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즉흥적인 숯불과 0.5평의 낭만

by 연구소장

1. 황민우 : 아스팔트 위의 해방감, 그리고 폭탄선언


차를 인도받고 어느 정도 적응을 마친 주말이었다.


이번 주말은 집에서 푹 쉬면서 하이파이 스피커로 잔잔한 음악이나 들으며, 철저하게 에너지를 충전할 계획이었다. 평일에 쌓인 피로를 풀기엔 그보다 완벽한 타임라인이 없었다.


하지만 내 조수석에는 세상에서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ENFP 여자친구가 타고 있었고, 내 양손에는 X3 M40i의 두툼한 M 스티어링 휠이 쥐어져 있었다.


"오빠, 오늘따라 차 엄청 잘 나가는 것 같지 않아? 기분 탓인가?"


조수석의 민희가 창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신난 목소리로 물었다.


"기분 탓 아니야. 지금 서울양양고속도로 올려서 도로가 뚫렸길래, 주행 모드를 스포츠로 바꾸고 좀 밟고 있거든."


사실 주말 드라이브를 순순히 수락한 이유 중 절반은 민희 때문이었지만, 나머지 절반은 나 스스로를 위해서였다. 뻥 뚫린 고속도로에서 가속 페달을 깊게 밟아보는 것만큼 머릿속을 맑게 비워주는 처방전도 없었다.


우르릉- 팝!


엑셀을 지그시 밟자 차체가 낮게 깔리며 여유로운 가속력을 뿜어냈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 시원하게 치고 나가는 감각을 즐겼다. 차선을 변경할 때마다 노면을 꽉 움켜쥐는 사륜구동의 안정감, 그리고 RPM이 치솟을 때 뒤쪽에서 터져 나오는 묵직한 배기음. 편안한 정숙성만 따지던 과거의 나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만, 나는 지금 이 거친 엔진음을 들으며 확실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었다.


"이야, 오빠 쏘는 맛 제대로 들렸네. 기분 좀 좋아 보여?"


"어. 확실히 차가 여유가 있으니까 운전이 피곤하지가 않아. 밟는 대로 즉각 반응하니까 답답했던 속이 좀 뚫리네."


가속 페달을 밟고 떼기를 반복하며 기분 좋게 춘천JC를 지날 무렵이었다.


민희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내비게이션 화면을 힐끗 보더니, 무심한 듯 묵직한 폭탄을 던졌다.


"오빠. 우리 오늘 양양에서 자고 갈래?"


순간, 엑셀을 밟고 있던 내 오른발에 흠칫 힘이 풀렸다.


"……자고 간다고? 어디서? 나 숙소 예약해 둔 거 없는데?"


"숙소가 왜 필요해. 내 발밑에 폴딩 박스 보이지? 저기 원터치 텐트랑 침낭 다 들어 있어! 동호해수욕장 쪽에 텐트 치기 딱 좋은 모래사장이 있거든. 거기서 숯불 피워서 고기도 구워 먹고, 파도 소리 들으면서 자면 완전 낭만적일 거야!"


계기판의 숫자를 읽어 내리던 내 이성적인 뇌 회로가 일순간 정지했다.


"텐트? 낮엔 따뜻해도 강원도 밤바다는 패딩 입어야 할 정도로 춥다고. 그리고 텐트라니. 숯불은 또 언제 피워. 바닥 딱딱하고 바람 숭숭 들어오는 길바닥에서 자자는 거야?"


"아우, 오빠는 진짜 낭만이 없어! 원터치라 펴는 데 3초면 되고, 침낭 두 개 겹쳐 덮으면 하나도 안 추워. 양양 IC 빠져나가서 마트부터 들르자. 나 고기 구워 먹고 싶어."


"낭만이 문제가 아니라 내일의 컨디션 문제야. 나는 잠자리가 불편하면 다음 날 하루 종일 피곤한 거 알잖아. 정 자고 싶으면 차라리 내가 지금 근처에 깔끔한 리조트를 검색할게."


"아, 싫어! 바다까지 와서 답답한 시멘트벽 안에서 자자고? 고기 냄새 밸 걱정 없이 파도 앞에서 바비큐 하는 게 얼마나 좋은데. 나 오늘 무조건 텐트에서 고기 굽고 파도 소리 들으면서 잘 거야!"


단호하게 팔짱을 끼고 입술을 삐죽이는 민희를 보며,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며 날아갔던 스트레스가 다른 형태로 다시 뒷목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2. 성민희 : 마트 털이와 바비큐의 낭만


양양 IC를 빠져나오자마자 우리는 근처의 커다란 농협 하나로마트로 향했다. 오빠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카트를 끌고 내 뒤를 졸졸 따라오는 발걸음만큼은 군말이 없었다.


