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단(邯鄲)의 뒷골목, 홍등가인 '취월루(醉月樓)'는 낮보다 밤이 더 화려한 곳이었다. 권력자들의 은밀한 욕망과 더러운 거래가 술잔 속에 녹아드는 이곳에, 오늘따라 기묘한 손님이 찾아왔다.
강무는 허름한 평복 차림으로 취월루의 가장 깊숙한 별실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곁에는 그림자처럼 서 집사가 따르고 있었다. 서 집사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나, 나리. 정말 들어가시게요? 저 안에는 진나라의 첩보 대장 왕흘(王齕)이 와 있습니다. 호위 무사만 열 명이 넘는다고요. 우리 둘이 들어갔다가는 뼈도 못 추립니다."
"걱정 마라. 장사꾼은 칼을 든 놈보다 장부를 든 놈을 더 무서워하는 법이니까."
강무는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품속의 장부를 확인했다.
[거래 대상: 조나라의 군사 지도와 방어 배치도.] [매도자: 공손룡 (평원군의 책사).] [매수자: 왕흘 (진나라 첩보 대장).] [현재 시장가: 금 1,000근.] [나의 목표: 이 거래에 '세금'을 매기는 것.]
강무는 거침없이 방문을 열어젖혔다.
"실례하겠습니다. 계산서가 누락되어 찾아왔습니다."
방 안의 공기가 일순간 얼어붙었다. 은은한 향냄새가 진동하는 밀실 안, 술상 맞은편에는 창백하게 질린 공손룡과, 늑대처럼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 왕흘이 앉아 있었다. 왕흘의 호위무사들이 반사적으로 칼을 뽑아 강무의 목을 겨눴다.
"누구냐, 네놈은!"
왕흘이 으르렁거렸다. 공손룡은 강무를 보자마자 사색이 되어 찻잔을 떨어뜨렸다. 쨍그랑, 깨진 도자기 파편이 정적을 갈랐다.
"가, 강무! 네가 어떻게 여길……!"
강무는 서슬 퍼런 칼날들을 무시하고 유유히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공손룡과 왕흘 사이의 빈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칼은 거두시지요. 피 냄새가 나면 비싼 술맛이 떨어지지 않습니까. 저는 그저 이 거래의 '중개인' 자격으로 왔습니다."
"중개인? 우린 중개인 따위 부른 적 없다. 죽어라!"
왕흘이 눈짓하자, 무사가 칼을 높이 쳐들었다. 그때 강무가 탁자 위에 장부 하나를 툭 던졌다.
"그 칼을 내리기 전에, 이 장부의 3페이지부터 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거기엔 왕흘 장군께서 지난달 초나라 승상에게 뇌물을 주려다 배달 사고가 나서 500금을 날린 내역이 적혀 있거든요. 진나라 왕께서 아시면 참 좋아하실 내용이지요."
왕흘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것은 진나라 내부에서도 극비 사항이었다. 저놈이 그걸 어떻게?
강무는 서 집사가 긁어모은 정보(Big Data)의 힘을 확신하고 있었다. 정보의 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try)이 존재하는 한, 정보를 더 많이 가진 쪽이 갑(甲)이다.
"모두 물러가라."
왕흘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무사들이 주춤거리며 칼을 거두고 방 밖으로 나갔다. 방 안에는 셋만 남았다.
강무는 젓가락을 들어 안주를 집어 먹으며 공손룡을 바라보았다.
"공손 선생, 실망입니다. 조나라의 군사 기밀을 고작 금 1,000근에 팔다니요. 이건 덤핑(Dumping)입니다. 시장 질서를 이렇게 어지럽히시면 곤란하죠."
"무, 무슨 소리냐! 나는 그저……."
