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그러나 계속
2월은 내게 안식월 같은 달이었다.
명절 일주일, 어린이집 새 학기 준비로 이어진 2주의 가정보육, 아이의 새 학기 적응, 둘째 임신 준비, 그리고 3월 초 예정된 이사. 연달아 놓인 큰 일들을 무사히 건너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해 보였다.
그 와중에도 글쓰기 모임과 요가 수업, 매일의 독서와 기록, 새벽 기상은 지키고 싶었다. 여기에 집을 단정히 하고 육아 리듬을 유지하는 것까지, 처음엔 모두 안고 가고 싶었다. 하지만 점점 다가오는 시간 앞에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현실적으로 전부를 안고 가기란 무리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모임 직전까지 고민했던, 글쓰기 모임과 요가 수업은 잠시 내려놓았다. 가장 큰 이사 준비와 명절, 가정보육에 집중하기로 했다. 쉬어가기로 마음먹자마자 신기하게도 몸이 먼저 무너졌다. 오래 앓던 머리가 과부하를 견디지 못한 듯, 강제로 2주를 쉬어야 했다. 미리 끝내두려던 이사 준비는 미뤄 두고, 루틴은 최소한으로 줄였다. 그날 다 해내지 못해도 괜찮으니, 대신 충분히 잠을 채워 에너지를 지키기로 했다.
거대한 산처럼 보이던 문제들 앞에서 잠시 주저앉은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그 시간 안으로 들어가자, 온몸의 힘을 빼고 유영하듯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멀리서 보면 벅차 보이던 것들도 직접 부딪혀 보니 생각만큼 거대하지는 않았다. 혼자 견뎌야만 하는 일들도 아니었다. 다행히 누구도 크게 아프지 않고 명절을 보냈고, 가정보육 시간은 꽤 즐거웠다.
혼자 아이와 짐을 챙기느라 힘들까 걱정했지만, 고향 가족들의 손길 덕에 오히려 덜 힘들었다. 아이도 생각보다 나를 찾지 않고 어른들 곁에서 잘 지내 주었다. 그 덕에 나도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막힐 줄 알았던 고속도로는 예상보다 한산했고, 친정집에서 빨래까지 돌려온 덕에 집에 돌아와서도 부담이 덜했다.
아이와 다시 24시간을 함께해야 한다는 사실이 막막했지만, 요즘 유행인 독감과 장염을 피해 집에 머무는 시간에 안심했다. 매일 어디로 데려갈지 고민하는 시간이 기대가 되었고, 여행처럼 설렜다. 단둘이 데이트하며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했던 순간은 더없이 깊고 소중했다.
글쓰기와 기록을 멈추면 내 삶도 멈추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이동하는 차 안에서 10분이라도 책을 펼치고, 잊지 않고 싶은 순간마다 생각을 메모장에 기록하던 시간은 내 삶이 여전히 흐르고 있음을 증명해 주었다.
나는 한 달 동안 멈춘 게 아니라 속도를 낮추었을 뿐이었다. 모두 잠들고 홀로 눈 뜬 밤마다 생각은 더 깊어졌고, 다시 쓸 수 있겠다는 마음이 천천히 차올랐다. 쉬면서 생긴 여백 속으로 꿈과 소망, 활기와 기대가 조용히 스며들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좋은 3월. 아이의 첫 등원을 마치고 돌아와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고, 음악을 틀고 책상 앞에 앉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