"자, 일단 삼겹살이랑 목살 넉넉하게 담고! 아, 오빠 소시지 좋아하지? 숯불에 구워 먹는 통통한 소시지는 필수야."


나는 신이 나서 정육 코너와 가공식품 코너를 누볐다. 고기, 숯불, 석쇠, 집게, 일회용 접시, 그리고 밤바다의 추위를 달래줄 핫팩 묶음까지 카트에 한가득 담았다.


"이거 다 먹지도 못할 텐데 양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그리고 숯불 피워본 적은 있고?"


오빠가 카트 안의 물건들을 보며 건조하게 물었다.


"걱정 마, 유튜브에서 숯에 불붙이는 법 다 마스터하고 왔어! 번개탄 넣고 토치로 지지면 끝이라니까?"


장을 다 보고 동호해수욕장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뉘엿뉘엿 수평선 너머로 저물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주말인데도 사람이 거의 없는 한적한 해변. 하늘은 짙은 보라색과 오렌지색이 섞인 오묘한 그라데이션을 만들어내고 있었고, 하얀 파도가 철썩이며 부서지는 소리가 귓가를 기분 좋게 때렸다.


"오빠, 빨리 와봐! 바다 뷰 진짜 미쳤지?"


모래사장 위를 방방 뛰며 환호하는 나를 보며, 오빠는 양손에 원터치 텐트 가방과 무거운 장바구니를 든 채 시큰둥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3. 황민우 : 해군 전역자의 시선, 그리고 0.5평의 한기


"오빠, 빨리 와봐! 바다 뷰 진짜 미쳤지?"


저만치 앞에서 파도를 보며 방방 뛰는 민희를 보며, 나는 텐트와 장바구니를 든 채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내 반응이 영 미적지근했던 건, 다른 이유가 아니라 내가 대한민국 해군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군 복무 시절, 꼬박 790일이라는 시간을 바다 위에서, 쇳덩어리 배 안에서 살았던 나에게 바다란 낭만이 아니었다. 그저 짠내가 진동하는 거대한 짠물의 집합체이자 지긋지긋한 근무지였을 뿐이다. 바다를 보고 환호성을 지르는 건 육군이나 공군 출신들에게나 어울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뻐근한 목을 돌리며 붉게 물들어가는 수평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뭐, 아주 오랜만에 보는 바다라 그런지 묘하게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들긴 했다.


"어, 좋긴 좋네. 오랜만에 보니까 뻥 뚫리고. 근데 민희야, 바람이 심상치가 않다. 벌써 체감 온도가 뚝 떨어지는데?"


"일단 텐트부터 치고 불 피우자. 오빠, 그거 그냥 바닥에 던지면 알아서 펴져!"


민희의 말에 나는 텐트 고정 끈을 풀고 모래 위로 텐트를 휙 던졌다. '파바박!'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반구형의 텐트가 순식간에 모양을 갖췄다. 그사이 민희는 마트에서 사 온 미니 화로대를 조립하고 번개탄 위에 숯을 올리고 있었다.


"내가 불붙일게. 넌 뒤로 물러나 있어."


나는 토치를 건네받아 능숙하게 숯에 불을 붙렸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붉은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달궈진 석쇠 위에 삼겹살과 목살, 그리고 통통한 소시지를 올리자 '치이익-'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고소한 기름 냄새가 바닷바람을 타고 퍼져 나갔다.


솔직히 말해, 숯불 고기는 죄가 없었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화로대의 연기가 자꾸만 내 눈을 맵게 했고, 고기를 뒤집을 때마다 모래가 신발 안으로 들어와 신경을 긁었지만, 숯 향이 진하게 밴 목살과 톡 터지는 소시지의 맛은 기가 막혔다.


"어때? 야외에서 숯불에 구워 먹으니까 진짜 맛있지?"


입가에 쌈장을 묻힌 채 활짝 웃는 민희를 보며, 나는 나무젓가락으로 소시지를 집어 들며 담백하게 대답했다.


"인정. 바람 불고 모래 날리는 것만 빼면 고기 맛은 훌륭하네. 소시지도 숯불에 구우니까 확실히 식감이 달라."


하지만 평화로운 낭만은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고기 파티가 끝난 직후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밤이 되자 바다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칼바람이 텐트의 얇은 폴리에스테르 천을 사정없이 때려댔다. '파닥파닥! 퍼덕!' 텐트가 흔들릴 때마다 틈새로 미세한 한기가 날아들어 왔다.


