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13 - 와룡의 숨결이 피아노 건반에 내려앉다

제갈량의 테마 - 숨겨진 결의

by 연구소장
三國志13 ORIGINAL SOUNDTRACK - 06 諸葛亮のテーマ 秘めたる決意


삼국지 시리즈는 음악 좋기로 유명한 게임이다. 더 말하기도 입아프다 특히 '삼국지 13'의 사운드트랙은 시리즈 팬들 사이에서도 손꼽히는 명작으로 평가받는데, 얼마 전 삼국지5 음악 글에 누군가 제갈량 테마를 추천해주었다. 원래 알고 있던 곡이었지만, 그 댓글을 보니 이 음악에 대해 한번 제대로 써보고 싶어졌다.


2016년 1월, 코에이 테크모가 삼국지 시리즈 30주년 기념작 '삼국지 13'을 발매했다. 그 안에는 한 천재 전략가의 영혼을 담은 음악이 있었다. '제갈량의 테마: 숨겨진 결의(諸葛亮のテーマ 秘めたる決意)'.


흥미로운 것은 삼국지 게임 시리즈 역사상 제갈량에게 독립적인 테마곡이 부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이다. 30년 동안 수많은 시리즈가 나왔지만, 와룡 제갈량은 이제야 자신만의 음악적 초상을 갖게 된 것이다.


첫 음표에서 느껴지는 러시아의 향수

피아노 독주로 시작하는 제갈량의 테마는 도입부에서 라흐마니노프의 그림자가 진하게 느껴진다. 잘 들어보면 피아노가 그려내는 내면의 독백과 현악기가 품어주는 따뜻하면서도 장중한 정서, 러시아 낭만주의 특유의 우수가 곡 전체에 스며들어 있다. 종소리 같은 화음들, 점차 고조되는 피아노의 독백, 현악기가 합류하며 만들어내는 장대한 비애. 바로 제갈량이 가진 고유한 정서가 러시아 낭만주의의 옷을 입고 나타난 느낌이다.


네 명의 장인, 그러나 한 명의 목소리

'삼국지 13'의 사운드트랙에는 네 명의 작곡가가 참여했다. 오츠카 마사코(大塚正子), 이가라시 잇포(五十嵐一歩), 마스오카 고타(増岡郷太), 그리고 전설적인 칸노 요코(菅野よう子). 부다페스트 아트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녹음을 담당했다.


'제갈량의 테마'는 그중에서도 오츠카 마사코의 작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클래식 피아니스트 출신이자 음악 교사였던 오츠카 마사코는 취리히에서 유학하며 정통 클래식을 익혔다. 이가라시나 마스오카가 '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 보여준 록과 일렉트로닉 사운드와는 달리, 이 곡은 철저하게 피아노 중심의 낭만주의 어법을 따른다. 후속작인 '삼국지 14'에서도 오케스트라 스코어를 담당한 그녀에게 라흐마니노프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음악적 모국어였을 것이다.


러시아의 우수, 중국의 영혼

곡은 솔로 피아노의 조용한 화음으로 시작된다. 라흐마니노프가 그랬듯, 피아노가 먼저 홀로 말을 건넨다. 어두운 단조의 무게감, 아르페지오가 만들어내는 끊임없는 사유의 물결. 이것은 1901년 러시아에서 우울증을 극복하며 탄생한 그 협주곡의 문법이 2016년 일본에서 중국의 전략가를 그리는 데 사용되는 순간이다.


주선율이 등장할 때, 우리는 남양 와룡강에 은거하던 젊은 제갈량을 만난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처럼 길고 서정적인 이 선율은 순차 진행하다가 때로 도약하며 갈망을 드러낸다. 아직 세상은 그를 모르지만, 그의 내면엔 이미 천하의 운명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뒤로 갈수록 현악기가 점차 두터워지면서 피아노와 대화를 나눈다. 이 구조는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에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주고받는 대화를 연상시킨다. 피아노가 제갈량의 차분한 사색을 대변한다면, 현악기는 그를 둘러싼 시대의 무게와 운명의 거대함을 노래한다. 북벌의 실패를 예감하면서도 한실 부흥의 꿈을 놓지 못하는, 그 비장한 운명이 현악기의 따뜻하면서도 애절한 울림 속에 담겨 있다.


조용한 시작에서 장대한 울림으로

라흐마니노프가 자신의 협주곡에서 작은 속삭임부터 거대한 폭발까지 극적인 감정의 진폭을 그렸듯이, 이 테마도 조용한 시작에서 점차 고조되었다가 다시 가라앉는다. 현악 섹션이 하나둘 합류하면서 음악은 조용한 결의의 순간을 향해 나아간다.


