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야 사람
논어(論語) - 학이(學而) - (1장)
작년 겨울, 나는 변덕스레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를 읽고선 갑자기 고대 철학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중국과도 인연이 있기 때문에, 중국에 살 동안에는 <논어>를 한 번쯤 읽어보고자 했던 것을 떠올렸다. 참 가볍기도 하지.
<프로타고라스>를 읽은 뒤에, 울산에 출장을 갈 기회를 얻었다. 내 생애 두 번째 방문하는 울산이었다. 첫 방문은 좋은 이유로 방문한 것이 아니었던 데다가, 좋지 않은 경험까지 해서 영 아니올시다였다.
운이 좋게도 숙소 근처에 흥미로운 카페가 하나 있었다. 음악과 책을 좋아하는 마스터(일본식 표현이지만 나름 재밌다고 생각해서 좋아한다. 물론 입 밖에 내진 않는다.)가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주는 카페였다. 나는 사장님께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영업당했다!
전체적으로 대강 훑어보는 동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지금에 이르러, 고대 철학으로 분류되는 책들은 꽤나 비슷한 내용의 말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다.
교양 있는 현대 시민으로 살아가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데에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나 사서삼경 같은 정도 읽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재미로, 학문적으로 철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앎을 사랑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던 고대인과 마찬가지로 "앎을 사랑할" 여유가 없기 마련이다.
재밌게도 동양철학의 고전, 사서, 중 하나인 <논어> 또한 학(學)으로 시작한다. 이 얼마나 재밌는 우연인가?
이하의 논어 원문의 한국어 번역은 저작권 문제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중국철학서전자화계획>페이지를 구글 번역하여 제공함을 밝힙니다. 해당 페이지는 자체적으로 현대 중국어 및 영어 번역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논어의 문법적 이해>페이지에서는 <논어-학이편> 전체 원문에 대한 해설이 무료로 공개되어 있으니 그쪽을 참고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이쪽이나 해당 책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읽은 판본은 <논어> (소준섭 역, 현대지성)입니다.
제 1 장
1)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꾸준히 노력하고 정진하며 배우는 것이 즐겁지 않느냐? 멀리서 친구들이 찾아오는 것이 즐겁지 않느냐? 남들이 자기의 공덕을 알아주지 않을 때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 군자의 덕목이 아니냐?”
첫번째 구절은 내게 이는 적절한 시기에 무언가를 하기 위해 무엇이든 즐겁게 배울 수 있는 자세/마음가짐, 혹은 마인드셋을 가지라는 것으로 들린다. 옛날과 비교하면 그 어느 때보다 배우기 좋은 시대인 것도 사실이다. 혹자는 딸깍으로 충분하길 바라겠지만, 과정을 즐기는 것은 어쩌면 부담감을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두 번째 구절은 뜬금없게도 멀리서 찾아온 친구 얘기를 한다. 기꺼이 먼 곳에서 찾아와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즐거울 것이다. 특히 완전히 멘탈이 나가버릴 것 같은 옛날 교통수단을 생각하면 더욱. 당연한 얘기는 당연하기 때문에 더욱 생각할 맛이 난다. 우선 멀리서부터 친구가 수고를 마다하고 찾아와서 내게 즐거움을 줄만한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제안처럼 들린다. 또, 즐거움을 함께 하기 위해 나를 찾아올 정도의 친구면 나 또한 멀리 있더라도 그를 찾아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뜬금없어 보이는 이 두 구절은 다음 상황에서 비로소 한 줄로 이어진다. 바로 이토록 좋은 친구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 중 하나는 바로 친구가 어려움을 겪을 때 적절한 도움을 주는 일이라는 것이다. 배운 것을 사용해 도와줬다면 배운 보람이 아주 클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들을 누가 알아주지 못하더라도 삶의 태도를 바꾸지 말라는 세 번째 구절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는 마치 인정욕구를 배반하라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자기만족이야말로 급변하는 세상에서 내가 오롯이 추구할 수 있는 가치 중 하나이다. 내 생각은 자연스럽게 다시 첫 번째 구절로 돌아간다. 궁극의 자기만족, 자기 인정, 정신승리를 이루기 위해서는 결국에는 배우고, 살아가는 그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이 짧은 문단만으로 무리 짓고 사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폭력 바깥에서 살아남기 위해 추구해야 할 삶의 태도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정확히는 그런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위대한 고전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참고자료:
중국철학서전자화계획 (한문 원본, 현대 중국어/영어 번역 제공, 본문에선 크롬 번역)
다음 편 예고:
학이편의 두 번째는 공자의 제자 중 하나인 유자의 말이다. 본(本)과 인(仁)이 처음 등장한다. 읽어보면 사람 사는 것이 다 똑같다는 생각이 바로 든다. 어쩌면 이것도 레트로?
이 글을 읽고 Gemini가 생성한 이미지오랜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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