정리를 마치고 텐트 안에 나란히 누웠지만, 분위기는 민희가 상상했던 감성 캠핑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민희야. 바닥에 돌멩이 있는 것 같아. 내 등허리 밑에 지금 뭔가 뾰족한 게 찌르고 있거든."


침낭을 목 끝까지 끌어올린 채 천장을 보며 내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좀 참아봐. 모래사장이라서 평탄화가 잘 안 돼서 그래."


"그리고 바람 소리가 너무 커서 네가 말하는 그 낭만적인 파도 소리는 하나도 안 들려. 텐트 찢어질 것 같은데, 이거 내풍 설계는 제대로 된 제품 맞아?"


"아, 진짜! 분위기 좀 잡으려는데 계속 초 칠래?"


민희가 참다못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나도 안다, 민희 역시 지금 춥다는 걸.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얇은 매트리스를 뚫고 등허리를 얼리고 있었고, 텐트 안인데도 입김이 하얗게 나올 정도였다.


"나는 지금 초를 치는 게 아니라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거야. 낭만도 좋지만, 밤새 이 추위에 떨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어떡할 건데? 무리해서 길바닥에서 자는 건 비효율적이야. 내가 근처에 제일 깔끔한 숙소로 결제할 테니까. 가서 편하게 자자."


"또 그놈의 효율! 오빠한텐 나랑 이렇게 특별한 추억 만드는 것보다, 그놈의 폭신한 침대가 훨씬 더 중요하지? 됐어, 오빠는 가서 혼자 푹신하게 자! 난 여기서 혼자 잘 거니까!"


민희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침낭을 거칠게 뒤집어쓴 채 나를 등지고 누워버렸다.


텐트 안에는 팽팽한 적막이 감돌았다. 거친 숨소리와 텐트 천이 펄럭이는 소리만이 0.5평 남짓한 비좁은 공간을 채웠다.


나는 말없이 몸을 일으켰다. 지퍼를 열고 찬 바람을 맞으며 텐트 밖으로 나섰다. 등 뒤로 서운함이 뚝뚝 묻어나는 민희의 기척이 느껴졌지만, 나는 그대로 캄캄한 모래사장을 밟고 차가 세워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4. 성민희 : 생존 물품과 나름의 낭만


텐트 밖으로 오빠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걸 들으며 나는 침낭 속에 얼굴을 묻었다.


설마 진짜 나를 버려두고 혼자 따뜻한 숙소나 차 안으로 도망가버린 걸까?


미움과 서운함이 파도처럼 밀려와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실 나도 무척이나 추웠다. 낭만이고 뭐고 당장 춥고 허리가 배겼지만, 자존심 때문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 10분쯤 지났을까.


밖에서 자박거리는 발소리가 다시 들리더니, 텐트 지퍼가 조심스럽게 열렸다.


"……야. 좀 나와 봐."


오빠의 부름에 나는 대답 없이 침낭을 더 꽉 끌어안았다.


"오빠 혼자 편하게 자라니까 왜 다시 왔어! 나 신경 쓰지 말고 가!"


침낭 속에서 잔뜩 잠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오빠는 짧은 한숨을 쉬고는, 강제로 내 침낭의 끝자락을 잡아당겼다.


"어딜 가. 나 숙소 안 갔어. 생존 물품 챙겨왔으니까 빨리 좀 나와 봐."


고개를 빼꼼 내밀어 보니, 오빠의 양팔에는 차 뒷좌석에 깔려 있던 두툼한 담요 두 장과 아까 마트에서 샀던 핫팩 뭉치, 그리고 트렁크 바닥재로 쓰는 푹신한 매트까지 잔뜩 들려 있었다.


"이게 다 뭐야?"


"네가 죽어도 여기서 자야겠다고 고집을 부리니까, 최소한 입은 안 돌아가게 보수 공사라도 해야 할 거 아니야. 비켜 봐."


오빠는 텐트 바닥의 얇은 돗자리 밑으로 트렁크 매트를 겹쳐 깔아 바닥의 요철을 어느 정도 평평하게 만들었다. 그러고는 핫팩 여러 개를 뜯어 마구 흔들더니 내 침낭 발밑과 등 뒤쪽으로 꼼꼼하게 쑤셔 넣었다. 마지막으로 커다란 차량용 담요를 내 침낭 위로 이불처럼 덮어주었다.


"자, 이제 다시 누워 봐. 돌멩이 찌르는 건 좀 덜할 거다."


