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허영(虛榮)이라는 이름의 우량주

by 연구소장

조(趙)나라의 도읍, 한단(邯鄲)의 성문은 천하의 중심이라 자부하듯 웅장했다. 그 거대한 문으로 수많은 상인과 유세객, 그리고 협객들이 밀물처럼 드나들었다. 개중에는 진짜 인재도 있었으나, 대개는 혀끝으로 밥을 빌어먹으려는 사기꾼들이었다.


강무는 성문 밖 십 리 지점에 위무기의 군대를 멈춰 세웠다. 이천여 명의 병사와 비현성의 백성들. 겉보기에 그들은 나라 잃은 유랑민에 불과했다. 먼지를 뒤집어쓴 갑옷, 이가 빠진 창날. 누가 봐도 '매수'하고 싶은 매력적인 상품은 아니었다.


위무기 장군은 불안한 듯 연신 마른세수를 했다.


"선생, 정말 평원군(平原君)이 우리를 받아주겠소? 그는 천하의 공자(公子)요. 식객만 삼천 명을 거느린다는 호걸인데, 우리 같은 패잔병들을 거들떠보기나 하겠소?"


위무기의 걱정은 타당했다. 평원군 조승(趙勝). 전국사군(戰國四君) 중 하나로 꼽히는 그는 재산이 왕에 버금갔고, 인재 욕심이 많아 천하의 기재들을 모으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그것은 곧, 그의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드는 경쟁자가 삼천 명이나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강무는 말 위에서 한단의 성벽을 올려다보며, 품속의 장부를 꺼내지 않았다. 대신 머릿속으로 '브랜드 가치 평가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평원군. 재물은 많으나 식견은 얕고, 명예욕은 높으나 실속은 없는 인물.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과시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의 화신이지.'


강무가 보기에 평원군의 '식객 삼천'은 일종의 수집품 컬렉션이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덕망이 높은지 과시하기 위해 사람을 모았다. 즉, 그에게 사람은 '기능(Function)'이 아니라 '액세서리(Accessory)'였다.


"장군. 명품은 기능이 좋아서 비싼 게 아닙니다.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이기에 비싼 법이지요."


강무는 흙먼지가 묻은 위무기의 망토를 털어주며 말했다.


"지금부터 장군은 패잔병의 우두머리가 아닙니다. 제나라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의(義)를 위해 목숨을 걸고 백성을 지켜낸 '살아있는 전설'이 되셔야 합니다. 표정을 펴십시오. 구걸하러 가는 게 아니라, 기회를 주러 가는 사람처럼 오만하게 구셔야 합니다."


강무는 향희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여독으로 파리해진 안색이었지만, 오히려 그 창백함이 비운의 왕녀라는 서사를 완성해주고 있었다.


"향희 낭자, 한단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비단 가게에 들러야겠습니다. 우리의 자본금(악의에게 뜯어낸 군량미)을 좀 태워야겠군요."


한단성 내, 평원군의 저택 앞은 인산인해였다. 자신을 받아달라며 이력서를 들고 온 유세객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그 줄의 끝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저택의 문지기, 서(徐) 집사는 콧노래를 부르며 뒷짐을 지고 있었다. 그는 평원군의 문지기라는 직책 하나로 한단에서 떵떵거리는 권력자였다. 그의 눈도장은 곧 출세의 동아줄이었기에, 줄을 선 선비들은 그에게 은근슬쩍 뇌물을 찔러넣기에 바빴다.


"어허, 이 사람은 글렀어. 관상이 흉해. 다음!"


서 집사는 거만하게 손을 휘저으며 뇌물의 액수에 따라 입장 순서를 정하고 있었다. 이것은 전형적인 '지대 추구(Rent Seeking)' 행위였다. 권력의 길목을 막고 통행세를 걷는 간신들의 수법.


그때, 저 멀리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낡은 마차 한 대와 수십 기의 기병이 다가왔다.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뭐야? 어디서 온 거지 떼들이야?" "갑옷을 보니 제나라 군인들 같은데?"


