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5 - 천둥 치는 전장에 울려 퍼지는 패왕의 선율

조조의 영혼을 담은 전설의 BGM

by 연구소장
雷龍撃砕(뇌룡격파/The Pulverising Thunder Dragon)


천둥과 번개가 어둠을 가를 때, 그 소리는 자연현상을 넘어 시대의 패권자가 남긴 울림처럼 다가온다. 95년에 코에이가 야심차게 내놓은 삼국지5는 시리즈 역사상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복잡해진 내정 시스템, 다양한 전투 옵션, 그리고 무엇보다 각 군주의 개성이 살아 숨 쉬는 시스템으로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많은 팬들이 삼국지 시리즈의 정점으로 5편을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시 코에이 게임의 정품 패키지 가격은 10만원을 훌쩍 넘었다. 일반 게임의 2~3배에 달하는 가격은 학생들에게는 거의 금단의 열매와 같았다. 파워업키트 가격까지 더한다면...? 하지만 그 비싼 값을 치르고도 아깝지 않을 만큼, 삼국지5는 압도적인 완성도를 자랑했다.


그 중심에는 일본의 거장 작곡가 핫토리 타카유키(服部隆之)가 창조한 전설적인 사운드트랙이 있다. 삼국지5의 모든 트랙이 하나같이 명곡이지만, 오늘은 그중에서도 특별히 위나라의 전투 테마 '뇌룡격파(雷龍撃砕, The Pulverising Thunder Dragon)'를 집중적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원래 한자는 '雷龍撃砕(뇌룡격쇄)'지만, 인터넷에서 널리 알려진 '뇌룡격파'로 통일하여 부르겠다. '격파'든 '격쇄'든, 산산조각으로 부수는 무자비한 힘을 담고 있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음악으로 그려낸 패권자의 초상

핫토리 타카유키는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 영화 '고지라' 시리즈,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 디 오리진' 등으로 일본 음악계에서 최고의 명성을 누리는 작곡가다. 코에이가 그를 기용한 것은 배경음악을 넘어 게임에 영화적 깊이와 서사적 무게를 불어넣기 위한 의도적인 예술적 선택이었다.


기존 삼국지 시리즈에서도 도시별, 지역별로 다른 음악이 재생되는 시스템은 있었다. 하지만 캐릭터에 따라 음악이 달라지는 것은 삼국지5에서 최초로 시도된 혁신이었다. 핫토리는 각 세력과 인물의 성격을 음악으로 구현한 '캐릭터 사운드트랙'이라는 개념을 완성시켰다. 적장이 누구냐에 따라 곡이 달라지고, 플레이어는 전투 상황을 넘어 인물 그 자체와 대면하는 듯한 긴장감을 맛보게 된다.


뇌룡격파는 플레이어가 수비측 조조(혹은 조비, 조예)와 전투를 벌일 때 재생되는 전쟁 테마곡이다. 조조의 군대를 '적'으로 마주한 순간, 스피커를 통해 쏟아지는 현악기의 격렬한 질주는 천둥이 몰아치기 직전의 검은 하늘을 연상시킨다.


폭풍 같은 3막의 서사

뇌룡격파는 흡사 정복 전쟁을 압축해 놓은 한 편의 교향시다. 마구 휘몰아치는 듯한 전개로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이 넘치는 이 곡은 아래와 같은 뚜렷한 서사적 흐름으로 이어진다.


제1막: 혼돈의 서막

시작부터 전개되는 빠른 현악기의 질주는 불안정한 화성과 엮이며 듣는 이를 한순간에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는 후한 말의 불안정한 시대를 묘사한다. 그리고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조조의 전략적 사고를 음악으로 그려낸다. 천둥이 몰아치기 직전의 검은 하늘과도 같다.


