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30일, 금요일(날씨: 찬 바람에 세수한 듯 상쾌하다.)
1. 상담일지를 쓰다가 단어를 고쳐 썼다.
2. 가족관계에 ‘보호자’라고 적었다가 ‘가족’으로 바꿔 썼다.
3. 성인은 성인으로 대해야 마땅하다.
<확장 글>
“3~4세 지능밖에 안 되는데요.”
“어차피 설명해봐야 못 알아들어요.”
“시간 낭비에요.”
나는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하면서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심지어 당사자를 버젓이 옆에 두고 이런 말을 들으면 정말이지 얼굴이 화끈거린다. 내가 장애인 당사자였다면, (그리고 말뜻을 이해했다면) 분명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으리라.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 괜히 반발심이 들어서 당사자와 더 눈을 맞추고, 더 쉽게, 친절하게, 예의를 갖추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가끔은 쉽지 않다. 어떤 경우엔 그가 말을 잘 못하고, 어떤 경우엔 내가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우리는 쉽게 연결되지 못한다. 그럴 때면 내가 정성껏 말을 만들어도 입에서 나오자마자 허공으로 흩어지는데, 그래도 괜찮다. 내가 그분을 존중하는 마음만 전해진다면.
올해 어느 학교사회복지사가 쓴 글을 읽었다. 그분은 학생 가정을 방문할 때 아이에게 직접 묻고, 무언가 결정할 때도 아이를 먼저 생각한단다. 반면 나는 복지관에서 일하면서 매우 자주 장애인 당사자를 (마치 없는 사람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배제하고 보호자 또는 장애인활동지원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크게 반성했고 이제는 다소 어렵고 불편하더라도 최대한 당사자와 직접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람은 내가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시간 없어 죽겠는데, 하필이면 왜 여기서 이렇게까지?'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 나는 은근히 모른체하거나, 가끔은 내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직접 설명한다.
최근에 복지관에서 어떤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와 성인 발달장애 자녀 이야기를 나누고, 상담일지를 기록했다. 일지에는 누구와 상담했는지 적는데, 당사자가 아닌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면 관계를 적는 칸에 습관처럼 ‘보호자’라고 썼다. 오늘은 익숙하게 사용했던 단어가 살짝 불편하게 느껴져서 ‘보호자’라고 적었다가 ‘가족’이라고 고쳐 썼다. 당사자가 미성년자라면 보호자라는 표현이 그나마 괜찮지만, 성인이라면 적절하지 않다. 사람이 자라서 성인이 되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진다. 그때부터 부모는 더 이상 보호자가 아니다. 장애가 있든 없든, 지적 능력이 높든 낮든 상관없다. 남에게 도움을 받든 안 받든 성인은 성인이다. 성인은 성인으로 대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