마차가 멈추고, 강무가 내렸다. 그는 화려하지는 않으나 정갈한 학창의를 입고 있었다. 강무는 줄을 무시하고 곧장 대문으로 걸어갔다.


"멈춰라! 어디서 굴러먹던 놈들이 감히 순서를 무시하느냐!"


서 집사가 눈을 부라리며 앞을 막아섰다. 그의 뒤로 건장한 하인들이 몽둥이를 들고 섰다. 보통의 유세객이라면 여기서 기가 죽어 굽신거리거나 돈주머니를 꺼냈을 것이다.


하지만 강무는 서 집사를 투명 인간 취급하며, 대문에 걸려 있는 현판을 올려다보았다.


"[호현(好賢)]. 현자를 좋아한다라…… 글씨는 명필이나, 문지기를 보니 주인장의 안목은 그리 명필이 아닌 모양이군."


"뭐, 뭐라? 네놈이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서 집사가 얼굴이 붉어져 소리쳤다. 강무는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내려 서 집사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차가운 이성으로 번들거렸다.


"이보게, 문지기 양반. 자네는 지금 인생 최대의 실수를 저지르고 있네."


"실수?"


"나는 지금 천하의 보물을 가지고 왔네. 그런데 자네가 그 길을 막는다면, 훗날 평원군께서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자네의 목이 붙어 있을 것 같은가? 아니면, 내가 보물을 들고 다른 곳, 예컨대 춘신군(초나라의 재상)에게 갔다는 소문이 돌면, 자네 주인이 자네를 용서할 것 같은가?"


강무의 목소리에는 묘한 확신이 서려 있었다. 이것은 '손실의 프레이밍'이었다. 뇌물을 주지 않으면 못 들어간다는 프레임을, 나를 막으면 네가 죽는다는 프레임으로 전환한 것이다.


서 집사는 움찔했다. 평원군은 인재를 놓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만약 저놈이 진짜 거물이라면?


"흥, 허세 부리지 마라. 보물? 네놈 행색을 보아하니 빈털터리 같은데, 무슨 보물이 있다는 말이냐?"


"보물은 마차 안에 있지."


강무가 손짓하자, 마차의 커튼이 걷혔다. 그곳에는 위무기 장군이 갑옷을 입고 정좌하고 있었다. 낡았지만 수많은 칼자국이 새겨진 갑옷, 그리고 그 옆에 앉아 있는 절세미인 향희.


하지만 강무가 가리킨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위무기의 무릎 위에 놓인, 붉은 비단으로 감싼 상자였다.


"저 안에는 제나라 왕실의 옥새(玉璽)보다 더 귀한 것이 들어있네. 평원군께서 저것을 보는 순간, 자네에게 상을 내리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 걸세. 자, 선택하게. 지금 문을 열고 영웅을 맞이한 충직한 하인이 될 텐가, 아니면 천하의 인재를 문전박대하여 주군의 명성에 먹칠을 한 간신이 될 텐가?"


서 집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간신'이라는 말보다 '주군의 명성에 먹칠'이라는 말에 반응했다. 평원군의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것이야말로 그의 생존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잠깐 기다려라. 내 주인께 여쭈어보겠다."


문이 열렸다. 강무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첫 번째 관문, '문지기(The Gatekeeper)'를 뚫었다. 이제 진짜 보스, '허영심(Vanity)'을 공략할 차례였다.


평원군의 연회장은 화려함의 극치였다. 수백 개의 촛불이 대낮처럼 밝혀져 있었고, 비단 옷을 입은 식객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평원군의 비위를 맞추며 공짜 술을 얻어먹는, 이른바 '식객충(食客蟲)'들이었다.


상석에는 평원군 조승이 앉아 있었다. 그는 기름진 얼굴에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있었으나, 눈빛에는 권태로움이 묻어났다. 매일 똑같은 아첨, 똑같은 유희. 그는 무언가 새로운 자극, 자신의 명성을 드높여줄 '이벤트'를 원하고 있었다.


"제나라에서 온 위무기라고?"


