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징벌적 십일조

by 연구소장

[01:00 PM]


[세 번째 의식을 위한 특별 규칙이 하달됩니다.]


천장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음은 평소보다 미세하게 톤이 높아져 있었다.


태현은 벽에 비스듬히 기댄 채 서늘한 눈으로 스피커를 응시했다. 이사회의 반격. 그것도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노골적인 개입이었다.


블라인드 베팅으로 판을 박살 낸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특별 규칙이라니. 하우스가 룰을 입맛대로 바꾼다는 것은, 그만큼 태현의 자본 독식이 그들의 통제 시스템에 치명적인 오류를 일으켰다는 뜻이었다.


침묵하던 스피커에서 여명의 감독관의 음성이 이어졌다.


[현재 요람 내 정화 칩의 불균형이 심각하여, 영혼의 평등을 위한 '징벌적 십일조'를 거행합니다.]


"징벌적 십일조?"


생존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자비로운 이사회는 형제들의 칩이 한곳으로 편중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100칩 이상 보유한 미도달자는 매시간 10칩씩, 50칩 이상 보유자는 매시간 5칩씩 시스템의 제단에 강제로 헌납해야 합니다.]


"미친…."


태현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삐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태현의 손목 단말기에서 날카로운 알람이 울렸다.


[182]였던 숫자가 순식간에 **[172]**로 떨어졌다.


저 멀리 떨어져 있던 서유진의 단말기에서도 5칩이 날아갔다.


손님이 카지노에서 돈을 너무 많이 따자, 하우스가 자릿세를 명목으로 주머니를 털어가는 꼴이었다.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한 시간에 10칩씩, 하루면 240칩이 허공으로 증발하는 악랄한 구조. 이대로라면 태현은 내일 아침이 되기도 전에 빈털터리가 된다.


하지만 이사회의 교활한 수작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거두어들인 이 세금은, 현재 칩을 잃고 절망에 빠진 가여운 형제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될 것입니다.]


띠링- 띠링-


바닥에 주저앉아 굶어 죽을 시간만 기다리고 있던 5명의 빈털터리들. 그들의 단말기가 일제히 울렸다. 방금 태현과 유진에게서 빼앗은 15칩이, 5명에게 각각 3칩씩 쪼개져 들어온 것이다.


"어… 어어? 칩이 들어왔어!"


"나, 나도! 3칩이 생겼다!"


최상철을 비롯한 빈털터리들의 눈빛이 순식간에 광기로 뒤바뀌었다. 0이었던 단말기에 숫자가 찍혔다. 당장 자판기에서 물을 사 마실 수 있고, 이틀만 더 버티면 수면 캡슐을 결제할 수 있는 구원의 동아줄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다.


[명심하십시오. 여러분을 살리는 것은 불온한 개인의 얄팍한 능력이 아니라, 오직 이사회의 자비로운 율법뿐입니다.]


방송이 뚝 끊겼다.


요람 안의 공기가 역겨울 정도로 탁해졌다.


이사회의 의도는 너무나 투명했다. 첫째, 태현의 칩을 강제로 말려 죽여 일반적인 참가자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둘째, '기본 소득'이라는 달콤한 환상을 하위 계층에게 뿌림으로써 그들을 완벽한 이사회의 충견으로 세뇌시킨다.


"봤지?! 이사회가 우릴 버리지 않았어!"


최상철이 3칩이 들어온 자신의 단말기를 번쩍 들어 올리며 광신도처럼 소리쳤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이사회의 잔혹함에 덜덜 떨던 놈이었다.


"강태현 저 새끼가 독식한 칩, 어차피 한 시간마다 다 우리한테 떨어지게 되어있어! 우린 굳이 게임을 할 필요도 없다고!"


나머지 생존자들도 최상철의 말에 동조하며, 태현을 조롱 섞인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들은 더 이상 태현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그저 침을 흘리며 한 시간 뒤에 또 떨어질 세금만을 기다리는 파블로프의 개가 되어버렸다.


완벽한 '갈라치기(Divide and Rule)'.


하우스는 무력 하나 쓰지 않고, 태현을 고립시키고 룰의 통제력을 되찾았다.


