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메인 구역(Sector-1)의 환영 인사

by 연구소장

쿠우웅-!


수직으로 치솟던 거대한 승강기가 귀를 찢는 마찰음을 내며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엄청난 중력 가속도에 짓눌렸던 내장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불쾌한 감각과 함께, 마침내 승강기가 덜컹거리며 완전히 멈춰 섰다.


"위층입니다."


서유진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속삭였다. 그녀의 안경 너머로 긴장감이 역력했다.


강태현은 발밑에 처박혀 기절해 있는 여명의 감독관을 거칠게 걷어차 깨웠다. 박살 난 손목을 부여잡고 신음하는 감독관의 뒷덜미를 틀어쥔 태현은, 한 손에 날카롭게 부러진 쇠파이프를 든 채 승강기 문을 똑바로 응시했다.


[목적지 도달. Sector-1 (Main) 게이트를 개방합니다.]


치이익- 철컥!


육중한 강철 문이 좌우로 갈라지며 눈이 시리도록 강렬한 백색 조명이 승강기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그 빛의 장막 너머로, 요람과는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스케일의 지하 세계가 그 거대한 위용을 드러냈다.


수십 미터 높이의 아치형 천장. 수백, 아니 수천 명이 들어차도 남을 거대한 중앙 광장. 그 광장을 둘러싸고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슬롯머신과 화려한 도박장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공기 중에는 독한 시가 냄새와 값비싼 향수, 그리고 인간의 탐욕이 뒤섞인 비릿한 열기가 훅 끼쳐왔다.


하지만 그 화려한 풍경을 감상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움직이지 마라! 무기를 버리고 그 자리에 엎드려!"


승강기 게이트 바로 앞.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전술 장비로 무장한 '흑기동대' 사병 스무 명이 반원형으로 진을 친 채 소총을 겨누고 있었다. 스무 개의 붉은 레이저 포인터가 일제히 태현의 이마와 심장을 향해 꽂혔다.


방아쇠만 당기면 1초 만에 벌집이 될 상황.


그러나 태현은 엎드리기는커녕, 피투성이가 된 감독관을 자신의 앞으로 바짝 끌어당겨 완벽한 고기 방패로 삼았다.


"가, 감독관님?!"


자신들의 직속상관이 인질로 잡혀 있는 꼴을 본 사병들이 당황하며 주춤했다.


태현은 그 미세한 틈을 놓치지 않고, 쇠파이프의 날카로운 끝을 감독관의 경동맥에 꾹 찔러 넣었다.


"총구 안 내려? 이 새끼 목에서 피 분수 솟구치는 꼴 보고 싶으면 계속 겨누고 있던가."


태현의 서늘한 협박에 사병 대장이 이를 빠득 갈았다.


"이 미친 새끼가…! 감히 이사회의 통제 구역에 무단으로 침입하고도 살아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으냐! 당장 감독관님을 놔라!"


"침입?"


태현이 코웃음을 쳤다.


"난 침입한 적 없어. 니들이 좆같이 만들어놓은 튜토리얼 룰을 완벽하게 클리어하고, 정당하게 승강기 문을 열고 올라온 '정식 플레이어'지. 안 그래?"


태현은 사병들 너머를 힐끗 바라보았다.


비상사태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에, 광장 주변에서 도박을 즐기거나 배회하던 수백 명의 군중들이 승강기 쪽으로 몰려들어 웅성거리고 있었다. 요람에서 쥐새끼처럼 떨던 자들과는 달리, 옷차림이 멀끔한 자들도 있었고 짐승처럼 누더기를 걸친 자들도 섞여 있었다. 철저하게 계급화된 메인 구역의 거주민들이었다.


태현은 목소리에 힘을 실어 광장 전체가 울리도록 소리쳤다.


"이사회의 룰이 아주 공정하고 완벽하다고 들었는데! 밑바닥에서 목숨 걸고 올라온 우승자한테 칩은 안 주고 총알부터 먹이는 게 니들의 자비로운 율법이냐?!"