"탁자에 놓인 저 두루마리. 조나라 북방 국경의 요새 배치도 아닙니까? 저게 넘어가면 조나라 병사 3만이 죽습니다. 병사 한 명의 양성 비용을 쌀 10석으로만 쳐도 30만 석. 돈으로 환산하면 금 3만 근의 가치인데, 그걸 1,000근에 넘겨요? 선생은 매국노이기 이전에 셈을 할 줄 모르는 바보군요."
공손룡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의 얼굴은 공포와 수치심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왕흘이 흥미롭다는 듯 강무를 쏘아보았다.
"재미있는 놈이군. 그래서 네놈이 원하는 게 뭐냐? 이 사실을 평원군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해서 돈이라도 뜯어낼 셈인가?"
"아뇨. 평원군에게 알리면 공손 선생은 죽습니다. 그러면 거래가 깨지죠. 저는 거래가 깨지는 걸 원치 않습니다. 오히려 '성사'시키러 왔습니다."
강무의 말에 공손룡과 왕흘, 두 사람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라고?"
"단, 조건이 있습니다. 이 거래의 '구조'를 좀 바꿔야겠습니다."
강무는 술잔에 술을 채우며 말을 이었다.
"왕흘 장군. 지금 공손 선생이 주는 지도는 '반쪽짜리'입니다. 겉보기엔 진짜 같지만, 핵심인 '병참 이동 경로'가 빠져 있죠. 공손 선생은 겁이 많아서 차마 그것까진 빼돌리지 못했거든요. 맞습니까?"
공손룡이 흠칫 놀랐다. 정곡을 찔린 것이다.
"하지만 제가 그 나머지 반쪽을 채워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평원군 저택의 모든 장부를 관리하고 있으니까요."
"네놈…… 조나라를 배신하겠다는 거냐?"
왕흘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배신이라니요. '헤징(Hedging)'입니다. 조나라가 망할 경우를 대비해 저도 진나라 쪽에 보험 하나쯤은 들어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무는 웃고 있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는 지금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공손룡과 왕흘, 두 사람은 서로를 믿지 못한다. 강무는 그 불신 사이를 파고들어 자신만이 유일한 신용 보증인(Clearing House)이 되려 하고 있었다.
"좋다. 네가 원하는 대가는?"
"금 3,000근. 그리고 공손 선생이 받기로 한 1,000근 중 500근은 제 수수료로 떼겠습니다."
"뭐, 뭐라? 내 돈을?"
공손룡이 발끈했지만, 강무가 차갑게 쏘아보자 깨갱 하고 꼬리를 내렸다.
"싫으면 관두시든가. 대신 이 장부는 내일 아침 평원군의 밥상 위에 올라갈 겁니다."
"아, 알겠소! 주겠소! 준다고!"
공손룡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끄덕였다.
왕흘은 잠시 계산기를 두드려보더니(물론 머릿속으로),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배짱 한번 두둑한 놈이로구나. 좋다. 금 3,000근. 조나라의 운명치고는 싸지. 하지만 만약 네가 준 정보가 가짜라면, 내 첩자들이 지구 끝까지 쫓아가 네 가죽을 벗길 것이다."
"걱정 마십시오. 제 신용 등급은 트리플 A니까요."
거래는 성사되었다. 강무는 그 자리에서 지도의 나머지 부분을 그려주었다(물론, 아주 교묘하게 조작된, 적을 늪지대로 유인하는 경로였다). 왕흘은 만족하며 전표를 끊어주었고, 공손룡은 자신의 몫을 뺏기고도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강무는 두툼한 전표를 품에 넣고 일어섰다.
"그럼, 좋은 밤 되십시오. 아, 공손 선생. 나오실 때 술값은 선생이 계산하시는 거 잊지 마시고."
취월루를 빠져나온 강무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서 집사는 다리가 풀려 거의 기어 나오다시피 했다.
"나, 나리. 정말 미치신 겁니까? 적에게 지도를 팔아넘기다니요! 이건 진짜 매국노가 아닙니까!"
"서 집사. '공매도(Short Selling)'라고 들어봤나?"
