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한 다섯번째 여행지 | 푸켓 #1
아이가 태어나고 함께하는 다섯 번째 여행. 아직 어린 아이를 고려하다보니 결국 이번 여행지도 휴양지다. 그러고 보니 정말 전부 휴양지다.
10개월 - 후쿠오카 유후인
16개월 - 후쿠오카 유후인 & 뱃부
21개월 - 세부
23개월 - 하와이
34개월 - 푸켓
인터폰 하나면 뭐든 대령이 되는 5성급 호텔에서 아침엔 짹짹이 잡고 오후엔 물놀이하고 저녁엔 마사지로 마무리하는 여유로움을 만끽하다 어느새인가 휴양지로의 여행에 너무도 완벽히 적응해버린 우리를 발견한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인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각자 제 키만 한 배낭을 둘러메고 5성급은커녕 별 하나도 안 되는 숙소에 몸만 누이고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발바닥에 불이 나라 골목골목을 밟고 또 밟고 다니던 우리였는데.
로마에서는 공포스러운 할렘 거리를 지나 후미진 곳에 콕 박혀 찾기도 힘든 숙소에 닿아 한 날에만 새벽 비상벨이 두 번씩 울려 1층까지 맨발로 뛰어 내려가기도 했던 그래도 그저 재미있던 날들.
다리가 퉁퉁 붓도록 걷다 판테온 앞에서 맛본 아이스크림 한입에 서로를 마주 본 채 세상에 이런 맛이 있나 아무 말도 못 한 채 눈만 껌벅였던 날들.
자전거 한 대 씩을 빌려 코펜하겐 이곳저곳을 동네인 양 종일 돌아다니다 해 질 녘 거리악사의 연주가 시작되면 벤치에 앉아하염없이 바라보다 퉁명스럽게 놓인 기타 케이스에 감상료를 넣어주곤 참 좋다 참 좋다 연신 외쳐대며 숙소로 돌아오던 날들.
밤 10시가 되어도 파란 하늘을 보여주던 오슬로 백야 아래 밤늦도록 맥주잔을 기울이며 그냥 여기서 살아버릴까 언제 다시 이 곳을 올 수 있을까 이야기하던 날들.
플리트비체. 거짓말 같은 초록 속에서 비를 홀딱 맞으면서도 뜨거운 감자튀김을 호호 불며 서로의 입에 넣어주던 날들. 우리에게도 그런 날들이 있었다.
지금은 비록 유모차를 밀며 아이와 뛰놀 수 있는 그런 여행지만 찾는 휴양객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어느새 자라난 키만큼 커가는 아이를 보며 그래, 내년부터는 다시 스파르타 여행을 시작할 수 있겠다 생각하며 잠시 설레어 본다. 그래 어쩌면. 내년엔 가능할지도. 그런 희망을 가져 보는 푸켓의 밤이다.
글과 사진 | B구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