제2막: 질서의 강제

곧이어 묵직한 팀파니가 등장한다. 그것은 전장의 심장박동이자, 질서를 강제하는 패권자의 맥박으로 들려온다. 흥미로운 점은 혼돈을 상징하던 현악기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인데, 오히려 팀파니의 압도적 박자에 종속되어 간다. 혼란을 자신의 의지로 굴복시킨 조조의 정치적, 군사적 천재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특유의 결단력과 행동력으로 삼국시대의 주도권을 쥔 조조의 모습이 음악 속에 그대로 살아 숨쉬는 것이다.


제3막: 패권의 선포

절정은 금관악기의 장엄한 울림이다. 트럼펫과 호른이 힘차게 외치는 선율은 승리의 찬가라기보다 절대 권력의 선언에 가깝다. "천하는 나의 것이다" 그 당당함 속에 비극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패권자의 야망은 언제나 대가를 동반했고, 음악은 그 장엄한 무게까지 품어낸다.


삼국의 대비, 세 가지 운명

뇌룡격파의 진정한 가치는 다른 국가들과의 극명한 대비에서 더욱 빛난다.


華龍進軍(화룡진군/Glittery Dragon March)

촉나라 화룡진군 - 유비를 상징하는 이 곡은 따뜻한 인덕과 충의를 담아, 영웅의 발걸음을 행진곡으로 표현했다. 유려한 오케스트라 현악과 영웅적인 호른이 어우러져 서정적이면서도 극적인 감성을 자아낸다. 고난을 뚫고 나아가는 덕망 있는 주인공의 여정이 그대로 녹아있다.


海龍到来(해룡도래/Sea Dragon Arrival)

오나라 해룡도래 - 손권과 손씨 일가를 대표하는 이 테마는 경쾌하고 세련된 리듬을 품었다. 현악기가 중심이 되어 리드미컬하게 전개되며, 활기찬 목관악기와 추진력 있는 타악기가 더해져 강동의 바람을 타고 흘러간다. 젊은 책략가들의 민첩함과 유연함, 그리고 밝은 활기가 느껴진다.


위나라 뇌룡격파 - 하지만 조조의 테마는 다르다. 질주하는 현악기, 묵직한 팀파니, 강력한 금관악기 섹션이 만들어내는 음악은 차갑고, 냉혹하며, 끝내 비장하다. 여운 속에는 웃음도, 축배도 없다. 오직 서늘한 힘과 현실주의적 패권자의 그림자만 남는다. 혼돈 속에서도 강렬함을 잃지 않는, 그야말로 비장한 위압감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플레이어와 조조의 대면

코에이는 핫토리 타카유키가 직접 지휘하는 라이브 오케스트라 녹음 버전을 제작했다. 오케스트라 버전을 공식 사운드트랙 앨범으로 발매한 이 결정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지만, 이 음악이 게임 BGM을 넘어 예술로 인정받길 원했던 것이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런 퀄리티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코에이의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다.


실제로 이 음악은 게임플레이와 완벽하게 융합된다. 수비측으로 조조(혹은 조씨 일가)가 버티고 있을 때 울려 퍼지는 이 음악은 배경이 아니라 적장 그 자체로 다가온다. 플레이어는 병력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조조라는 거대한 지성과 냉혹한 힘 앞에 서게 된다. 음악이 게임 상황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그 상황의 감정적 본질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이 곡을 듣는 순간, 플레이어는 조조와 대적하는 자신의 처지를 실감하게 된다. 압도적인 위압감과 냉혹한 전략 앞에서 느끼는 긴장감, 한 시대를 휘어잡은 패권자의 그림자와 맞서야 하는 중압감을 온몸으로 체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조조의 영혼을 담은 불멸의 교향시

뇌룡격파는 위나라의 테마를 넘어 조조의 초상화 그 자체다. 혼돈에서 질서를, 질서에서 패권을, 그리고 패권 속에서 비극을, 이 곡은 그 모든 궤적을 품는다. 현재의 게임 음악들이 추구하는 '캐릭터성 강화', '스토리텔링과의 유기적 결합'의 원형은 이미 1995년에 있었다. 뇌룡격파는 그 대표적인 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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