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의 이상(理想)
나의 일상을 살게 하는 것은 8할이 여행이었다. 여행을 하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인지, 일을 하기 위해 여행을 가는 것인지 알 수 없을만큼 떠났다 돌아오기를 자주 반복했다. 현실에 두 발을 딪고서서 꽂꽂하게 버티다 두어달에 한번씩 아끼던 연차를 쓸때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짐을 싸고 떠났다.
계절마다 떠났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다 연말정산을 할 때가 되어서야 차 한 대의 값과 여행을 맞바꾸었단 사실을 깨닫곤 했다. 반성은 깊었지만 이내 또 떠났다. 그리고 또 다시 다달이 카드값을 값는 월급 노예의 생활을 이어나갔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만큼 오래전부터 나는 타국의 삶이 궁금했다.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과는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이 곳은 낮인데 저 곳은 밤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러나 타국으로 여행을 떠날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스스로 학비를 충당해야 했고 늘 세 탕 이상의 알바를 뛰어야 할 만큼 바빴던 내게 여행은 꿈도 꿀 수 없을만큼 큰 사치였고 이상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을 때 이제부터 제대로 여행을 해보리라 다짐했지만 남자친구가 결혼을 하자고했다. 일년을 쫓아다녀 내 사람이된 그였지만 헤어지자고 했다. 결혼은 내 인생에 그려본 적 없는 단어였고 나는 이제부터 제대로 여행을 다녀볼 참이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럼 나랑 결혼하고 같이 다니자.” 깜박 넘어갔다. 나는 그와 결혼을 했고 한 사람의 연봉은 여행에 쏟아붓는. 일반적인 경제관념을 가진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이해받을 수 없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떠나느냐고 물었다. 그러게. 왜 그렇게 나는 떠나야만 하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도 보았다. 그냥 좋았지만 무언가 좀 더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그저 여행을 떠나면 마주할 수 있는 낯선 풍경들이 좋았다. 쓰던 화장품이 다 떨어지고 물건 하나쯤 잃어버려도 살아지는. 여행중이기에 웃어넘길 수 있게되는 여유가 좋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억력이 좋지않아 다녀온 곳의 지명, 묶었던 호텔, 길 위에서 만난 친구의 이름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였지만 그 곳에서 우리가 보낸 시간들이, 떠올릴 수 있는 장면들이 가슴에 남는 것이 좋았다. 비슷한 풍경을 보았을 때 함께 떠올릴 수 있는 타국에서의 추억들이 쌓여가는 것이 좋았고 우리들만이 나눌 수 있는 단 하나의 경험들이 축적되는 것이 좋았다.
그저 좋았다. 어디든, 어떻든 그저 떠나는 것이 좋았다. 할수만 있다면 매일을 이렇게 여행만 다녀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몇 달을 성실한 직장인의 모습으로 살고, 다시 낯선 길 위에서 선다. 할수만 있다면 언제까지고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
서울에서는 누군가가 찾아온 여행지의 배경이었다가 다시 날아간 낯선 땅에선 누군가의 일상을 배경으로 여행 하면서. 여섯살이 된 나의 아이에게 여행을 통해 남겨준 한가지가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떠날 수 있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과 사람이 있고 답안지 같은 인생은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나는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떠나고 싶다. 끊임없이 헤매이고 실수하면서.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좋은. 벅찬 설레임으로 나의 인생을 여행하듯 그렇게 살아나가고 싶다.
글과 사진 ㅣ B구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