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고요가 나의 꿈을 이룬다
시간은 왜 늘 부족하게 느껴질까.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하루 대부분을 아이와 함께 보냈다. 낮잠 시간을 제외하면 스무 시간 가까이 붙어 지내며, ‘나만의 시간’을 간절히 그리곤 했다.
그러다 올봄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보육시간이 겉보기엔 제법 길어 보이지만, 이동 시간과 준비 시간을 빼면 내게 남는 시간은 고작 여섯 시간 남짓이다.
그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흘러가는지. 전쟁 같은 아침을 보내고 나면 이미 지쳐 있고, 잠시 숨 고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정오를 지나 하원시간이 다가오면, 마음이 조급해져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가 애매해진다.
그런 날이 며칠 이어지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흘려보내기엔, 내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소중하지 않을까.’
요즘 나는 대부분의 자유시간을 글쓰기와 독서, 기록으로 채운다. 오전엔 요가나 달리기를 하고, 운동이 없는 날엔 카페나 도서관으로 향한다. 점심 무렵엔 집안일을 하고, 오후에는 못다 한 글을 마저 쓴다.
나름 알차게 시간을 사용해 보고자 많은 시도 끝에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셈이다. 그럼에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엔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부족한 잠을 채우기도 하고, 종일 드라마를 보며 쉬기도 한다. 그럴 땐 마음 한 편이 불편했다.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겨우 4시간 남짓인데, 읽고 쓰다 보면 언제나 부족했다. 불만족스러운 상태로 아이를 마주할 때면, 괜히 예민해진 나를 발견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달을 고민했다. 결국 답은 두 가지였다. 주어진 시간 동안 더 깊이 집중하거나, 보너스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처음엔 저녁 리추얼을 추가했다. 아이를 재우는 동안 옆에서 20분은 책을 읽고, 또 다른 20분은 불렛저널에 하루를 정리했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완성하지 못한 글을 마저 썼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했다. ‘해야 할 일’만큼 ‘좋아하는 일’에도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싶었다. 그러다 떠올랐다.
‘평소 아침형 인간인 내 특성을 살려 새벽 시간을 더 확보해 보면 어떨까.’
몇 년 전 김유진 변호사의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를 읽다만 기억이 났다. 다시 펼친 책은, 내 고민에 너무도 명확한 해답을 주었다. 읽는 그대로 흡수되는듯했다.
‘새벽 기상이 답이다.’
이때부터 신기하게도,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기상 시간이 새벽 6시 반에서 6시로, 5시 반으로 점점 당겨졌다. 새벽 기상의 가장 큰 장점은 느긋하고 여유로운 시간의 확보다.
일찍 일어날수록 방해받지 않는 자유가 특히 좋았다. 나만의 속도로, 모닝리추얼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 새벽의 고요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고 몰입하는 시간이었다.
모닝리추얼을 마치고도 시간이 남는다는 사실에 행복해졌다. 보너스 타임은 30분 정도. 그 짧은 시간 동안 새로운 것을 시도할 생각에 설렜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일들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다. 육아서를 읽고 육아용 불렛저널에 기록하기, 아이와 놀이 계획 짜기, 여행 계획 짜기, 블로그에 글 올리기, 전자책 쓰기, 전혀 해보지 않은 새로운 것 배우기. 그리고 ‘생각하는 시간’ 갖기.
이렇게 추가된 시간은 단순히 하루의 연장이 아니라, 삶의 기회였다. 하루를 조금 더 일찍 시작함으로써, 내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부분을 스스로 채워나갈 수 있다. 그렇게 내가 되고 싶은 모습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새벽 기상을 지속하려면 충분한 수면이 필요하다. 적정 수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잠드는 시간도 자연히 앞당겨야 한다. 규칙적인 생활이 일상이 되어야 한다.
김유진 변호사는 새벽 기상을 통해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싶다는 의지와 새로운 경험에 과감하게 시도할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조금씩 무언가를 계획하고 실패든 성공이든 그에 따른 결과를 얻다 보니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나 또한 새벽이라는 기회의 시간을 통해 긍정의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바로 얻어지는 대단한 결과가 아니더라도, 그 시간의 조각들을 모으다 보면 언젠가 커다란 퍼즐이 완성되는 순간이 오리라 믿는다.
새벽의 고요가 나의 꿈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