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분주히 움직였지만, 마음만은 느긋했던 날
오늘은 어린이집에서 아빠 참여 수업이 있는 날이다. 달리 말하면, 엄마들의 자유시간이 허락된 날이기도 하다. 시간은 많은데 늘 쫓기는 기분. 쉬어도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 그래서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이벤트 덕에, 오늘은 아이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오랜 시간 혼자 보내게 되었다. 일주일 전부터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무엇을 할지 목록을 적어보고, 시간 계획도 대충 세워보았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좋지 않던 컨디션이 발목을 잡았다.
며칠간 손 놓은 집안일들부터 처리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하고 싶은 게 아무리 많아도, 무거운 몸을 억지로 끌고 다닐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 먹었다. 오늘은 그저 내 몸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따라가 보자. 타이트하지 않고 느슨하게.
천변을 따라 30분쯤 걸었다. 달리기를 하려던 계획을 산책으로 바꾸었다. 집으로 돌아와 부족한 잠을 자는 대신, 빨래를 돌리고 화장실을 청소했다. 쌓인 일들이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게 더 불편했기 때문이다.
세 번에 걸쳐 옷을 빨고, 이불까지 털어 넣었다. 건조기 돌아가는 소리가 배경음이 된 오후. 순댓국 한 그릇으로 점심을 해결하고는 소파 위에 쌓인 옷들을 다림질하며 거실의 여백을 되찾았다. 그제야 창밖의 맑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좋은 날씨였네.”
이불마저 건조기에 넣고 로봇청소기를 켜두고 방으로 들어오니 어느새 오후 4시.
“이제 진짜 누워서 1시간만 쉴 거야.”
할 일은 남았지만, 잠시 멈춤 버튼을 누르고 눈을 감았다.
남편의 전화에 잠에서 깼다. 몸도 안 좋은데 왜 쉬지 않느냐는 말에, 그냥 이렇게 움직이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그저 의식의 흐름을 따라 흘러간 하루. 그게 오늘의 리듬이었다.
남은 시간은 두세 시간 남짓. 책과 노트를 대충 가방에 넣고 집 앞 카페로 향했다. 오늘을 조금이라도 즐기고 싶은 마음으로. 카페에 앉아, 해야 할 일보다 지금 내가 머물고 싶은 곳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느긋해지고 싶었다.
시간의 흐름을 잠시 붙잡는 데엔 언제나 ’필사‘가 제격이다. 글쓰기에 앞서 마음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늘의 리듬에 맞게, 한두 페이지의 문단을 천천히 옮기며 문장을 머릿속에 담았다.
“하얀 종이는 앞에 있는데 마음은 불확실하고, 사고는 연약하기만 하고, 감각은 무디고 둔하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조절력을 잃어버린 글쓰기, 결과물이 어디에서 나올지 확실치 않은 글쓰기는 무지와 암흑 속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이것과 정면으로 부딪칠 때, 이러한 무지와 암흑의 장소에서 출발한 글쓰기가 결국에는 우리를 깨우쳐 주며,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게 만든다.” _ 나탈리 골드버그 , <뼛속까지 써내려 가라>
오늘의 나는 청소로 머릿속을 비우고,
낮잠으로 몸을 쉬게 하고,
필사로 마음의 흐름을 정리했다.
느슨하게 흘러간 하루가 나를 단단하게 했다.
캄캄해진 저녁, 카페 문을 나서자 횡단보도 건너편에 아이와 남편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아이를 한참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 싫다는 아이의 마음을 따라 천천히 한 바퀴 산책을 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다닌 하루는 생각보다 더 만족스러웠다. 아무것도 이루지 않았지만, 오늘은 이것만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