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철컥.
육중한 철창문이 등 뒤에서 닫히며 둔탁한 파열음을 냈다.
은은한 향수 냄새와 화려한 백색 조명이 가득했던 시민 구역의 풍경은 철창 너머로 잔인하게 차단되었다. 대신 태현과 유진의 폐부를 찌른 것은, 코를 찌르는 역겨운 암모니아 냄새와 퀴퀴한 곰팡이, 그리고 씻지 못한 인간들의 체취였다.
판옵티콘의 가장 밑바닥, 0에서 100칩 사이의 빈민들이 모여 있는 '하층민 구역(The Pit)'.
어두컴컴한 구역 내부는 녹슨 파이프들이 거미줄처럼 엉켜 있었고,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오수 탓에 바닥은 질척거렸다. 곳곳에 쳐진 낡은 천막과 판잣집 사이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사람들이 짐승처럼 웅크린 채 새로 들어온 먹잇감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게 위에서 떨어졌다는 그놈들인가?"
"칩이 40개밖에 없대. 병신들. 튜토리얼에서 뭘 어떻게 했길래 그따위로 빈털터리가 돼서 올라와?"
어둠 속에서 낄낄거리는 비웃음과 이빨을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유진은 코를 막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손은 주머니 속 마스터 패드를 꽉 쥐고 있었다.
"강태현 씨. 주변에 열 명, 아니 스무 명은 넘게 매복해 있습니다. 다들 눈에 살기가 등등해요. 칩을 뺏으려고 덤벼들 텐데…."
"놔둬. 똥파리들이 좀 꼬여야 고기가 썩어가는 진짜 도박장을 찾지."
태현은 긴장한 기색 하나 없이 목을 좌우로 꺾으며 뻐근한 근육을 풀었다. 이 불쾌하고 습한 공기, 날 것 그대로의 탐욕이 번들거리는 눈동자들. 태현에게는 오히려 위층의 고상한 귀족 구역보다 이곳이 훨씬 더 익숙했다.
과거, 뒷골목의 불법 사설 하우스들을 전전하며 바닥부터 기어 올라왔던 시절. 태현이 가장 먼저 제압하고 군림했던 곳이 바로 이런 시궁창들이었으니까.
"어이, 신입."
어둠 속에서 덩치가 산만하고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사내가 쇠파이프를 질질 끌며 걸어 나왔다. 그의 뒤로 비슷한 꼴을 한 불량배 서너 명이 거들먹거리며 따라붙었다. 하층민 구역의 양아치들이었다.
"위에서 마에스트로 영감탱이한테 찍혀서 내려왔다지? 니들 단말기에 42칩, 63칩 들어있는 거 다 안다. 험한 꼴 당하기 전에 자릿세 명목으로 절반씩 내놔. 그럼 이 구석탱이에 판자 쪼가리라도 하나 깔게 해줄 테니까."
사내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위협적으로 쇠파이프를 바닥에 쾅 내리쳤다.
태현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은 채, 삐딱한 시선으로 사내의 손목 단말기를 힐끗 보았다.
[잔여 정화 칩: 12]
"자릿세?"
태현이 픽, 헛웃음을 흘렸다.
"가진 게 12칩밖에 없는 거지 새끼가 누굴 삥 뜯으려 들어. 그딴 푼돈이나 모으려고 이런 시궁창에서 골목대장 노릇 하는 거냐?"
"뭐… 뭣? 이 새끼가 미쳤나!"
사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그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쇠파이프를 치켜드는 순간이었다.
"폭력 쓰시게? 써 봐."
태현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자신의 이마를 사내의 쇠파이프 앞까지 바짝 들이밀었다.
"때려보라고. 이 구역도 이사회 통제하에 있을 텐데, 내 머리통 깨고 니들 칩 다 깎여서 전기의자 앉고 싶으면 얼마든지 쳐봐."
사내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그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태현의 말이 맞았다. 하층민 구역이라도 시스템의 감시는 존재했고, 명백한 무력 사용은 치명적인 칩 차감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그저 험악한 분위기로 공포를 조성해 상대가 '스스로' 칩을 양도하게 만드는 양아치들에 불과했던 것이다.
