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옆에서 감정 조절의 롤모델이 되어 가다

by 스틸노트


자아가 생긴 아이를 훈육하는 일이란 끊임없이 나의 민낯을 드러나게 한다. 수시로 감정이 극한의 지경에 이르고야 마는 상황 앞에서 결국 폭발하거나 지고야 마는 반복이 훈육의 과정이다. 그런데 희한한 건 그 반복 속에서 아이의 변화는 극히 미미한 데 반해, 나의 부족함은 매번 크게 보인다는 점이다.


울음이 터진 아이와 마주 보고 대치한 갈등의 자리마다 거울처럼 자꾸만 내 얼굴이 보인다. 마치 아이의 행동을 보기 전에 내 모습을 먼저 보라는 듯이. 아무래도 신이 의도적으로 내 얼굴을 먼저 비춰준 게 틀림없다.


날이 추워지면서 활동량이 급격히 줄어든 아이는 요즘 저녁마다 밥을 잘 먹지 않는다. 그런 아이를 위해 다양한 요리를 준비했지만, 아이는 입맛이 없는 듯 몇 숟갈 떠먹다 말고 음식으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처음엔 부드럽게 권유하다 지친 나는 슬슬 받아주기 어려워졌다.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더니 그 자리에서 온몸에 힘이 쭉 빠져나가 방전이 되어 버렸다.


겨우 부엌 뒷정리를 마치고 아이를 씻길 시간이 되었다. 도무지 힘이 남지 않아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잠시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런 나를 가만둘 리가 없는 아이는 엄마와 씻겠다며 울고불고 이불 사이를 비집고 들어 온다. 이번만큼은 남편과 씻으면 좋겠건만 돌아설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나는 결국 무거운 몸을 일으켜 거친 발걸음으로 욕실로 향했다.


빠르게 아이를 씻기고서 다음은 내가 씻을 차례다. 하지만 또다시 엄마와 놀고 싶다며 울기 시작하는 아이. 블록들을 욕실 앞에 가져다주고서 욕실로 들어가려는데 울음이 계속된다. 길어지는 울음소리를 듣기 버거웠던 나는 아이에게 제안했다.


“많이 속상하지? 그런데 엄마가 지금은 많이 지쳐서 너의 울음을 받아주기 어려워. 잠깐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해. 이 욕실 문 닫고 엄마가 들어가 있는 동안 계속 울고 싶으면 잠시 네 방에서 시간을 가져도 좋아. 우리 조금 뒤에 다시 만나자. “


물소리를 방패 삼아 아이에게 들리지 않게 한바탕 울부짖었다. 나는 왜 이렇게 감당하기 어려운지. 왜 이렇게 나약한지. 언제쯤 강해질 수 있는 건지. 샤워기의 물줄기를 따라 눈물이 흘러 내려갔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잠시 뒤 욕실문을 열었을 때 아이는 문 앞에 없었다. 침대에 누워 있던 아이는 자기 자리에서 베개에 누워 애착곰인형을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이도 속상했던 마음이 달래졌는지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재잘거렸다. 내 말대로 혼자만의 공간에서 울음을 삭힌 게 자신이 생각해도 뿌듯했는지 몇 번이나 반복해서 설명했다. 그 모습이 너무 기특해서 나도 설명이 끝날 때마다 칭찬해 주었다.


“네가 너만의 공간을 찾아 스스로 진정한 모습이 너무 대견하고 기특해. 마음이 편안해졌지? 엄마도 욕실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더니 마음이 편안해졌어. 엄마가 아까 화내서 미안해. 다시 사이좋게 지내자.”


그렇게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손으로 사과를 쥔 것 같은 주먹모양을 하고서 서로에게 건네며 서로의 사과를 받아먹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다시 서로를 향해 웃어 주었다.


피곤하고 지치는 날에는 다정한 말이 나오기 어렵다. 그럴 때는 꾹꾹 눌러 참고 그런 말들을 끄집어내기보다 잠시동안 묵언을 일관하며 어떻게든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를 보존해야 한다. 그게 끝내 감정을 폭발시켜 못된 말이 영향력을 드러내게 하는 것보다 낫다. 그 영향은 고스란히 아이가, 남편이 받게 된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이날 아이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감정을 흘려보내는 경험을 했다. 흘려보낸 감정 뒤에 남는 후련함과 편안함도 느껴보았다. 그것도 엄마와 함께 각자의 자리에서. 나에게도 특별했던 이날의 경험은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며 느끼게 될 불안, 고독, 좌절, 속상함 같은 감정들을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의 기초가 되어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