태현은 등받이도 없는 벽에 머리를 기대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머리 좀 썼네. 딜러 새끼들.'


압도적인 자본으로 찍어 누르는 전략은 봉쇄되었다. 이대로 시간이 끌리면 말라 죽는 것은 태현 자신이었다.


그때, 태현의 곁으로 인기척이 다가왔다.


서유진이었다. 그녀의 단말기도 세금을 뜯겨 [63]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말라 죽을 셈입니까?"


유진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건조하게 물었다.


"하우스가 깡패 짓을 시작했는데 뾰족한 수라도 있나. 내 단말기 해킹해서 칩 무한 복사라도 해줄 거 아니잖아."


태현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건 불가능하지만, 판을 엎어버릴 정보는 있습니다."


유진이 주위를 한 번 살피더니, 태현의 곁으로 바짝 다가와 입술을 달싹였다.


"어젯밤 제가 마스터 패드로 중앙 시스템을 뜯어보면서 알아낸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갇혀 있는 이 '요람'의 시스템 상 정식 코드명."


"코드명?"


"네. **[Sector-0 (Tutorial)]**이었습니다."


태현의 나른했던 눈빛이 순간 예리하게 번뜩였다.


"튜토리얼?"


"맞습니다. 이곳은 진짜 도박장이 아니에요. 수백 명의 납치자들 중에서 시스템에 가장 잘 순응하거나, 반대로 가장 악랄하게 남을 짓밟을 수 있는 소수의 '쓸만한 장기말'을 걸러내기 위한 임시 격리실일 뿐입니다."


유진의 말이 이어졌다.


"진짜 판옵티콘의 메인 서버, 즉 본 구역은 저 전면의 굳게 닫힌 강철 격벽 너머에 있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우리보다 먼저 들어와 거대한 계급을 형성하고 살아가는 수백 명의 인간들이 있어요. 이사회의 진정한 통제는 바로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죠. 우린 단지 입소 대기자, 실험쥐들에 불과했던 겁니다."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하나의 선명한 그림으로 꿰맞춰졌다.


이사회가 고작 이 적은 인원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공들여 칩이라는 경제 시스템을 주입하고, 전기의자라는 극한의 공포를 조장했던 이유. 그것은 이 튜토리얼에서 살아남은 '최적화된 부품'들을 본 구역의 거대한 생태계에 편입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지."


태현의 입꼬리가 기분 나쁘게 비틀려 올라갔다.


"저 새끼들이 이런 식으로 비겁하게 판돈을 억지로 뺏어가려 한다면, 아예 우리가 저 거대한 메인 카지노로 쳐들어가서 본판을 엎어버리는 수밖에."


"하지만 어떻게 뚫을 생각입니까?"


유진이 냉정하게 현실을 짚었다. "격벽은 안에서 열리지 않습니다. 제가 가진 마스터 패드로는 자판기 오류나 낼 수 있지, 물리적인 출입 권한이나 잠금장치를 해제할 수는 없어요. 문을 부술 폭탄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폭탄?"


태현이 주머니 속 낡은 카지노 칩을 엄지손가락으로 튕겨 올렸다.


칩이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다 태현의 손바닥 안에 착, 감겼다.


"폭탄은 이미 여기 있잖아."


태현의 시선이, 매시간 떨어질 세금만 바라보며 희희낙락하고 있는 5명의 생존자들을 향했다.


"하우스 새끼들이 우릴 갈라치기 했듯, 나도 저 새끼들의 얄팍한 착각을 이용해서 폭탄으로 만들어 주지."


"생존자들을 이용하시겠다고요? 저들은 이미 칩을 받고 이사회에 완전히 매수된 상태입니다."


"원래 카지노에서 잃은 돈보다 무서운 게, 땄다가 뺏긴 돈이야. 손에 쥐어줬던 걸 빼앗기면 인간은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게 되어 있어."


태현의 눈에 서늘한 광기가 서렸다.


