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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리 Feb 05. 2020

취미가 좀 바뀌면 어때서

나의 진지하지 못한 취미생활 변천사

언젠가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취미가 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쉬운 질문이지만 답변을 하기 힘들었다. 취미가 없었던 건 아닌데 뭔가 내세울만한 취미활동이 없기 때문일까. 요즘은 취미를 전문적으로 하거나 창업을 하는 경우도 많기에, 지금까지 내 취미를 돌아보고 싶어 졌다. 




대체 취미(趣味)가 뭐길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취미란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로 정의하고 있다. 직업과 관련 있지 않아도, 특별한 가치를 창출하지 않아도 스스로 즐기기 위해 하는 일은 모두 취미가 될 수 있다. 매일 아침 출근버스에 앉아 음악을 듣는 것도 취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요즘은 취미도 진지하게 해야 한다는데...


요즘은 단순히 즐기는 것을 넘어선 '프로취미러'가 많아졌다. 취미생활을 보다 전문적으로 하면서 실력을 갖추고, 그 실력으로 돈을 벌거나 심지어 창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좀 찾아보니 이를 '진지한 여가'라 하는데, 이는 캘거리 대학 로버트 스테빈스 석좌교수가 말한 이론으로 '특수한 기술, 지식, 경험 등을 획득하고 표출하는 충분히 본질적이고, 재미있고, 참여자가 경력을 쌓아가는 성취감 있는 아마추어, 취미 활동가, 자원봉사자의 체계적인 핵심 활동'을 말한다. 스테빈스 교수는 여가의 형태로 ‘일상적 여가’, ‘프로젝트형 여가’, 그리고 ‘진지한 여가’ 세 가지 모델을 제시했다. 단순한 즐거움이 따르는 짧은 활동인 일상적 여가나 빈도는 높지 않으나 짧은 시간에 어느 정도 난이도가 있고 복잡하게, 일시적으로 하는 프로젝트 여가보다는, 몰입을 전제로 하는 진지한 여가를 가진 사람이 인생을 좀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내 취미는 뭐였을까?


과연 내게는 그런 '진지한 여가'가 있었는지 돌아본다.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취미활동을 해왔지만 꾸준하게 해온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지금까지 해온 취미활동을 나열하니 크게 수집형, 운동형, 투어형, 감상형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수집형 : 우표, 스타벅스 컵, 야구공, 그리고 좋은 문장

내 어린 시절엔 우표수집이 유행이었다. 사촌오빠에게 선물 받은 우표수집 앨범에 새 우표와 헌 우표를 모았다. 그때만 해도 관공서나 친구들에게 우편이 많이 왔기에 신기한 우표를 보면 조심스레 우표를 떼어 앨범에 넣어두었다. 연말이면 학교에서 꼭 사도록 했던 크리스마스 시즌의 씰(대한결핵협회)도 함께 모으곤 했다. 이젠 우표를 쓸 일이 없어 어느 순간 멈춰버린 추억이 가득한 취미로 남았다.


해외여행지의 추억을 어떻게 기념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스타벅스 시티컵을 모으기로 했다. 스타벅스가 있는 도시는 고유의 시티컵을 판매하는데 그중 에스프레소 잔은 크기가 작아서 들고 오기도 보관도 쉽다. 시티컵을 보며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이 컵은 실제 사용하기엔 작아 인테리어 장식 목적으로 두고, 요즘은 스타벅스 머그컵을 사용목적으로 모으고 있다.


프로야구를 좋아하기에 야구선수 사인볼이나 해외 구단 야구공을 모으게 되었다. 사회인 야구 기념구나 가끔 브랜드에서 출시한 모형 야구공과도 모았다. 야구공을 전시할 때 삼발이 모양의 피자 고정핀을 활용하면 좋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수집에 흥미를 잃은 취미이기도 하다.


가장 오랜 취미인 독서를 좀 더 발전시키고자 밑줄 그을만한 좋은 문장을 수집하게 되었다. 마음속에 들어온 문장을 기록해두니 나중에 다시 읽어봐도 좋거나, 또 완전히 새롭게 다가오기도 했다. 가끔 글을 쓰는 일을 하게 될 때 수집해둔 좋은 문장을 꺼내어 응용하면서 내 글에 생기를 더해주곤 한다. 지금은 노션이란 기록 프로그램에 문장을 수집하고 있다.