"공…… 뭐요?"
"없는 주식을 빌려서 팔고, 나중에 가격이 떨어지면 다시 사서 갚는 거지. 나는 방금 진나라에게 '조나라의 승리'라는 주식을 미리 판 거야. 놈들은 지도를 얻었다고 좋아하며 공격해오겠지. 하지만 그들이 공격해오는 그 길목은 우리가 파놓은 함정이 될 거다. 진나라 군대가 박살 나면, 조나라의 가치는 폭등하고 진나라의 가치는 폭락하겠지. 그때 우리는 폭락한 진나라의 자존심을 헐값에 사들이면 된다."
강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이 금 3,500근. 이걸로 우리는 진짜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서원(西院)으로 돌아오자, 위무기 장군과 향희가 기다리고 있었다. 위무기는 강무가 가져온 엄청난 양의 금표(金票)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이게 다 뭡니까? 평원군이 하사금이라도 내렸습니까?"
"아뇨. 공손룡 선생과 진나라 왕흘 장군께서 '기부'해주신 군자금입니다."
강무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위무기의 얼굴은 붉어졌다가 파랗게 질렸다가를 반복했다.
"적을 속이기 위해 적에게 정보를 팔았다니…… 선생의 담력은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구려. 허나, 그 조작된 지도로 적을 유인한다 해도 우리에겐 병력이 부족하오. 위무기 군 2,000명으로는 진나라 대군을 막을 수 없소."
"그래서 '레버리지(Leverage)'를 써야지요."
"레버리지?"
"지렛대 말입니다. 내 힘이 부족하면 남의 힘을 빌려서 무거운 것을 들어 올려야죠."
강무는 탁자 위에 조나라 지도를 펼쳤다.
"지금 조나라 북방에는 흉노족을 막기 위해 배치된 '이목(李牧)' 장군의 군대가 있습니다. 이목 장군은 조나라 최강의 명장이지만, 조정의 간신들에게 미움을 받아 변방으로 쫓겨나 있죠."
이목. 훗날 전국시대 4대 명장 중 하나로 꼽히는 전설적인 인물. 하지만 지금은 중앙 정치에서 밀려나 잊힌 존재였다.
"우리는 이 금으로 군수물자를 사서 이목 장군에게 보낼 겁니다. 평원군의 이름으로요."
"평원군의 이름으로?"
향희가 의아한 듯 물었다.
"예. 평원군은 자신이 보낸 줄도 모르겠지만, 이목 장군은 평원군이 자신을 후원해줬다고 믿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목 장군은 평원군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하겠지요. 나중에 우리가 위급할 때, 이목의 기병대를 빌려 쓸 수 있는 명분이 생깁니다."
강무는 이것을 '제3자 보증 마케팅'이라 불렀다. 평원군의 브랜드를 도용하여 실질적인 무력(이목)을 확보하는 전략이었다.
"향희 낭자. 낭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내일 당장 한단의 소문난 이야기꾼들을 매수하십시오. 그리고 이런 소문을 퍼뜨리세요."
"어떤 소문 말입니까?"
"'평원군이 밤마다 북방을 걱정하여 잠을 못 이루고, 남몰래 사재를 털어 이목 장군을 돕고 있다'는 미담 말입니다. 그리고 '공손룡은 진나라와 내통하고 있다'는 소문도 살짝 섞어서요."
"하하, 여론전(Public Opinion Warfare)이군요. 알겠습니다. 제 거문고 소리보다 더 멀리, 더 빠르게 퍼뜨려 드리지요."
향희의 눈이 장난기 어린 빛으로 반짝였다. 그녀는 이제 이 위험한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다.
며칠 후, 한단성 내에 기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백성들은 평원군의 우국충정에 감동했고, 공손룡을 보며 수군거렸다. 평원군은 영문도 모른 채 쏟아지는 찬사에 어깨가 으쓱해졌고, 공손룡은 불안에 떨며 바깥출입을 삼갔다.
