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번아웃의 재해석

by 스틸노트


육아를 하다 보면 수시로 한계를 마주한다.

이번에도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그렇게까지 하면 안 되었지만, 한계를 넘어서버린 나는 겨우 잡고 있던 끈을 놓아버린 듯 한바탕 아이를 향해 한탄의 외침을 내지르고선 방전되었다. 더 이상 말할 힘도 없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진 채 아이를 데리고 잠자리에 들어왔다.


매일 하던 수면의식도 포기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이에게서 돌아누웠다. 아이는 그런 엄마의 상태를 감지했는지 울음을 멈추고 조용히 침대 위의 인형들을 가지고 놀았다. 그러다 들리는 작은 노랫소리.


“엄마 힘내세요. 채채가 있잖아요.

엄마 힘내세요. 채채가 있어요.”


원래 ‘엄마’ 대신 ‘아빠’를 넣어 가르쳐준 노래였다. 지쳐 잠들었을지 모르는 엄마가 혹여나 깰까 봐 들릴 듯 말듯한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아이. 그것도 반복해서 한참을. 미안함과 후회가 뒤섞여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 베개를 적셨다. 그 순간 바로 뒤돌아 아이를 마주할 자신이 없는 나 자신이 슬펐다. 한참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난 뒤에야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사랑한다고, 잘 자라고 인사해 주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모닝페이지에 드는 생각들을 모두 써 내려갔다. 벅참, 지침, 고립감,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 먼지처럼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 다소 위험한 단어들도 보였다. 써놓고 보니 이 정도로 심각했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 달랐다. 예전엔 한 번 어두운 감정이 들 때면 늪에 빠진 듯 주욱 밑으로 빨려 들어가곤 했는데, 이번에도 극한의 무력감을 느끼긴 했지만 감정적으로 파고들진 않았던 것이다. 그저 ‘또 소진되었구나’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아무런 감흥도 없이.


이전에 더 심한 번아웃을 지나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다시 온 건지. 아마도 번아웃이 온 ‘상태’를 인지하고 받아들이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모닝페이지에 감정을 쏟아 내고, 한 발짝 떨어져서 눈으로 보는 행위를 반복하는 내 모습을 보고서. 일종의 물결처럼 반복되는 패턴을 발견한 것이다.


보통 번아웃은 평소에 잘 해내려는 마음이 강한 사람, 책임감이 강한 사람에게서 더 쉽게, 더 자주 나타난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한 사람 몫 이상을 해야만 만족이 되는, 스스로 높은 기준을 가진 탓이다.


번아웃은 ‘계단의 벽에 부딪힌 순간’ 일지도 모른다. 여기서부턴 성장을 해서 다음 계단으로 뛰어넘을지, 계속 부딪히며 무너진 자리에 머무를지 선택해야 한다. 어떻게든 다음 계단으로 넘어가면 회복된다. 한 계단 오르고 나면 다시 내려가는 일은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니 한계가 바로 눈앞에 다다르면, 한숨 푹 내쉬고 저 멀리 하늘 한 번 쳐다보고서 ‘읏차-’ 하고 ‘Jump up!' 하면 그만이다. 점프 연습에 몰두하다 보면 과거의 힘듦은 어느새 잊혀 있을 테다.


어젯밤, 완전히 지쳐서 남은 할 일도 모두 포기하고 잠이 들었는데, 깨우러 방에 들어갔을 땐 어김없이 예쁜 천사가 자고 있다. 아이가 보이는 행동들은 발달 과정에 따라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인데, 정작 자라야 할 것은 부모인 우리였는지 모른다.


아이가 성장하는 속도에 맞추어 나도, 남편도 넓고 깊어져야 했다. 화를 조금 더 참아보고, 더 오래 기다려주면서 나는 단련되고 있다. 순간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감정을 조절하고 온유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배운다. 내가 육아를 하며 느끼는 고통이 자라면서 자연스레 얻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도 많이 컸구나’ 하고 기쁨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위기 또한 기회가 된다.


머지않아 또다시 번아웃 상태를 마주한다면, 큰 소리로 외쳐 보려고 한다.


”아! 기쁘다!! 또 점프 연습하러 가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