운동형 : 수영, 프리스타일 스키, 사회인 야구, 8 천보 걷기

초등학생 때엔 수영선수가 되고 싶었다. 물속에서 느끼는 자유로움에 쾌감이 있었다. 한 동안 수영을 못하다 직장인이 된 후 일주일에 2번 정도 수영장을 다녔다. 자유형과 배영밖에 할 줄 몰랐지만 2년 정도 꾸준하게 다녔다. 퇴사 후 새벽 수영을 신청해 수영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던 때도 있었다. 올해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취미생활 중 하나다.


겨울이 되면 가끔 삼삼오오 모아 스키장에 가곤 했다. 2010년쯤에 '프리스타일 스키'라는 분야를 알게 되었고, 직접 전용 장비를 구입한 뒤로는 매주 스키장을 방문했다. 단지 슬로프를 내려오는 것만 아니라 뒤를 보고 내려오는 스위치나 점프와 같은 그라운드 트릭과 하프파이브를 타며 배우는 스키는 또 다른 재미를 느꼈다. 평창올림픽 출전을 꿈꾸며 작은 스키대회에서 여자부 3등까지 했던 나름 진지한 취미였다.  


2013년부터 스키에 대한 애정이 시들고 사회인 야구에 빠졌다. 남녀 혼성 사회인 야구단에 가입해 2루수를 맡았다. 야구는 보던 것과 직접 하던 것이 너무 달랐는데, 몸으로 하는 야구는 보는 야구보다 더 재밌었다. 전문 코치에게 기본적인 훈련도 받고 야구단원과 꾸준히 연습도 했다. 결혼 후 남편도 가입해 유격수를 맡으면서 키스톤 콤비가 되는 재미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데드볼에 맞아 손목에 금이 가는 부상 이후 그만두었다.


출산 후 신체능력이나 운동능력이 급격하게 떨어짐을 느꼈다. 특히 고질적이던 허리는 디스크 초기 증상으로 더 이상 무리한 운동은 못하고, 스트레칭과 가벼운 근력운동만 꾸준히 해야 했다. 이때 알게 된 게 7 천보 걷기 챌린지였다. 육아로 집에 오래 있어야 하는 내게 잠깐의 산책 시간은 몸의 건강은 물론 마음의 건강까지 찾는데 도움이 되었다. 올해는 매일 8 천보 걷기에 도전해보고 있다. 샤오미 미밴드를 통해 매일 걸음 수를 확인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는 취미활동이다.



투어형 : 책방, 카페, 애견동반 숙소, 키즈카페


책을 좋아하니 자연스럽게 '책방투어'라는 취미가 생겼다. 어떤 여행지에 가면 꼭 가보는 곳이 그 지역의 작은 책방이다. 그리고 주제를 정해 그곳에서 책 한 권을 사 온다. 반려견과 떠난 제주여행에서는 '동물과 관련한 책'을, 엄마와 함께한 부산여행에서는 '아들 윤우에게 읽어주고 싶은 동화책'을 구입했다. 지금까지 다녀온 작은 책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부산 영도의 손목서가라는 곳이다. 책이 있는 공간과 책방지기의 큐레이션을 느낄 수 있어 이 취미활동은 평생 계속될 것 같다.


인스타그램이 유행하면서 '카페투어'가 생겼다. 스타벅스와 같은 대형 카페보다는 작지만 공간 콘셉트와 시그니처 메뉴가 명확한 카페를 소개하는 인플루언서가 많아졌다. 그래서 그런 곳에 직접 가보고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은 취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나는 여행지의 '#ㅇㅇ동카페'란 해쉬태그를 검색해 가고 싶은 카페 리스트를 만들어 두고 하루에 2~3곳의 카페를 투어 하곤 한다. 점점 예쁜 카페가 많이 생겨서 이 취미활동도 계속 이어질 것 같다.


반려동물과 가족여행을 할 때면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이 바로 숙소다. 그래서 '#애견동반숙소' 해쉬태그를 팔로우하며 그 숙소를 중심으로 여행지를 정하곤 한다. 직접 숙소를 가보고 난 뒤 만족스러운 숙소 경험을 하면 다른 반려동물을 키우는 분들에게 꼭 소개하며 정보를 나눈다. 반려동물이 동반이 가능한 숙소와 반려동물 중심 숙소는 다르기 때문에 좀 더 우리 가족에 맞는 숙소를 찾는 재미가 있는 취미활동이다.


