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소울 - 들리지 않는 음악, 기억되지 않는 침묵

침묵이 만들어내는 공포와 긴장의 미학

by 연구소장

다크 소울을 처음 켜면 대부분 볼륨 설정부터 확인하게 된다. 바로 음악이 없기 때문인데, 프롬소프트웨어가 만든 다크소울 시리즈부터 블러드본, 세키로 모두 마찬가지다. 게임은 침묵으로 플레이어를 맞이한다.


현대 게임들은 시작 버튼을 누르는 순간부터 음악이 쏟아진다. 갓 오브 워는 북유럽 신화를 오케스트라로 그려낸다. 위쳐 3는 60시간 내내 슬라브 민속 음악이 흐른다. 호라이즌 제로 던은 전투마다 긴박한 전자음악을 깔아놓는다. 다크 소울은? 발걸음 소리, 바람 소리, 까마귀 우는 소리뿐이다.


보스 하나를 잡는데 3시간이 걸린다면, 처음 1시간은 보스를 찾아가는 침묵의 시간이다. 나머지 2시간은 보스와 싸우며 죽는 시간으로 20번 죽으면 60분간 같은 음악을 반복해서 듣게 된다. 다크 소울 3 OST는 약 1시간 분량인데, 대부분 보스와의 전투를 위한 음악이며, 만약 보스전에서 계속 죽는다면 이 1시간 분량의 음악을 수십 시간으로 늘려 듣는 셈이다.


시리즈 디렉터 타니무라 유이는 "플레이어가 주변 환경의 소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바 있다. 보스전 외에 음악을 깔면 전략적 플레이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다크 소울에서 죽는 이유 대부분은 소리를 놓쳐서다. 뒤에서 다가오는 발소리, 함정 작동음, 화살이 날아오는 파열음. 음악이 있으면 이런 생존 신호들이 묻혀버린다.


침묵은 플레이어의 심리를 조작하는 정교한 도구가 된다. 침묵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평화로운 고요함이 있고, 불편한 정적이 있고, 의도적인 무시가 있다. 다크 소울의 침묵은 마지막 종류에 가깝다.


한 심리학 연구자는 침묵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침묵을 무기로 사용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입니다. 우리 모두 답이 필요한 순간에 상대가 응답하지 않을 때의 불안을 알고 있죠. 침묵은 사람을 외롭게 만들고, 무시당한다고 느끼게 하고, 자신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다크 소울은 이 원리를 정확히 파고든다.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청각적 피드백을 거의 주지 않는다. 음악으로 상황을 알려주지 않으니, 플레이어는 혼자 남겨진 듯한 불안을 느낀다. 언제 어디서 위험이 닥칠지 알 길이 없다.


침묵 속에서는 음악이 아니라 환경음이 주인공이 된다. 다크 소울 3의 독이 퍼지는 늪지대를 걸어보면 독침 날아오는 소리, 늪이 부글거리는 소리, 썩은 나무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서로 엮인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위험 신호로 인식하는 주파수대(2-4kHz)에 집중되어 있어서 저절로 긴장하게 만든다.


이루실의 지하감옥에서 폐도로 넘어가는 순간은 특히 인상적이다. 던전의 끊임없는 쇠사슬 소리와 신음이 갑자기 뚝 끊긴다. 마치 세상의 공기가 빨려 나간 듯한 정적. 음향의 네거티브 스페이스라고 할까. 소리가 없는 것도 디자인의 일부라는 걸 보여주는 순간이다.


안개문 너머로 들어서면 90데시벨의 오케스트라가 폭발한다. 30분이나 1시간의 침묵 끝에 만나는 보스전. 다크 소울 1의 오른슈타인과 스모우가 기다리는 아노르 론도. 텅 빈 대성당을 탐험한 후 갑자기 쏟아지는 음악은 물리적 충격처럼 다가온다. 20dB의 환경음에서 90dB의 오케스트라로, 70dB의 음압 차이가 귀를 먹먹하게 만든다.


이것은 베토벤이 교향곡에서 즐겨 쓴 '극적인 정적' 기법과 비슷하다. 모든 악기가 갑자기 멈춰 긴장감을 만든 뒤, 다시 폭발시키는 방식. 다크 소울은 이 원리를 게임 전체로 확대했다. 근데 정작 보스와 싸우는 동안엔 음악이 들리지 않는 경우도 많다. 들리는데 들리지 않는 느낌이라 해야하나? 공격 패턴을 읽고 회피 타이밍을 재며 스태미나를 관리하다 보면 음악은 배경으로 사라진다. 극도의 집중 상태에서 귀는 오직 보스의 움직임만 쫓는다. 검이 휘두르는 소리, 발걸음, 포효. 생존에 필요한 신호들뿐이다.