"내일 아침까지. 저 버러지들이 지 발로 저 강철 격벽에 달려들어 뜯어먹게 만들어 볼 테니까. 넌 내가 판을 흔들 때, 마스터 패드로 저격벽을 통제하는 중앙 서버의 배전반이나 교란할 준비를 해둬."


"…알겠습니다."


유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났다.


[오후 2:00 PM]


삐빅-


다시 한번 알람이 울리며 태현과 유진의 칩이 차감되었다.


그리고 5명의 빈털터리들에게 또다시 3칩씩이 입금되었다.


"하하하! 또 들어왔다!"


"가만히 있어도 하루면 70칩이 넘어! 우린 살았어!"


최상철 무리는 이제 노골적으로 태현을 비웃으며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사회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완벽한 '집단착각'에 빠져 있었다.


태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자판기 쪽으로 걸어가, 남은 칩으로 생수 5병을 뽑았다.


그리고 아직 흥분에 차 있는 5명의 생존자들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뭐, 뭐야. 왜 와?"


최상철이 흠칫 놀라며 물러섰다. 태현의 악랄함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던 터라 무의식적인 공포가 남아있었다.


태현은 아무 말 없이 생수 5병을 그들의 발밑에 툭, 툭 던져주었다.


"목마르지? 마셔둬."


"…이게 무슨 수작이야?"


"수작은. 어차피 내 칩 뜯겨서 니들 주머니로 들어가는 마당에, 물 한 병 먼저 사주는 게 대수인가."


태현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삐딱하게 서서, 군중을 훑어보았다.


"그런데, 최상철. 넌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냐?"


"뭐?"


"이사회가 내 칩을 뺏어서 너희한테 주는 이유. 진짜 너희가 불쌍해서 살려주려고 그러는 것 같아?"


태현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잘 생각해 봐. 이 요람은 승자독식의 데스게임장이야. 그런데 갑자기 공산주의 배급제로 룰이 바뀌었어. 왜일까?"


생존자들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그들 역시 마음 한구석에는 주최 측의 갑작스러운 호의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 칩은 한 시간에 10개씩 줄어들어. 지금 162개 남았지. 하루면 내 칩은 0이 돼. 그럼 이 징벌적 세금 제도는 내일이면 끝난다는 소리야. 내 칩이 다 털렸으니까."


태현의 차가운 목소리가 요람 안을 울렸다.


"그럼 내일 내 칩이 바닥난 다음엔? 이사회가 계속 허공에서 칩을 복사해서 너희한테 나눠줄까? 아니지. 내일 아침, 나와 너희의 칩 개수가 엇비슷해지는 순간."


태현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사형 선고를 내리듯 속삭였다.


"이사회는 다시 어제오늘 했던 것과 똑같은 데스게임을 열 거다. 이번엔 압도적인 자본가 없이, 고만고만한 칩을 가진 너희들끼리 살을 뜯어먹으며 전기의자에 앉는 진짜 개싸움이 시작되는 거지. 이사회가 너희한테 칩을 주는 건, 내일 게임에서 너희가 판돈으로 쓸 '재물'을 채워주는 것뿐이야."


순간, 요람 안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듯했다.


축제 분위기였던 생존자들의 얼굴이 다시 공포로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태현의 팩트 폭력은 그들이 외면하고 싶었던 가장 끔찍한 진실을 억지로 끄집어내고 있었다.


"돼지 새끼들 도살장에 끌고 가기 전에 살 찌우는 중인데, 그것도 모르고 좋다고 꿀꿀대기는."


태현의 조롱에 최상철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태현은 그들이 집단착각의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의 공포를 마주하게 만들었다.


폭탄의 뇌관에 불을 붙일 준비가 끝난 것이다.


"그… 그럼 어쩌라는 거야…!"


어느새 한 청년이 울먹이며 태현에게 되물었다. 태현을 적으로 돌렸던 기세는 온데간데없었다.


태현은 닫힌 강철 격벽을 곁눈질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내 칩이 완전히 털리기 전에. 저 문을 찢고 딜러 새끼들 모가지를 따야지. 안 그래?"


튜토리얼을 붕괴시킬 탈출 계획.


그 미친 폭동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07화제7화. 판옵티콘의 사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