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오늘같은
금방이라도 알프스소녀 하이디가 뛰어나올 것 같은 그림같은 풍경 속에서 어제와 오늘 내일의 경계를 잊으려 노력해본다. 아직 여행이 열흘 넘게 남았다는 사실, 오늘이 여행의 둘째날 이라는 사실에 수시로 안도한다.
오늘 우리는 운이 좋은 여행자였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루체른 마켓을 구경했고 이른 새벽 눈을 떠 여유있게 리기산 트래킹을 할 수 있었다. 기차시간까지 거짓말처럼 딱딱 맞아 해가 지기 전에 그린덴발트에 도착했고 아이거 산을 마주보고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마친 지금 비오는 소리를 듣고 있다.
나의 첫번째 스위스 친구가 생긴 날이기도 하다. 매튜는 영어도 서툰 내가 어떻게 스위스 아줌마와 한시간 가까이 수다를 떨었는지 기이해 했지만 말이 다 통하지 않아도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살아온 도시와 살고싶은 도시, 저마다의 삶에 대하여. 여행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서연이는 알까? 오늘 우리가 함께한 그림같은 풍경들이 유난히 지치는 어느 날을 살게하는 기적같은 하루가 될거란걸. 아무일 없이 예쁜 풍경에 감탄하고 마음껏 즐거워할 수 있었던 오늘이 우리 인생에 기적과도 같은 날이라는걸.
여행이 행복을 연습하기 위한 시간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일상에선 웃지 못해서. 지금에 충실하지 못해서. 자꾸만 두려워해서. 여행을 떠나 오직 그 순간에 집중하고 마음껏 웃으며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시간들을 보내본다. 이토록 자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고 벅차다. 모든 순간은 조금씩 희미해져가고 결국엔 잊힐 것이다. 결국 마음에 남는 것은 오늘 우리가 함께 웃었다는 사실일지도.
글과 사진 ㅣ B구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