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폭동의 설계자

by 연구소장

[오후 2:30 PM]


"딜러 새끼들 모가지를 따자고…?"


최상철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불과 몇 분 전까지 이사회가 내려준 3칩에 감격하며 충성을 맹세하던 눈동자는, 이제 태현이 심어놓은 끔찍한 진실 앞에서 갈 곳을 잃고 요동치고 있었다.


"그, 그게 말이 돼? 저 문 너머엔 총을 든 사병들이 득실거릴 텐데! 맨몸으로 어떻게 뚫어!"


청년이 뒷걸음질을 치며 소리쳤다. 생존자들은 태현의 팩트 폭력에 현실을 깨달았지만, 여전히 거대한 시스템에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맨몸이라니. 무기야 널려 있잖아."


태현은 시선을 돌려, 어젯밤 주인을 잃고 비어 있는 40여 개의 캡슐 수면실을 가리켰다.


"저 캡슐들, 덮개는 튼튼한 강철이지만 지지대 쪽은 속이 빈 알루미늄 파이프야. 덮개를 뜯어내고 관절 부위를 발로 차서 부러뜨리면, 사람 머리통 정도는 우습게 깰 수 있는 훌륭한 쇠파이프가 나오지."


태현의 구체적이고 살벌한 설명에 사람들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선택해. 이대로 오늘 밤까지 주는 칩이나 받아먹으면서 살 다 찌운 다음, 내일 아침 전기의자에 앉아 바비큐가 될 건지. 아니면 내일 아침이 오기 전에, 저 문을 열고 들어올 사병들의 대가리를 깨버리고 판돈을 훔쳐서 달아날 건지."


태현은 주머니에서 손을 빼며 그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어차피 죽을 목숨. 얌전히 목 내밀고 죽을래, 아니면 딜러 새끼들 피라도 한번 보고 죽을래."


인간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완벽한 절망 앞에서는 오히려 이성을 놓아버린다. 태현은 지금 그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마지막 헛된 희망(이사회의 자비)을 짓밟고, 그 자리에 순수한 '독기'를 채워 넣고 있었다.


"하, 하지만… 저 문은 안에서 안 열린다고 했잖아! 우리가 쇠파이프 들고 서 있어 봤자, 저 새끼들이 문 안 열어주고 독가스라도 살포하면 끝 아니야?"


중년 여성이 날카롭게 상황을 짚었다.


"맞아. 그래서 우리가 저 문을 부수는 게 아니라, 저 새끼들이 제 발로 문을 열고 들어오게 만들어야지."


태현은 씨익 웃으며 자신의 손목 단말기를 들어 올렸다.


[잔여 칩: 162]


"니들한테 공짜 칩을 뿌려대는 저 역겨운 '징벌적 세금' 시스템부터 박살 내주지."


태현이 패널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던 최상철의 단말기에 자신의 단말기를 거칠게 가져다 댔다.


띠링-!


[강태현 미도달자로부터 50칩이 양도되었습니다.]


"…어?!"


상철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태현은 멈추지 않고 청년에게 30칩, 중년 여성에게 20칩, 나머지 두 명에게 10칩씩을 순식간에 양도해 버렸다. 순식간에 태현의 단말기 숫자가 곤두박질쳤다.


[잔여 정화 칩: 42]


"가, 강태현 너 지금 무슨… 미쳤어?!"


상철이 자신의 단말기에 찍힌 엄청난 숫자를 보며 기겁했다.


태현의 기행에 생존자들은 물론, 저 멀리서 지켜보던 서유진조차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 미친 벙커의 룰. 100칩 이상 보유자는 10칩, 50칩 이상 보유자는 5칩을 매시간 뜯긴다."


태현이 자신의 42칩이 찍힌 단말기를 툭툭 쳤다.


"그런데 내 칩이 50개 밑으로 떨어지면? 나한테서 뜯어갈 세금이 없지. 그리고 너희들한테 칩을 분산시켜서, 이 요람 안에 50칩 이상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게 만들어버리면?"


순간, 요람 전체에 찌르듯 날카로운 경고음이 세 번 울렸다. 그리고 천장의 스피커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경고… 시스템 내 과세 대상자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징벌적 십일조의 징수를 임시 중단합니다.]


"빙고."


태현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사회는 태현의 자본을 말려 죽이고 하위 계층을 길들이기 위해 세금 제도를 도입했지만, 태현이 스스로 자본을 포기하고 분산시켜 버리자 시스템의 명분 자체가 붕괴해 버린 것이다.


"봤지? 딜러 새끼들도 별거 없어. 지들이 만든 룰에 지들이 갇혀서 쩔쩔매는 꼴이라니."


태현이 천장의 카메라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자, 이제 하우스 새끼들은 비상이 걸렸을 거다. 룰을 바꿔서 내 칩을 뺏으려 했는데 내가 스스로 칩을 버려버렸으니까. 오늘 밤, 저 새끼들은 이 좆같은 오류를 수정하고 판을 다시 짜기 위해 반드시 이 요람에 직접 개입할 수밖에 없어."


