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라의 도읍 한단(邯鄲)의 밤은 깊었으나, 평원군의 저택은 여전히 불야성이었다. 삼천 명의 식객이 뿜어내는 열기와 소음은 담장을 넘어 거리까지 흘러나왔다. 누군가는 거문고를 타고, 누군가는 시를 읊었으며, 대다수는 그저 술에 취해 자신의 불우한 재능을 한탄하고 있었다.
그 화려한 소음의 한가운데, 가장 외진 별채인 서원(西院)만이 적막에 잠겨 있었다. 이곳은 평원군이 위무기 일행에게 내어준 거처였다. 겉보기에는 고즈넉하고 우아해 보였으나, 실상은 본채의 권력 중심에서 철저히 배제된 유배지나 다름없었다.
별채의 방 안, 촛불 하나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강무는 탁자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죽간들을 하나씩 넘기고 있었다. 그것은 어젯밤 문지기 서 집사가 몰래 빼돌려 가져온 평원군 저택의 '비밀 장부'였다.
"기가 막히군."
강무가 혀를 찼다. 그의 눈은 장부의 숫자들을 빠르게 훑어 내렸다.
"식비로 하루에 금 십 근, 연회비로 삼십 근, 식객들의 품위 유지비로 오십 근……."
강무는 붓을 들어 여백에 계산을 시작했다.
[식객 1인당 평균 유지 비용 대비 산출 효과(ROI): 마이너스 9할.]
이것은 기업으로 치면 부도 직전의 상황이었다. 평원군은 자신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이 돈들이 실제로 식객들에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었다.
"쌀 천 석을 구매했다고 적혀 있는데, 실제 입고량은 칠백 석. 삼백 석은 중간 관리자들이 떼어먹었고. 비단 구매비는 시세보다 두 배나 비싸게 책정되어 있군. 거래처에서 리베이트(뒷돈)를 받고 있다는 증거야."
강무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이 저택은 거대한 '횡령의 왕국'이었다. 주인의 허영심을 눈먼 돈으로 착각한 하인들과 가짜 선비들이 서로의 주머니를 채워주고 있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가 최악의 형태로 발현되고 있는 현장이었다.
그때, 방문이 조용히 열리며 향희가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따뜻한 차가 들려 있었다.
"선생, 밤이 깊었습니다. 아직도 숫자와 씨름하고 계십니까?"
"이 숫자들이야말로 우리의 무기니까요. 칼보다 더 날카롭고, 독보다 더 치명적이지요."
강무는 장부를 덮으며 기지개를 켰다.
"향희 낭자, 이 저택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향희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대로입니다. 텃세가 심합니다. 기존의 식객들은 우리를 '굴러온 돌' 취급하며 경계하고 있어요. 특히 공손룡 선생을 따르는 무리가 우리 하인들에게까지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밥이 식었다느니, 옷차림이 남루하다느니 트집을 잡으면서요."
"그렇겠지요. 그들에게 우리는 자신들의 밥그릇을 위협하는 경쟁자니까요."
"위무기 장군께서는 분을 참지 못해 칼을 뽑으려 하셨습니다. 제가 겨우 말렸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지금 칼을 뽑으면 지는 겁니다. 우리는 아직 이 저택의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지금 싸우면 그저 밥투정하는 불청객으로 쫓겨날 뿐입니다."
강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아침, 평원군이 주재하는 조회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곳이 우리의 첫 번째 전장이 될 겁니다."
"준비해둔 계책이라도 있으십니까?"
"계책이라기보단, '청소'를 좀 해야겠습니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지요. 나쁜 돈이 좋은 돈을 몰아낸다는 뜻입니다. 지금 이 저택에는 가짜들이 너무 많아서 진짜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가짜들의 가면을 벗겨내야죠."
강무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다음 날 아침.
평원군의 대청마루에는 수백 명의 상급 식객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옷차림은 하나같이 화려했고, 입에서는 온갖 현학적인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평원군은 중앙의 호피 의자에 앉아 그들의 아첨을 즐기고 있었다.
"주군, 어제 제가 지은 시를 한번 들어보십시오. 주군의 덕망이 태산과 같아……." "아닙니다, 주군! 제가 이번에 구한 명검을 보십시오. 이것이야말로 주군의 패기에 어울리는……."
그때, 위무기와 강무가 대청으로 들어섰다. 순간 장내가 조용해졌다. 수백 개의 눈동자가 그들에게 꽂혔다. 경멸, 질시, 호기심이 뒤섞인 시선들이었다.
