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려서

아이와 함께한 열다섯번째 여행지 ㅣ #2. 안녕 밴쿠버

by B구루



대만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열한 시간을 날아 캐나다에 도착했다. 대만에서 출발한 시간은 8월 5일 토요일 밤 11시였는데 캐나다에 내리니 다시 8월 5일 토요일 밤 9시가 되어있다. 시차 덕분에 시간을 거슬러 다시 토요일 밤을 만났다. 백튜더퓨처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온 기분이다. 마음만 먹으면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 하루씩 단축하는 삶을 살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재미있다.



폭염에도 불구하고 대만에서 스파르타 일정을 소화해낸 서연이는 캐나다행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잠이 들어 착륙 한 시간 전 기가 막힌 타이밍에 눈을 떠 키즈밀을 먹고 내렸다. 전철이나 버스보다 비행기를 많이 탄 다섯 살 아가씨에게서는 이제 제법 여행자의 티가 난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다가도 떼를 부릴 땐 자비 없는 엄마다. 그러다가도 이렇게 쌔근쌔근 잠이든 모습을 볼 때면 아직 겨우 다섯 살인데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제 새삼스럽지 않은 반성과 다짐의 일과다.


공항에 내리니 매튜가 가장 신이 났다. 대학생 때 6개월간 어학연수를 지내고 10년 만에 다시 찾은 캐나다에 감회가 새로운 모양이다. "진짜 신기해 공항에 내리니까 잊고 있었던 캐나다 냄새가 나.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냄새인데 이 냄새를 맡는 순간 갑자기 10년 전 그 냄새가 떠오르면서 소름이 돋았잖아. 아 낯선 곳으로 여행 와서 이렇게 맘 편한 것도 오랜만이네. 참 좋다." 누가 들으면 6년은 살았던 사람인 줄 알겠다며 놀렸지만 설레어하는 매튜를 보니 꼬마 아가씨와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호텔 체크인 후 짐만 내려놓고 바로 리치먼드 나이트마켓으로 향했다. 금토일 주말 저녁 6시부터 자정까지만 열리는 시장으로 400여 명의 상인이 모이는 리치먼드의 대표적인 축제다. 호텔에서 5분쯤 걸어가니 반짝이는 불빛의 마켓이 보인다.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 기내식을 먹었는데도 온갖 맛있는 냄새에 허기가 몰려온다. 무얼 먹을까 돌아보다 사람들이 바글바글 몰려있는 곳에 가보니 한국에서 날아온 회오리감자 푸드코너다. "이건 먹어야 해. 하나씩 3개 사 먹자!" 한국에선 명동이나 서현동에 갈 때마다 흔히 보던 길거리 음식인데 이상하게 캐나다에서 먹는 회오리 감자는 더 맛있다.


가족이나 친구 단위로 마켓을 찾은 캐나다 사람들 틈에 섞여 열심히 시장을 활보했다. 이 곳을 기억할 예쁜 접시와 한국에서 충분히 챙겨 오지 못한 여벌의 양말까지 구입하니 콧노래가 나온다. 밤 11시가 넘어가니 푸드코트에서 50% 세일이 시작된다. "이건 몰랐네 조금만 기다렸다 먹을걸." 매튜에게 푸념했지만 코를 찌르는 유혹에 더는 기다리지 못했을 거란 걸 잘 알고 있다.


바닷가 옆이어서인지 마켓을 나올 즈음엔 밤바람이 추워 후디를 목 끝까지 잠그고 모자까지 덮어썼다. 캐나다는 저녁 8시만 되어도 상점 문을 꼭꼭 닫고 각자의 집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처음 만난 캐나다 밴쿠버의 밤은 반짝반짝 활기가 가득한 모습이다. 아침의 밴쿠버는 어떤 모습일까. 내일을 상상하는 마음이 즐거운 건 지금 여행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긴 밤을 날아 다시 만난 밤이지만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글과 사진 | B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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