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드

일본영화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인가?

by 서해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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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인가?



일본 영화는 한때 세계를 놀라게 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K컬쳐가 세계에 맹위를 떨치듯 일본도 그런 영광의 시절이 있었다. 사무라이의 카타나 처럼 날카로웠던 일본문화의 강력함도 어느 샌가 무뎌지고 녹이 슬었다. 변방의 영화 제작국으로 밀려난건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일본이 최근 오랜 침묵을 깨고 기지개를 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가 하나 둘 나왔고 해피엔드도 그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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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해피엔드 제목을 들었을 땐 최민식, 전도연 주연의 한국 동명의 영화 해피엔드가 떠올랐다. 너무 상투적인 비유 일수도 있겠지만 언급을 안 할 수 없었다.(개인적으로 한국 해피엔드 영화를 무척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쨌든 해피엔드는 일본 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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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작은 암전으로 부터 시작된다. 도시가 살아 있음을 알리는 듯 스크린에 뿌려지는 붉은 불빛은 흡사 바람부는 날 흔들리는 촛불 처럼 위태롭게 보인다. 이는 현재 일본 영화계의 현상황을 보여주는듯 하다. 하지만 위태해 보이는 촛불은 암전이 걷히며 들어나는 도시의 윤곽에 묻힌다. 서서히 스크린에 도시의 온전한 모습이 들어날 즈음 마치 잠에서 깨어 나는 일본 영화를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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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다소 투박하지만 진솔함을 보여준다. 영화속 내러티브가 상투적이거나 억지스럽게 느껴지는건 일본 사회의 경직된 문화 때문은 아닐까? 일본 사회를 대놓고 비판할 수 없는 반증이지 않나 싶다. 조금은 더 직설적이고 과격한 표현은 아직 시기상조일까?



난 야구를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평소에도 야구와 관련된 비유를 하기 좋아한다. 대중은 점수를 내기 위한 번트와 변화구 보다는 강속구와 홈런에 열광한다. 이기기 위한 경기 운영도 중요하지만 경기 과정 또한 간과 할 수 없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해피엔드를 야구에 비유해 얘기 해 보자면 변화구의 기교가 아닌 강속구로 타자를 압도하는 공을 뿌려야 관객은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그게 대중이 원하는 거다. 하지만 영화는 머뭇거린다. 일본정부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녹록치 않은 현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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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내용은 졸업을 앞둔 고교 3학년들의 성장 이야기 쯤으로 치부 될 수 도 있다. 해피엔드는 그보다 더 큰 사회 비판을 함축해서 보여주는 영화다. 일본의 영화계를 이끌 차세대 감독중 한명으로 네오 소라 감독을 손 꼽은 이유를 스스로 증명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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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배경이 고등학교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학교가 한명의 올바른(?) 사회인을 양성하기 까지의 과정은 예나 지금이나 많이 다르지 않다. 다만 학교구성원 주는 일련의 의식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영화의 겉만 봤을때는 친구들간의 우정쯤으로 치부할 수 있는 영화다. 하지만 영화의 장면 마다 숨겨진 메타포와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진중한 메세지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독이 영화속에서 현재 일본이 처한 암울한 현실을 녹여냈다는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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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현 상황을 신랄하게 비꼬는 이 영화를 일본정부는 달갑지 않게 생각할거라고 확신한다. 칸영화제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고레이다 히로카즈 감독은 일본내에서 주류 감독으로 환영받지 못 한다. 일본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본정부로 부터 배척 받는게 요즘의 일본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의 배경을 근미래로 설정한건 감독의 탁월한 선택이 아닐수없다. 현재 일본은 저출산, 외국인거주, 폐쇠적인 학교 교육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일본의 폐쇠성은 이 사실을 밖으로 들어내는 걸 극도로 꺼려한다. 해피엔드는 지금의 일본내 사회적 문제를 영화속에서 다채롭게 이야기한다. 마치 뷔페음식 처럼 나열된 여러 문제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어지럽기까지 한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이를 한번에 담으려는 노력은 가상하나 핵심 주제가 모호해 진다. 신진 감독의 패기의 한계가 명확히 들어 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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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핵심 사건 중 하나인 교장 차 테러사건은 알파치노 주연의 "여인의 향기"가 생각나게 했다. 학교내 절대권력에 대한 저항을 유머스럽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 영화속 사건중 핵심 사건이다. 이 사건을 빌미로 교내 CCTV를 설치해 학생들을 통제한다는 발상은 조지오웰의 1984를 떠오르게 한다. 영화는 학교내의 교사와 학생간의 갈등뿐 아니라 일본내에서 직면하고 있는 저출산에 따른 다인종화 되는 일본의 현재모습을 보여준다. 저출산에 따른 다인종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일본 특유의 배타성은 이를 수용치 못함을 영화는 꼬집는다. 주인공과 함께 어울리는 무리중 한명인 톰은 누가 봐도 흑인이다. 외모만 흑인이지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가 졸업후 결국 선택한건 미국행을 선택하는 아이러니는 일본내에서 순혈주의를 표방하는 일본의 상황을 설명한다.