위무기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평원군에게 예를 갖추었다. 하지만 평원군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어제 옥잔을 받았을 때의 흥분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허영심 많은 소비자에게 '이미 산 물건'은 흥미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공손룡이 부채를 펄럭이며 나섰다. 그는 좌중을 압도하는 웅변가이자 궤변론자였다.
"위 장군, 밤새 편안하셨소? 듣자 하니 제나라 사람들은 침대가 바뀌면 잠을 못 잔다던데, 패전의 충격으로 악몽이라도 꾸지 않으셨는지 걱정이오."
좌중에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명백한 조롱이었다. 위무기의 얼굴이 붉어졌다.
강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공손 선생께서는 남의 잠자리 걱정보다 본인의 '논리'나 걱정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선생의 그 화려한 혀가 나라를 지키는 데는 얼마나 쓸모가 있을지 의문이군요."
공손룡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는 한단에서 논쟁으로 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호오, 강무 선생이라 했소? 내 혀가 쓸모없다? 말(言)은 천하를 움직이는 근본이오. 무식한 칼잡이들은 모르겠지만, 정교한 논리야말로 국격을 높이는 가장 큰 무기지."
공손룡은 의기양양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분, '백마비마(白馬非馬)'라는 말을 아시오? 흰 말은 말이 아니라는 뜻이오. 말이라는 개념과 희다는 개념은 다르기 때문이지. 이처럼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 없다면, 아무리 칼을 잘 휘둘러도 짐승과 다를 바가 없소."
식객들이 "옳소!", "역시 선생의 혜안은 놀랍소!" 하며 환호했다. 전형적인 권위에 의한 호소였다. 어려운 말을 써서 상대를 기죽이는 지적 허영의 전형이었다.
강무는 피식 웃었다.
"흰 말은 말이 아니다라…… 참으로 놀라운 궤변이군요. 시장에서 말 장수에게 가서 그렇게 말해보십시오. '이것은 흰 말이니 말이 아니오. 그러니 말 값을 낼 수 없소'라고. 아마 말채찍으로 얻어맞고 쫓겨날 겁니다."
좌중의 웃음소리가 뚝 그쳤다.
"선생의 논리는 그저 방구석 여흥거리에 불과합니다. 현실(Market)에서는 아무런 가치(Value)가 없다는 뜻이지요."
강무의 도발에 공손룡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무식한 놈이! 감히 내 고귀한 철학을 시장 잡배의 흥정에 비유하다니!"
"철학? 좋습니다. 그럼 그 철학의 '가격'을 한번 매겨봅시다. 주군."
강무는 갑자기 평원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평원군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싸움 구경을 하고 있었다.
"주군, 만약 전쟁이 나서 적군이 이 저택으로 들이닥친다면, 공손 선생의 저 '백마비마' 논리로 적을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적장이 흰 말을 타고 올 때 '그것은 말이 아니니 내리지 못한다'고 설득해서 돌려보낼 수 있습니까?"
평원군이 멈칫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어렵겠지."
"그렇다면 공손 선생과 저 삼천 식객들이 매일 축내는 밥값은 대체 무엇을 위한 비용입니까? 전쟁이 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불량 자산'에 주군은 막대한 투자를 하고 계신 겁니다."
강무의 말은 비수가 되어 식객들의 가슴을 찔렀다. 그것은 그들의 존재 가치(Identity)를 부정하는 말이었다.
공손룡이 부들부들 떨며 소리쳤다.
"네놈이 감히! 우리는 주군의 덕을 칭송하고 조나라의 문화를 꽃피우는 예인들이다! 너희 같은 칼잡이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고귀한 정신적 가치를 생산한단 말이다!"
"정신적 가치라. 좋습니다. 그럼 증명해 보십시오."
강무는 소매 안에서 엽전 한 닢을 꺼내 바닥에 던졌다. 쨍그랑, 맑은 소리가 대청을 울렸다.
"내기 하나 합시다. 제가 이 저택 안에서, 공손 선생의 그 고귀한 삼천 식객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을 찾아오겠습니다. 만약 제가 찾아온 사람이 선생보다 주군께 더 큰 이득을 준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제 목을 내놓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긴다면……."
강무는 잠시 말을 멈추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이 식객들의 밥값을 절반으로 줄이고, 그 돈을 위무기 장군의 군대 양성에 쓰도록 해주십시오."
