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내디언처럼!

아이와 함께한 열다섯번째 여행지 ㅣ #3. 밴쿠버

by B구루



여행을 가면 가급적 현지의 교통수단을 이용해 보려고 한다. 버스나 지하철 트램을 타면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그곳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누군가는 통화를 하고, 누군가는 옆자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다.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는 이동수단 안에서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일은 생각보다 재미있다.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있으면 잠시 스쳐가는 여행자가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듯한 기분도 든다. 기분 좋은 낯섬과 설렘 사이, 도시와 썸을 타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이번 캐나다 여행에서 가장 도심에 속하는 밴쿠버에서는 가능한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밴쿠버 관광명소라는 그랜빌 아일랜드로 향하는 길, 보통은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루트지만 지하철을 타고 중간에 내려 수상택시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선착장 한 곳에 서서 기다리니 곧 작은 보트 한 대가 다가와 목적지를 묻는다. 그랜빌 아일랜드에 갈 거라고 하니 보트를 붙여 세우고 탈 수 있도록 계단을 내려준다.






작은 보트와 물결 사이, 마찰로 생겨난 물방울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수산 했던 어제와 달리 고요히 출렁이는 물결 속에 어느새 섬이 가까워지고 도착이다. 일요일 아침, 그랜빌 아일랜드는 적당한 햇살과 북적이는 사람들로 활기를 띠고 있다.



먼저 캐나다를 다녀온 지인이 인생 베이글이라며 꼭 먹어보라고 추천해준 가게를 찾아 마켓으로 들어갔다. 가게 이름을 몰라도 길게 늘어선 줄이 이 곳이 맛집임을 알려준다. 하프더즌 한 세트와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 야외 테이블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브런치를 즐기는 사람들 틈에 앉아 약속이 나한 듯 똑같이 동그란 베이글을 맛보고 있자니 꼭 캐내디언이 된 것 같다. 아주 천천히 커피 한 모금, 베이글 한 입을 번갈아 맛보며 밴쿠버의 햇살을 즐기는 오후, 어쩌면 이 순간을 위해 오늘 밴쿠버에 왔는지도 모른다.





공장지대였던 곳을 개조해 개성 넘치는 마켓과 상점거리로 변신시켜 볼거리가 가득한 그랜빌에서 천천히 상점 이 곳 저곳을 둘러보다 시내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메인 스트릿인 다운타운을 지나 종점에 내리니 커다란 시계탑이 기다리고 있다.



얼마가 지나니 시계탑이 하얀 증기를 뿜어내며 짧은 멜로디를 들려준다. 게스타운 시계탑이다. 15분에 한 번씩 증기를 내뿜는 시계탑을 보려고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왠지 그냥 걸음을 떼기 아쉬워 우리도 무리 속에 섞여 증기시계의 소리를 한 번 더 들은 후에 자리를 옮겼다.




다운타운 시내를 활보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향한 곳은 스탠리파크. 끝을 모르는 공원을 걷다 마음에 드는 벤치를 찾아 누웠다. 그리고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살을 누렸다. 결국 여행의 끝에 일상을 다시 살아가게 하는 것은 이 한 줌의 햇살일런지도. 여행을 마치고 분주한 일상을 살아가다 걸음을 멈추게 하는 기억들은 꼭 그런 것들이었다.






잠깐씩 바라보았던 그곳의 하늘, 아주 천천히 맛보았던 카푸치노 한 잔, 버스킹 하던 수염 아저씨의 기타 선율.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 건조한 하루를 버티게하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조금씩 하늘이 어두워지고 어느새 밴쿠버를 떠나야 할 시간이다.



나는 오늘 밴쿠버를 얼마큼 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짧은 여행의 아쉬움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지만 결국 아쉬운 마음은 이 곳을 다시 찾을 이유가 된다. 밴쿠버를 떠나는 걸음이 무겁지만 아직 이 여행에 지나간 날보다 남은 나들이 많다는 사실이 작은 위로가 된다.





글과 사진 | B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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