평원군이 강무 일행을 내려다보았다. 위무기는 긴장한 듯 어깨가 굳어 있었고, 향희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강무만이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저는 위 장군의 책사, 강무라고 합니다."


"흐음. 소문은 들었네. 비현성을 연나라에 내주고 도망쳤다지? 그런 패장이 내게 무슨 볼일인가?"


연회장의 식객들이 킥킥거렸다.


"패장이래, 패장." "밥이나 얻어먹으러 왔겠지."


조소와 비아냥이 쏟아졌다. 위무기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게 물들었다. 그때, 강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패장이라니요. 군께서는 잘못 알고 계십니다. 저희는 도망친 것이 아니라, '의(義)'를 지키기 위해 잠시 물러난 것입니다."


"의를 지켰다?"


"그렇습니다. 악의 장군이 십만 대군으로 성을 에워쌌을 때, 위 장군께서는 백성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명예를 버리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성을 불태우고 옥쇄(玉碎)하여 영웅으로 죽을 수도 있었으나, 그것은 장군 한 사람의 명예일 뿐, 백성들에게는 재앙이지요. 장군께서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백성을 살리는 '가시밭길'을 택하신 겁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대협(大俠)의 풍모가 아니겠습니까?"


강무의 목소리가 연회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리고, 저희가 이곳에 온 것은 밥을 빌러 온 것이 아닙니다. 군께 '기회'를 드리러 온 것입니다."


"기회?"


평원군이 흥미롭다는 듯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무슨 기회란 말인가?"


"지금 천하의 사람들은 평원군을 두고 '부자이긴 하나 진정한 사람 볼 줄은 모른다'고 수군거립니다. 식객은 삼천이나 되지만, 그중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 자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순간, 연회장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술을 마시던 식객들의 표정이 굳었다. 강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지금 군의 눈앞에 있는 위무기 장군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백성과 부하를 지킨 '의리의 화신'입니다. 만약 군께서 위 장군과 그 휘하 이천의 병사를 받아주신다면, 천하는 군을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평원군은 패배한 장수라도 그 기개와 의로움을 높이 사서 귀빈으로 모셨다'는 소문이 퍼지겠지요. 그리되면 군의 명성은 맹상군이나 춘신군을 능가하여, 전국 사군 중 으뜸이 될 것입니다."


강무는 평원군의 아킬레스건인 '라이벌 의식'을 건드렸다. 맹상군, 춘신군. 그들과 비교되는 것은 평원군이 가장 참지 못하는 일이었다.


평원군의 눈빛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위무기라는 '상품'이 갑자기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패잔병이 아니라, 자신의 명예를 드높여줄 '한정판 트로피'였다.


"오호라…… 그럴듯하군. 확실히 맹상군 녀석은 돈만 알지 이런 낭만을 모르지."


평원군이 고개를 끄덕이려던 찰나, 그의 옆에 앉아 있던 한 사내가 부채를 탁 접으며 끼어들었다.


"주군, 속지 마십시오. 저자의 혀에 놀아나시면 안 됩니다."


그는 평원군의 수석 책사, 공손룡(公孫龍)이었다. 그는 뱀처럼 교활한 눈매를 가진 논리학자였다. 그는 강무를 쏘아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궤변이로다. 의를 지켰다? 포장만 번지르르할 뿐, 결국은 싸움에 져서 갈 곳이 없어 기어 들어온 것 아닌가? 주군, 이천 명의 병사를 먹여 살리려면 하루에 쌀이 몇 섬이나 드는지 아십니까? 저들은 쓸모없는 '식충이'들입니다. 주군의 곳간을 축내러 온 메뚜기 떼란 말입니다."


공손룡은 철저한 '비용 편익 분석(Cost-Benefit Analysis)'을 들이밀었다. 식객들의 여론이 다시 공손룡 쪽으로 기울었다.


"맞아, 쌀이 아깝지." "제나라 놈들을 왜 우리가 먹여 살려?"


위무기가 고개를 떨구었다. 평원군도 다시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때, 강무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역시 조나라 제일의 지성이라는 공손룡 선생답군요. 쌀 계산은 참으로 빠르십니다."