태현의 도박은 완벽하게 먹혀들었다. 그는 자신의 목숨줄인 칩을 버림으로써, 배수의 진을 치고 시스템의 허를 찔렀다. 이 극단적인 퍼포먼스는 생존자들에게 태현이 진심으로 판을 엎으려 한다는 강력한 신뢰를 심어주었다.


"상철아. 파이프 뜯어라."


태현이 턱짓으로 캡슐을 가리켰다.


최상철은 마른침을 삼키더니, 독기가 바짝 오른 눈으로 캡슐 쪽으로 달려가 강철 덮개를 걷어차기 시작했다.


"씨발! 까짓것 해보자! 어차피 내일 죽을 거, 저 좆같은 새끼들 대가리라도 까고 죽는다!"


상철이 미친 듯이 파이프를 뜯어내자, 나머지 네 명도 홀린 듯이 달려들어 무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극도의 공포가 극도의 분노로 치환되는 순간이었다. 이사회의 충견이었던 그들은, 이제 이사회의 목을 물어뜯을 '강태현의 사냥개'로 완벽하게 돌변했다.


[오후 11:30 PM]


밤이 깊었다.


요람의 조명이 최소한으로 줄어들고, 붉은 취침등만이 음산하게 벙커를 비추고 있었다.


7명의 생존자들은 아무도 캡슐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들은 중앙 광장, 전면의 거대한 강철 격벽 바로 앞에 일렬로 진을 치고 앉아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끝이 날카롭게 부러진 알루미늄 파이프와 묵직한 강철 파편들이 들려 있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폭풍 전야의 끔찍한 고요함이었다.


태현은 무리의 가장 뒤편,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서유진과 나란히 서 있었다.


"준비는?"


태현이 낮게 속삭였다.


"마스터 패드로 중앙 배전반의 과부하 코드를 짜뒀습니다. 실행 버튼만 누르면, 요람 내의 모든 조명과 감시 카메라가 동시에 다운될 겁니다. 시스템은 이를 '화재 및 폭발 위험' 같은 1급 재난 상황으로 인식할 테고요."


유진이 자신의 마스터 패드를 꽉 쥐며 대답했다.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프로토콜에 따라 사병들이 즉각 투입되어 문을 열 수밖에 없겠지. 타이밍이 생명이다."


태현이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격벽의 틈새를 노려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정적을 깨고, 격벽 너머에서 미세한 기계 모터 소리와 함께 군화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사회가 움직인 것이다. 룰이 붕괴된 이 요람을 통제하기 위해, 혹은 눈엣가시인 강태현을 야밤에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기 위해 병력을 파견한 것이 틀림없었다.


"왔다."


태현의 눈빛이 짐승처럼 번뜩였다.


"서유진, 지금!"


태현의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유진이 마스터 패드의 실행 버튼을 강하게 내리쳤다.


퍼엉-! 파지직!


순간, 요람 천장에 달린 메인 조명과 감시 카메라들에서 일제히 스파크가 튀며 폭발음이 울렸다. 요람 전체가 완벽한 암흑 속으로 빠져들었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고막을 찢는 비상 사이렌이 벙커 전체에 울려 퍼졌고, 바닥을 비추는 비상구의 붉은 램프만이 미친 듯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정전과 시스템 다운.


격벽 너머에서 당황한 사병들의 무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Sector-0, 시스템 다운! 폭발 징후 발생! 즉각 개방하고 내부 확인해!]


쿠우웅- 덜컹!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던 거대한 강철 격벽이, 비상 프로토콜에 의해 무거운 쇳소리를 내며 좌우로 열리기 시작했다.


"열린다!"


최상철이 쇠파이프를 꽉 쥐며 소리쳤다.


격벽이 절반쯤 열리고, 방독면을 쓰고 전술 손전등을 단 소총을 든 검은 사병 세 명이 붉은 불빛 사이로 튀어나왔다. 그들은 갑작스러운 정전에 당황하여 시야를 확보하려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췄다.


"죽여버려!!"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다섯 명의 맹수들이 일제히 튀어나갔다.


사병들은 요람 안의 나약한 생존자들이 무기를 들고 입구에 매복해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커헉!"


가장 앞장서던 사병의 헬멧 위로 상철이 휘두른 묵직한 쇠파이프가 박살 날 듯 꽂혔다. 사병이 비틀거리며 쓰러지자, 굶주림과 공포에 미쳐버린 청년과 중년 여성이 짐승처럼 달려들어 뾰족하게 부러진 파이프 끝으로 사병의 방검복 틈새를 마구잡이로 쑤셔댔다.


"이, 미친 새끼들이! 발포해! 발포!"


뒤따라오던 두 명의 사병이 기겁하며 소총을 치켜들었다.


타탕! 탕!


요란한 총성이 요람 안을 울렸다. 앞에서 쇠파이프를 휘두르던 청년의 어깨에 총알이 박히며 핏물이 튀었다. 하지만 이미 광기에 지배당한 생존자들은 총소리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피 냄새를 맡은 짐승처럼 더 거세게 사병들에게 들러붙었다.


