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내보았던 순간이 있나요?
최근에 정말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아이의 첫 어린이집 담임선생님이었다.
건강이 좋지 않아 갑작스레 퇴사를 했던 분이라, 헤어진 지 두 달이 넘도록 마음 한 켠이 허전했다.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던 아이가 유일하게 따르던 선생님이었고, 나 또한 매일의 등하원 시간마다 그분께 큰 위로를 받았다.
아이의 말과 행동에 함께 웃고, 함께 감동하던 시간들. 낯설어하는 아이를 세심하게 살피고 다정히 배려해 주시던 모습이 늘 고마웠다. 내 서툰 육아 고민에도 진심으로 공감해 주시던 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이별 후에도 선생님을 자주 떠올렸다. 퇴사 직전, 그리운 마음을 담아 긴 편지를 쓰고, 마지막에는 혹시라도 다시 소식을 주실 날이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연락처를 남겨 두었다.
그리고 두 달 후, 선생님이 먼저 연락을 주셨다. 건강이 회복되어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계신다고 했다. 내 편지가 회복과정에서 큰 힘과 위로가 되었다는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날, 우리는 ‘전체 보기’를 눌러야 할 만큼 긴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진심을 나눴다. 나는 아이의 근황을 종종 전해드리기로 했고, 편한 날 차 한 잔 하며 조심스레 마음을 건넸다.
그때 내가 연락처를 남기지 않았더라면,
그분이 고마운 마음을 묻어두셨더라면,
우리는 다시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우리가 낸 용기가 서로를 붙들었다.
나는 먼저 말을 거는 일이 쉽지 않다.
스몰토크에 대해 검색해 본 적도 있다.
친정엄마는 “연락 좀 하고 살아라” 하시고,
친구들은 “살아 있니?”라고 농담처럼 묻곤 한다.
먼저 안부를 묻는 일, 왜 이토록 어렵게 느껴질까.
한 번은 친구의 비보를 듣고도, 멀리 산다는 이유로 한 달 넘게 혼자 마음 아파했다. 결국 용기 내어 연락했을 때야 비로소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연락’이란 단어엔 묘한 무게가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무게는 더해진다.
그래서 나는 요즘 할 일 목록에 ‘연락하기’ 대신 ‘사진 보내기’, ‘소식 전하기’처럼 부담을 쪼개어 적는다. 작게 나누면 한결 쉽게 다가갈 수 있다.
그럼에도 먼저 연락을 하게 되는 순간은 있다.
마음을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때.
그게 좋아하는 마음이든, 감사든, 오해든.
그 강한 마음이 나를 움직인다.
아이와 문화센터를 다니던 시절, 우연히 마음이 잘 통하는 엄마를 만났다.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속으로 ‘연락처를 물어봐야지’ 생각하던 그때, 고맙게도 그분이 먼저 다가와 연락처를 물어봐주셨다. 그 인연으로 지금까지 종종 만나고, 함께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하며 고민과 어려움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놀랍게도 같은 고향, 같은 달에 태어난 같은 직업의 사람. 모든 게 꼭 정해진 듯 맞아떨어졌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고, 연결되고 싶은 순간에도 용기가 생긴다. 모닝페이지 모임이 그랬다. 3년 전 함께 글을 썼던 모임이 해체된 후에도, 마지막으로 남겨둔 오픈채팅방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3년이 지나 다시 그 방을 찾아가며, 나는 또 한 번의 용기를 냈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글쓰기 모임과 함께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에 첫 글을 올리게 된 것도 결국 그 작은 용기 덕분이었다.
연락은 문을 두드리는 일이다.
연락은 곧, 연결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다.
서로의 삶이 닿고 싶다는 작은 신호다.
자주 보지 않아도,
가끔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에도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바뀐 프로필 사진에 반응하기,
생일날 보낸 선물에 답장하기,
좋은 소식이 생겼을 때 전하는 메시지 한 통.
이 모든 것이
“당신이 내 마음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는 말이다.
멀어졌다가도 다시 다가가면,
또 선명하게 이어진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먼저 연락해 주는 모든 이들의 용기에,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당신, 내게 참 소중한 인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