육아를 한다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키카'. 키즈카페의 줄임말로 아이의 실내 놀이공간이다. 사실 처음에 키카를 간 것은 아이 혼자 놀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좀 더 찾아보니 다양한 콘셉트의 키즈카페가 생각보다 많았다. 물놀이가 가능한 키즈카페도 있고, 만들기 체험이 가능한 키즈카페도 있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오직 나무 장난감으로 보고, 듣고, 만지고, 뛰어놀며 느낄 수 있는 키즈카페였다. 보호자가 목재 교구로 함께 놀아줘야 하기에 부모와 유대감을 갖기에도 좋은 곳이라 생각한다.



감상형 : 독서, 왓챠 플레이와 유튜브, 그림, 전시회


어릴 적 우리 집 다락방에서 셜록 홈즈 추리소설 문고판을 시작으로 독서란 즐거운 취미활동이 시작되었다. 대학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며 규칙적인 독서습관을 길렀고, 회사 기숙사 도서관에서 다양한 장르를 접하게 되었다. 이후 꾸준하게 독서모임을 나가기도 하고 직접 모임 운영도 해보기도 했다. 이젠 혼자 읽는 독서에서 함께 읽는 독서로 더 풍부한 취미생활을 하고 있다. 


마음에 우울감이 찾아올 때면 미드를 보는 게 좋았다. 요즘 넷플릭스나 왓챠 플레이로 놓쳐버린 드라마와 영화 콘텐츠를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마음껏 즐기고 있다. 한편 유튜브는 또 새로운 장르다. 참신한 크리에이터의 콘텐츠뿐만 아니라 특히 직업을 바탕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유튜브 채널은 실질적으로 유용하다. 이러한 영상 콘텐츠 감상 취미는 아이패드 미니 5를 구입하면서 최적화되었다. 설거지를 할 때나 잠들기 전에도 모바일보다는 좀 더 큰 화면으로 감상을 한다. 


작년부터 그림 렌털 구독 서비스를 받고 있다.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왠지 모를 위안을 받는 취미다. 아직 잘 알지 못하는 국내 미술작가의 작품을 집안에 두면서 그림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고 인테리어 효과도 볼 수 있다. 최근 아이가 그림 속 사물을 말하거나 색깔을 표현하려고 하기에 나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그림은 좋은 취미활동이다. 나중에는 해외 유명한 작가의 작품의 아트 포스터도 걸어두고자 한다. 


아이가 걷기 시작한 후 어린이집 하원 후에는 전시회를 다녔다. 아이를 위한 전시회는 보고 듣고 만지는 경험뿐 아니라 직접 참여하는 체험 프로그램도 많다. 다양한 감각을 키울 수 있는 전시는 나에게도 신나는 취미활동이 되었다. 아이가 즐거워하고 신기해하는 표정을 보며 그 순간을 함께 해줄 수 있어 행복함을 느낀다. 최근 아이와 함께 다녀온 발레 프로그램은 내 어린 시절의 추억과 함께 국립발레단을 가까에서 볼 수 있는 특별한 추억이 되었다. 앞으로도 한 달에 한 번은 아이와 함께 전시회를 가고자 한다.



취미가 좀 바뀌면 어때서


돌아보니 취미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일상적이고 프로젝트적인 취미활동이 시기에 따라 조금씩 변했을 뿐이다. 뭔가 제대로 오래 취미생활을 해온 게 없다는 압박감이 느껴지곤 했다. 뭐라도 하나 정해서 전문성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란 마음의 짐이 있을 무렵 유튜브 뚝딱TV에서 뚝딱이 아빠가 하던 말씀이 생각났다.


‘네가 하는 일이 자랑스러우면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돼. 너도 나도 보물이니까.'



나는 그 말이 내가 하는 취미생활에 충분히 즐거웠다면 타인의 인정을 받지 않아도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지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아닌 가볍게 해 보면서 즐거울 수 있는 것, 나는 그것이 취미가 가진 본질이라 생각한다. 취미가 좀 바뀌면 어떠한가. 자신의 삶의 유형에 따라 유연하게 적응하는 어댑티브(Adaptive)한 취미러가 아닐까. 그러니 제대로 된 취미가 없다고 고민했던 분들이 있다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우리는 내게 맞는 취미를 발견하고 도전해 나가는 게 취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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