초고농도 신경 차단제가 혈관에 주입되자 단 5초 만에 눈이 뒤집히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푸쉬익! 1시 방향 제압!"


"3시 방향, 2명 제압 완료!"


경찰 특공대장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턱을 떨어뜨렸다.


실탄으로도 못 잡던 괴물들을, 의사들이 주사기 하나로 낙엽 쓸어 담듯 제압하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에는 공포가 없었다. 환자의 약점을 정확히 꿰뚫어 보는 의학적 지식과, 파이탄에서 다져진 실전 경험이 융합된 완벽한 사냥이었다.


"길 열어! 생존자 구출한다!"


감염자들의 1차 웨이브가 쓰러지자, 방진이 열리며 나와 한수진, 그리고 구조 요원들이 튀어나갔다. 우리는 아스팔트 위에 쓰러져 피를 흘리는 부상자들을 미친 듯이 버스와 구급차로 옮기기 시작했다.


"압박 붕대! 지혈대 꽉 조여! 바이러스 퍼지는 속도 늦춰야 해!"


나는 목을 물린 환자의 상처 부위를 손으로 틀어막으며 소리쳤다.


"회장님! 우측 100미터 전방 빌딩에서 생존자 다수 고립 확인! 감염자들이 문을 부수고 있습니다!"


드론으로 상공을 확인하던 요원이 다급하게 보고했다.


"강우 형, 철민이! 10명 데리고 나랑 빌딩으로 뛴다! 수진이는 여기서 환자들 실어서 먼저 병원으로 쏴!"


"위험합니다, 이사장님! 방호복도 안 입으셨잖아요!"


한수진이 내 가운 자락을 붙잡았다.


"내가 안 가면 저 사람들 다 죽어. 닥치고 후송이나 해!"


나는 마취총을 장전하며 불타는 빌딩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백강우와 박철민이 전술 방패를 들고 내 양옆을 호위했다.


그때였다.


[경고: 마스터(천무성)가 강제 동기화(Override)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현재 동기화율: 28%... 31%...]


[주의! 숙주의 심박수가 위험 수치를 초과했습니다.]


"크윽...!"


갑작스러운 극통.


머릿속에서 폭탄이 터지는 듯한 고통에, 나는 아스팔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코와 입에서 시뻘건 피가 왈칵 쏟아졌다.


"회장님!!"


백강우가 기겁하며 나를 부축했다.


"젠장... 하필... 지금...!"


시야가 두 개로 겹쳐 보이고, 귀에서는 삐- 하는 이명이 울렸다.


아버지가 모니터 너머로 내가 강남 한복판에 나타난 것을 보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킬 스위치의 출력을 한계치까지 올려버린 것이다. 내가 쓰러져 감염자들에게 물어뜯기든, 아니면 자아가 붕괴되어 자신의 꼭두각시가 되든, 아버지에게는 손해 볼 것 없는 완벽한 사냥이었다.


"회, 회장님! 피가 안 멈춥니다! 당장 억제제 맞아야..."


박철민이 떨리는 손으로 앰플을 꺼내려 했다.


"안 돼... 지금 맞으면... 간이 버티질 못해... 신경 다 죽어..."


나는 피를 토하며 백강우의 멱살을 잡았다.


"나 신경 쓰지 말고... 빌딩 안의 환자들... 구해와... 명령이야..."


"미치셨습니까! 회장님 두고 어딜 갑니까!"


그 순간.


어둠 속에서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크히히히..."


고개를 들자, 빌딩 쪽으로 달려가던 십여 명의 감염자들이 일제히 발걸음을 멈추고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들의 붉은 눈동자가, 피 냄새를 풀풀 풍기며 쓰러져 있는 나에게 고정되었다. 그들 중에는 일반 감염자들보다 1.5배는 거대한 체구를 가진, '초기 실험체'로 보이는 괴물도 섞여 있었다.


"전방 방어 진형!! 회장님 사수해!!"


백강우와 박철민, 그리고 10명의 1기생들이 내 앞을 가로막고 방패의 벽을 세웠다.


"크아아아아!!"


거대한 괴물을 필두로, 감염자들이 미친 듯이 쇄도해 왔다.


쾅-!!


"커헉!"


거대한 괴물의 충돌에 전술 방패를 들고 있던 1기생 두 명이 그대로 뒤로 날아갔다. 진형이 뚫렸다.


"이 새끼가!"


박철민이 삼단봉을 휘둘렀지만, 괴물은 봉을 맨손으로 잡고 박철민을 짐짝처럼 집어 던졌다.


괴물의 붉은 눈이 내게로 향했다.


입가에 피를 흘리는 나를 먹잇감으로 인식한 놈이 날카로운 손톱을 세우고 도약했다.


[경고: 대뇌피질 통제권 40% 상실.]


[자아 붕괴까지 3분 남았습니다.]


머릿속에서는 아버지가 심어놓은 기생충들이 뇌를 갉아 먹고 있고,


눈앞에서는 아버지가 풀어놓은 악마가 내 목줄을 끊으려 달려들고 있다.


이대로 끝나는 건가.


'아니.'


나는 입술을 짓씹었다. 피비린내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의사다. 수술실 바닥을 기어 다닐지언정, 환자를 포기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짓거리 따위는 내 사전에 없다.


나는 허리춤에서 메스 두 자루를 뽑아 들었다.


비틀거리며 두 발로 아스팔트 위에 섰다. 초점이 흐려지는 눈에 온 힘을 다해 힘을 주었다.


[시스템: 신의 손(Lv.1) 강제 활성화]


[시스템: 약점 포착 강제 활성화]


동기화로 인해 끊어질 듯한 시스템의 멱살을 잡고 억지로 스킬을 발동시켰다.


시야가 느려졌다. 달려드는 괴물의 거대한 몸뚱어리 위로 붉은 점들이 떠올랐다.


"오냐. 내가 먼저 죽는지, 네놈들 혈관이 먼저 끊어지는지 해보자."


나는 피 묻은 가운을 휘날리며, 짐승의 아가리 속으로 몸을 던졌다.


제2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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