군중들 사이에서 거친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방금 뭐라고 했어? 밑에서 올라왔다고?'


'미도달자가 제 발로 요람을 뚫고 올라왔단 말이야?'


'저격하면 룰 위반이잖아! 하우스가 총을 쓰면 이 판이 무슨 소용이야!'


태현의 계산은 완벽했다.


이 거대한 판옵티콘이 유지되는 유일한 기반은 '이사회의 룰은 누구에게나 공정하다'는 집단착각이다. 수백 명의 눈동자가 지켜보는 메인 광장 한복판에서, 단순히 승강기를 타고 올라왔다는 이유로 무력을 사용해 참가자를 처형한다면?


그 순간 이사회는 스스로 룰을 파괴하는 꼴이 되며, 억눌려 있던 하층민들의 폭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게 된다. 폭력은 절대 밖으로 드러나서는 안 되는 이사회의 아킬레스건이었다.


사병 대장이 방아쇠를 당기지도, 총을 내리지도 못한 채 진땀을 빼고 있을 때였다.


짝, 짝, 짝.


군중들의 웅성거림을 가르고, 경쾌하면서도 여유로운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훌륭하군. 아주 훌륭해."


무장한 사병들이 바다가 갈라지듯 양옆으로 비켜서며 길을 내어주었다.


그 길 끝에서, 최고급 실크 슈트를 차려입고 금장식 지팡이를 짚은 백발의 노신사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가슴팍에는 [귀족] 계급을 상징하는 화려한 황금색 배지가 조명의 빛을 받아 오만하게 번쩍거렸다.


노신사는 쪼그라든 사과 같은 얼굴에 흥미로운 미소를 띠며 태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요람에서 이런 미친 사냥개가 기어 올라올 줄은 몰랐는걸. 총 거둬라, 사병들. 이사회의 룰에 따라, 정당하게 문을 열고 올라온 손님에게 총질을 해서야 쓰나."


노신사의 말 한마디에 사병들이 거짓말처럼 일사불란하게 총구를 내렸다. 무력 집단조차 꼼짝 못 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권위. 메인 구역의 실질적인 권력자 중 한 명인 귀족 계급의 등장이었다.


노신사가 지팡이로 대리석 바닥을 툭툭 치며 태현과 시선을 맞췄다.


"환영하네, 도전자. 내 이름은 '마에스트로(Maestro)'. 보다시피 이 구역에서 제법 판돈을 크게 굴리는 늙은이지. 자네의 그 화려한 등장 퍼포먼스는 내 맘에 아주 쏙 들었어."


마에스트로의 눈웃음 뒤에는 구렁이 같은 탐욕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이 노회한 도박사는 태현의 반항을 체제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자신의 지루함을 달래주고 돈을 벌어다 줄 새로운 '장기말'의 등장으로 여기고 있었다.


태현은 인질로 잡고 있던 감독관을 발로 걷어차 사병들 쪽으로 짐짝처럼 밀어 던져버렸다. 그리고 옷깃을 툭툭 털며 여유롭게 승강기 밖으로 걸어 나왔다. 서유진도 그 뒤를 조심스럽게 따랐다.


"마에스트로라. 이름 한번 거창하네. 딜러 보조 새끼 하나 잡고 올라온 것치곤 환영 인사가 너무 거창해서 놀랐잖아."


태현이 마에스트로를 향해 씩 웃었다.


"인사는 이쯤 하고. 본게임이나 시작할까? 밑에서 튜토리얼 깨고 왔으니, 칩부터 정산해 줘야지."


태현이 자신의 손목 단말기를 번쩍 들어 올렸다.


마에스트로는 흥미롭다는 듯 태현의 단말기 액정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내 그의 입꼬리가 씰룩거리더니, 노골적인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크하하하! 세상에. 난 또 요람의 칩을 몽땅 쓸어 담은 거물이라도 올라온 줄 알았지 뭔가."


마에스트로가 지팡이로 태현의 단말기를 가리켰다.