난전이었다.


총구의 방향이 엉키고, 비명과 타격음이 좁은 입구에 가득 찼다.


그리고 그 끔찍한 아수라장 속.


가장 짙은 어둠을 틈타, 그림자 하나가 바닥을 스치듯 미끄러져 들어갔다. 강태현이었다.


그는 숏 스택들이 사병들과 목숨을 걸고 개싸움을 벌이는 동안, 그들을 완벽한 고기 방패로 삼아 열린 격벽 틈새를 향해 전력으로 쇄도했다.


'미안하지만, 니들 역할은 여기까지다.'


태현은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앞서 싸우고 있던 최상철의 등을 확 밀쳐내며 사병들의 시선을 교란했다. 상철이 엎어지는 사이, 태현은 틈을 보인 세 번째 사병의 사각지대로 파고들었다.


"이런 씹…!"


사병이 총구를 돌리려 했지만 태현이 훨씬 빨랐다. 태현은 들고 있던 날카로운 자판기 강철 덮개 조각으로 사병의 소총 멜빵끈을 끊어버리고, 그대로 그의 턱관절에 묵직한 어퍼컷을 꽂아 넣었다.


퍼억!


뇌가 흔들린 사병이 눈이 풀린 채 고꾸라졌다. 태현은 바닥에 떨어진 사병의 곤봉을 낚아채듯 주워 들었다.


"서유진! 뛰어!"


태현의 외침에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유진이 전력 질주하여 태현의 뒤에 바짝 붙었다.


태현은 곤봉으로 남은 사병의 정강이를 무자비하게 후려쳐 길을 연 뒤, 유진과 함께 열린 강철 격벽 너머로 몸을 던졌다.


격벽 너머의 공간.


그곳은 거대한 원통형의 수직 통로, 바로 메인 구역으로 이어지는 대형 승강기 내부였다.


태현이 바닥에 구르며 낙법을 치고 일어난 순간.


승강기 한가운데, 비상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내려와 있던 순백의 정장 차림이 당황한 눈으로 태현을 마주 보았다.


은빛 마스크. 여명의 감독관이었다.


"너… 네놈이 어떻게 여기까지…!"


평소의 그 고상하고 성스러운 말투는 온데간데없었다. 마스크 너머의 눈동자에는 명백한 경악과 공포가 서려 있었다. 감독관이 허리춤의 무전기를 집어 들려 했지만, 태현의 움직임이 한 박자 빨랐다.


콰직!


태현은 망설임 없이 손에 든 곤봉을 휘둘러 감독관의 무전기를 쥔 손목을 박살 내버렸다.


"아아아악!"


뼈가 부러지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감독관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태현은 짐승처럼 달려들어 감독관의 목통을 무릎으로 짓누르고, 그의 뒷덜미를 틀어쥐어 승강기 벽면에 처박았다.


"판이 너무 재미없게 흘러가서 말이야. 딜러 양반."


태현이 감독관의 목을 조르며 서늘하게 속삭였다.


승강기 밖 요람에서는 여전히 사병들과 생존자들이 엉켜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이고 있는 비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태현이 설계한 완벽한 미끼였다.


"칩 좀 뜯어간다고 내가 얌전히 말라 죽을 줄 알았나? 네놈들이 짜놓은 이 개 같은 튜토리얼은 이걸로 끝이다."


태현은 발버둥 치는 감독관의 손목을 비틀어, 그의 손목에 채워져 있던 '골드 밴드(마스터 권한 단말기)'를 강제로 빼앗아 자신의 손목에 찼다.


"서유진. 문 닫아!"


태현의 명령에 유진이 마스터 패드를 조작해 승강기 시스템에 개입했다.


쿠우웅- 철컥!


피투성이가 된 요람을 뒤로하고, 격벽과 승강기 내부의 문이 이중으로 굳게 닫혔다.


태현은 발밑에 기절한 감독관을 내려다보며, 빼앗은 골드 밴드를 패널 스캐너에 가져다 댔다.


띡-


[권한 확인 완료. 목적지를 설정하십시오.]


태현은 망설임 없이 패널의 가장 높은 곳, [Sector-1 (Main)] 버튼을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


쿠우웅-!


승강기가 굉음을 내며 심해를 뚫고 수직으로 거칠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중력 가속도가 태현과 유진의 몸을 짓눌렀다.


"위로 올라가면… 비상사태를 감지한 흑기동대 본대가 진을 치고 있을 겁니다."


유진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경고했다.


태현은 주머니 속의 피 묻은 카지노 칩을 만지작거렸다. 입가에는 피비린내 나는 광기 어린 미소가 걸려 있었다.


"상관없어. 저 새끼들이 숨기고 싶어 하던 진짜 카지노 판에, 가장 화려하게 입장해 줄 테니까."


판옵티콘 메인 서버.


룰을 통제하려는 절대 권력의 거물들과, 판을 부수고 올라온 천재 타짜의 진짜 전쟁이 이제 막 승강기의 문 앞에서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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