오빠의 말대로 매트를 덧대니 허리 배김이 훨씬 덜했고, 핫팩 덕분에 금세 침낭 안이 후끈해졌다. 오빠는 남은 담요를 뒤집어쓴 채 내 옆으로 바짝 붙어 누웠다. 차가웠던 텐트 안이 오빠의 체온 덕분에 순식간에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숙소 예약 안 했어?"


내가 모기만 한 목소리로 묻자, 오빠가 천장을 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너 혼자 텐트에서 떨게 놔두고 나 혼자 편하게 자면, 그건 데이터상으로 더 끔찍한 재앙이거든. 감기 걸리면 약 사다 바쳐야 해, 삐진 거 풀어주느라 몇 배로 고생해야 해. 그 변수를 다 계산해 보면 그냥 여기서 나도 같이 모래 씹으면서 버티는 게 합리적이야."


끝까지 효율과 데이터를 운운하며 낭만 없는 소리를 툭툭 내뱉는 오빠였지만, 담요 속에서 내 손을 찾아 꽉 쥐어주는 손길만큼은 다정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오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치. 말이나 못 하면. 그래도 핫팩 넣으니까 엄청 따뜻하네."


"당연하지.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의 승리야. 그리고……."


오빠가 잠시 말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매섭게 불어대던 바람이 조금 잦아들었는지, 텐트를 펄럭이는 소리 너머로 철썩, 철썩 일정한 간격으로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네가 말한 파도 소리. 이제야 좀 제대로 들리네. 뭐, 이렇게 누워서 듣고 있으니까…… 나름 낭만이 있긴 하다."


편안한 침대만 고집하던 오빠의 입에서 '낭만'이라는 단어가 나오다니. 나는 그제야 참았던 웃음을 터뜨리며 오빠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거봐! 내 말이 맞지? 불편해도 이런 맛에 캠핑하는 거라니까."


우리는 그렇게 비좁고 투박한 텐트 안에서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누웠다. 돌멩이가 조금 배기고 바람이 차가웠지만, 규칙적인 파도 소리와 오빠의 심장 박동 소리가 자장가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5. 황민우 : 타협점을 찾은 아침


새벽의 동해 바다는 차갑고 고요했다.


눈을 떴을 때, 텐트 지퍼의 작은 틈새 사이로 붉은 해가 수평선을 뚫고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내 어깨에 기대어 새근새근 잠든 민희의 얼굴 위로 따스한 아침 햇살이 쏟아졌다.


솔직히 말해, 텐트 안에서의 잠자리가 쾌적했을 리 없다. 핫팩 덕분에 얼어 죽진 않았지만 허리도 약간 뻐근했고 목도 뻣뻣했다. 하지만 눈을 뜨자마자 지퍼를 열고 이렇게 완벽한 일출을 맨눈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기 싫지만 꽤나 매력적인 경험이었다.


"으음…… 해 떴어?"


민희가 눈을 부비며 부스스 일어났다.


"어. 일출 끝내준다."


우리는 침낭을 덮어쓴 채로 나란히 앉아 떠오르는 태양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조금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이런 즉흥적인 낭만을 좇는 민희의 마음이, 아주 조금은 이해가 갈 것 같았다.


아침 8시. 우리는 모래사장의 텐트와 화로대를 걷어 대충 트렁크에 쑤셔 넣었다.


"자, 낭만 챙겼으면 이제 현실로 돌아가야지. 씻지도 못하고 이게 무슨 꼴이냐. 차 막히기 전에 서울로 쏜다."


"알겠어, 알겠어. 어제 텐트에서 자준 거 고마우니까 오늘 올라가는 길엔 운전기사님 하자는 대로 다 할게요."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자, 묵직한 6기통 엔진이 경쾌하게 깨어났다. 밤새 모래바닥에서 고생한 허리가 푹신한 가죽 시트에 닿으니 비로소 살 것 같았다.


우르릉-


가속 페달을 밟고 해안 도로를 빠져나와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막히지 않는 아침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치고 나가는 주행감은 어제보다 더 짜릿했다.


이성적이고 통제된 나의 세계에 불쑥불쑥 침투하는 치명적인 버그, 성민희.


어쩌면 나는 이 피곤한 변수와 평생 티격태격하면서도, 결국엔 타협점을 찾으며 아스팔트 위를 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자, 하얀색 기함이 기분 좋은 배기음을 뿜어내며 완벽한 밸런스로 서울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편안함을 고집하던 남자의 일상에 0.5평의 낭만이 기분 좋게 스며든 주말의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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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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