"쯧. 칠 배짱도 없는 새끼가."
태현이 경멸 어린 시선으로 사내를 밀쳐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따위 푼돈 뺏기 장난질 말고. 이 구역에서 제일 판돈 크게 도는 사설 하우스가 어디야? 기왕 시궁창에 굴러떨어진 거, 짤짤이라도 쳐서 위로 올라가야 할 거 아니야."
태현의 도발적인 요구에 양아치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밑바닥으로 추방된 놈이 겁을 먹기는커녕 도박장을 내놓으라니, 미친놈이 따로 없었다.
"하! 도박장? 그래, 니깟 놈들 주머니 털어먹기엔 거기가 딱이겠지."
사내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뒤로 돌았다.
"따라와. 이 구역의 성지, '검은 쥐 구멍'으로 안내해 줄 테니까. 거기서 팬티 한 장까지 다 털리고 바닥에서 쥐새끼처럼 기어 다니게 될 거다."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녹슨 컨테이너 박스 여러 개를 이어 붙여 만든 거대한 불법 도박장이었다.
매캐한 싸구려 담배 연기가 시야를 가렸고, 수십 명의 하층민들이 테이블에 달라붙어 핏발 선 눈으로 액정을 두드리고 있었다. 위층의 세련된 홀덤판과는 달랐다. 주사위, 조잡하게 만든 카드, 심지어 동전 던지기까지. 오직 직관적인 홀짝과 확률에 목숨을 거는 원초적인 도박판이었다.
"어디 보자."
태현은 구석에 자리를 잡고 눈을 가늘게 뜬 채 도박장 전체를 스캔하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테이블. 그리고 각 테이블을 담당하는 딜러들.
"서유진. 패드 켜봐."
태현이 옆에 선 유진에게 낮게 속삭였다.
유진은 품속에서 낡은 마스터 패드를 꺼내 옷자락으로 교묘하게 가린 채 전원을 켰다.
"이런 조잡한 사설 도박장은 절대 정직하게 확률 게임을 하지 않아. 특히 딜러 새끼들의 움직임을 잘 봐. 승률이 비정상적으로 하우스 쪽에 쏠려 있는 테이블이 있을 거다."
유진의 안경 너머로 날카로운 빛이 번쩍였다. 그녀는 시스템 분석가답게 사람들의 심리가 아닌, 도박장 내부에 흐르는 미세한 전파와 시스템의 흐름을 읽어내고 있었다.
"찾았습니다."
불과 1분도 지나지 않아 유진이 입을 열었다. 그녀의 시선이 도박장 정중앙에 위치한, 가장 크고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다이스(주사위)' 테이블을 향했다.
"저 테이블, 단순한 금속이 아닙니다. 테이블 하부에 미세한 전자식 마그네틱 보드가 깔려 있어요. 그리고 저 딜러가 차고 있는 장갑… 검지의 미세한 움직임에 따라 블루투스 신호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주사위에 철심을 박아놓고, 테이블의 자기장으로 홀짝을 조작하고 있다?"
태현의 입가에 짙은 호선이 그려졌다.
"전형적인 밑바닥 사기구먼. 유진아, 저 블루투스 신호. 네 마스터 패드로 재밍(Jamming, 전파 방해) 걸거나 역으로 조작할 수 있냐?"
유진이 패드를 몇 번 두드리더니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런 조잡한 로컬 네트워크 보안은 10초면 뚫습니다. 딜러가 신호를 보낼 때, 제가 중간에 차단하거나 오히려 반대쪽 극성으로 자기장을 켜버릴 수 있습니다."
"완벽해."
태현이 주머니에서 손을 빼며 뚜덕, 목 관절을 꺾었다.
"자, 그럼 사냥을 시작해 볼까."
태현은 성큼성큼 걸어가 정중앙의 다이스 테이블 앞에 앉았다.
마침 전판을 거하게 털어먹은 딜러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새로운 호구들을 찾고 있었다.
