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공원을 마지막으로 가본 게 언제였을까. 에버랜드가 멀지 않은 거리에 살고 있지만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장소를 선택할 때 뒤로 밀리곤 했다. 특히나 사람들이 가득 찬 주말의 놀이공원은 상상만 해도 답답했다. 그러다 남편의 2주 연말 휴가가 시작되면서 드디어 평일의 놀이공원이 후보에 들어온 것이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2년이 지난 데다, 아이가 내일이면 네 살이 되는 이제야.
몇 달 전부터 남편은 내게 놀이공원을 효율적으로 즐기기 위한 정보를 정리해 보라는 미션을 주었다. 그때는 괜히 엄두가 안나 대충 중요한 정보만 기록해 두었다. 휴가의 끝이 보이면서 ‘이번이 아니면 언제 가보겠나’하는 생각에 당일 아침에 결심을 세웠다. 비장한 마음으로 어린이집에 가정보육 통보를 한 뒤 오픈런을 위해 부지런히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평일 오전 10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도착했는데도 주차장은 벌써 꽤 차 있었다. 막상 티켓을 끊고 입구를 가득 메운 입장 대기줄을 보니 걱정이 앞섰다. 영하의 날씨 탓인지, 놀이공원이라는 거대함 때문인지 몸이 긴장되고 손끝이 떨렸다.
“오늘은 경험하는 날이야. 와서 느낌만 보는 거야. 한두 개만 봐도 잘한 날이야.”
아이와의 첫 놀이공원인 데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이런 데 오면 다투기 쉽다. 남편과 나는 서로에게 기다리느라 지쳐도 불평하지 말고, 실패해도 경험이라 생각하고 유연하게 받아들이자는 약속을 서로에게 건네며, 유모차를 빌려 담대한 발걸음을 이어갔다.
초식동물, 특히 기린이 바로 코앞에서 먹이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로스트밸리’가 첫 번째 코스였다. 30분 정도 대기해야 했는데 아이도 불편한 유모차에 기다리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큰 마음을 먹고 온 김에 아이에게 새로운 경험과 즐거움을 가득 안겨주고 싶었다. 나는 어떻게든 아이의 기분을 끌어올리려 애썼다.
이어서 수영하는 물범과 대나무를 먹으며 꾸벅꾸벅 조는 판다까지 구경했다. 그러나 귀여운 동물들을 보고 와서도 아이의 컨디션은 나아지지 않았는지 계속 내게 안기었다. 아무래도 우리에겐 듣기 즐거운 가이드의 목소리나 가까이 다가오는 동물들, 그리고 엄마 아빠가 자꾸만 새로운 곳으로 데려가는 이 상황 모두가 아이에겐 큰 자극이었던 것 같다.
원래 가려던 식당이 문을 열지 않아 넓은 놀이공원의 지도를 수없이 들여다보며 헤맨 끝에 다른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따뜻한 공기에 몸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아이도 추위를 견디다 실내에 들어와 밥을 먹고 나니 다시 장난을 치며 웃음을 되찾았다. 마침 식사하는 자리 바로 옆이 다음 코스로 정해두었던 퍼레이드 장소였다. 창밖의 광장에 사람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밖에서 기다리지 않고도 느긋하게 밥을 먹으면서 준비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
나의 어릴 적, 놀이공원에서 퍼레이드를 본 게 가장 즐거웠던 기억이다. 그래서 이곳에 오면 아이에게 꼭 퍼레이드를 보여주고 싶었다. 퍼레이드가 시작되자 아이는 인형탈을 쓰고 신나게 춤추는 사람들에게 연신 손을 흔들며 즐거워했다. 그런 아이를 보니 그제야 나도 마음 편히 웃을 수 있었다.
우리가 다른 공연을 보는 동안 아이는 내 품에서 잠이 들었다. 탈만한 놀이기구를 둘러보다가, 피곤해 보이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다음 일정은 모두 내려놓고 돌아가기로 했다. 빠른 이동을 위해 잠시 탔던 곤돌라도 아이는 무서웠는지 내려서도 잠시 얼어 있었다. 정문으로 나가는 길에 나비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 아이와 함께 읽은 곤충 책이 생각나서 마지막으로 잠깐 들르기로 했다.
그런데 기대 이상이었다. 꽃으로 가득 채워진 공간 위로 수많은 나비들이 아름다운 날갯짓을 보였다. 천국에서 천사들이 날아다니듯 황홀한 광경이었다. 꿀이 묻은 조화다발을 아이 손에 쥐어주니 나비들이 내려앉았다. 가만히 내려앉아 꿀을 빨아먹는 나비를 아이는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사이 또 다른 나비가 와서 앉았다.
나비가 가득한 이 공간에 가장 오래 머무른 것 같다. 아이는 자리를 옮기며 새로운 공간을 경험하는 것보다 차분히 한 자리에 머물러 움직이는 동물과 곤충을 관찰하는 걸 좋아했다. 이동을 하다가도 스피커로 아는 음악이 울려 퍼지면 그 자리에서 데크를 무대 삼아 발을 구르며 춤을 추기도 했다. 누군가가 이끌어 억지로 하는 것을 거부하고, 그저 자신의 의지대로 스스로 선택하여 움직이길 원했다. 그럴 때 만족스럽고 행복해 보였다.
아이의 즐거움은 그곳에 있었다. 나는 아이를 가능하면 여러 공간에 데려가 경험시켜주고 싶었다. 내 기준에서의 즐거움을 따라 아이를 이끌었다. 그러면 당연히 아이도 즐거워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아이도 하나의 인격체다. 본인의 즐거움은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선택할 수 있다. 당연한 권리다.
아이에게 어떤 놀이를 제공해야 할지, 어떤 장소에 데려가면 좋을지 자주 고민한다. 고민하다 보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내 기준이 더해지면 어렵고 복잡해진다. 자꾸만 욕심이 채워진다. 아이를 기준에 놓고 보아야 한다. 놀이는 즐거워야 한다.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는 아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아이의 표현과 반응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그 반응을 따라 놀이를 결정하는 게 낫다. 육아도, 훈육도, 놀이도 아이를 따라가면 조금은 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