그러던 어느 날, 북방에서 전령이 도착했다.
"이목 장군께서 평원군께 보내신 답례품입니다!"
수레 가득 실려 온 것은 흉노족에게서 빼앗은 명마(名馬) 100필과 최고급 모피였다. 평원군은 입이 떡 벌어졌다.
"내, 내가 언제 이런 걸……?"
평원군이 어리둥절해하자, 옆에 있던 강무가 재빨리 나섰다.
"주군! 겸손해하지 마십시오. 주군께서 위무기 장군을 통해 은밀히 보내신 군자금 덕분에 이목 장군이 대승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목 장군은 주군의 은혜에 감복하여, 언제든 주군이 부르시면 천 리 길을 달려오겠다고 맹세했답니다."
"오오…… 그래? 내가 술김에 그랬던가? 허허, 아무튼 잘된 일이로군!"
평원군은 자신의 기억엔 없지만, 어쨌든 결과가 좋고 명성이 올라갔으니 '자신의 치적'으로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이것을 '기억 왜곡'이라 부르지만, 강무는 '성공 보수(Success Fee) 가로채기'라 불렀다.
이로써 강무는 평원군의 금고를 털지 않고도(오히려 공손룡과 진나라 돈으로), 조나라 최강의 기병대인 이목 군단을 잠재적 우군으로 확보했다.
또한, 모소의 공방에서는 밤낮없이 신무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위무기의 병사들은 모소가 개량한 '연발 석궁'과 '경량 갑옷'으로 무장했다. 그들의 전투력은 이미 조나라 정규군을 능가하고 있었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강무는 서원 마루에 앉아 진나라 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왕흘. 네놈이 산 지도가 가짜라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을 거다. 너는 늪지대에서 허우적거리며 내 이름을 저주하게 되겠지."
그때, 대문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명(御命)이오!"
왕실 근위대였다. 조나라 효성왕(孝成王)이 보낸 사자였다.
"평원군 조승과 식객 위무기, 그리고 책사 강무는 즉시 입궁하라! 전하께서 급히 찾으신다!"
강무와 위무기, 향희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올 것이 왔다.
"진나라 군대가 국경을 넘은 모양입니다."
강무가 차분하게 말했다.
"드디어 우리 회사가 상장(IPO)될 타이밍이군요."
강무는 옷자락을 휘날리며 일어섰다. 이제 무대는 평원군의 저택에서 조나라 왕실이라는 더 크고 위험한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5화 끝)
[용어 설명]
정보의 비대칭성 (Information Asymmetry): 거래 당사자 중 한쪽이 다른 쪽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상태. 강무는 공손룡의 비리와 뇌물 내역을 알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협상 우위를 점했다.
공매도 (Short Selling):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될 때, 주식을 빌려서 판 뒤 나중에 싼값에 사서 갚아 차익을 남기는 투자 기법. 강무는 조나라의 위기(주가 하락)를 유도하고, 그 위기를 자신이 해결함으로써 더 큰 이익(정치적 입지)을 얻으려는 전략을 썼다.
죄수의 딜레마 (Prisoner's Dilemma): 두 공모자가 서로를 믿지 못해, 결국 둘 다 자백하거나 배신하게 되는 게임 이론의 상황. 강무는 공손룡과 왕흘 사이의 불신을 이용해 자신이 중개자가 되는 상황을 만들었다.
레버리지 (Leverage): 타인의 자본을 지렛대 삼아 자기 자본 이익률을 높이는 것. 강무는 평원군의 명성과 진나라의 자금을 이용해 이목 장군이라는 거대한 무력을 확보했다.
헤징 (Hedging): 현물 가격 변동에 따른 손실 위험을 줄이기 위해 선물 시장 등에서 반대 포지션을 취하는 것. 강무는 표면적으로 진나라에 협조하는 척하며(보험), 실제로는 그들을 함정에 빠뜨리는 전략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