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라는 막연함 앞에서

by 스틸노트


글쓰기를 지속하다 보면 막연해지는 순간이 온다.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어떤 문장도 만들어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겨우 끄집어낸 단어 몇 개를 붙들고 이리저리 뜯어봐도 도무지 그 이상이 떠오르지 않는 막막함. 한 번 왔다 지나가는 경우라면 다행이지만, 문제는 그 모호한 두려움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눌러앉아 버릴 때다. 아무리 떨쳐내려 온갖 방법을 동원해 봐도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는 아득한 상황 앞에 힘이 빠진 채 그저 마주 앉는다.


처음 본격적으로 한 편의 글을 완성하여 공개하기 시작하던 때를 떠올린다. 내 안에 휘몰아치던 감정들을 쏟아 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상태에서의 글쓰기였다. 화산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다가 폭발하여 흘러넘치는 용암처럼 힘들이지 않고도 문장들이 쏟아져 나오곤 했다. 그러다 마침내 흐름을 멈추고 식으면서 딱딱하게 굳어가는 검붉은 용암의 흔적만 남은 듯, 내 머릿속과 감정도 파동을 멈추고 고요히 눌어붙었다.


영감은 쥐어짜는 게 아니라 흘러넘쳐야 한다, 라는 TBWA KOREA 박웅현 크리에이티브 대표의 말이 내내 떠올랐다. 분출을 기다리는 용암의 강한 열망은 화산 밖으로 솟아오르기 직전까지 계속 생성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어느새 생산을 멈추어 화산 속에서 굳어버린 기분이다. 잠시 활동을 멈춘 휴화산 같다.


생각해 보면 글은 삶 위에 있고 사람 위에 삶이 있는듯하다. 언제부턴가 글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은지로 이어진다. 그러려면 내 삶을 어떤 좋은 것들로 채워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지부터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혼자 글쓰기를 하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 내 글을 읽어줄 때 기쁜 걸 보면 글은 소통의 수단이 분명해 보인다. 내가 전하고 싶은 기쁨, 사랑, 즐거움, 평안, 감사, 긍정, 위로에 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어떤 옷을 입혀 전할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어떤 것을 가진 사람이고, 가진 것 중에서 어떤 부분을 더 발전시킬 것인지, 그것을 가지고 사람들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는지 떠올려야 한다.


글쓰기를 시작하던 첫 마음을 기억하자. 글이 있기 이전에 넘치는 삶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글도, 삶도 의미가 생긴다. 글쓰기만 생각하다 삶을 놓쳐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이것저것 담아내다 복잡해진 삶의 어떤 부분들은 처분하고 정리하면서 중요한 것만 남긴 채 그것들을 보다 깊이 다루는 글을 써야 하는 날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이라는 여정에는 반드시 동행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