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프로 정착러가 되는 길 : 조금 긴 여행을 준비하는 방법
한국 집을 비워야 할 날짜는 정해졌는데, 현지에서 거주할 집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남은 기간은 두 달. 미국 유학을 준비하며 틈틈이 현지 부동산 사이트에 소개된 매물들을 구경하긴 했지만 막상 집을 구하려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남편은 무슨 자신감인지 자신만만했다. “괜찮아, 지금부터 미리 조건에 맞는 집을 찾아 리스트업 해두었다가 미국 가서 호텔 잡고 일주일 정도 머물면서 직접 가보고 결정하면 돼.” 남편의 말을 듣자마자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아이와 개 두 마리를 데리고 호텔에 머물며 집을 보러 다닐 우리를 상상하니 시작도 하기 전부터 머리가 아팠다. 집을 직접 보고 계약하길 원하는 남편에게 나는 정착 서비스를 이용해 보자고 제안했다.
우리가 거주지로 고려하고 있는 지역을 포함해 캘리포니아 전반의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아하 빌라라는 곳에 문의 메일을 보내고 서비스 선택에 따른 견적과 진행방식을 안내받았다. 남편은 1년이나 살 집을 직접 보지도 않고 대리인을 통해 계약한다는 사실을 못 미더워했지만 나는 네이버 카페에 올라온 수많은 후기글들을 보여주며 정착 서비스 계약을 밀어붙였다. 실제로 온라인 카페 에는 수년간 아하 빌라를 통해 정착 서비스를 이용하고 매우 만족했다는 글들이 많았다. 일의 진행방식이 우리의 기대와 다를 수는 있겠지만 이 많은 후기글들이 모두 만들어진 것은 아닐 터였다. 무엇보다 현지 입국 후 집을 구하게 될 경우 우리의 기대와 다르게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변수와 그에 따라 아이들이 고생하게 될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우리는 정착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10월 말 계약금을 입금하고 약 3주간 시차를 맞춰 지속적으로 소통을 해 나갔다. 처음 우리가 거주지로 고려한 지역은 사우스 패서디나 (South Pasadena)였다. 거주지 선택의 기준은 치안, 아이의 학군, 남편의 통학거리 (1시간 이내)였다. 사우스 패서디나는 안전하면서 평점이 높은 초등학교가 많은 곳으로 남편의 학교인 USC에서도 차량 이용 시 3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에 있어 좋은 후보지로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예상치 못한 데서 발생했다. 사우스 패서디나에 나오는 매물 자체가 적었던 데다 개 두 마리를 동행해야 하는 우리는 악조건의 세입자였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정착 서비스 측에서 제안해 주시는 집들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우리는 직접 부동산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매물들을 찾아보고 마음에 드는 매물이 있으면 검토를 부탁드려도 될지 여쭤본 후 정착 서비스 측과 함께 후보지로 고려할만한 대상을 리스트업해 나갔다.
그러나 부동산 사이트에 소개된 내용에 따라 펫이 가능한 매물을 찾고 그중 마음에 드는 집을 골라 검토를 요청해도 정착 서비스 측을 통해 컨텍해 보면 큰 개는 안된다거나 한 마리까지만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우리는 인근의 다른 지역까지 범위를 넓혀 매물을 검토하기로 했다. 사우스 패서디나 외에 추가 후보지로 검토한 곳은 LA 다운타운 인근의 파크 라브레아(Park La Brea), 레돈도 비치(Redondo Beach), 맨해튼 비치(Manhattan Beach) 그리고 팔로스 버디스(Palos Verdes) 지역이었다. 그렇게 계속된 물색 끝에 정착 서비스 측에서 추천해주신 매물과 우리가 리스트업 한 매물을 대상으로 현지에서 입주 가능 여부를 체크해 주시면 우리가 생각하는 기준 요건에 부합하는지 2차 체크를 해나가는 방식으로 후보지를 좁혀 나갔다.
우리가 매물을 찾고 기준 요건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체크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현지 주요 부동산 사이트인 Trulia/Zillow/Realtor에 가능 예산과 펫 가능 여부 등의 필터링 조건을 설정하고 마음에 드는 집을 리스트업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활용도가 높았던 사이트는 Trulia였는데 다른 사이트와 달리 해당 주거지의 범죄율 정보를 별도로 제공하고 있어 관심 매물의 치안 상태를 체크할 때 매우 유용했다. Trulia에서는 지도상에 범죄 수준을(Crime) 가장 낮음부터 높음까지 총 5단계로 분류하여 컬러 표기해 보여주고 있었는데 한눈에 해당 주거지역의 범죄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이 기능이 유용해서 다른 사이트에서 소개된 매물이라 하더라도 Trulia에 주소를 붙여 넣어 다시 한번 관심 매물의 치안 상태를 확인하기도 했다.
두 번째로 Greatschools.org에 접속해 학교의 평점 및 인종 비율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 사이트에서는 학생들의 평균 학력과 학업성취도, 교육환경 전반의 정보를 종합해 10점 만점 기준 학교 평점을 제공하고 있었다. 더불어 학생 대 교사 비율과 학생의 인종 비율도 함께 확인할 수 있어 전반적인 정보를 확인하기에 유용했다. 기본적으로 7점 이상일 경우 학군이 좋은 편에 속한다고 볼 수 있었기에 아무리 마음에 드는 매물이 있더라도 배정 학군의 평점이 6점 이하라면 과감하게 검토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후보 매물을 좁혀나갔다.
