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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리 Jan 29. 2020

같은 지역 출신 배우자랑 결혼하면 좋은 점

feat.다음 생엔 서울남자랑 결혼할 거야


부산 출신인 나는 늘 서울남자와 결혼하고 싶었다. 막연히 서울남자는 다정하고 배려심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된소리 발음이 많은 부산 사투리보다 표준어를 구사하는 사람과의 대화에서 느낄 수 있는 부드러움이 좋았다. 그리고 세련된 스타일과 연애에서 디테일이 강한 점도 서울 남자에게 끌리는 이유였다. 허나 내게 이는 로망이었을 뿐 곧 결혼 5주년을 앞둔 나의 남편은 부산사람이다. 그래도 5년 정도 살다 보니 같은 지역 출신의 배우자와 결혼했을 때 좋은 점이 있어 정리해봤다.




1. 서로 추억의 장소에 공감할 수 있다


남편과 나는 3살 차이다. 부산에서 서로가 살던 지역도 그리 멀지 않았던 터라 학창 시절 추억의 장소로 기억하는 곳 중 아는 곳이 많았다. 어린 시절 소풍으로 가던 금강공원, 사생대회로 가던 성지곡 유원지(현. 부산 어린이대공원), 그리고 특히 중고등학교 때 시험기간이 끝나면 놀던 부대(부산대학교) 앞 골목들 등 말이다. 수학여행을 앞두고 옷 사러 갈 땐 서면 미니몰, 친구들과 먹으러 가던 부대 돼지국밥 골목과 정문 왼쪽의 분식 포장마차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추억의 장소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부산에서 바다가 보고 싶을 때 해운대나 광안리를 가지 않는다. 관광지로 너무 유명한 해운대나 광안리는 관광객도 많고 횟집도 너무 비싸다. 우린 어린 시절에 놀던 송정 바다의 백사장을 걷거나 연화리에서 회를 먹는다. 같은 부산 사람이었기에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다.



2. 집에서 말(사투리)을 편하게 할 수 있다


대학에 간지 2년쯤 지났을 때 나는 꽤 서울말(꼭 지방 사람들은 표준어를 서울말이라고 한다 ㅎㅎ)을 구사할 줄 알게 되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내가 밝히지 않은 이상 부산 출신임을 모를 정도로 표준어 구사에 능했다. 남편을 만난 뒤로는 그야말로 봇물이 터지듯 부산 사투리가 나왔다. 결혼 이후 출근하면 표준어, 퇴근하면 사투리 바이링구얼( bilingual)의 삶을 살았다. 특히 표준어보다 축약해서 쓸 수 있는 문장을 서로 알아듣는다는 게 더 풍요로운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남편은 '은다'와 '어-어-어'를 알아들으니까 말이다.


('어-어-어'가 궁금하신 분들은 이 영상을 보세요 ㅋㅋㅋ)



3. 같은 프로야구팀을 응원하는 즐거움이 있다


국내 프로야구는 지역을 기반으로 팬층이 형성되어 있다. 야구를 좋아하는 내겐 배우자의 종교가 다른 것은 참아도 구단이 다른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340만 부산시민의 대부분은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다. 남편도 부산 출신이기에 롯데 자이언츠의 오랜 팬이었고, 야구장에서나 집에서 야구를 볼 때 같은 팀을 응원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잠실야구장, 고척 야구장 원정경기뿐만 아니라 부산 방문 때 사직야구장도 상대팀이 누구든 간에 함께 보러 갈 수 있게 된다. 부부가 함께 응원가를 부르며 한 팀을 응원하는 동질감을 느끼는 것은 서로 다른 팀일 때보다 더 좋지 않을까?



4. 명절마다 귀성길 스트레스가 덜하다


민족 대이동의 시즌인 명절에 우리 부부는 함께 부산으로 향한다. 시댁이자 친정인 부산에 내려가는 길은 언제나 오묘한 감정이 든다. 명절엔 서울에서 부산까지 최소 6시간이 걸려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각자의 고향이기에 그래도 설레는 마음으로 귀향 여정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시부모님 댁과 친정부모님 댁이 차로 10분 거리에 있기에 우리 부부는 명절 기간 동안 자주 왔다 갔다 하는 편이다. 점심은 친정식구와 먹고 저녁은 시댁 식구와 먹는 일이 자주 있다. 만약 우리 부부가 다른 지역에 살았다면 명절에 서로의 집에 가느라 길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을 텐데 같은 지역이다 보니 서로의 집에 더 오래 머물 수 있다는 것 또한 장점 중 하나다.




5. 지역음식을 좋아하고 맛집에 함께 간다


서울에 사는 지방 출신 사람들은 공감할 것 같은데 살면서 힘들 때마다 먹고 싶은 고향의 힐링음식이 있다. 부산에도 맛있는 음식이 많기에 꼭 한 번씩 생각나거나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 우리 부부는 가끔 돼지국밥이나 밀면이 먹고 싶을 때 서울에 있는 부산음식 맛집을 찾아 함께 먹으러 간다. 그리고 정구지전(부추전)이 당길 땐 집에서 부쳐서 동래파전처럼 초장에 찍어 먹기도 한다. 부산의 그 맛을 온전히 느낄 수는 없었지만 부산음식을 통해 잠시나마 함께 고향에 다녀온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분을 부부가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요즘같이 추울 때면 어묵 국물에 끓인 가래떡 어묵(물 오뎅)이 먹고 싶다.





최근 한 결혼정보업체에서 배우자로서 같은 지역 출신을 선호하느냐의 질문에 약 73%가 선호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한다. (출처) 내가 서울남자에게 가졌던 로망처럼, 부산 남자에게 가졌던 편견처럼 사람은 누구나 어떤 지역의 사람에게 가진 스테레오 타입이 있을 것이다. 특히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같은 지역 출신의 사람에게 가진 부정적 선입견이 배우자로 기피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보면 내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것, 즐겨 먹었던 것, 자주 갔던 곳을 배우자와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부부간 서로의 공감대를 넓고 깊게 만들어 주는 큰 행운이다. 언젠가 우리 부부가 나이가 들어 서울을 떠나 살게 된다면 남편도 나도 부산으로 가자고 할지도 모르겠다. 서로가 익숙한 곳에서 노후의 삶을 그려볼 수 있다는 것도 같은 지역 출신 배우자와 결혼한 장점이지 않을까. 


만약 내게 결혼 전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부산 남자와 결혼할까? 글쎄. 그래도 다음 생엔 서울남자와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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