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한 열네번째 여행지 ㅣ #1. 다시 찾은 대만
두 달 만에 다시 찾은 대만은 폭우가 쏟아지던 오월과 달리 37도의 폭염으로 뜨겁게 달구어져 있었다. 스탑오버 후 다시 캐나다행 비행기를 타는 일정으로 아침부터 자정까지 넉넉한 시간이 확보된 만큼 두 달 전 찾았던 외곽코스 중 좋았던 곳을 다시 돌아보기로 했다.
대만은 택시투어를 이용한 외곽 여행이 대중화되어있다. 시내에서 한 시간 이상 떨어진 외곽까지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기보다 택시를 빌려 주요 코스를 올데이로 함께 이동하는 방식이다. 이번에도 지난 여행 때 이용했던 '대만놀러왕 택시투어'를 통해 이동할 코스와 승하차 시간을 예약해 두었다.
한국에서 예약할 당시 이번 코스를 함께 할 기사님의 사진과 성함을 보내주었는데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당황했었다. 사진 속 기사님의 포스가 거진 마피아보스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을 뿐 아니라 카톡 프로필엔 권총 사진까지 버젓이 있어 장기밀매, 납치 등 영화에서 보았던 각종 사건들이 자연스레 떠오를 정도였다.
매튜와 기사님을 변경할지에 대해 상의해 보았지만 대중화된 앱을 통해 예약한 것이니만큼 별일 없을 거란 생각에 그대로 진행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 찝찝한 마음은 남은 채였다. 이제 열흘간의 긴 여행에 첫 경유지인 대만 투어가 시작될 참이었다.
택시 탑승 전 여유시간이 남아 두 달 전 애정 했던 쇼핑몰의 편집샵에 잠시 들르기로 했다. 스누피를 모티브로 하는 리미티드 에디션 판매숍이었는데 지난 여행 때도 잔망스러운 상품들에 마음을 빼앗겨 운동화며 옷가지를 잔뜩 데려온 곳이었다.
역시나 아기자기한 물건들에 눈이 휘둥그레져 정신없이 둘러보는 찰나 서연이가 매면 예쁠 배낭과 매튜의 티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만 마냥 착하지만은 않은 가격에 몇 번을 들었다 놨다 고민을 하다 저녁 일정에 대만을 떠나기 전 한번 생각해보기로 하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그때였다. 택시 미팅 시간이 다 되어 코너를 돌아 출구 쪽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누군가 우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편집샵의 점원 언니가 뛰어오고 있었다. 손에는 작은 스누피 열쇠고리가 들려진 채였다. 숨이 차도록 뛰어온 언니는 미소를 띠며 선물이라는 말과 함께 열쇠고리를 건네고는 뭐라 고맙다는 인사를 할 틈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순간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렸다.
그저 수많은 외국인 손님 중 하나였을텐데 숨이 차도록 뛰어와 전해준 선물이라니. 왜였을까. 대만에 도착해 막 여행을 시작하던 타이밍에 전해받은 선물이 마음을 단단히 예열해 버렸다. 고마운 마음에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미팅 장소로 향했다.
다행히 기사 아저씨는 우려했던 것과 달리 환한 미소로 우릴 맞아 주었다. 오늘 이 택시를 타고 스펀-핑시-허우통-101타워를 찾을 것이다. 택시여행을 시작하며 37도라 그래서 긴장했는데 이 정도면 습한 한국의 날씨보다 낫다며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아직 진짜 더위는 모습을 드러내기 전이었다.
스펀에 도착하자 이글이글 타는 태양이 집어삼킬듯한 열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와 중에도 얼굴이 벌겋게 익은 우리는 4색 천등에 면마다 소원을 적고 카메라용 웃음을 탑재한 채 기념사진까지 찍는 임무를 완수해냈다. 닭다리 볶음밥을 2개씩 먹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천등에는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 이라고 적었다. 다시 돌아갈 일상을 견디어내기 위한 여행자의 다짐이었다.
천등에는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
이라고 적었다.
더위에 약한 매튜는 금방이라도 쓰러질듯한 표정으로 흔들 다리를 건너 택시로 향했다. 핑시까지 가는 10분 잠시 에어컨 바람을 쐬니 조금 살 것 같았다. 다시 핑시에서 기운을 내보고자 했으나 역시 무리였다. 결국 상점거리는 최단으로 아이쇼핑만 하고 지난 여행 때 아지트로 삼았던 카페에 들러 아이스라테를 원샷하는 것으로 핑시 투어를 마무리했다.
생각해보면 꼭 그랬어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다. 돌아보니 꼭 두 달 전 대만 여행 때가 그랬다. 대만 정부에서 재난 문자까지 보내올 정도로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었지만 지금 같은 더위였더라면 꼬박 대만에서만 3박 4일을 보내야 하는 일정을 소화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흠뻑 비를 맞으며 길 위를 활보했던 것이 언제였나. 지나 보니 비가 와서 더 기억에 남는 그래서 참 좋았던 여행이었다.
날이 더워서인지 고양이 마을인 허우통에서 조차 고양이를 볼 수 없었다. 그래도 대만 이곳저곳은 여전히 아기자기했고 골목마다 아늑한 모습이 꼭 그대로였다. 101 타워에서 저녁을 먹고 기사 아저씨와 작별인사를 해야 할 시간 짐을 지고 떠나려는데 아저씨가 수줍은 얼굴로 작은 봉지 하나를 내미신다.
스펀에서 팔던 미니 천등과 허우통에서 찍어주신 가족사진 인화본이었다. 순간 여행을 떠나오기 전부터 아저씨의 인상에 색안경을 끼고 거리를 두었던 것이 떠올랐다. 언제 준비하셨는지 마음이 담긴 선물에 코끝이 다 찡해졌다. 대만에서 받은 두 번째 선물이었다. 아저씨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길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공항으로 가는 걸음이 느려졌다.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서연이는 아저씨가 주신 선물을 손에 쥐고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엄마 천등은 어떻게 하늘로 날아가?" "엄마 천등이 날아가면 뭐가 나오지?" 이렇게 좋아하는걸 왜 기념품을 살 생각을 못했을까. 그저 거리에 널린 게 천등 기념품이어서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아저씨가 주신 천등이 더 귀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수속 체크인을 마치고 캐나다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매튜에게 말했다. "사실 아까 택시 내리기 전까지도 아저씨가 다른 곳에 내려주는 건 아닐까 계속 무서웠는데 그랬던 마음이 너무 미안하네. 요즘 세상이 무서워서 아저씨의 친절에도 끝까지 마음을 놓지 못했는데. 오늘 대만 와서 선물을 두 개나 받았네. 우리도 여행하면서 친구가 생기면 이런 선물을 주자. 그럼 참 좋겠다. 그치?"
내 말에 하루사이 덥수룩하게 수염이 자란 매튜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진심이 편견을 이겼다. 그 순박한 마음에 나는 완전히 지고 말았다. 선입견이란 얼마나 편협하고 못난 것인가. 섣부른 판단과 오해는 금물 결국 마음이 이긴다는걸 또 여행이 가르쳐주었다.
글과 사진 | B구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