세 번째로는 관심 매물 인근의 편의시설들과 차 또는 도보를 이용한 이동거리를 체크하는 것이었다. 이 부분은 구글맵을 이용해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구글맵에 관심 매물의 주소를 입력하면 도서관, 공원, 마트, 커피숍, 헬스장, 아이를 위한 학원 등의 시설 여부와 함께 해당 편의시설까지의 이동거리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매물을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을 고려해 구글에서 제공하는 스트리트뷰 서비스를 통해 후보 매물의 주변 풍경과 분위기를 확인했다. 그렇게 이 모든 조건을 통과한 매물에 한해 정착 서비스 측에 대리 방문을 부탁드렸다. 약 3주간의 진행과정에서 최종 검토 매물로 채택해 정착 서비스 측에 대리 방문을 부탁드린 매물은 총 5개였다.
그렇게 일련의 과정들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보였지만 위기는 계속해서 찾아왔다. 현지에 거주할 집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고민할 새도 없이 빠르게 매물이 계약되어 사라지는 경우가 빈번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현지에서 직접 집을 보지 못하는 제한적인 상황에서도 빠른 판단과 의사결정이 필요했다. 결국 먼저 계약되었거나 기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매물을 제외하고 최종 후보지로 레돈도 비치(Redondo Beach)와 팔로스 버디스(Palos Verdes) 두 곳을 검토하게 됐다.
팔로스 버디스는 캘리포니아 내에서도 워낙 부촌으로 알려져 있어 지레 겁을 먹고 후보지로 검토조차 하지 않았었는데 개 두 마리가 있다 보니 펫 허용이 되는 집 자체를 찾기가 어려웠고 예산은 점점 올라갔다. 그렇다 보니 마지막까지 검토했던 다른 매물과 비교할 때 팔로스 버디스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측에 속했다. 부동산 사이트나 구글 스트리트뷰를 통해 소개된 팔로스 버디스 사진 속엔 기암절벽과 함께 드넓은 태평양 바다가 펼쳐져 있어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낯설게 느껴졌고 겁도 났다. 그러나 시간 끌며 고민만 하다가는 어렵게 추린 매물마저 놓쳐 버릴 세라 빠른 결단이 필요했다.
팔로스 버디스의 주변 풍경은 다른 후보 매물과 대조적이긴 했지만 이곳의 치안은 어느 곳 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안전했다. 더구나 매물 기준 배정학교를 비롯해 인근의 초등학교 모두 10점 만점 중 9점 이상을 기록할 만큼 학군이 좋았으며, 캘리포니아 내 대부분의 아파트에서는 세탁기와 건조기를 공동으로 사용해야 하는 곳이 많은 반면 팔로스버디스 후보 매물로 검토한 아파트에는 집 안에 세탁기와 건조기가 구비되어 있어 생활하기에도 편리할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은 남편이 MBA 과정을 마칠 때까지 단기로 미국에 거주할 계획이었기에 팔로스버디스의 한인이 다른 지역 대비 적다는 점이 우리에겐 장점으로 적용했다. 처음 적응할 때 외롭고 낯설긴 하겠지만 거주 기간이 1년 여로 짧은 편인만큼 완전한 현지 환경에서 거주하는 것이 언어발달 및 현지 문화 체험에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이었다.
단점이라면 남편의 학교까지 차로 50분가량 소요되는 거리에 있다는 것과 인근 편의시설 대부분을 차로 10분 이상 이동해야 한다는 점이었는데 학교와 편의시설을 도보로 이동 가능한 LA 다운타운의 파크라브레아가 아니라면 차량을 이용한 이동이 필수라는 점은 다른 지역과 유사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고민 끝에 떨리는 마음으로 치안과 학군이 좋은 팔로스 버디스를 최종 거주지로 선택하고 정착 서비스 측에 계약을 위한 리싱 오피스 방문을 부탁드렸다. 다행히 별다른 문제없이 최종 계약이 진행되었고 미국에 입국 하기 한 달 전 우리는 캘리포니아에 집 구하기 미션을 완수할 수 있었다.
처음 미국에 도착해 한국에서 미리 계약해 두었던 팔로스 버디스 아파트에 입주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집으로 가는 길 이름마저 Beachview 인 아름다운 길을 따라 태평양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고 하늘인지 바다인지 경계를 알 수 없는 파랑을 따라 달려간 길 끝에 리조트를 방불케 하는 아파트 입구가 자리 잡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자 테라스 창 밖으로 가장 먼저 보인 뷰는 수영장과 자쿠지 풀이었다.
첫날, 집에 들어가면 기존 세입자가 나간 후라 상태가 엉망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입주 청소를 한 듯 모든 것이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어 놀라웠다. 빌트인 가전인 냉장고, 전자레인지, 세탁기, 건조기, 식기세척기, 오븐의 상태도 무척 깨끗했다. 알고 보니 개인 소유의 하우스나 콘도 같은 경우 청소가 필요한 상태일 경우가 많지만 아파트는 회사에서 관리하며, 별도의 리싱 오피스(Leasing Office)를 두고 있어 기존 세입자가 나간 후 약 열흘 정도의 기간을 확보해 미리 입주 청소를 해둔다고 했다.
덕분에 첫날부터 고무장갑을 끼고 바닥을 닦는 수고를 덜 수 있었고, 이후에도 수리가 필요한 부분에 대한 즉각적인 지원이나 쓰레기를 버리는 방식(*금요일과 토요일을 제외한 매일 저녁 6-8시 사이 쓰레기봉투를 집 앞에 내놓으면 아파트에서 수거해 대신 버려주는 시스템) 등의 편의성 면에서 아파트를 선택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사는 내내 거주하기에 불편함이 없었으며, Valentine's Day, Mother's day 등 미국의 주요기념일 마다 리싱오피스에서 디저트와 선물을 준비하는 귀여운 이벤트도 자주 열려 관리가 잘 되는 아파트 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3주간의 고생 끝에 LA에서 내 집 찾기라는 숙제를 마치고 나니 이제 정말 떠난다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