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결혼식 준비를 하다 발견한 ‘깊이’

by 스틸노트


10월엔 친동생의 결혼식이 있었다. 오랜만의 가족의 큰 행사라 복장이 더욱 고민이 되었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으니 어른들 말대로 한복을 입어야 할지, 단정한 원피스가 나을지 며칠을 고민했다. 그러다 아이를 케어하기도 편하고, 평소 입어보고 싶었던 검정 원피스를 선택했다. 어른들이 한마디 할 게 예상되었지만, 이번엔 나의 선택을 따르기로 했다.


문제는 구두였다. 평소 구두를 신을 일이 거의 없으니, 도대체 어떤 게 어울릴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하루 종일 쇼핑몰을 들락 거리고, 수십 번 좋아요를 눌렀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여러 브랜드의 제품을 비교하고, 리뷰를 읽고, 인플루언서의 광고도 참고하면서 나는 조금씩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 사람인지를 알아갔다. 후보는 점점 좁혀졌지만, 결국 새로 사지 않고 신발장에 오래 잠들어 있던 구두를 꺼내 수선을 맡기기로 했다.


시간이 꽤 걸렸지만, 그 시간들은 헛되지 않았다. 고민하고 탐색하는 동안 나를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이게 바로 ‘디깅’이구나. 깊어지는 훈련.




한 달 동안 브런치에 글을 쓰며, 쌓여가는 글들을 다시 또 읽어보았다. 그리고 다음 글을 쓰며 자꾸 드는 생각.

“내 글엔 깊이가 부족하지 않나?”

“주제가 너무 얕은 건 아닐까?”


어떻게 하면 더 풍성하고 단단한 글을 쓸 수 있을지 여러 날 고민했다. 그러다 구두를 고르던 날, 불현듯 떠올랐다.


“나는 깊게 파기 위해서, 넓게 파기 시작했다.”
_스피노자


깊이를 얻기 위해선 반드시 시간을 들여야 한다. 호날두가 많은 골을 넣은 건, 그만큼 많은 슛을 쐈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자가 수많은 명언을 남긴 것도, 그만큼 오래 사유한 것을 말로 꺼냈기 때문이리라. 작가가 좋은 글을 쓰는 건, 결국 수많은 글을 써왔기 때문 아닐까.


새로운 장르의 책을 읽고, 안 해본 일을 해보는 것. 넘어가 보지 않은 경계를 한 번씩 넘다 보면 ‘이건 아니구나’ 싶은 게 자연스레 걸러지고, ‘괜찮다’ 싶은 건 한층 더 깊어지게 된다. 호기심을 갖고 취향에 따라 파보는 경험. 그렇게 나의 세계를 확장해 가는 경험이 곧, 나를 지키는 ‘자존’이 된다.




글을 쓰다 보면, ‘입고 싶은 문체’가 생긴다. 꾸준히 글을 쓰고, 다양한 문장을 접하는 건, 내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듯, 나만의 문장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깊이 파보고 싶은 주제, 시야를 넓혀 보고 싶은 분야를 발견하면 기꺼이 기쁘게 삽질을 시작해야지.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고, 세상에 내놓는 글을 쓰고 싶어 글쓰기 모임에 들어간 건 큰 용기였다. 어쩌면 삽을 손에 쥔 첫 순간이었다. 직접 파보기 전엔 결코 알 수 없던 세계가 열리고 있다.


나도 아이처럼 조금씩 자라고 있나 보다. 그래서 오늘은 아이에게 말하듯, 내게도 말해주고 싶다.


“점점 잘하고 있어!”

“한 달 전보다 나아졌는걸?”

“배움도, 글쓰기도 꾸준히 하다 보면 더 좋아질 거야.”


두 달 남은 올해는 ‘디깅’의 즐거움에 흠뻑 빠져보고 싶다. 주말마다 아이와 새로운 곳을 가보고, 작은 경험을 통해 ‘깊이’를 심어주는 일. 그 속에서 아이도, 나도 조금씩 단단한 자존의 터가 세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