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음악이 그려낸 절망적 저항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대전략 게임 Hearts of Iron IV는 플레이어가 당시 존재했던 모든 국가를 이끌고 역사를 바꿀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 게임의 "Bravery of the Minority" 제목의 음악은 거대 세력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는 작은 나라의 절박함을 그려낸다.
시작부터 금관악기의 선율과 타악기의 리듬은 수천 명의 합창을 압도한다. 처음부터 관악기가 무겁게 몰아치고 트럼펫과 호른이 날카롭게 울려 퍼지며 불굴의 의지가 번져나간다. 팀파니가 두드려질 때마다 긴장감이 고조되고 결연한 의지가 드러난다. 절정의 순간, 모든 악기가 하나로 합쳐진다. 음악은 이제 소리를 넘어서서 전장의 폭력성과 최후의 저항을 형상화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2021년 11월 출시된 No Step Back 확장팩은 이 곡이 언제 재생될지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는데, 게임은 이 음악을 강대국으로 플레이할 때는 재생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소련이나 독일로 플레이하면 이 음악을 들을 수 없다. 오직 폴란드나 발트 3국으로 플레이하며 독일이나 소련과 전쟁 중일 때, 특히 망명 정부 상태에서 이 곡이 흘러나올 확률이 극적으로 높아진다. 바르샤바 외곽에서 폴란드 사단이 포위되는 순간, 게임의 알고리즘은 이 음악을 선택하여 재생한다.
1939년 9월 1일,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한다. 그리고 17일 후 소련군이 동쪽에서 침공하면서 양면전쟁이 시작된다. 폴란드는 한 달 만에 무너진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실제 폴란드의 저항은 끝나지 않았다.
국내군(Armia Krajowa)은 5년간 지하조직으로 활동했고 1944년 바르샤바 봉기에서 63일간 독일군과 맞섰다. 소련과 근접한 발트 3국의 운명도 폴란드와 비슷하게 흘러간다. 1940년 소련에 병합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숲속의 형제들(Forest Brothers)이라 불리는 게릴라로 1950년대까지 저항한다. 수만 명이 시베리아로 끌려가고, 수천 명이 숲에서 죽어갔지만 저항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1939년 11월 30일,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했다. 그 유명한 겨울전쟁이다. 핀란드의 작곡가 시벨리우스와 함께 위대한 핀란드인으로 선정된 스코프를 쓰지 않는 전설의 저격수 시모 해위해가 탄생한 바로 그 전쟁이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저격수!
여기서 핀란드군은 3개월간 50만 소련군을 상대로 버텨낸다. 영하 40도의 추위 속에서 스키를 탄 시모 해위해를 비롯한 저격수들이 소련군을 괴롭히면서 영토 일부를 잃었지만 독립은 지켜낸다.
"Bravery of the Minority"의 파괴적인 아름다움, 관악기가 내뿜는 절규와 타악기가 쏟아내는 분노는 이 순간들의 음악적 재현이다. 곡이 들려주는 건 승리의 희망이 아니라 패배를 거부하는 광기, 죽음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비정상적인 집착에 가깝다.
No Step Back 확장팩은 이런 역사적 맥락을 게임으로 구현했다. 게임 속 폴란드의 "불가피한 상황에 대비하라(Prepare for the Inevitable)" 중점 트리는 국가가 함락되어도 망명 정부로 계속 싸울 수 있게 한다.
다른 Hearts of Iron IV의 음악들이 웅장한 합창으로 승리의 환호를 노래한다면 "Bravery of the Minority"는 파멸의 문턱에서 피어나는 광기를 연주한다. 소련을 위한 "Sacred War"의 열정적인 목소리나 "Katyusha"의 그리운 선율과는 차원이 다른 원시적 에너지가 존재하는 느낌이다.
이 음악을 만든 작곡가 매그너스 링블롬은 재즈 뮤지션으로도 활동한 이력이 있는데, 자신의 재즈 밴드를 이끌며 "Blue Night Bossa"같은 부드러운 재즈를 연주하는 작곡가는 이 곡에서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관악기의 작열하는 선율과 타악기가 쏟아내는 격렬한 리듬은 어떤 합창보다도 잔혹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트럼펫의 예리한 외침이 심장을 꿰뚫고, 드럼의 거친 박동이 세상을 뒤흔든다. 우리는 진정한 파괴와 창조의 순간을 목격한다. 겉보기에는 고요하지만 그 중심에는 거대한 힘이 응축되어 있는 것이다.
이 음악이 주는 건 위로가 아니라 광기에 가깝다. 패배가 확실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맞서겠다는 비정상적인 집착, 합리적 판단을 포기하고 순수한 의지만으로 버티겠다는 광기 어린 결심.
곡이 끝난 후에도 귓속에 울려 퍼지는 잔향은 듣는 이의 마음 깊숙이 박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음악이 멈춘 뒤에도 가슴속에서는 무언가가 끓어오른다. 그것은 두려움, 분노, 혹은 죽음보다 강한 의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