장내가 술렁거렸다. 목숨을 건 내기였다. 평원군은 자극적인 도박판이 벌어지자 눈을 반짝였다.
"재미있군! 좋다. 내기를 허락하마. 기한은 사흘이다. 사흘 안에 나를 감동시킬 '진짜 인재'를 데려오라. 단, 위무기는 제외다. 이미 아는 얼굴은 재미없으니까."
공손룡은 비웃음을 흘렸다.
"좋소. 어디 똥밭에서 구르던 놈을 데려올지 기대해보겠소. 하지만 명심하시오. 주군의 안목은 천하제일이오. 어설픈 재주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오."
사흘의 시간. 강무는 그 시간 동안 한단의 유명한 학자나 장군을 찾아다니지 않았다. 대신 그는 평원군 저택의 가장 깊숙하고 더러운 곳, '공방(工房)'을 뒤지고 다녔다.
이 거대한 저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하인이 필요했다. 그중에서도 공방은 무기, 수레, 농기구를 수리하는 곳으로, 기름때와 쇠 냄새가 진동하여 고귀한 식객들은 근처에도 가지 않는 곳이었다.
깡, 깡, 깡.
규칙적인 망치질 소리가 들려왔다. 강무는 허름한 대장간 앞에 멈춰 섰다. 그곳에는 곰처럼 덩치가 크고 한쪽 다리를 저는 사내가 땀을 뻘뻘 흘리며 화살촉을 두드리고 있었다.
사내의 이름은 모소(毛疎). 사람들은 그를 '벙어리 곰'이라 불렀다. 말을 심하게 더듬고, 생김새가 흉측하여 아무도 그와 대화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무가 주목한 것은 그의 외모가 아니라, 그의 주변에 쌓인 '실패한 화살촉'들이었다.
수백 개의 화살촉이 바닥에 버려져 있었다. 강무가 하나를 집어 들었다. 날카롭고 매끈했다. 일반 병사들이 쓴다면 충분히 훌륭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모소는 그것을 고개를 저으며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이게 마음에 안 드나?"
강무가 묻자, 모소가 깜짝 놀라 망치를 떨어뜨렸다.
"누, 누구…… 십니까?"
"지나가던 장사치일세. 이 화살촉, 내가 보기엔 훌륭한데 왜 버리는 건가?"
모소는 얼굴을 붉히며 더듬거렸다.
"무, 무게 중심이…… 1푼(약 0.3cm)…… 어긋났습니다. 이러면…… 오십 보 밖에서는…… 빗나갑니다."
"1푼의 오차 때문에 버린다?"
"화살은…… 생명입니다. 빗나가면…… 아군이 죽습니다."
강무의 눈이 번뜩였다. 그는 '머니볼(Moneyball)'의 빌리 빈처럼, 남들이 보지 못하는 데이터를 발견했다. 다른 대장장이들이 하루에 100개를 만들 때, 모소는 10개밖에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무능하고 게으른 장인'으로 낙인찍혀 있었다.
하지만 강무의 눈에 비친 모소의 데이터는 달랐다. [생산량: 낮음. 품질: 최상급(Six Sigma). 불량률: 0%.]
전쟁터에서 화살 100발을 쏴서 1명을 맞히는 것보다, 10발을 쏴서 1명을 맞히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모소의 화살은 바로 그 '적중률(Hit Rate)'을 보장하는 명품이었다.
"자네, 이름이 뭔가?"
"모, 모소…… 라고 합니다."
"모소. 자네는 오늘부터 나랑 같이 갈 곳이 있네."
"어, 어디를……?"
"자네가 만든 저 화살의 진짜 가치를 알아봐 줄 사람에게."
강무는 바닥에 떨어진 화살촉 하나를 주머니에 넣었다. 흙 속에 묻혀 있던 진주를 캐낸 순간이었다.
약속한 사흘째 되던 날.
평원군의 연회장은 다시 사람들로 가득 찼다. 공손룡은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제자들을 대동하고 앉아 있었다.
"그래, 강 선생. 데려온다는 인재는 어디 있소?"
강무가 들어왔다. 그의 뒤에는 남루한 작업복을 입고, 잔뜩 겁을 먹은 모소가 절뚝거리며 따라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낡은 활 하나와 화살 통이 들려 있었다.
좌중이 술렁거렸다.
"뭐야? 저 거지는?" "대장간의 벙어리 곰이잖아? 저런 천한 놈을 감히 주군 앞에 데려와?"