"뭐라고?"


"하지만 선생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요. '가격(Price)'과 '가치(Value)'를 혼동하고 계십니다."


강무는 품에서 주사위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던졌다. 또르르 굴러간 주사위가 멈췄다.


"선생, 이 주사위는 나무로 깎은 것이니 가격은 동전 한 닢도 안 됩니다. 하지만 만약 이 주사위가 천하의 운명을 결정할 도박판에 쓰인다면, 그 가치는 성(城) 하나와도 맞먹겠지요."


강무는 평원군을 바라보았다.


"군이시여. 이천 명의 병사를 먹이는 쌀? 물론 아깝습니다. 하지만 그 쌀값으로 군께서는 무엇을 얻습니까? 바로 '이천 개의 칼'과 '이천 개의 심장'입니다. 위무기 장군의 병사들은 사지(死地)에서 살아 돌아온 정예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받아준 군을 위해 언제든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강무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결정적인 한 방을 날렸다.


"지금 진(秦)나라가 호시탐탐 조나라를 노리고 있습니다. 장평(長平)에서의 전운이 심상치 않지요. 만약 전쟁이 터진다면, 군의 곁에 있는 저 삼천 명의 식객들이 칼을 들고 싸우겠습니까? 아니면 혀만 놀리며 도망치겠습니까?"


연회장의 식객들이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팩트 폭격이었다.


"하지만 위무기의 군대는 다릅니다. 그들은 이미 지옥을 경험했습니다. 군께서 쌀값이라는 '보험료'를 내시면, 전쟁이 났을 때 가장 확실한 '보장 자산'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선 사업이 아닙니다. 가장 확실한 '안보 투자'입니다."


평원군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는 허영심이 많았지만, 동시에 겁도 많은 인물이었다. 진나라의 위협은 그에게도 실재하는 공포였다.


공손룡이 반박하려 입을 열었지만, 강무는 틈을 주지 않았다.


"게다가, 제가 가져온 보물은 병사들뿐만이 아닙니다."


강무는 위무기가 들고 있던 붉은 비단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서 은은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사람들이 목을 빼고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옥으로 만든 술잔 한 쌍이 들어 있었다.


"이것은……?"


"제나라 왕실에 전해 내려오던 '천년빙옥(千年氷玉)'으로 만든 잔입니다. 술을 따르면 그 향이 천 리를 가고,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는 보물이지요. 위 장군께서 군을 뵙는 예물로 가져오셨습니다."


사실 그것은 비현성의 부자가 소장하고 있던 꽤 비싼 옥잔일 뿐, 천년빙옥 같은 것은 아니었다. 강무가 오는 길에 향희의 조언을 받아 비단 가게에서 포장재를 사고, 그럴싸한 전설을 붙여(Storytelling) 만든 '위조된 명품'이었다.


하지만 평원군에게 중요한 것은 진위가 아니었다. '남들이 못 가진 희귀한 것'이라는 스토리가 중요했다.


"오오…… 천년빙옥이라니!"


평원군의 눈이 뒤집혔다. 그는 보물 수집광이기도 했다.


"군이시여. 위 장군을 받아주십시오. 그러면 이 옥잔과 이천의 군사, 그리고 천하의 명성이 모두 군의 것이 됩니다. 만약 거절하신다면…… 저희는 이 옥잔을 들고 초나라의 춘신군에게 갈 수밖에 없습니다. 듣자 하니 춘신군은 보물 보는 눈이 탁월하다더군요."


강무는 마지막으로 '박탈감(FOMO - Fear Of Missing Out)'을 자극했다. 네가 안 사면 네 라이벌이 산다.


평원군은 벌떡 일어났다.


"아니, 이보게! 무슨 섭섭한 소리를! 내 어찌 영웅을 몰라보겠는가! 위 장군은 오늘부터 내 상객(上客)이다! 여봐라, 당장 별채를 비우고 최고급 술상을 차려라!"


"주, 주군! 다시 생각하셔야……!"


