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프로 정착러가 되는 길 : 조금 긴 여행을 준비하는 방법
미국행을 결심한 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건 한국집의 살림살이를 비우는 일이었다. 결혼하고 10년이 넘은 살림은 각종 수납장과 공간을 빽빽하게 메우고 있어 무엇부터 비우고 정리해야 할지 가늠이 안 될 정도였다. 고민 끝에 오래된 물건이 많은 기존 살림 대부분을 버리고 일 년 후 돌아와 새살림을 장만하기로 했다. 우리는 결혼할 때 양가 부모님의 지원을 받지 않고 우리의 힘으로 식을 올리고 살림을 시작했기 때문에 당시에도 새로 산 살림보다는 각자 싱글일 때 사용하던 물건을 재활용한 것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모두 버려도 아쉬움이 없을 만큼 저마다 수명을 다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마침, 살던 집에 새로 입주하시기로 한 세입자 가족 또한 우리 아이보다 3살 정도 어린 딸이 있어 미국으로 떠나게 될 우리의 상황을 말씀드리며 혹시나 필요한 가구가 있다면 쓰셔도 좋고, 일부 판매 가능한 물건도 있다고 하니 흔쾌히 목록을 요청하셨다. 결과적으로 제안드린 가구 중 대부분을 재활용 또는 구입하기로 하셔서 폐가구 처리 비용을 절약함과 동시에 중고로 판매한 가구의 수익금을 이사 비용에 보탤 수 있었다. 그렇게 큰 살림 대부분을 세입자분께 인계하기로 한 상황에서 살림살이를 계속해서 비워나갔는데 놀랍게도 비자가 발급된 후 매일 같이 비우고 정리를 해도 무엇이 비워졌는지 느낄 수 없을 만큼 짐은 그대로였다. 중고 판매가 가능한 물건들은 틈틈이 지역 거래 장터인 당근 마켓을 통해 판매하는 동시에 주말마다 집 안을 가득 메운 책들을 알라딘으로, 예스 24로 몇 박스씩 나르며 팔았는데도 우리의 비워내기는 미국으로 출국하기 이틀 전까지 끝날 줄을 몰랐다.
비워도 비워도 다시 채워지는 화수분처럼 오래된 살림에 다섯 식구의 물건이 차고 넘쳤다. 수많은 물건 가운데 멀쩡한 물건을 버리자니 죄책감과 아쉬운 마음이 들었고, 남기자니 이게 꼭 필요한 물건일까 혼란스러웠다. 어쩜 이렇게 많은 짐을 지고 살았을까 싶었다. 그러나 모든 물건은 비울지, 보관할지 저마다의 운명을 정해 주어야 했다. 매일 이 어려운 숙제를 해가는 과정에서 나름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냈는데 그것은 바로 버릴 물건을 골라내는 것 대신 남길 물건을 정하는 것이었다. 무엇을 버릴까 생각하면 복잡해지던 마음이 무엇을 남길까로 바꿔 생각하자 한결 명료해졌다. 남겨야 할 물건에는 뚜렷한 목적과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겨야 할 대상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처분하는 방향으로 선택의 기준을 바꿔 비움에 속도를 붙여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건을 비워내는 과정에서 계속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비움과 관련된 책을 찾아 읽기까지 하며 계속해서 정리에 열을 올렸다. 옷을 비워낼 때에는 곤도 마리에의 책에서 본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말을 떠올리며 멀쩡하더라도 다시 입고 싶지 않은 옷과 지난 일 년 간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을 골라냈다. 한국집을 비워야 하는 이사 이틀 전까지도 여전히 처분을 기다리는 많은 물건들이 남아 있었지만 결국에는 모두 정리해냈다. 그렇게 쿠팡에서 구매한 이삿짐 정리 상자 5개로 자잘한 물건들을 모두 추리고 비교적 최근에 산 가전과 옷가지만 남긴 채 비움 프로젝트의 대장정을 마쳤다. 남긴 물건들은 모두 시부모님댁 방 한편에 보관을 부탁드리고 미국으로 떠나왔다.
약 한 달 반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물건들을 비워내며 앞으로는 정말 신중하게 물건을 들이자 수없이 다짐했다. 살림을 비워내는 과정은 어렵고 고단했지만 줄어가는 세간살이를 보며 마음까지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비워내는 일은 단순히 물건을 버리는 일에 지나지 않고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이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미국에 와서 새롭게 살림을 장만할 때에도 꼭 필요한 물건만을 카트에 담으며 그토록 꿈꾸었던 미니멀 라이프로 삶의 방식을 전환할 수 있었다.
리셋, 살면서 한 번쯤은
이렇게 소유했던 모든 짐을
정리할 계기가 주어져도 좋겠다.
나는 미국행을 계기로 모든 소유물을 점검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되었고, 이를 통해 내가 살아온 방식을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