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의 쪼그라든 마음을 펴준 친구의 한 마디

by 스틸노트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한 친구가 전화로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자신의 동생이 꽤 오래 공부한 끝에 경찰 공무원 시험에 최종 합격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나의 막냇동생도 그런 기간을 거쳐 뒤늦게 취업에 성공한 케이스라 친구 동생의 취직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 동안 들뜬 목소리로 기쁨을 나누었다.


취업준비생으로 살던 몇 년간 스스로 얼마나 마음이 쪼그라져 있었겠느냐며 이번 합격으로 자존감이 단번에 회복되었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나의 재취업에 대한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래도 육아로 인해 일을 쉬는 기간이 늘어나면서 여러 현실적인 면을 생각해서 다시 일자리를 찾아봐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아이들에게 일하지 않는 엄마의 모습보다는 자신의 일을 갖고 있는 적극적이고 열정 있는 엄마의 모습으로 보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내 고민을 듣던 친구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우리 엄마도 전업주부셨고, 교사였던 아빠 혼자 돈을 버셔서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어. 그런데도 난 어렸을 때 학교 다녀와서 엄마랑 간식 먹으면서 이야기하던 시간이 그렇게 생각나더라. 그게 너무 좋았어.”


순간, 얼마 전에 친동생의 결혼식에서 만난 고모가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나와 동갑인, 고모의 아들은 미국 명문대에 진학했다. 내가 결혼으로 독립하기 전에 같은 아파트에 살던 고모는 나를 만날 때마다 붙잡고 아들 자랑을 하셨다.


그러던 고모가 이번에 만났을 때는 내가 일을 쉬고 있다는 말에 잘했다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고모의 아들은 고등학교 시절 늘 집에 있던 고모와 간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대화하며 고민도 털어놓고 스트레스를 잘 푼 덕에 편한 마음으로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내내 고모에게 말했다고 한다.


전업주부로 살면서 늘 마음 한편에는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돌덩이처럼 무겁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무리 해도 티 나지 않고 보상 하나 없는 육아와 살림을 매일 당연하게 해 나가는 게 버겁기도 했다. 보이지 않게 노력하는 나를 누군가는 알아주고 인정해 주길 바랐던 것 같다.


친구와 고모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모두 아이와 쌓은 추억이 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모든 순간들을 하나하나 기억할 수는 없더라도 따스한 곁을 내어준 엄마와 함께하던 ‘좋은 느낌’ 만큼은 아이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오래 남을 것이다. 그 느낌이 아이가 세상을 살아가다 만나는 어려운 순간들을 단단하게 이겨낼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왜곡된 생각의 방향이 정렬을 이루어 가는듯했다. 가장의 무게 못지않게 묵직한 전업주부의 가정을 생각하는 진지함과 노력은 단정한 살림으로, 바르게 커가는 아이로 그 성과가 드러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는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진정성 있게 다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까지도.

훗날 내 아이의 입에서도 ‘엄마와 시간 보내던 그때가 좋았어.’라는 말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전업주부에게서 배울 수 있는 역량을 잘 길러두었다가 자신 있게 보여주리라 마음을 다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