"다이스 하이 로우(High/Low). 두 주사위의 합이 7 이하면 로우, 8 이상이면 하이! 홀짝보다 스릴 넘치는 한 판! 자, 베팅하십시오!"
딜러가 불투명한 검은 컵 안에 주사위를 넣고 현란하게 흔들기 시작했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서너 명의 하층민들이 벌벌 떠는 손으로 단말기를 찍어 1칩, 2칩씩을 조심스레 베팅했다.
태현은 등받이에 삐딱하게 기대앉아 딜러의 손놀림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딜러가 컵을 테이블에 탁, 내려놓는 순간. 그의 검지 손가락이 미세하게 까딱하는 것을 태현의 매의 눈이 놓치지 않았다. 저 순간 자기장이 켜져 원하는 숫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베팅을 마감합니다. 신규 참가자, 베팅하시겠습니까?]
딜러가 태현을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
태현은 무심하게 자신의 단말기를 테이블 스캐너에 가져다 댔다.
"로우에 5칩."
첫판. 딜러가 컵을 열었다.
[4, 5] 합 9. 하이였다.
"아이고, 하이입니다! 하우스가 칩을 수거합니다."
딜러가 얄밉게 웃으며 태현의 5칩을 쓸어갔다.
두 번째 판.
"하이에 10칩."
딜러가 다시 검지를 까딱였다. 컵을 열자 [1, 2] 로우였다.
태현은 연속으로 15칩을 잃었다. 남은 칩은 27칩.
주변에서 구경하던 하층민들이 낄낄거리며 수군댔다.
'저 병신, 밑바닥까지 떨어져 놓고 뭣도 모르고 칩을 퍼주네.'
'호구 제대로 잡혔구먼.'
하지만 태현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오히려 잃으면 잃을수록 그의 눈빛은 맹수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것은 철저한 '밑밥'이었다. 사기꾼을 방심하게 만들어, 놈이 가장 판을 크게 키웠을 때 단숨에 목줄을 물어뜯기 위한 고도의 심리전.
세 번째 판.
"이런, 오늘 운이 영 안 좋으신가 봅니다. 마지막 판이라도 크게 가보시겠습니까?"
딜러가 태현의 남은 칩을 털어먹기 위해 노골적으로 도발했다.
태현은 미간을 찌푸린 채 짜증 난다는 듯 자신의 단말기를 쾅 내리쳤다.
"하이에 올인. 남은 27칩 전부."
"오오! 27칩 올인! 하이에 거셨습니다!"
딜러의 눈이 탐욕으로 반짝였다. 27칩이면 하층민 구역에서는 꽤나 짭짤한 수확이었다.
딜러가 컵을 거칠게 흔들고는 테이블에 쾅 내려놓았다.
태현이 '하이(8 이상)'를 걸었으니, 딜러는 당연히 주사위가 '로우(7 이하)'가 나오도록 검지를 까딱여 자기장을 활성화했다.
그 찰나의 순간.
태현의 등 뒤에 서 있던 서유진이 마스터 패드의 엔터 키를 소리 없이 눌렀다.
지지직-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미세한 전파 방해가 테이블 하부의 마그네틱 보드를 강타했다. 딜러가 보낸 '로우' 신호가 차단되고, 유진이 심어놓은 '강제 하이' 신호가 테이블을 장악했다.
"자, 깝니다!"
딜러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컵을 들어 올렸다.
자신의 사기 기술을 맹신하고 있던 그의 눈앞에 드러난 숫자는.
[6, 6] 합 12. 완벽한 하이였다.
"……어?"
딜러의 턱이 쩍 벌어졌다. 그럴 리가 없었다. 분명 로우 세팅으로 버튼을 눌렀는데.
기계가 오작동했나? 당황한 딜러가 다급하게 단말기를 조작해 태현에게 27칩의 두 배, 54칩을 배당했다.
순식간에 태현의 칩이 54개가 되었다.
"운이 좋네. 기계가 고장이라도 났나?"