음악은 정말로 '숨겨진 결의'라는 제목 그대로 흘러간다. 처음엔 망설임처럼 조심스럽게 시작하지만, 그 안에는 이미 모든 답이 정해져 있다. 마치 제갈량이 삼고초려 때 이미 천하삼분지계를 품고 있었듯이, 음악도 조용한 표면 아래 거대한 파도를 숨기고 있다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결의는 외치지 않는다.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듯 피어오른다.


이것은 유비의 삼고초려에 응답하는 순간일 수도 있고, 출사표를 올리는 순간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음악이 영웅의 찬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라흐마니노프가 자신의 내면과 싸우며 승리를 노래했다면, 오츠카 마사코는 제갈량의 깊은 사색과 묵직한 책임감을 그려냈다. 화려한 기교도, 과시적인 선율도 없다. 대신 운명을 받아들이는 조용한 용기가 복잡하게 얽힌 화음들 속에 스며들어 있다.


한 세기를 건너온 대화

이 곡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사이에는 분명한 음악적 혈연관계가 있어 보인다. 풍부하고 애잔한 화음이 만들어내는 갈망의 정서, 피아노 아르페지오가 그려내는 감정의 소용돌이, 현악기의 따뜻하면서도 장중한 포옹. 이 모든 것이 후기 낭만주의가 도달한 극점의 표현들이다.


오츠카 마사코는 100년 전 러시아 작곡가가 자신의 심연에서 길어올린 음악적 언어로 1800년 전 중국 전략가의 영혼을 현대에 소환했다. 라흐마니노프가 니콜라이 달 박사의 최면치료를 받으며 "당신은 당신의 피아노 협주곡을 쓸 것입니다. 당신은 아주 잘 해낼 거에요. 협주곡은 정말 훌륭한 곡이 될 것입니다"라는 암시 속에서 작품을 완성했듯이, 오츠카도 제갈량이라는 인물을 마주하며 그의 내면을 음악으로 그려냈을 것이다.


서양 오케스트라의 정통성 위에서 제갈량이라는 동양의 인물을 그려내는 이 시도는 '삼국지 13'이 30주년 기념작으로서 보여준 진정한 성취다. 전통을 존중하되 새로운 해석을 더하는 용기, 그것이 이 작품의 가치가 아닐까?


흥미로운 것은 두 작품 모두 깊은 고뇌 끝에 탄생했다는 점이다.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의 교향곡 1번이 혹평받은 후 3년간의 침묵을 깨고 이 협주곡을 썼다. 제갈량은 은거 생활을 끝내고 불가능에 가까운 북벌의 길을 택했다. 오츠카는 이 두 영혼의 공명을 포착하여,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보편적 감정으로 승화시켰다.


무쌍 시리즈와의 거리

같은 회사의 '진·삼국무쌍' 시리즈와 비교하면 '제갈량의 테마'가 지향하는 바가 더욱 선명해진다. 무쌍 시리즈의 제갈량이 번개를 내리치는 마법사라면, 여기서는 깊은 밤 홀로 지도를 펼쳐놓고 사색하는 책사의 이미지다. 템포는 느리고 절제되어 있고, 리듬은 신중하며, 모든 음표가 마치 제갈량의 전략처럼 정확한 자리에 놓여 있다.


전장의 아드레날린 대신 서재의 고요함이, 칼의 날카로움 대신 붓의 무게감이 음악 속에 담겨 있다. 이것은 게임의 장르적 차이를 넘어서, 같은 인물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의 차이를 보여준다.


사실 '삼국지 13' 이전까지 제갈량 고유의 테마는 없었다. 굳이 찾자면 1998년 외전작 '삼국지 공명전'의 11번 트랙이 가장 제갈량다운 음악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정식 테마는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숨겨진 결의'는 30년 만에 제갈량이 얻은 첫 공식 초상화다.

삼국지 공명전 11번 트랙, 제갈량의 깊은 고뇌가 느껴진다


게임을 넘어선 울림

좋은 게임 음악은 플레이어의 감정을 고양시키고, 위대한 게임 음악은 게임을 끈 후에도 마음속에 남아 울린다. '제갈량의 테마: 숨겨진 결의'는 분명 후자에 속한다.


'제갈량의 테마'를 들으면 1800년 전 중국의 전략가와 100년 전 러시아의 작곡가, 그리고 현대 일본의 게임 음악가가 시공을 초월한 만남을 이루는 순간을 느껴진다. 그리고 오츠카 마사코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적 어법을 통해 제갈량의 복잡 다면한 내면을 훌륭하게 그려냈다.


제갈량이 남긴 출사표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신은 본래 남양의 한 농부로서..."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도, 제가량의 테마도 그렇게 시작한다. 조용하고 소박하게.

그리고 일본의 게임 음악가는 이 둘의 이야기를 하나의 선율로 엮어내어 불후의 명곡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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