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준다. 집에서 20분 거리라, 보통은 자가용을 이용하지만 남편이 차를 써야 하는 날엔 대중교통을 탄다.
아이는 점점 무겁게 느껴지고, 어린이집 가방과 내 책가방, 아이 몸만 한 애착인형까지 들고서 버스를 타러 가는 일은 쉽지 않다. 추운 날에도 이마에 땀이 맺힌다. 게다가 배차 간격이 30분인 버스 시간을 맞추려 분주히 움직이다 보면, 조급한 엄마의 마음도 모른 채 여유를 부리는 아이와 수도 없이 부딪힌다. 전쟁 같은 등원길. 그럼에도, 그 길 위에서 가끔은 뜻밖의 좋은 순간들을 마주한다.
버스로 등원하기 시작한 초반의 일이다. 어린이집은 우리가 타는 버스의 종점 바로 직전의 정류장 근처에 있다. 종점이 가까워질수록 승객은 하나둘 내리고, 어느새 우리만 남았다. 기사님은 우리를 보시더니 물으셨다.
“어린이집에 가시나 봐요?”
그리고는 잠시 후,
“남은 승객도 없으니 어린이집 앞까지 데려다 드릴게요.”
정류장을 지나쳐 노선을 벗어난 버스는 정말로 어린이집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그저 놀랍고 감사한 마음에 연신 고개 숙여 인사드렸다. 기사님도 흐뭇하게 웃으시며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주셨다. 아이와 짐을 들고 내려서 걸어갈 일이 막막하던 차에, 나를 구하러 와준 천사 같았다. 이후로도 종종 버스로 등하원하게 된 날이면, 같은 기사님을 만나곤 한다. 우리는 우리만 아는 눈빛으로 인사를 나눈다. 그날의 친절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번 주 내내 ‘차 없는 주간’이었다. 도로 위의 커다란 차들을 좋아하는 아이는 버스를 탈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떴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아이는 많은 것을 배운다. 버스는 아무 곳에나 서지 않는다는 것. 한 번 지나간 버스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다음 버스를 타려면 기다려야 하고, 그러려면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는 것을.
버스가 도착하면, 기사님께 인사하고 나란히 뒷좌석에 앉는다. 아이의 눈동자는 이리저리 쉼 없이 움직이며 버스 안을 관찰한다. 천장에 달린 손잡이의 색을 가려보고, 이용객에 따라 다른 좌석의 색을 비교하며, 앞문으로 타고 뒷문으로 내리는 사람들을 본다. 버스가 학교 앞 정류장에 멈추면 언니오빠들이 우르르 탄다. 깔깔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아이에겐 무척 신기한 모양이다.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가도 이내 폭풍 같은 질문이 시작된다.
“엄마, 이 빨간 버튼은 뭐예요? 눌러봐도 돼요?”
“엄마, 왜 저 버튼 모양만 삐뚤어져 있어요? 다른 건 안 삐뚤어졌는데.”
“엄마, 버스에서 왜 방귀소리가 나는 거예요? 너무 귀여워요.”
버스가 내뿜는 ‘푸쉬~’ 소리에 재밌다며 웃는 아이의 얼굴이 사랑스럽다.
물론 늘 이런 건 아니다. 어떤 날엔 버스를 제시간에 탔지만, 가는 내내 아이와 실랑이를 벌인 터라 어린이집에 보내고 돌아서면 마음이 무겁고 진이 빠져 있다. 그런데 또 어떤 날엔 눈앞에서 버스를 놓쳤는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다.
”괜찮아.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우리 조금만 더 힘내자!“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할 수 있을거야!“
그렇게 외치며 아이를 안고 다른 정류장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그게 아이에게 하는 말인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엄마 힘.내!“
아이의 말 한마디에 웃음이 터지고,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정류장을 이동하는 동안,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는 길이었단 사실을 잊은 건지, 길가의 민들레 홀씨 두 개를 꺾더니 하나는 자기 손에, 하나는 내게 쥐여준다. ‘후~’ 불어 날리는 귀여운 순간을 놓칠세라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어 연속으로 사진을 찍어대는 나. 문득 버스를 놓친 막막한 상황에도 웃고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음에 감사해진다.
겨우 잡힌 택시로 갈아타고 가는 길, 택시기사님은 내 사정을 듣더니 말했다.
“고생 많으셨네요. 힘들었죠.”
건네는 위로에 마음이 녹아내렸다. 내릴 때 아이가 손 흔드는 걸 보고 환하게 웃어 주던 기사님의 얼굴까지. 아침이 더욱 밝아 보였다.
예상치 못한 상황 앞에서,
“어떻게든 되겠지. 뭐든 방법이 있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태도는 체념이 아니라 믿음이다. 스스로를 믿는 용기다. 상황에 맞게 길을 찾아가려는 적극적인 삶의 자세다.
나를 당황시킨 상황들은 인생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그리 큰일이 아닌 경우가 많다. 스트레스 대신 유연하게, 조급함 대신 여유를 갖고 시야를 넓게 바라보면 어느새 선명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눈앞에 와 있다.
작은 위기를 통과할 때마다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진다. 언젠가 큰 폭풍 앞에서도 이 경험들이 나를 지켜줄 것이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건, 그가 이미 수많은 작은 싸움 속에서 맨손으로 사자를 때려눕힐 만큼의 힘을 꾸준히 길러왔기 때문 아닐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는 근처 카페로 향한다. 버스 안에서 읽는 책 한 권, 이동하며 떠오르는 단상들을 모으고 정리하던 시간이 소중하다. 창밖에 흩날리는 낙엽을 보며 가만히 생각한다. 이 가을, 참 좋은 시절을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