특히 재일한국인4세인 코우는 한국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지만 단지 부모가 한국 국적이기에 당하는 불합리한 대우는 21세기의 일본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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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주도적인 핵심인물인 유타의 선택으로 학교와의 갈등을 해소된 듯 보이지만 결국 유타의 희생을 발판으로 코우등이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재일한국인으로 차별을 당하는 코우가 불합리한 상황에 저항하기 보단 현실에 순응하는 모습이다. 학교내 절대 권력자인 교장은 이런 코우의 약점을 파고든다. 누가 자신의 차에 테러를 했는지를 말하면 대학 장학금 추천을 해준다는 달콤한 제안을 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창씨개명을 하면 일본인으로서 대우 받으며 잘 살수 있다고 회유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교장은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다분히 폭력적인 행위이지만 반발하는 이는 적다. 한국인인 나로서는 이점이 굴욕적으로 다가왔고 이 때문에 영화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를 일제강점기를 겪은 한국인으로서의 굴욕으로 보기엔 많은 세월이 흘렀다. 억지스러울수도 있다. 어쩌면 깊은 DNA 한구석에 아로 새겨진 피해의식의 발현일 수도 있다. 코우에 비춰진 내 모습에 나를 향한 실망스러운 분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이를 극복이 아닌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며 순응을 선택한 내 모습을 보며, 코우의 선택에 돌을 던질 수 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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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답답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건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이지 않나 싶다. 첫술에 배부를수 없다. 영화는 답답한 일본내 현실을 목도하고 지켜볼 뿐 해결책을 제시 하지 않는다. 이는 일본 뉴에이지 감독 세대중 한명인 네오 소라 감독이 앞으로 풀어나가야 될 숙제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잘했다고 충분하다고 말 해 주고 싶지 않다. 영화의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 속도의 더딤을 비난이 아닌 열심히 하라고 박수쳐 응원 해 주는게 맞다. 그래야 힘든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감독에게 힘이 될 수 있다. 그러기엔 앞으로 헤쳐나가야 될 장애물이 쉽지만은 않다.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라는 나의 오랜 해묵은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 라도 나는 이 영화를 응원 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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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주인공들이 고교 졸업후 각각의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는걸 보여주는 걸로 마무리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육교위에서의 헤어짐은 이전의 무수히 헤어짐과는 다르다.

평소와는 다른 헤어짐과 각자의 길을 가는 모습 극명하게 대비시켜 보여주는 영화속 명장면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영화의 제목인 HappyEnd 때문에 서로가 윈윈하는 행복한 결말을 말하는 영화로 비춰질수 있다.

하지만 나에겐 HappyEnd가 아닌 Happy and로 마침표가 아닌 느낌표로 다가왔던 영화였다.

어른들은 말한다. 학창시절일때가 좋았다고...

and 이후에 들어올 말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거다.

모두의 행복한 결말을 위해 축배를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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