공손룡이 말렸지만, 이미 평원군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옥잔을 만지작거리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강무는 위무기에게 눈짓했다. '성공입니다.' 위무기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평원군에게 절을 올렸다.


"감사합니다, 군의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연회장은 다시 왁자지껄해졌다. 식객들은 태세를 전환하여 위무기에게 술을 권하며 아첨하기 시작했다. "역시 장군님은 관상이 남다르십니다." "제가 딱 보니 영웅의 기상이 서려 있었습니다."


강무는 그 역겨운 풍경을 보며 조용히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밤하늘에는 달이 차오르고 있었다. 향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 잘 되었습니까?"


"예. 예상대로입니다. 평원군은 아주 비싼 값에 우리의 '재고(위무기와 병사들)'를 매입했습니다."


강무는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진짜 거래는 이제부터입니다."


"네?"


"우리는 조나라라는 거대한 주식회사에 '소액 주주'로 입성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내부에서 회사를 장악해야죠. 평원군의 저 멍청한 허영심을 이용해, 조나라의 군권을 야금야금 먹어치울 겁니다."


강무의 눈이 한단의 궁궐 쪽을 향해 빛났다. 그곳에는 평원군보다 더 까다롭고, 더 위험한 진짜 권력자들이 도사리고 있을 터였다.


그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아까 강무에게 수모를 당했던 문지기, 서 집사였다.


"이보시오, 강 선생."


향희가 긴장하여 강무의 옷자락을 잡았다. 서 집사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다가오더니, 갑자기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아이고, 선생! 몰라뵙고 실례를 범했습니다. 앞으로 필요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제게 말씀하십시오.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강무는 피식 웃었다. 권력의 흐름에 가장 민감한 것이 바로 이런 '간신'들이다. 강무는 품에서 엽전 꾸러미 하나를 꺼내 서 집사에게 던져주었다.


"수고하게. 내 자네에게 부탁할 일이 아주 많을 거야. 특히…… 이 집안의 '장부'를 좀 보여줘야겠네."


"자, 장부라니요?"


"평원군이 어디에 돈을 쓰고, 어디서 뇌물을 받는지 적어놓은 비밀 장부 말일세. 자네 같은 꼼꼼한 사람이 그런 걸 안 만들어 뒀을 리가 없지."


서 집사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강무는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귓가에 속삭였다.


"걱정 마. 나는 자네를 고발하려는 게 아니야. 우리 같이 '해 먹자'는 거지. 판을 더 키워서 말이야."


강무의 제안은 악마의 속삭임처럼 달콤했다. 서 집사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무는 돌아서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결하려면, 내부 고발자(Whistleblower)를 포섭하는 게 가장 빠르지.'


난세의 한복판, 조나라에서의 첫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강무의 장부에는 새로운 자산이 추가되었다.


[자산 추가: 평원군이라는 '숙주', 위조된 명성, 그리고 부패한 문지기.]


(3화 끝)


[용어 설명]


과시 소비 (Conspicuous Consumption): 미국의 경제학자 베블런이 제시한 개념. 자신의 지위나 부를 과시하기 위해 가격이 비쌀수록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 강무는 위무기를 '유지비가 많이 드는 사치재'로 포장하여 평원군의 허영심을 자극했다.


지대 추구 (Rent Seeking): 경제 주체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로비, 약탈, 방어 등 비생산적인 활동에 자원을 낭비하는 현상. 문지기 서 집사가 통행세를 걷는 행위가 전형적인 예다.


앵커링 효과 (Anchoring Effect): 처음 제시된 정보(기준점)가 이후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 강무는 위무기를 '패잔병'이 아닌 '의리의 영웅'이라는 기준점에 닻을 내리게 하여 평원군의 인식을 조작했다.


FOMO (Fear Of Missing Out): 기회를 놓칠까 봐 두려워하는 심리. 강무는 라이벌인 춘신군을 언급하며 평원군의 경쟁 심리를 이용했다.

토, 일 연재
이전 02화제2화: 공포는 가장 비싼 화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