나중에 유튜브로 OST를 찾아 들으면 새삼 놀란다. "이런 음악이었구나." 수십 번은 들었을 텐데 처음인 것 같다. 음악은 분명 있었지만,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YOU DIED 화면이 만든 기묘한 역설이 있다. 많은 플레이어가 다크 소울을 "음악이 인상적인 게임"으로 기억한다. 전체 플레이타임의 대부분이 침묵인데도 말이다. 오른슈타인과 스모우에게 평균 15번 죽으면 45분간 그들의 테마를 반복 청취한다. 반면 아노르 론도를 2시간 탐험하는 동안은 완전한 침묵이다.


하지만 뇌는 반복된 45분의 음악을 더 선명하게 기억한다. '가용성 휴리스틱'이라는 인지 편향 때문이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을 과대평가하는 현상. 침묵은 기억하기 어렵지만, 보스 음악은 트라우마와 함께 뇌에 각인된다.


"다크 소울 하면 뭐가 떠올라?"라고 물으면 대부분 극악의 난이도나 보스 음악 혹은 유다희를 말한다. 아무도 침묵을 언급하지 않는다. 뇌는 빈 공간을 싫어한다. 대부분이 침묵인 게임에서 그 적은 음악을 확대 재생산한다. 부재는 기억되지 않는다.


보스 19개, 음악 19개, 그게 전부다. 다크 소울 3의 경우 각 곡은 평균 3-4분. 총 OST는 약 1시간에 불과하다. 스카이림은 4시간이 넘는 OST를 자랑한다. 위쳐 3는 탐험 음악만 35곡이 넘는다. 하지만 프롬소프트웨어는 필요한 최소한만 만든다.


작곡가 키타무라 유카는 "아무리 훌륭한 곡이라도 게임 장면과 맞지 않으면 부조화를 일으킨다"고 말했다. 프롬소프트웨어 팀은 이 철학을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보스를 위한 음악, 그것이 전부다.


대신 프롬소프트웨어는 음악이 할 일을 효과음으로 대체한다. 새로운 지역에 들어설 때 울리는 장엄한 화음. 단 2-3초의 소리지만, 이것만으로도 "지금 다른 곳에 왔다"는 신호를 준다. 다른 게임들이 지역마다 다른 배경음악으로 구분한다면, 프롬소프트웨어는 경계선에서 한 번 울리는 효과음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UI 사운드도 특별하다. 에스트 병을 마실 때의 따뜻한 종소리, 소울을 획득할 때의 금속성 울림. 이 소리들은 억압적인 침묵과 환경음 속에서 유일한 '보상'처럼 느껴진다. 어떤 면에서는 이 짧은 효과음들이 음악보다 더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침묵은 더 과감해졌다. 다크 소울 1(2011)은 실험으로 시작되었는데 필드 음악을 과감히 제거했지만, 아직 확신은 없었다. 화톳불 제단 같은 안전지대에는 여전히 잔잔한 음악을 넣었다. 다크 소울 2(2014)는 이 공식을 다듬는다. 중앙 허브 지역의 음악도 더욱 절제했다. 보스 음악도 더 짧고 강렬해졌다.


다크 소울 3(2016)에 이르러 침묵의 미학은 완성된다. 「왕들의 화신」 2페이즈에서 1편 그윈 테마가 돌아올 때, 그 세 음("플린, 플린, 플론")만으로 소름이 돋는다. 두 게임 사이 수십 시간의 침묵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프롬소프트웨어 자신도 변화를 시도한다. 엘든 링(2022)은 오픈월드가 되면서 필드 음악을 도입한다. 림그레이브의 서정적인 선율, 케일리드의 불길한 코러스, 알터 고원의 장엄한 오케스트라. 각 지역마다 고유한 테마가 흐른다.


이는 후퇴일까, 진화일까? 광활한 오픈월드에서 완전한 침묵은 지루할 수 있다. 엘든 링은 여전히 던전에서는 음악을 빼고, 중요한 순간에만 침묵을 사용한다. 침묵을 버린 게 아니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세키로(2019)도 비슷하다. 일본 전통 악기로 만든 아름다운 OST가 있지만, 실제 게임에서 듣는 시간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왕들의 화신」을 들으면 플레이어들은 그 침묵을 떠올린다. 음악을 들으며 침묵을 기억하는 이 역설. 다크 소울 시리즈가 완결된 지 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OST는 스트리밍되고, 오케스트라 콘서트가 열린다.

이것이 프롬소프트웨어가 게임 음악사에 남긴 가장 독특한 유산이다. 현대 게임은 계속 진화한다. AI 작곡, 실시간 생성 음악, 개인화된 사운드트랙. 기술은 발전하지만, 프롬소프트웨어가 증명한 한 가지는 변하지 않는다. 때로는 침묵이 가장 웅장한 음악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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