야유와 비난이 쏟아졌다. 평원군의 표정도 일그러졌다. 그는 아름답고 고상한 것을 좋아했다. 모소의 흉측한 외모와 기름 냄새는 그의 미학(Aesthetic)에 모욕이었다.
"강무. 내게 모욕을 주려는 것이냐? 저런 놈이 공손 선생보다 낫다고?"
"주군. 겉모습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진짜 보석은 돌 속에 숨어 있는 법입니다."
강무는 모소를 앞으로 밀었다.
"이 자는 말을 더듬고 다리를 접니다. 시를 지을 줄도 모르고, 예법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자에게는 여기 계신 삼천 명의 식객이 갖지 못한 유일한 재주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 '거짓말을 하지 않는 기술'입니다."
강무는 마당 한가운데에 갑옷을 입힌 허수아비를 세우게 했다. 그리고 그 허수아비의 가슴에 작은 붉은 점을 찍었다. 거리는 백 보(약 120m). 일반적인 궁수라면 맞히기 힘든 거리였다.
"공손 선생. 선생의 제자 중에 활을 쏠 줄 아는 자가 있습니까?"
공손룡은 코웃음을 쳤다.
"우리는 글을 읽는 선비요. 그런 야만적인 기술은 필요 없소."
"그렇군요. 그럼 제가 대신 쏘겠습니다. 단, 활과 화살은 이 대장간에서 아무거나 주워온 일반적인 것을 쓰겠습니다."
강무는 평범한 활을 들어 허수아비를 향해 쏘았다. 슝- 탁! 화살은 허수아비의 어깨에 맞았다. 빗나간 것은 아니었으나, 치명상은 아니었다.
"보시다시피, 보통의 화살은 백 보 밖에서 정확도가 떨어집니다. 바람의 영향, 화살깃의 불균형 때문이지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전쟁에서 수만 발의 화살을 낭비하는 이유입니다."
강무는 이번에는 모소에게 활을 건넸다.
"모소. 평소 하던 대로 해라."
모소는 떨리는 손으로 활을 잡았다. 하지만 시위를 당기는 순간, 그의 눈빛이 변했다. 흔들림 없는 자세, 호흡의 멈춤.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피이잉-!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화살이 날아갔다. 퍽! 화살은 정확히 허수아비 가슴의 붉은 점 정중앙에 꽂혔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우연이겠지."
하지만 모소는 멈추지 않았다.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이 연달아 날아갔다. 퍽! 퍽! 놀랍게도 뒤이어 날아간 화살들이 먼저 꽂힌 화살의 깃을 쪼개며(Robin Hood style) 정확히 같은 자리에 박혔다.
"이, 이럴 수가……."
평원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것은 기예에 가까운 솜씨였다.
강무가 조용히 말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모소가 만든 화살은 무게 중심의 오차가 머리카락 한 올 두께도 되지 않습니다. 그는 남들이 100개를 대충 만들 때, 완벽한 10개를 만들기 위해 90개를 버리는 미련한 장인입니다."
강무는 허수아비에게 다가가 화살을 뽑아 들고 평원군에게 다가갔다.
"주군. 공손 선생의 화려한 말은 귀를 즐겁게 하지만, 적을 죽이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모소가 만든 이 화살은 반드시 적의 심장을 뚫습니다. 전쟁터에서 주군의 목숨을 지켜주는 것은 시(詩)가 아니라, 바로 이 '정확한 기술'입니다."
강무는 화살촉을 높이 들었다.
"이 화살촉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쌀 한 됫박입니다. 하지만 이 화살이 적장 한 명을 죽인다면, 그 가치는 금 천 근에 달합니다. 반면, 여기 계신 식객분들은 하루에 금 수십 근을 쓰시지만, 과연 그만큼의 가치를 생산하고 계십니까?"
강무는 '비용 대비 효용(Cost-Benefit)'이라는 잣대를 들이밀었다.
"주군. 모소 같은 기술자 백 명을 양성하는 데 드는 돈은, 공손 선생의 술값 한 달 치면 충분합니다. 어느 쪽에 투자하시겠습니까?"
평원군은 화살촉을 받아 들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매끄러운 곡선, 완벽한 균형.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달래주는 부적처럼 느껴졌다.
"아름답구나……."
평원군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는 본능적으로 '생존'을 선택했다.