[잔여 정화 칩: 42]


징벌적 십일조를 피하기 위해 생존자들에게 칩을 몽땅 뿌려버리고 남은, 태현의 빈약한 전 재산이었다. 뒤에 서 있는 유진의 단말기 역시 63칩에 불과했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던 군중들 사이에서도 폭소가 터져 나왔다.


'뭐야, 고작 42칩? 하층민 새끼들 하루 일당도 안 되는 돈이잖아!'


'저딴 푼돈 들고 위에서 놀아보겠다고 올라온 거야? 미친놈 아니야?'


조롱과 비웃음이 비수처럼 쏟아졌다.


마에스트로는 눈물까지 닦아내며 태현을 불쌍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이보게, 튜토리얼 우승자. 패기는 가상하나, 여긴 자네가 놀던 그 쥐구멍과는 물이 다르다네. 이 메인 구역(Sector-1)에서 시민 구역의 술집에 입장하려면 최소 100칩, 나 같은 귀족들과 테이블에 앉으려면 기본 판돈만 1,000칩이 넘게 필요하지."


마에스트로가 손가락을 튕기자, 사병들이 거친 손길로 태현과 유진의 팔을 결박하듯 잡아끌었다.


"자네의 그 알량한 42칩으로는, 저기 저 시궁창 냄새나는 '하층민 구역'의 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마에스트로의 선고가 떨어졌다.


메인 구역의 거대한 계급 피라미드. 0에서 100칩 사이의 빈민들이 모여 있는, 가장 천대받고 착취당하는 밑바닥. 하층민 구역(The Pit)으로의 추방이었다.


"거기서 쥐새끼들끼리 1칩, 2칩짜리 사설 도박이나 하면서 뼈 빠지게 굴러보게나. 운이 좋아서 100칩을 모아 시민 구역으로 기어 올라온다면, 그때 다시 내 얼굴을 보게 될 테니. 끌고 가라."


사병들이 태현과 유진을 광장 가장자리의 어둡고 더러운 철창문 쪽으로 거칠게 끌고 갔다. 군중들은 몰락한 영웅을 조롱하며 야유를 퍼부었다.


하지만 사병들에게 팔을 잡혀 끌려가는 와중에도, 태현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의 입가에는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진짜 포식자의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1,000칩? 판돈 한번 시원해서 좋네.'


태현은 사설 하우스에서 수없이 겪었던 진리를 알고 있었다.


타짜가 판을 쓸어 담기 가장 좋은 위치는 화려한 VIP룸이 아니다. 아무런 감시도, 규제도 없는 밑바닥. 룰이 없는 진흙탕에서 잔챙이들의 푼돈을 모조리 흡수해 거대 자본을 형성하는 것. 그것이 카지노 생태계를 바닥부터 붕괴시키는 가장 빠르고 치명적인 방법이었다.


"서유진."


태현이 옆에서 끌려가는 유진을 향해 낮게 속삭였다.


"긴장 풀어. 진짜 게임은 이제부터니까."


철창문이 닫히며 쾌적했던 메인 광장의 공기가 단절되고, 지독한 곰팡이와 땀 냄새가 진동하는 하층민 구역의 어둠이 두 사람을 집어삼켰다.


사병들이 그들을 내동댕이치고 돌아가자,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굶주린 눈동자들이 번뜩이며 이 새로운 '먹잇감'들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층민 구역의 쓰레기들이었다.


태현은 바닥의 먼지를 털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어둠 속에서 짐승처럼 다가오는 자들을 향해, 자신의 42칩이 찍힌 단말기를 흔들어 보였다.


"자, 여기 싱싱한 칩이 42개나 있는데."


태현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두려움도 없었다. 오직 피 냄새를 맡은 상어처럼, 잔혹한 도박사의 본능만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 시궁창에서 제일 판돈 큰 테이블이 어디지? 안내부터 해봐. 이 밑바닥의 룰부터 싹 다 고쳐 써줄 테니까."


판옵티콘의 심장부, 그 가장 밑바닥 지옥에서.


'밑바닥의 왕'으로 군림할 강태현의 무자비한 도박판이 마침내 장막을 걷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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