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추얼, 나를 구해내는 단단한 매일의 의식
유난히 순조로운 아침이었다.
6시 알람을 듣고 일어나 모닝리추얼을 마치고도 시간이 남았다. 불렛저널을 열어 데일리로그에 날짜를 기록하고 있을 때쯤 아이가 서재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평소라면 침대에 그대로 앉아 울음소리로 안방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방의 엄마에게 깼다는 걸 알리곤 하는데, 오늘은 발걸음 소리도 듣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방문을 열고 들어와 가만히 안기는 아이다. 너무 기특하고 사랑스러워 꼭 안아주며 하루를 시작했다.
조금 일찍 나온 데다 신호도 잘 받아 평소보다 10분 일찍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마침 선생님이 나오셨다.
“어머, 어머님. 오늘 아이 하얀색 옷을 입었네요? 오늘 김장날인데..”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오늘이 김장행사였다니. 분명 어제 불렛저널에 이번 달 일정을 기록하고 가정통신문도 확인했는데, 이상하게 내 눈에 띄지 않았었나 보다. 많이 당황했지만 애써 대수롭지 않게 “까맣게 잊고 있어서 앞치마도 안 가져왔네요. 내복에 묻어도 괜찮으니, 그대로 진행해 주세요.”라고 말씀드리고 나왔다.
그렇게 운전대를 잡고 집에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아이의 중요한 일정과 준비물을 챙기지 못한 자책이 나를 괴롭혔다. 아이의 밝은 옷에 묻을까 손이 갈 선생님도 걱정되었다. 무엇보다 다른 친구들 모두 앞치마를 입고 편하게 김장 놀이를 할 텐데 홀로 내복을 입고 양념이 묻어 축축한 상태로 놀이에 집중하지 못할 아이가 가장 신경 쓰였다.
지금 내가 내 마음을 구해낼 방법은 뭘까?
아마도 이대로 두었다간 종일 시달려 하루 전체를 망치게 될 게 뻔했다. 자꾸만 파고들려는 자책과 걱정, 후회와 같은 감정들이 나를 삼키게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긍정의 방향으로 되돌리기 위해 나의 뇌가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누구나 실수해. 그럴 수도 있지. 대신 다음 달엔 놓치지 않도록 더 신경 써서 기록하면 돼. 실수하는 건 잘못이 아니야.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빨리 해결하면 돼. 잠깐 넘어진 것뿐이야. 씩씩하게 털고 다시 일어나자.”
나를 나무라는 대신,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고 나니 어디선가 힘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갑자기 정신이 번뜩 차려지면서 부정적인 감정에서 즉시 빠져나와 지금 당장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생각했다.
아직 오전 간식시간이라 준비물을 전달해 줄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서둘러 집에 도착하자마자 앞치마와 여벌옷을 챙겨 나왔다. 조급한 행동과 달리 마음은 점점 편해졌다.
어린이집에 도착해서 창문을 통해 반을 살짝 들여다보니 이제 막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었다. 노크하고 준비물이 담긴 쇼핑백을 건네자, 선생님들은 내가 집에 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실에 놀라워하셨다. 나는 괜히 덧붙이는 말 대신 멋쩍은 미소로 대신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 생각하지 않았다. 나를 위해 한 행동이었다.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선택을 하는 연습을 하나 해낸 것 같다. 스스로 마음을 돌보는 방향으로 움직여본 것이다. 선생님과 아이를 도와주고 싶은 강한 마음이 선택을 이끌어 주었다.
어제 아침, 점심, 저녁 리추얼로 온전히 채워둔 시간이 나를 단단하게 하고, 그 단단함이 나를 지켜내고 있음을 느꼈다. 매일 해나가는 지난한 일들이 근육과 살이 되어 덧붙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새 점점 건강해지고 있었다.
어젯밤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평소보다 피곤했는지, 아이는 잘 시간이 되자 모든 것이 불만인 듯 짜증을 내고 울음을 터뜨렸다. 처음에는 칭얼대듯 시작되던 울음이 점점 커지더니 자지러지며 1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예전 같았으면 나도 금세 감정이 휩쓸렸을 것이다. 우는 이유를 모르는 데서 오는 답답함과 ‘왜 이럴까’ 하는 불안이 한꺼번에 올라와 함께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나는 그저 옆에 앉아 아이가 울음을 다 쏟을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마음속에 파도가 몇 번 일었지만 금세 가라앉았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아이의 울음을 멈추게 하는 게 아니라, 곁을 지켜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평온했다.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자, 아이를 거실 창가의 소파로 데려가 함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잔잔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안도와 감사가 동시에 밀려왔다.
’이게 바로 나를 지켜내는 힘이구나.‘
세상은 늘 예상치 못한 순간에 흔들리지만, 단단한 하루의 의식들과 나를 채워준 고요한 시간들이 중심을 잡아 주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한 뼘 더 자란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