"강무의 말이 옳다! 말만 번지르르한 놈들 백 명보다, 이 벙어리 장인 한 명이 내게는 더 귀하다!"
공손룡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혔다.
"주, 주군! 어찌 저런 천한 기술쟁이와 저희를 비교하십니까!"
"시끄럽다! 너희가 매일 떠드는 그 놈의 백마비마가 이 화살보다 멀리 날아가느냐? 당장 물러가라!"
평원군은 모소를 단상 위로 불렀다.
"여봐라! 오늘부터 모소를 공방의 책임자로 임명한다. 그에게 비단옷을 내리고, 매일 고기를 먹게 하라!"
모소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엎드렸다.
"가, 감사합니다…… 주군……."
강무는 그 모습을 보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승부의 추가 기울었다.
그날 밤. 약속대로 식객들의 예산이 대폭 삭감되었다. 그 돈은 고스란히 위무기의 군대와 모소의 공방으로 흘러들었다.
서원(西院)의 마루에 앉아 달을 보던 강무에게 향희가 다가왔다.
"선생.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 콧대 높은 식객들의 기를 완전히 꺾어놓으셨군요."
"아직 시작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제 겨우 '생산 수단'을 확보했습니다. 모소의 기술로 만든 무기로 위무기의 군대를 무장시키면, 조나라 최강의 사병(私兵) 집단이 탄생할 겁니다."
강무는 술잔을 기울였다.
"하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밥그릇을 뺏긴 개들은 반드시 주인을 뭅니다. 공손룡은 이대로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더 교활하고, 더 더러운 수법으로 반격해오겠지요."
"그럼 어찌하실 겁니까?"
"그가 더러운 수를 쓴다면, 우리는 그보다 더 더러운 '진흙탕 싸움'을 준비해야죠. 다행히 제게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한 명 있습니다."
"전문가요?"
"예. 탐욕스럽고, 비열하며,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 친구죠."
강무의 시선이 어둠 속을 향했다. 그곳에는 문지기 서 집사가 굽신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이제 강무의 충실한 '이중간첩'이 되어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나리. 공손룡 그 자가 방금 진나라 사신과 몰래 접촉했다는 소문을 물어왔습니다."
서 집사의 보고에 강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진나라 사신이라…… 배신(Treason)의 냄새가 나는군요. 아주 구린내가 진동을 해."
강무는 장부를 펼쳤다.
[새로운 퀘스트 발생: 내부의 적 색출.] [리스크: 공손룡과 진나라의 결탁.] [보상: 조나라 조정의 권력 장악.]
"서 집사. 자네 오늘부터 공손룡의 뒤를 좀 캐야겠어. 그가 먹은 뒷돈, 여자 관계, 그리고 진나라 놈들과 주고받은 서신들. 모조리 찾아와."
"헤헤, 걱정 마십시오. 남의 뒷조사는 제 전공입니다요."
서 집사가 비열하게 웃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강무는 옥잔에 술을 채우며 중얼거렸다.
"자, 이제 정치질(Politics)을 시작해볼까."
난세의 밤은 길었고, 강무의 장부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었다. 그는 이제 단순한 경영자가 아니라, 국가의 운명을 건 도박판의 설계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4화 끝)
[용어 설명]
주인-대리인 문제 (Principal-Agent Problem): 주인을 위해 일해야 할 대리인(하인, 관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인을 속이거나 태만하게 구는 현상. 평원군의 식객들과 하인들이 저지르는 비리가 전형적인 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Gresham's Law): 소재 가치가 낮은 화폐(악화)가 높은 화폐(양화)를 시장에서 몰아내는 현상. 여기서는 무능하고 아첨하는 가짜 인재들이 진짜 인재(위무기, 모소)를 밀어내는 상황을 비유했다.
비용 편익 분석 (Cost-Benefit Analysis): 어떤 선택을 할 때 들어가는 비용과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비교하여 결정하는 경제학적 방법. 강무는 식객들의 유지비와 그들의 효용을 비교하여 평원군을 설득했다.
백마비마 (白馬非馬): 전국시대 명가(名家)의 대표적 논제. '희다는 속성과 말이라는 속성은 다르므로 흰 말은 말이 아니다'라는 궤변. 강무는 이를 '현실적 효용성'의 관점에서 반박했다.
식스 시그마 (Six Sigma): 불량률을 최소화하는 품질 관리 기법. 모소의 화살 제작 방식은 생산 속도는 느리지만 불량률이 제로에 가까운 장인 정신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