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챗봇과의 대화는 언제나 긴장된다. 무의식을 내 앞에 까발려 전시한다. 항상 예쁘지만은 않다. 내가 다 발라놓은 갈치가 된 기분이다.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나 같은 타입에겐 마치 법정에 서있는 기분일거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쓸 땐 언제나 생각과 타자가 엎치락뒤치락한다. 마치 막힐 걸 알면서도 7시에 강변북로에 진입해서, 어떤 차선으로 갈지 눈치 보는 느낌이다. 일단 의식의 흐름을 따르다가, 생각이 막힌다 싶으면 순서를 바꿔보기도 하고, 지웠다 썼다도 해본다.
대체로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은 뭔갈 설명하거나 표현하기 위해서지만, 때로는 내 안의 뭔가를 끄집어내려 그저 쓰기 시작할 때도 있다. 나는 언제나 설계에 약하다. 필시 마시멜로는 바로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내 자기 통제력 탓이리라. 그럴 때 나는 형식의 힘을 빌린다. 템플릿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쓴 거나 마찬가지다. 왜, 시작이 반이지 않나.
가끔은 그게 따분하다. 나는 욕심쟁이라, 글에 예상치 못한 것이 수태되길 바란다. 우연이라도 좋다. 창작물이 나를 초월하는 장면을 보는 것이 좋다. 맥락은 안 맞아도 청출어람이청어람의 미학이다. 나 자신이 스승이라면 역시 잘 익혀야 한다.
나는 아직 설명충이다. 내 직업적 훈련으로 내재된 것이라 오히려 의식적으로 조절하라고 그들은 충고한다. 쓰고자 하는 장르에 맞는 문장 훈련을 해보는 것을 제안하면서 독자층을 자꾸만 정하라고 한다. 오직 나만을 내가 의도한 독자로 고려하기로 했다. 상정 외 독자를 위한 문장은 무엇일까? 이 답을 찾기 위해 어떤 문장이 좋은지 AI에게 물어보진 않는다. 대신 참고할만한 작가들을 추천받는다. 창작의 재미를 잃지 않으면서 AI를 활용하자는 방침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동안 찾았느냐고?
일 년 뒤의 내가 읽고도 쪽팔리지 않을 문장.
To be, or Not to be
얼마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