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갓길에 오른 나를 맞이하는 것은 코 끝을 시리게하는, 건조하게 대륙을 가르는, 찬 바람이다. 다섯시 반이면 이미 해는 지고, 어슴푸레한 가로등이 길을 밝힌다. 습도는 18%, 건조한 영하의 바람은 입술 뿐만이 아니라 드러난 살결도 거칠게 트게 한다.
작년과 다르게, 가족들은 이미 한국에 먼저 들어가 있다. 집에는 이번 주 내로 처리해야 하는 서류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집에 가는 길은 식당에서 풍기는 음식 냄새, 마른 겨울 냄새, 그리고 드물게 물 냄새로 치장되어있다. 건강을 위해 전기자전거는 집에 두고, 걸어서 출근했더니 돌아가는 길도 그만큼 평소보다 길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버드나무가 길게 늘어진 실개천이 있다. 눈이라도 쌓이면, 이국적이면서도 친숙한 동양의 정취를 한 껏 뽐내는 곳이다. 폭이 5미터 정도 되는 이 다리를 지나면, 단지내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진 야외 체육시설, 소위 산스장,이 있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한 두어번 리뉴얼 된 이 곳의 운동 기구는 이제 중량을 조절하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걸어서 이곳을 지날때면 항상 철봉에 들린다. 처음 여기에 왔을 때는 턱걸이를 하나도 못 하는 상태였다. 소위 정자세 턱걸이는 여전히 택도 없다. 그래도 하다보니 조금씩 뭔가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아직 2027년 이후의 거취가 정해지지 않아 가슴이 술렁이는 시즌인데, 집중이 필요한 육체활동만이 침착하고자 하는 내면의 불안을 달래준다. 커리어 자체의 특성이다보니 어쩔 수 없다. 천성이 느긋하고 낙천적인 나조차도 몇 년에 한 번씩 다가오는 이 시즌이 되면 조금씩 정신이 갉히고야 만다.
아무리 다양한 상황을 고려한 백업 시나리오들이 있다 하더라도, 차선이 달가운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면한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부지불식간에 발목잡는 사소한 우환이 남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테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철봉에서 체스트 프레스로, 인클라인 체스트 프레스로 재차 옮겨갔다.
산스장 건너편에는 달리기 레인과 잔디 축구장이 합쳐진 운동장이 있다. 달리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적당히 땀이 나기 시작할때, 가방을 챙겨 그 곳을 떠났다. 가는 길에 핸드폰을 보니 아무래도 저녁을 혼자 간단히 먹어야 할 것 같다.
내년 이맘때 나는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