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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구루 Sep 15. 2022

개와 함께 떠난다는 것

Part1. 프로 정착러가 되는 길 : 조금 긴 여행을 준비하는 방법



우리 가족은 진심으로 개를 사랑한다. 남편과 나는 둘 다 부모님의 반대로 결혼을 통해 완전한 독립을 하기 전까지 집에서 개를 키우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반려견을 맞이하는 것이 오랜 염원이었기에 결혼하고 허니문 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첫 번째 반려견 초코를 입양했다. 처음 만났을 때 2개월 된 아기로 손바닥 위에 올라갈 만큼 작았던 푸들 초코는 어느새 13살이 되었고, 우리와 모든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많은 추억을 공유한 더없이 소중한 존재가 됐다.

 


두 번째 반려견 마음이는 초코의 나이 듦을 느끼며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에 입양한 골든 두들이다. 대형견을 꼭 키워보고 싶었던 우리는 가능하면 초코를 닮은 아이를 만나길 원했고 리트리버와 푸들이 반반 섞여 초코와 닮은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몸집은 크고 온순한 마음이를 두 번째 가족으로 맞이하게 됐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초코는  아이 곁 있었고, 둘은 함께 성장했다. 그래서인지 이는 개와 함께 하는 일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산책  만나는 모든 개와 인사하길 원할만큼 개를 좋아했다. 개에 관한 책도 많이 읽으며 우리  애견 훈련사를 자처했다. 가족 모두가 개를 좋아하는 만큼 우리에게 개는 삶에 빼놓을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1년간의 미국행을 앞두고 개들과 동행할지 여부에 대한 의견은 엇갈렸다. 남편은 개들과 동행하길 원했고, 나는 한국에 있는 부모님께 개들을 부탁드리고 가자는 의견이었다.

 


11시간이 걸리는 장시간의 비행을 나이 든 초코가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선천적으로 알러지가 있어 잔병치레가 많은 예민한 마음이를 미국까지 데려가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국의 동물병원은 수의사를 한 번 대면하는 것만으로도 수십만원이 넘는 비용이 나올 만큼 진료비가 비싸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아플 때 감당하지 못할 비용이 발생될까 걱정됐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늘 진료해 주시던 수의사 선생님조차 미국에 나이 든 초코와 잔병치레가 많은 마음이를 데려가는 것은 걱정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고집은 꺾을 수가 없었다. 가족이 아프면 두고 갈 수 있냐고, 내가 아프면 두고 가겠냐고 반문하며 개들에 대한 동행 여부를 의논하려 할 때마다 나의 말문을 막히게 하기 일쑤였다. 남편은 미국에 가서 아이들이 아플 시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하더라도 치료를 할 것이며, 그 역시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며, 아이들과 함께 가면 더 많은 이들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며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했다. 결국 남편의 뜻을 존중해 아이들을 데려가기로 했고 그때부터는 오로지 아이들을 안전하게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매주 동물병원을 방문하며 사전에 필요한 예방접종 및 필요 서류들을 준비해 나갔다.

 


구비서류가 부족하거나 잘못 갖춰지게 되면 공항에서 아이들을 데려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기에 인천공항 검역소 측에 몇 번이고 문의를 해가며 마지막까지 서류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출국할 때에는 아이들의 건강증명서와 검역증명서만 준비하면 되었으나,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에는 광견병 접종 후 항체가 생겼다는 것을 증명하는 광견병 항체 가검사지까지 미리 준비해야 했기에 챙겨야 할 것이 많았다. 우리는 두 달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모든 준비를 마쳐야 했고 혹시나 광견병 접종 후 항체가 생기지 않게 되면 이후 모든 일정이 틀어질 수 있었기에   서류가 완전히 준비되기 전까지 마음을 졸여야 했다.

 


다행히 우여곡절 끝에 일정 내 모든 서류를 준비할 수 있었고, 아이들을 늘 진료해 주시던 수의사 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 정기적으로 복용이 필요한 심장사상충, 외부기생충, 구충제, 귀약까지 미리 구비하여 든든한 마음으로 출국할 수 있었다. 출국 당일, 장시간의 비행 끝에 아이들을 만나던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마음이는 어쩌다 켄넬 안에 걸어준 물병을 떨어뜨렸는지 물병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얼마나 목이 말랐을까 안쓰러웠고, 초코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켄넬 안에 배변 패드를 깔아주었음에도 쉬아를 하지 않고 참아 켄넬에서 나오자마자 아주 오랫동안 쉬아를 했더랬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걱정이 무색하게 미국에 온 뒤 아이들은 마음껏 산책하고, 어딜 가나 환영받으며 잘 지내주었다. 초코와 마음이를 데리고 집 앞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면 우리처럼 개를 키우는 다른 반려인들이 꼭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몇 살이야? 남자야 여자야?, 개 이름이 뭐야?” 간단한 이야기를 주고받다 서로의 이름을 묻고, 전화번호까지 교환하며 친구가 되는 일이 허다했다. 남편의 말이 맞았다. 미국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은 대부분 아이들을 통해 만나게 된 사람들이었다. 처음 미국에 와 모든 것이 낯선 상황 속에서 서툰 언어로 매일을 고군분투해야 했을 때도 집에 돌아오면 온 몸으로 반가워하며 맞아주던 아이들이 있었기에 외롭지 않았다.


 

미국에 도착한 후 짧은 연휴 동안 우리는 라스베가스부터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까지 약 열흘간 서부 로드 트립을 떠났는데 이때도 물론 아이들과 함께였다. 실제 개와 함께 하는 여행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털친구들에게 관대한 미국이라고 해도 호텔에 머물 때면 시트에 발자국이 묻거나 카펫에 쉬를 하는 일이 없도록 수시로 야외 배변을 했야 했고, 외출할 때에도 아이들만을 호텔에 남겨둘 수 없었기에 어디나 동행해야 했다.


 

개와 함께 출입이 가능한 곳도 많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기에 관광지에서도 많은 볼거리를 포기해야 했으며 꼭 가보고 싶었던 레스토랑 앞에서도 출입 제한 딱지가 붙어있으면 그대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간혹 출입이 가능한 곳이 있더라도 야외 테이블로 국한된 곳이 대부분이었기에 비바람이 부는 날에도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식사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
개와 함께 하는 여행,
개와 함께 하는 삶은 그런 불편함 속
순간의 특별함을 누리는 일이었다.


함께 걷고, 함께 나누며 더 특별해지는 우리들만의 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일, 우리는 그런 삶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고 믿는다. 아이들과 함께였기에 우리의 미국 생활은 더 풍성해질 수 있었다.

 


<애견 동반 출입국 시 필요서류>


<왼쪽> 2021년 1월 마음이 처음 우리에게 왔던 날  <오른쪽> 2021년 12월 미서부 로드 트립 중 브라이스 캐년에서의 초코와 마음


일상의 사소한 순간마다 감사해진다.
아무런 의심도 요구도 없이.
그저 가만히 바라봐주는
까만 눈동자를 마주할 때마다.

오늘도 말없이 다가와
체온을 나눠주는 나의 친구들.
38.5도의 개가 주는 위안은 마치 기적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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