태현이 딜러의 정곡을 찌르며 비릿하게 웃었다. 딜러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자, 다음 판 가자고. 로우에 54칩. 올인."
태현이 배당받은 칩을 그대로 다시 밀어 넣었다.
"이, 이번엔 하우스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딜러가 이를 악물고 컵을 흔들었다. 이번엔 절대 실수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보드를 '하이'로 세팅하는 신호를 강하게 보냈다. 태현이 로우에 걸었으니 무조건 하이를 띄워야 했다.
하지만 컵을 내리치는 순간, 이번에도 유진의 마스터 패드가 딜러의 신호를 잔인하게 짓뭉개버렸다.
컵이 열렸다.
[1, 1] 합 2. 완벽한 로우.
"헉…!"
딜러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두 번 연속 사기가 실패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계가 완전히 맛이 갔거나, 누군가 개입한 것이다.
[배당 완료. 강태현 미도달자, 잔여 칩 108]
순식간에 태현의 칩이 100단위를 돌파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구경꾼들 사이에서 경악 섞인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층민 구역에서 100칩 베팅은 웬만한 데스매치에서나 볼 수 있는 거액이었다.
"야, 너 땀 흘린다. 왜, 주사위 안에 자석이라도 빠졌어?"
태현이 의자를 당겨 앉으며 딜러를 향해 씩 웃었다.
딜러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상대는 이미 이 테이블의 비밀을 모조리 꿰뚫고 있었다. 사기가 들통나면 이 구역에서도 무사하지 못한다.
"그, 그만! 오늘은 테이블 정비 문제로 다이스를 마감…!"
딜러가 다급하게 판을 접으려 했다.
쾅-!
태현이 테이블을 발로 걷어차며 호통을 쳤다.
"누구 맘대로 닫아, 이 사기꾼 새끼야! 하우스가 호구 돈 다 털어먹을 땐 언제고, 돈 잃기 시작하니까 배째라냐? 내 108칩 로우에 올인할 테니까 당장 컵 흔들어!"
태현의 기세에 딜러가 사시나무 떨듯 떨며 뒤로 물러섰다.
주변의 군중들도 사기라는 단어에 동요하며 딜러를 향해 험악한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어떤 새끼가 내 구역 수질을 이따위로 흐려놓고 지랄이야."
도박장 안쪽의 굳게 닫힌 컨테이너 문이 열리며, 뱀처럼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마른 체격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그의 뒤로 무장한 사설 경호원들이 도열했다. 하층민 구역을 지배하는 지하 경제의 우두머리, '독사'였다.
독사의 손목 단말기에는 [850]이라는, 귀족에 버금가는 막대한 칩이 찍혀 있었다.
"사, 사장님! 저 새끼가 테이블을 조작해서…!"
딜러가 핑계를 대려 했지만, 독사는 자비 없이 딜러의 뺨을 후려갈겨 기절시켜 버렸다.
"병신 새끼. 사기를 칠 거면 안 들키게 쳐야지."
독사가 쓰러진 딜러를 타박 넘어, 태현의 맞은편 의자에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앉았다.
독사가 뱀 같은 혀로 입술을 핥으며 태현을 노려보았다.
"위층에서 쫓겨난 뉴비 새끼가 제법 발칙하네. 내 딜러가 잃은 돈, 내가 직접 찾아주지. 종목은 홀덤. 네가 가진 108칩, 그리고 내 칩 108개. 단판으로 다이(Die) 없는 헤즈업 어때?"
하층민 구역 보스의 직접적인 선전포고.
도박장 안의 숨소리조차 사라진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태현은 주머니 속의 가벼운 플라스틱 칩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비릿하게 미소 지었다.
"수질? 이 똥물에 수질 따질 게 뭐 있어."
태현이 턱을 괴며 독사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겨우 100칩 가지고 보스 노릇 하려니까 폼이 안 나지? 콜. 대신 룰은 내가 정한다."
메인 구역의 거물들을 무너뜨리기 전, 밑바닥 자본을 흡수하기 위한 태현의 본격적인 '하우스 털기'가 독사의 목줄을 향해 서늘하게 다가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